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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워크
스티븐 킹 지음, 공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4월
평점 :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아주 오랫동안 우리 가족이 삶을 영위한 곳이다. 사실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건물 자체는 초등학교 저학년때 새로 신축을 했다. 1층짜리 기왓집에서 2층짜리 양옥으로. 그렇게 새로 지은 건물에서 산 지가 벌써 수 십 년. 외관도 그대로고 건물안도 그리 많이 바뀌지 않았다. 세간살이가 많아졌고 관리 부실로 낡아보이는 점이 다를 뿐 옛 모습 그대로다. 학교때문에 직장때문에 수 년간 나가 살았지만 집에 오면 늘 푸근하다. 내 방은 언제라도 내가 돌아올 수 있게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기에 다시 살려고 들어왔을때도 그대로였다.
집은 그대로이지만 주위는 많이 달라졌다. 허허벌판 이다시피 했던 주위는 고층 아파트도 들어서고 다른 큰 건물도 들어섰다. 맛집도 생겨나고 촌동네같은 모습에서 뭔가 있어 보이는 동네로 바뀌고 있다. 그래도 우리집은 우리집이고 늘 같은 감정이다. 이 집에서 수십년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주위가 바뀐다고 달라지겠는가. 그런데 최근에 재개발 바람이 불어서 우리집도 재개발 범위에 들어간단다. 아파트를 지으면 수 억의 보상금이 나온다는데 그 돈으로 새 아파트를 살 수 있으려나. 무엇보다 아늑하고 정겨운 우리 집이 이제 흔적도 없어지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수십년의 역사가 쌓인 곳인데 그 추억의 집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니 느낌이 이상했다.
이 책의 주인공이 느끼는 상실감이 어쩌면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하겠다란 생각이 든다. 주인공도 비슷하게 익숙한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세탁 회사에서 일하며 오랫동안 한 집에서 삶을 살았던 '바튼 도스'는 고속 도로 확장 계획에 따라서 집도 옮기고 회사도 옮겨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물론 그냥 옮기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보상도 있고 회사도 적당한 곳으로 보장되고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좋다고 할 확률이 높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도스는 이 집을 떠나기 싫었다. 이집은 자신에게 너무 중요한 추억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열심히 살아가던, 그의 인생의 절정기를 보낸 곳이었다.
무엇보다 이 집은 사랑하던 아들과 함께 살던 곳이었다. 그 아들은 몇년전에 병으로 세상을 떴기에 그를 추억하는 마지막 장소가 집이었다. 도스는 이런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집에서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연기하고 버틴다. 그러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부인과 별거도 하고 이판사판이 된 도스는 더욱더 분노로 상황을 악화시킨다.
책은 추억이 깃든 집에 애착이 강한 한 남자가 그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집을 지키기 위해서 세상에 저항을 하는 이야기를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고 그렇게까지 해야하는가하는 생각도 든다. 글 처음에 썼다시피 익숙하고 소중한 기억이 있는 터전을 잃는다는게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니란 것에 공감을 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그 상실감이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었다. 그에게는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것이었고 그것은 옳다 그르다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애당초 고속 도로 공사가 꼭 있어야 했던가 하는 의문에도 이르게 된다.
이 책은 스티브 킹이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소설이다. 기존의 장르 소설에 능했던 그가 기름기 쫙 빼고 건조하면서도 담백하고 무거운 내용의 책을 썼는데 완전 다른 사람이 썼는것 같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굳이 스티브 킹이 썼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작가가 쓴 책이라고 여기는게 더 나을 정도다. 역시 글쟁이는 글쟁이인가 싶다. 리처드 바크만의 또 다른 작품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