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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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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있을 때 기온이 37도.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고 물난리가 난 게 엊그제인데 바로 폭염이다. 이럴때 책 읽기는 쉽지 않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천하의 스티븐 킹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을꺼란 생각을 하면서 책을 들었다. 그런데 아...스티븐 킹은 그냥 믿으면 된다는 것을 깜빡했다. 미안해요 스티븐 잠시 나마 의심했네요.그렇다 이 책은 이 무더위를 잊게 할 정도로 그냥 빠져들게 한다. 아주 강력한 이야기다. 이 작가의 이야기가 언제는 안 강력했겠나만은 이번에 나온 작품도 그 이름값을 하는 내용이다.


책은 처음에 한 인물을 이야기한다. 팀 제이미슨. 전직 경찰인데 지금은 백수고 이혼남이다. 지금은 그냥 아무 계획없이 떠돌고 있다. 일자리를 준다는 뉴욕이 행선지이긴 한데 내심 내키지는 않는다.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데 그것이 덜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무계획적 즉흥적인 결정을 한다. 비행기 좌석 양보 댓가로 적지 않은 현찰을 챙긴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떠돌고 있다. 


그러다가 듀프레이라는 작은 소도시에 머물게 된다. 그때 발견한 야경꾼 모집 공고. 야경꾼은 소도시의 순찰 경찰관으로 밤에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치안을 유지하고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등의 일을 하는데 정식 경찰은 아니고 경찰 보조쯤 될까나. 총이 정식으로 지급되지 않고 범인 체포권도 없는 그야말로 순찰꾼일 뿐이었다.


요즘같은 세상에 야경꾼이라니. 듀프레이같은 작은 시골 마을에서나 있을 법한 직업이었는데 팀은 그냥 덜컥 하겠다고 나선다. 할아버지가 야경꾼이었기 때문에 이 사라져가는 직업을 한 번 해보고 싶었을까. 아니면 잠시 머리 식힐 시간을 벌기 위해서 단순한 이 일을 하기고 했을까. 어쨌든 팀에게는 호젓하고 조용한 이 시골 마을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언제 떠날지 몰라도 당분간은 이 도시에서 살기로 했다. 전의 직장에서 나름 유능했던 그는 강도 사건을 유연하게 대처함으로써 야경꾼이 아닌 정식 보안관 부관의 직을 제의받는다. 


여기까지는 어찌보면 특이할 것 없는 추리 형사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앞의 이야기가 일종의 복선이라는 암시를 하게 된다. 전혀 다른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루크 엘리스는 열두살의 소년이다. 평범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천재다. 나름 영재를 가르친다는 학교에서도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고 이미 미국내 최고의 학교들로부터 입학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루크의 내심은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곳을 향하고 있다.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에서 공학을 배우는 동시에 근처 에머슨 대학에서 영문학을 배우고자 한다. 이 엄청난 학구열! 


하지만 공부만 하는 공부벌레는 아니고 운동도 열심히 또 주위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내적 외적으로 균형잡힌 아이다. 자신이 똑똑한 것을 알지만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처신도 할 줄 알고 부모님이나 학교의 말은 철저히 따르는 착한 아이이기도 하다. 이 아이에게는 그를 열정적으로 지원하는 부모님과 그의 공부를 돕고자 하는 학교가 있다. 루크의 앞날은 온통 핑크빛이었다.


그러나 어느날 루크의 인생이 박살이 난다. 한밤중에 어디론가 납치 된 것이다. 부모님의 생사는 알 길이 없고 자신의 방과 비슷하게 꾸민 방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알고 봤더니 그 '시설'에서는 루크 또래의 여러 아이들이 있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떤 초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물을 움직이는 염력과 말을 하지 않고 의사를 전달하는 텔레파시의 능력. 사실 루크에게도 사물을 움직이는 염력을 갖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이 대단하지는 않았고 영문학과 공학을 동시에 공부 할 수 있을 정도의 학습 능력이 더 뛰어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루크의 그 천재성은 이 시설에서 별 소용이 없었다. 이 시설에 있는 여러 연구자들의 눈에는 루크의 염력만이 관심 사항이었다. 루크가 가진 천재성이 그 작은 염력보다 더 나았을텐데 이들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곳에서는 염력과 텔레파시를 이용해서 어떤 일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그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끊임없이 납치하고 또 계속해서 실험하고 연구하고 있은 것이다. 대체 이곳은 어디일까. 이곳이 진짜 정부 기관인가. 요즘 세상에 이런 곳이 존재 할 수 있을까.


