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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인 이야기 - 모험하고 싸우고 기도하고 조각하는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11월
평점 :
서양의 중세 시대는 오랫동안 암흑의 시대로 불렸다. 강력한 교황이 세상을 다스리면서 종교가 일상을 지배하는...그래서 역사가 발전하지 못했던 시기라고 여겨졌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발전이 그렇게 장기간 없었는데 르네상스가 올 수 있었을까. 또 그 뒤를 이은 산업혁명이 올 수 있었을까. 역사가 단절된 채로 그런 엄청난 변혁이 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의문을 가진 역사 학자들이 많았는가 보다. 최근 들어서 중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이야기 하는 주장들이 많아졌고 또 관련해서 책들도 많아졌다.
그렇다면 중세는 어떤 시대였는가? 발전이 없던 암흑의 시대가 맞는가? 그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할 수 있겠다. 분명 중세는 그 전의 자유롭던 시대에 비해서 답답한 면이 있긴 했다. 그러나 그런 면과 함께 전 시대의 유산을 착실히 발전시켜서 나중의 세대에 전해 줄 만큼의 나아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중세는 빛과 어둠이 공존하던 시대라고 볼 수 있겠다. 단순한 암흑의 시대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은 기존에 알려졌던 어두운 부분보다는 밝고 역동적인 모습이 중세를 소개하는 내용인데 확실히 그 시대가 발전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책은 처음에 바이킹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바이킹은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지역 출신인데 8세기 이후 300여년에 걸쳐 사방으로 확산해갔다. 그런데 그 범위는 광범위해서 남쪽으로는 지중해까지 진출했고 서쪽으로는 콜롬버스보다 수 백 년 일찍 아메리카대륙에 상륙했으며 러시아와 비잔티움제국에도 도달했다. 역사상 이 보다 더 역동적인 진출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이들은 약탈의 이미지가 있지만 평범한 상업에 종사하기도 했고 왕국을 건설하거나 일부 나라의 국가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1장에서는 그런 바이킹의 활약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새삼 바이킹이 중세 유럽의 역사를 확장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2장에서는 혼돈 속에서 유럽을 지킨 종교와 세속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로마가 무너진 후 동쪽에는 비잔티움이라고 불리는 동로마 제국이 들어섰지만 서쪽지역은 혼란이 계속되었다. 게르만 족이 여러 지역을 휩쓸고 다녔고 거기에 이슬람 세력이 북아프리카부터 바다를 건너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면서 오랜 기간 지역을 장악했다. 이런 상황을 질서있게 진정시킨 것은 결국 기독교로 대비되는 종교와 세속적인 통치 집단이었던 것이다. 한편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기독교도들이 '재정복운동'을 통해서 결국 이슬람을 몰아냈다. 많은 이슬람 관련 유적이나 유물이 파괴되었지만 두 종교의 융합을 이룬 곳도 있는데 책에서는 코르도바의 모스크- 성당을 통해서 두 문명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은 총 5장까지 각 꼭지의 주제에 따라서 중세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3장에서 안정기에 접어든 중세 시대의 여러 의미 있는 인물들을 소개하면서 중세가 암흑기가 아니라 사람들과 공간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게 완만하지만 분명한 발전을 이루던 시대가 중세 말이 되면서 위기에 처한다. 그것은 전쟁과 기근, 질병등이었다. 백년전쟁을 통해서 많은 사상자를 낳았는데 대기근과 페스트의 발병은 역사적인 후퇴를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이때의 엄청난 이미지때문에 중세가 암흑의 시대라고 불렸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혼란한 상황을 통해 종교적 교리가 변경되고 여러 사회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면서 경제에 대한 관념도 바뀌게 된다. 상업과 금융의 확대는 역사를 더 빠르게 발전,확대시키고 그것은 결국 유럽이 중세를 넘어서 더 나은 발전을 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유럽의 중세는 시대적인 구분은 딱 정해진 것이 아니다. 학자에 따라서 다르긴 해도 넓게 보면 대략 500년부터 1500년까지 1000여년의 세월이다. 못해도 몇 백 년인데 이 시기가 의미 없이 흘러갔다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아무리 그리스 로마 시대와 다르다고 해도 분명 발전이 있었기에 르네상스로 넘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중세가 얼마나 다양하면서 아름다왔던 시기였는지를 여러 갈래로 잘 설명하고 있다. 이미 유럽인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서 유럽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소개했던 지은이가 중세 시대만 따로 이렇게 글을 모았는데 흥미롭게 잘 썼다. 글 내용과 관련된 많은 지도와 그림들을 실려서 더 쉽게 이해하게 하고 글 자체가 더 풍성해진 느낌이 든다.
이제는 중세라고 하면 단순히 어두운 시절은 아니란 것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시대였는지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이 좋은 입문서라는 생각이 든다. 시기별로 나열한 통사적인 내용이 아니고 각 주제에 맞는 여러 사례들을 들었기에 더 쉽게 중세에 대한 개념을 잡을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더 자세하게 중세 시대를 다룬 책들도 많지만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 책만으로도 그 시대를 알아가는데 충분하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