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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리치의 일본 미학 - 경계인이 바라본 반세기
도널드 리치 지음, 박경환.윤영수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8월
평점 :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 과거 역사를 보면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힌 나라다.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전쟁을 일으키고도 모자라 결국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미운 나라. 광복이 되고 수십 년이 흘렀지만 자신들의 행위를 반성하지 않는 모습은 그들을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게 한다. 현대에 와서 민주주의가 확산이 되었기에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 주된 경계 대상이 일본이 아닐까 싶다.
다행히 우리는 과거의 조선이 아니고 경제나 문화 그리고 국방 분야에서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는 국력을 키웠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겠지만 우리가 약하면 상대가 오판을 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국방력도 키워야겠지만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내적 외적으로 많이 대비를 해야 일본도 허튼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인이 보는 일본, 그리고 우리 한국인이 보는 일본 이렇게 일본을 알아 가는 것도 좋지만 서양인의 관점에서 보는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도 흥미롭다. 단순히 몇 번 본것이 아니라 아예 일본에서 오래 살면서 관찰했다면? 이방인의 위치에서 찬찬히 살펴본다면 또 다른 객관적인 시각으로 일본을 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지은이인 도널드 리치는 미국인인데 1947년 연합군 사령부의 군무원으로 일본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 많은 미군처럼 그냥 점령국 일본에 대해서 조금만 알고 돌아갔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일본에 대한 많은 관심이 있어서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고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뜰 때까지 일본을 탐구했다. 마냥 일본 문화에 대한 찬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인의 관점에서 일본 문화는 어떻게 보이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했던 것이다.

일단 지은이가 남긴 많은 에세이중에서 의미 깊은 글들 20개를 모았는데 하나 같이 가볍지 않고 세밀하면서 깊이 있는 글들이다. 지은이는 '패턴' 이라는 낱말을 자주 쓰는데 일본의 미학은 자연의 패턴을 잘 연구해서 현실에 잘 구현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사실 자연을 현실에 구현하는 것은 우리나라나 중국 등 동양에서 많이 나오는 모습이긴 한데 미국의 심심한 작은 도시에 살았던 그의 눈에는 그것이 신비롭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일본의 패턴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첫 장 일본의 형태에서 잘 드러난다. 국가에서부터 생활 전반에 걸쳐서 패턴이 있다고 봤다. 말하자면 일종의 형식이 일본을 지배하는 것이다. 전화를 하는 방법, 쇼핑을 하는 방법, 차를 마시는 방법, 돈을 빌리는 방법 등에서 절대적인 형식이 존재하고 그것을 지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형식에 전 국민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과거 일제 군국주의가 힘을 얻게 된 하나의 요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키스' 글에서는 우리 나라도 비슷한 것 같아서 미소가 지어졌다. 서양인에게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행위인 키스가 일본에서는 금지된 행위라는 것이 이상했던 모양이다. 이미 100년전 1883년에 프랑스 공쿠르 형제는 일본에서는 섹스를 할 때 키스를 하지 않는다는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그만큼 터부시되었다는 말인데 그것이 공공 장소에서 표현될리가 없다. 물론 오늘날에는 그런 키스는 자유롭다. 하지만 서양에서 누구에게나 하는 그런 키스의 의미와는 다르다. 가족간에 유대와 사랑의 의미를 담은 자연스런 행위가 일본에서는 섹스의 일부분으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 의아스러운 부분인것 같다.
책은 1962년의 글부터 2007년의 글까지 세월의 흐름속에서 느껴지는 여러 관찰들을 진중한 모습으로 쓰여진 글들을 모았다. 이 책으로 일본의 본 모습을 다 알기는 힘들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떻구나 하는 느낌을 느낄 수가 있다. 일본에서 오래 살았지만 결코 일본인이 되지 못했던 이방인이자 경계인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일본을 살펴 볼 수 있는 것이다. 쉽게 쓰여진 글이 아닌 만큼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빠르게 읽으려고 하지 말고 한 숨 죽여서 천천히 읽으면 좋을 책이다. 곱씹을 만한 부분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