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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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 소설은 1930~40년대에 미국에서 유행한 범죄 소설 유형의 하나로 거칠고 비정하면서 사실주의적 이면서도 세속적이고 감정상 으로는 몰인정하면서 우울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말한다. 어찌 보면 좀 건조한 느낌의 이야기 스타일이다. 탐정은 상세하면서도 세밀하게 조사해가지만 위트나 유머는 그리 나오지 않고 상대 악당도 무자비하면서 조금의 헛점도 보이지 않는 비정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스타일의 소설이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가 이 책을 쓴 '하라 료'이다. 일본 장르 소설을 좀 읽은 사람에게는 이 작가의 이름을 들으면 바로 하드 보일드 소설이 생각날 정도다.


이번에 나온 이 작품, 정통적인 하드보일드라는 생각이 팍 들면서 작가 특유의 은근히 배여있는 잔잔한 정을 잘 느낄 수 있는 내용이었다.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데 전작과 꽤 기간이 길다. 주인공 탐정이 그 동안에 좀 더 달라졌으려나 모르겠다. 탐정 사무소 이름은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 란다. 아마 전작에는 와타나베가 있었으리라. 그런데 지금은 같이 일했던 사와자키만 있다. 와타나베 없는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라니. 역시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아무튼 이 탐정에게 유명 저축은행의 신주쿠 지점장이 찾아와서 한 가지 의뢰를 한다. 회사에서 대출을 해주려는 한 여인을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유명 요정의 주인이었는데 사생활과 대출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뒷조사를 의뢰한 것이다. 신사적으로 요청을 하고 사례금도 나름 괜찮았기에 탐정은 응하기로 한다.


다음 번 만남이 있을때까지 연락을 할 수 없었지만 조사 내용과 관련해서 연락을 할 필요가 생겼다. 그런데 연락 두절. 할 수 없이 지점장이 근무하는 저축은행으로 만나러 간다. 사전에 연락하고 간 것은 아니지만 만나려는 지점장은 못 만나고 대신 은행 강도를 만난다. 다행히 미수에 그치고 말았지만 주범은 도망치고 없다. 거기서 한 젊은 청년 가이즈와, 함께 오래 알고 지낸 니시고리 경부를 만나게 된다. 니시고리 경부는 오래 알고 지냈지만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다. 불친절한 이야기를 주고 받지만 그래도 서로를 아주 나쁘게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친구아닌 친구랄까.


가이즈는 지점장과 가까운 관계에 있었지만 여러가지 사연을 갖고 있는 친구다. 탐정과 여러차례 만나면서 사건의 해결에도 도움을 준다. 지점장은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은행에 돌아오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거 사건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의뢰한 사람은 행방을 감추었고 은행 강도가 나타났으나 이상하게 미수에 그쳤고. 게다가 훔친 것은 없는데 은행 금고에는 원래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있었다. 은행 강도가 돈을 훔친게 아니라 돈을 넣으러 왔을리는 없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더 복잡하게 연결이 된다. 탐정은 지점장을 만나진 못해도 의뢰받은 조사를 계속한다. 의뢰인이 없다고 자기가 할 일을 넘어가는 성격은 아닌 것이다. 아무튼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보는 도중 유명한 조폭이 찾아오고 그것이 하나의 실마리가 된다.


그리고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 살인도 일어나고 여러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능력 있는 탐정이란 그 많은 난관을 하나씩 뚫고 가야 하는 법. 탐정 사와자키는 느리지만 철저하게 사건의 진실로 나아간다. 하나 하나 끈기 있고 노련 하게 사건의 조사해 가는데 책은 그 과정을 아주 세밀하면서 차분하게 전개시키고 있다.


시리즈인데 바로 앞의 작품으로부터 꽤 오랫만에 나온 책인데 역시! 라는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탐정 사와자키 특유의 무덤덤 하면서도 철저한 모습은 더 짙어지게 느낌이 오는데 그와 알고 지낸 사람들이 다들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뭔가 원칙이 있고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믿는 모습이 보인다. 가까운 사이던 불편한 사이던. 탐정일을 하면서 그가 보인 행동에서 느끼는 묘한 믿음이겠다.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아날로그적이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시대에 없다는 것이나 여러가지 신문물에 대해서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 나온다. 시리즈가 나온 텀이 긴 만큼의 세월을 그런 표현으로 드러내는 것 같다. 아마 다음 시리즈에서는 사와자키도 어쩔 수 없이 신문물을 쓰지 않을까. 이미 시대가 그렇게 변화했으니까. 하지만 까칠하면서도 정감없어 보이는 그도 사실 감정이 있어 보이는 것을 가이즈와의 사이에서 느껴진다. 탐정일을 위해서 친구를 안 만드는 것일 뿐. 남을 배려하고 은근 신경 써 주는 면도 있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재미있었다. 미국식 하드보일드가 아닌 일본식 하드보일드 소설인데 형식에 충실하면서도 작가 특유의 작법이 흥미롭게 잘 조화가 되고 있다. 역시 주인공인 사와자키의 매력이 잘 드러나면서 전체적으로 책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사건 조사 도중에 만난 가이즈는 가볍지 않은 사연을 가진 인물인데 사와자키의 일을 잘 도와주기도 했고 딱히 사와자키가 밀어낼려고 하지는 않는다. 혹시 다음호에 주요한 조력자로 또 등장하는건 아닌지. 물론 그때도 여전히 무심한 듯 대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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