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의 흑역사 - 부지런하고 멍청한 장군들이 저지른 실패의 전쟁사
권성욱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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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큰 변혁이 이루어질 때 당시 활약하던 영웅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큰 전쟁에서는 전황을 일거에 바꿀 정도의 능력을 보여준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위인이 없었다면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한편 가만 생각해보면 영웅의 반대편에는 어떤 인물이 있었을까. 그 인물은 능력이 있었을까 없었을까. 무능하기만 했을까 아니면 나름의 능력이 있었지만 중과부적으로 지고 말았을까. 역사에는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다. 능력자와 능력자가 맞붙었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에 능력자에 비해 너무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은 무능 그 자체로 아군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나라를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무능한 장군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사실 능력있는 지휘자들끼리 만나는 경우도 있다. 로마를 괴롭혔던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같은 경우다. 그는 독특한 전술로 로마를 궁지에 몰기도 했지만 결국 스키피오라는 또 다른 명장에 패하고 만다. 이런 경우에는 누구를 탓하기도 어렵다. 개인 능력이 아니라 국가적인 능력에서 로마가 앞섰기 때문에 아무리 한니발이라고 해도 이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장군들은 시대적인 상황이나 처세술로 인해서 높은 위치에 올랐지만 진정한 리더쉽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우선 눈에 띄는 인물은 '쌀이 없으면 풀을 먹으면 된다' 는 희대의 헛소리를 남긴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군 지휘관인 무다구치 렌야다. 그는 임팔 작전을 지휘했는데 전장의 상황을 이해하지도 않고 무조건 전진을 외치다가 수 만 명의 일본군을 잃었고 그 여파로 일본군의 균열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이다. 처음에는 본인도 직접 현장에서 지휘한 줄 알았다. 그러나 400km나 떨어진 곳에서 입만 살아서 호의호식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합군이나 우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X맨 같은 인물이었지만 일본에게는 피 같은 군사 10만이 몰살 당한 대참사였다. 웃기는 것은 그런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별다른 문책을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 안 했다는 것은 결국 일본이 패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싶다.


나폴레옹 3세는 풍운아 나폴레옹 1세의 조카였다. 그는 삼촌의 후광을 입고 인상적인 활약도 없이 선거를 통해 권좌를 차지했다. 그래도 피는 못 속이는지 권력욕은 닮아서 쿠데타를 통해 공화국을 멸하고 다시 군주제를 부활시켜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아무리 시대 상황이 어수선하고 그 기회를 잘 노린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을 잘 포착하고 유연한 언론 대응으로 결국 황제가 된 것은 어느 정도는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내치에서는 나라를 정비하고 근대화를 위한 투자를 해서 산업의 효율성을 개선시켰다. 강력한 제국 주의 정책으로 많은 식민지를 개척했고 외교적으로 사이가 안 좋았던 영국과 화해하면서 프랑스를 안정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평화시에 잠깐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당시는 역사가 복잡하게 흘러가던 때였다. 여러 곳에서 국지적인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고 점점 더 큰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웃 프로이센은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의 지도력 아래 나날이 부강해지고 있었지만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군대는 겉만 화려할 뿐 속은 무너지고 있었고 결국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에서 대패한다. 그는 자신이 군사적인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써 책무를 다 하지 않았다. 


책은 주로 1,2차 세계 대전에서 그야말로 망하려고 작정한 무능한 지휘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그들의 허황된 욕심과 무능으로 많은 부하 장병들의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고 자신의 조국이 큰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벌을 받지 않고 뻔뻔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뻔뻔함이 유일한 특기이려나. 그런 무뇌적인 행동이 자신감 있고 결단력 있는 인물로 비춰지게 했었을까. 난세에 인물의 진가가 드러나게 되는데 전쟁이 아니었으면 그들의 무능함이 드러났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했다.


역사란 것이 승자의 기록이고 패자는 무능하게 그려지는 면이 많지만 실제로 무능하고 어리석어서 실패한 인물들도 많다. 그냥 단순한 실패라면 넘어갈 수도 있지만 역사를 바꿀만한 일들이기에 역사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반면 교사의 예로 말이다. 책에 나온 인물들을 보면 나름의 능력이 있어서 그 자리에 올라갔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당시에 인물이 그렇게나 없었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책은 재미있다. 각 인물들의 실패한 과정을 단순하게 나열하는 것이 아니고 당시의 역사적인 배경을 잘 설명하면서 여러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그 시대의 역사를 읽는 재미가 있다. 전쟁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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