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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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름만으로도 책을 읽게 만드는 작가다. 기본적으로 대단한 이야기꾼이라서 여러 방면에서 여러 가지의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데 어떨때는 어떻게 저렇게 쓰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여러 번이다. 게다가 여러 편의 책을 많이 내는 편이라서 작업량도 대단하다. 물론 책을 많이 펴내는 만큼 별로인 작품도 여럿 있다. 주로 단편이나 중편에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 몇몇 장편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 외사랑을 읽고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술술 넘어가는 전개력도 그렇지만 어떻게 이런 소재를 가지고 이런 장편을 쓰는가 하는 감탄을 하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소설도 아니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01년이라니까 20년 전인 것이다. 이런 책이 왜 이제 나오지 했는데 글의 소재를 보니 그럴만도 했다. 20년전이라면 아무리 히가시노라고 해도 우리 나라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든 소재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나라는 사회적인 인식이 20년전의 일본보다 더 보수적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이야기는 요즘에도 쉽게 하기 힘든 소재다. 성정체성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몸은 여자의 것을 갖고 있지만 마음은 남자인 그런 경우다. 어쩌면 동성애를 갖고 있는 사람보다 더 적은 사람들일 것이다. 책은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과 그것의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데쓰로는 어느날 과거 대학 시절 미식 축구를 했던 동료들과 동창회를 하고 있다. 그런데 거기서 팀의 여성 매니저였던 미쓰키와 만나게 된다. 그런데 미쓰키는 분명 여자였는데 다시 만나서 보니 남자가 되어 있다! 이윽고 미쓰키의 고백을 듣게 되는데 그것은 그녀가 어렸을때부터 몸은 여자였지만 마음은 남자였다는 것이다. 그동안 순응하며 살다가 결국 남자가 되기로 했다면서 외관도 남자처럼 하고 목소리도 남자 목소리로 변했다. 그러나 그 정도 소식은 약과였다. 더 큰 고백, 아니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가 살인을 했다는 것이었다. 자수하기 전에 옛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고 한다.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도 놀랄 일인데 살인을 했다니! 자초지경을 들은 데쓰로는 역시 과거 같은 팀의 여성 매니저이자 지금의 아내인 리사코와 미쓰키를 집에서 보호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바로 자수를 하지 못하게 한다. 일단 그녀를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데쓰로와 리사코의 보호아래 있기로 했던 미쓰키는 어느 날 아무말 없이 사라진다.


미쓰키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 데쓰로는 살인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 사건속에 미쓰키가 있으니 미쓰키를 찾기 위해서는 탐정 아닌 탐정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사건의 진실을 찾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사실들이 밝혀진다. 데쓰로가 생각치도 않았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미쓰키를 찾기 위한 것. 이야기는 미쓰키가 하나씩 하나씩 사건의 단서를 찾고 모아가면서 점점 사건의 실체에 접근 하는 것을 보여 준다. 그 과정에 여러 가까운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고 그들 또한 미쓰키와 이리 저리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사건을 쫓던 중에 같은 미식 축구 부원이었으면서 기자가 된 하야타를 만나게 된다. 그는 이미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터. 기자의 양심으로써 이 사건을 추적해서 신문에 실을 수 밖에 없음을 말한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다. 이제는 단순히 데쓰로만의 사건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 연루된 큰 사건이 되어 버렸다. 경찰도 추적하고 있는데 그들을 아는 기자의 등장이라니. 데쓰로는 누구보다 먼저 미쓰키를 찾고 사건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만일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야기는 여자의 몸으로 남자의 마음을 갖는 것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살인  사건의 이면을 찾아서 그 진실을 찾아가는 추리 소설의 형식이다. 과연 살인 사건은 어떻게 일어났는지 미쓰키가 어떻게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피해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등을 다각도에서 다가가고 있는데 아주 복잡한 구조는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추리해 나가는 과정을 씨줄과 날줄로 정교하게 잘 짜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작은 것들을 하나씩 짜가면서 큰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데 그 과정이 자연스럽게 잘 연결되고 이어지고 있다.


이야기는 참 재미있다. 히가시노 작가 특유의 쉽게 휘몰아치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색다른 소재지만 어렵지는 않고 추리해가는 과정도 복잡하지 않기에 책이 휙휙 넘어갔다. 그래도 단계 단계마다 세밀하게 이어지기에 책 분량이 적지 않은데 단순한 살인 사건에 젠더 문제와 결부 시켜서 이렇게 긴 장편으로 전개시킨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일본 사회가 배경이지만 소재를 본다면 우리 나라에도 분명 있을법한 일이다. 내 주위 가까운 사람이 이렇다면 어떻게 대해야 했을까 또 내가 데쓰로라면 어떻게 했을까 등등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당사자는 참 괴로웠겠다 힘들었겠다라는 생각도 든다. 책은 이들도 어쨌든 보통의 한 인간이라는 것을 역설한다. 보통 사람들과 똑 같이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소수의 성적인 다름을 별 것으로 여기지 말고 그냥 그대로 인정하고 봐주기를 작가는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추리라는 형식으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결국 사람의 사랑과 포용에 대한 이야기나 다름 없다. 평소 '다름'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책으로 다가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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