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풀에서 코뿔소 뿔까지 - 고려 의서 ‘향약구급방’으로 당대 문화 읽기 고려 의서 향약구급방 읽기
신동원 외 지음 / 책과함께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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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구급방'은 우리나라에서 현재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의학 서적이다. 고려 시대의 책인데 그 전 시대에도 의학 서적이 발간이 되었겠지만 지금 전하는 것은 '향약구급방' 밖에 없다. 책이 나온 것은 고려 시대 대장도감에서 간행되었고 조선 초기에 두 차례 중간 되었는데 현재 전하는 것은 중간본이다. 대장도감이 설치 된 것은 1232년이라고 하지만 이 책이 발간된 연대를 특정하기는 어렵다. 편찬 연대나 저자에 대한 기록이 없어서 정확히 알기는 어렵고 대략 고려 말에 나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실 '향약구급방'은 학교 다닐 때 역사책에서나 들어본 책이고 실제로 읽어 본 적은 없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이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고려 시대는 많은 전쟁이 있었기에 역사책이나 기타 문헌들이 오늘날까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 책이 용케 남아 있는 것은 실생활에 직접 쓰이는 내용이라서 비교적 많이 퍼졌을 수 있고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서 중간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이 책을 바탕으로 비슷한 이름의 '향약집성방' 이 발간되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향약구급방'이 대체 어떤 내용인가를 알려주고 있는데 단순하게 번역 한 것이 아니라 내용 속에 있는 당대인들의 인식과 그 의미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 의학 서적인 줄 알았는데 내용 안에 여러가지 시대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책을 옮긴 여러 명의 학자들이 꽤 품을 판 작품이다.


일단 책 이름에서 '향약' 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고대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는 우리에게도 나름의 한의학이 발전했겠지만 더 많이 발전한 중국의 의학에 의존하는 면도 많았을 것이다. 특히 약을 만드는 재료는 중국에서 많이 수입했다. 그것을 당약이라고 불렀는데 향약은 우리의 약재라는 뜻으로 붙인 것이다. 이 책이 발간된 고려 말은 몽골이나 홍건적으로 시대가 혼란하여 정상적인 약재 수입이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 나라에서 나는 약들을 소개하면서 각 병에 맞는 약을 쓰도록 만든 것이 이 책이다. 


책 내용을 보면 우선 음식 중독 치료법에 대해서 설명한다. 조선 시대에 나온 의학 서적들은 처음에 중풍을 소개하는데 이 고려의 의서는 '식독'이 처음 등장한다. 그만큼 고려 시대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많이 접해서 우선 소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음식, 고기, 버섯 등의 섭취로 인한 중독 증상에 쓰는 해독약은 공통적으로 식혀서 복용하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온도를 낮춰 독이 퍼지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다. 차가운 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성질이 있어서 체외로 독을 배출하려는 뜻이 있다. 책에서는 해독을 위한 치료제로 검은콩, 쪽풀, 제니를 제시하고 있는데 당시 주위에서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을 것이다. '향약구급방' 의 집필 목적인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재료로 자주 걸리는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에 딱 맞는 내용이다.


책 내용 중에 의외로 외과 수술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외과 수술은 동양 의학에서 많이 발전하지 못한 부분인데 사실 이 시대에도 칼이나 창, 화살 등 쇠붙이 무기류에 의해서 부상 당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향약구급방'에는 박힌 화살을 빼는 방법, 지혈을 하는 방법, 통증을 진정시키는 방법, 빠져나온 창자를 집어 넣는 방법 등이 기술되어 있다. 과연 이것이 어떤 한의학적인 원리로 소개하는 것인지가 설명되어 있지 않아서 후세에 이것을 제대로 활용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이 밖에도 질환별로 활용할 수 있는 처방 550여개, 치료법 관련 조문 600여개가 소개되어 있는데 단순히 우리 나라에서 나는 향약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당-송대 중국 문헌과 유사한 조문도 많이 섞여 있어서 14세기 이전 중세 동아시아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과학 문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약구급방'은 시골로 갈수록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많이 걸리는 병에 대응하는 단방 위주로 쓰여져 있다. 그래서 왜 그런 처방이 나오는지 그 원리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 책으로 당대 한의학의 기본 원리를 알기는 어렵다는 것이 아쉽긴 하다. 하지만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을 실어서 이 지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살리겠다는 유교적인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조선에 들어와서 전국에 보급되었다고 하니 책을 지은 의미가 잘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의학과 대비되는 한의학의 단면을 밝힐 수 있는 여러 저작물 중에 유일한 고려 시대 책인 '향약구급방'은 당대인들의 병에 대한 인식과 함께 여러 처방들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읽을 수 있는 귀한 책이다. 의학 이론 책이 아니라 급하게 바로 쓸 수 있는 실제적인 내용이기에 전체 책 분량은 106쪽에 불과하지만 풀이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다섯 명의 학자가 함께 옮겼는데 글자에 담긴 단순 의미에서 확장해서 고려와 그 주변 동아시아 사람들의 병에 대한 인식과 그 해법을 인문학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공들여 지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잘 읽히는 편은 아니다. 한의학적인 내용이라서 평소 들어보지 못한 의학 용어나 개념이 낯설게 느껴져서 읽어 내려가기 쉽지 않다. 그러나 강아지풀이나 보리, 감초, 쑥, 돼지기름, 똥 등의 익숙한 것들이 약재로 쓰인다는 것이 신기한 느낌이 들어서 차근 차근 읽으면 나름의 흥미로움이 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14세기 중세인들이 질병과 그 질병에 대응하는 약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 할 수 있어서 괜찮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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