여러 의문이 들었지만 어쨌든 이 시설에서 적응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다행히 시설안의 제한된 공간에서의 이동은 제약이 없었고 먹는 것도 풍족했다. 또래의 아이들이 있어서 크게 외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여러가지 실험을 한다. 피를 뽑기도 하고 기계속에 머리를 넣어서 무언가를 찍기도 하고 약물을 주입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점이 보이냐고 무엇이 보이냐고 물어본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일어나는 일이 없었지만 차츰 그에게도 텔레파시 능력이 생겨나고 있었다. 하지만 루크는 그것을 철저히 숨긴다.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자신에게 해로운 일이 닥칠것이라는 예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설의 악당들은 염력과 텔레파시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 둘의 능력을 다 구사하는 아이는 없었다. 루크에게 그것을 기대하고 여러가지 실험을 했지만 그것을 입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 이런저런 실험 끝에 소용 가치가 떨어진다면? 그것은 지금 있는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데려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건물에서 또 다른 이용을 당하는데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제 루크에게도 그때가 다가오고 있다.


시설의 연구자들이 간과한 것은 루크가 엄청난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루크의 염력이나 텔레파시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그의 천재성에 신경을 썼어야 한다. 그랬으면 그들의 목적을 더 빨리 달성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들은 루크의 능력을 신경 쓰지 않았고 이 영리한 아이는 탈출하기로 한다. 시설 청소부인 모린의 도움을 받은 루크는 이윽고 탈출을 감행한다. 보통 열 두 살 짜리 아이는 그냥 아이다. 탈출 하라고 해도 못할 나이다. 그러나 루크는 다른 열 두 살 먹은 아이랑은 다르지 않는가. 그에게는 냉철한 머리가 있다. 수십 번이나 탈출 경로를 머리 속에서 짤 능력이 있다. 시설은 낡았고 보안 체계는 구멍이 있었다. 그것을 잘 이용한 루크는 결국 탈출에 성공한다.


탈출만 하면 되는가. 아니다 최대한 멀리 가야 한다. 시설 근처에 있으면 언제든지 잡힐 수 있다. 그리고 시설 근무자가 아니라고 해도 시설에 동조하는 밀고자가 있을 수 있다. 근처 경찰도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루크는 최대한 멀리 도망 가기로 했다. 마침 탈출한 곳에는 기차역이 있었다. 전국으로 가는 수 많은 화물 열차들. 이중에서 한 열차를 탄 그는 어디로 가는지만 대충 안 채 잠에 빠져든다. 루크가 탄 차는 중간에 작은 소도시에 정차한다. 바로 듀프레이. 

그리고 거기에는 유능한 전직 경찰이 있는 곳이다.


이야기의 제왕이라는 스티븐 킹은 이번에도 정말 이야꾼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 나오는 부분이 전체와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는데 1권끝에서 그렇게 이어지는 것을 보니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도 탄탄하지만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힘이 대단하다. 초기 팀의 부분만 해도 별것 없는 것 같지만 인물 묘사나 배경 소개가 흥미롭게 이어지면서 뒷 이야기를 기대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서도 주인공인 루크는 물론이고 주변 인물들 하나하나에 캐릭터성을 확실하게 부여하면서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한다. 이런 부분이 클라이막스로 가면서 더 큰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은 거의 실패작이 없다. 비슷한거 같은데 비슷하지 않고 각각의 독창성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읽게 된다. 아무리 더운 여름이라고 해도 읽는 중간에는 더위를 못 느낀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더위를 느끼게 되는 현상을 당하게 된다. 그만큼 몰입감이 강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번에 나온 작품도 그냥 믿으면 된다. 역시 스티븐 킹. 주의할 점은 한 권이 아니라 두 권이라서 하룻만에 읽으려면 아침부터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밤에 읽으면 날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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