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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파의 시간 - mRNA로 세상을 바꾼 커털린 커리코의 삶과 과학
커털린 커리코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4년 7월
평점 :
몇 년 전의 코로나 사태는 일찍이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전세계적인 재난이었다. 부분적인 지역에서 감염병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퍼진 것은 최초가 아닌가 싶다. 그만큼 세계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많은 교류가 있기에 일어난 일이다. 이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바로 진단과 백신이었다. 코로나가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 진단하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 일찍 진단 키트를 만들어서 대처했는데 병을 예방할 백신은 언제 만들어질지 알 수가 없는 실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한 과학자의 오래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신속한 개발이 이루어져서 결국 코로나 백신을 만들게 되었고 수 억 명의 인류를 구하게 되었다. 이때 우리는 어떤 백신이 아프거나 후유증이 있거나 하면서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mRNA 가 바로 그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백신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백신은 단 시일에 그렇게 만들 수가 없다. 이번에는 수 많은 자원이 총집결을 했기도 하지만 백신 만드는 원리인 mRNA 에 관한 연구가 선행되어 있었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그 연구가 미진했다면 아무리 돈과 자원이 많아도 결코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인류를 구한 백신 개발의 공로자 에게 노벨 생리의학상이 주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2023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는 '커털린 커리코' 였다. 그는 수십 년에 걸쳐 mRNA를 연구 한 결과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사실 이때 이 수상자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관련 연구자들 말고는 다들 처음 들어보지 않았을까. 그리고 대부분 어떤 연구실에서 연구를 했던 그냥 평범하지만 꾸준했던 학자가 아니었을까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커털린 커리코는 그냥 연구만 했던 평범한 학자가 아니었다. 좌절과 위기 속에서 끝까지 신념을 버리지 않고 전진해온 용맹한 사람이었다. 이 책은 그런 그가 삶을 되돌아본 회고록이다. 커리코는 1955년에 헝가리에서 출생했다. 1955 헝가리라는 시대적 배경을 보면 뭔가 삶이 태어날 때부터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때의 헝가리는 2차 세계 대전 후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해 있을 때였다. 그러나 공산주의에 대한 헝가리인들의 저항 의식이 싹트면서 56년도에 결국 의거가 일어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이어지는 강직된 사회 분위기. 이런 분위기에서 훗날의 커리코 같은 학자가 나올 수 있었을까. 그녀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조국을 떠나 미국에서 연구를 지속했고 미국에서도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독일까지 갔다가 결국 결실을 맺게 된다.
책은 커털린 커리코가 직접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는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부터 한다. 도축업을 했던 아버지와 약국에서 잡일을 했던 어머니의 삶을 통해 자신의 능력이 부모로부터 이어 받은 것임을 드러낸다. 여러 손재주가 있으면서 강인하고 성실했던 아버지와 나이 들어서도 첨단 기술을 이해할 정도로 영민하면서도 유머 감각이 있었던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어릴 때부터 수학이나 과학에 흥미를 가지고 좋은 성과를 내었다.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 지은이가 오늘날의 업적을 거둔 것은 물론 스스로의 노력이지만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습관과 버릇을 물려받았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지은이도 그것을 알기에 부모님 이야기부터 시작한 것이다.
차근차근 연구자로서 삶을 살아가던 지은이에게 큰 일이 연달아 닥친다. 먼저 아버지의 죽음. 그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은 그녀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연구를 멈추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강제로 끊어지게 되었다. 연구비를 지원하던 제약 회사에서 연구를 포기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것도 지은이 인건비만. 그것은 그녀가 하던 연구에 대해 큰 가망이 없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제 진짜 좌절할 시간이었지만 지은이는 자신의 연구를 하고 싶었고 여러 경로로 알아본 결과 미국에 가기로 했다. 익숙한 조국을 떠나 아는 사람 없는 낯선 미국에 가야 하는 그 마음은 두려움 아니었을까.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는 연구를 위해 미국행도 불사했지만 그녀가 하는 연구 자체가 그리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그때는 DNA 연구가 활발했지 RNA는 그다지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연구 자금을 타오는 것도 신통치 않으니 그를 지원하는 기관이나 회사도 줄어들고 심지어 같은 연구자들에게도 무시를 당하게 된다. 몇 번이나 불리한 조건에 쳐했지만 연구를 이어나갔다. 이런 끈질긴 열정으로 독일에 있는 생명 기업인 바이논텍으로 이직하면서 연구에 더 박차를 가한다.
전에 비해 RNA에 대한 가치를 알아가기 시작했고 연구도 축적되던 그 때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한 방법으로 mRAN 가 쓰이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른다. 당시 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쓸고 수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때 문제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mRNA는 속도가 가장 큰 특성이었다. 항원의 유전자 염기서열만 알면 그 항원을 암호화하는 mRNA를 만들고 이를 지질 운반체에 아주 빠른 시간에 넣을 수 있었다.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은이가 수 십 년의 삶을 갈아 넣은 연구가 단초가 된 것이고 결국 이것이 인류를 구했다.
책은 딱딱한 과학책이 아니다. 지은이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쓴 내용이다. 부모님과 형제 등 가족의 이야기와 남편, 자녀의 이야기도 중요한 부분으로 전개가 된다. 그리고 큰 열정적인 연구에도 끊어지는 연구비로 좌절할 순간에도 끝까지 신념을 놓지 않은 모습이 담담하게 서술 되어서 어렵지 않고 재미있다. 물론 중간 중간에 과학 개념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 나오긴 하지만 쉽게 잘 설명하고 있어서 읽고 넘어가면 될 수준이다. 글이 담백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잘 쓰여져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회고록이다.
지은이가 참 대단하다고 여긴 것이 백신 성공의 주인공으로 여러 언론에 노출이 되고 노벨상까지 타면서 연구 외의 일들이 많이 있어도 최신 논문 읽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지금의 일들은 한때 지나가는 소나기같이 여기는 듯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연구에 대한 신념과 열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