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인의 위대한 패배자들 - 한니발부터 닉슨까지, 패배자로 기록된 리더의 이면
장크리스토프 뷔송.에마뉘엘 에슈트 지음, 류재화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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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승자의 위치에서 쓰여지기 때문에 사실이 왜곡되고 진실을 다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이면까지 들여다봐야 진실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그런데 사실 패자의 역사를 알기란 쉽지 않다. 패자의 입장에서 쓴 기록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패자라고 해도 '명망'이 있어서 그 흔적을 지우기 힘든 경우는 어느 정도 기록이 남기에 그들을 통해서 실체에 접근할 수가 있다.


이번에 나온 책은 비록 패자라고 해도 드높은 '이름'을 날린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 뒷면에 담겨진 역사적인 일들을 알 수 있게 한다. 첫번째로는 '한니발'을 소개하는데 정말 이름값을 하는 사람이다. 로마가 제국으로 발돋음하기 전 최대의 적이었다. 로마와 지중해를 두고 패권을 다투던 카르타고의 명장이었는데 기발한 전술과 전략으로 로마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역사상 최초로 알프스산을 넘었다고도 하는데 그것이 최초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만큼 생각지도 않은 전술을 구사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조국은 이 명장을 뒷바침할 능력이 되지 않았던 것에 있다. 막대한 패배를 당했어도 다시 전력을 충원한 로마에 비해서 한니발의 카르타고는 한번의 승리 이후에 로마를 뿌리뽑을만한 지원을 하지 못했다. 한니발은 자국 영토에서 싸운 것이 아니라 로마의 영토에서 싸웠기에 더욱더 지원이 필요했으나 결국 배신을 당한다. 그러고 여러나라를 전전하면서 도피를 하지만 이 명장의 가치를 알고 있는 것은 카르타고가 아니라 로마였다. 언제 다시 로마의 후환이 될까 싶어서 끝까지 추적해서 죽게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를 패배시켰던 로마의 명장 '스키피오'도 반강제로 은퇴당했다는 것이다. 일생을 배신 당했던 한니발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 전쟁을 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클레오파트라는 미녀의 대명사로 독사에 물려 죽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녀가 단순히 미녀라는 것만 알려졌지 자신의 조국을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한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이집트의 지배자였고 로마의 침략에 맞서서 이집트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 로마를 이용했던 것이다. 그녀는 안토니우스까지는 성공했지만 훗날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되는 옥타비아누스는 실패했다. 그래서 그녀는 저속한 매춘부라는 악명을 얻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능력있고 가치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미국 남북 전쟁의 남부군 총사령관 로버트 리는 패배자임에도 위대한 미국 장군의 반열에 오른 특이한 사람이다. 사실 그의 성향으로봐서는 노예제를 옹호하는 남부보다는 노예 해방을 주장하는 북부에 더 어울렸던 사람이다. 실제로 북부군 지휘관으로 제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념보다도 고향을 더 끔찍하게 여겼던 사람이다. 고향을 위해서 남부군을 맡았고 모든 면에서 열세였던 군대를 잘 지휘해서 북부군을 몰아붙였다. 그는 남부가 북부를 이기기라고 여기진않았다. 그저 승기를 잡아서 북부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북부는 결코 질 생각이 없었고 압도적인 능력의 북부군에 결국 패배한다. 하지만 그는 남부군 총사령관으로써 예우를 받았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대학 총장을 하면서 여생을 평화롭게 보낸다. 그 이후에도 미국 최고의 군인의 대우를 받는다. 그가 그의 신념대로 북부를 택했다면, 최소한 남부군을 맡지않고 중립이라도 했다면 전쟁에 희생당한 사람이 적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의 선택이 아쉽기만 하다.


리처드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재임중 탄핵당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악명을 갖고 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 한 행동은 분명 잘못되었고 불법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빼고 나면 어느 대통령보다 능력있는 사람이었다. 그 이후의 진보적인 대통령보다 더 진보적이었고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서 벗어날려고 했으며 중국과 외교 정상화를 하면서 평화를 구축했다. 그 사건이 없었다면 그가 당선이 되었을까. 그리고 미국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고 거기에 우리의 역사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장제스는 수 억의 중국인을 책임진 총통의 자리에 올랐지만 너무 큰 옷을 입은 장군이었다고 평하는데 일견 수긍이 간다. 국민당의 파벌과 부패에 좀 더 집중을 했다면 중국 농민들의 마음이 그렇게 달아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공합작 후 공산당보다 더 열심히 일제에 항거했던 것을 과소평가한것은 아닌가도 싶다. 


이밖에도 여러 인물들의 알려진 평에 비해서 속에 숨은 능력과 잘못된 사실들에 대해서 잘 이야기해주고 있다. 장단점을 잘 설명하면서 이쪽과 저쪽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해서 더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한다. 무엇보다 지은이가 아주 흡입력있게 글을 잘 쓰고 있다. 사실과 평을 적절하게 잘 섞어서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게 한다. 이 책을 읽는다면 역사는 위대한 승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빛나는 패자'도 있음을 잘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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