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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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 되면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 이름은 그냥 글쓰기의 대명사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냥 펜만 쥐면 글이 나오는 글쓰기 대마신. 아니 소설공장 공장장쯤 될려나. 수없이 많은 소설을 썼는데 물론 그 많은 양이 모두 잘 쓴것은 아니다. 뭔가 씹다 만 껌처럼 의아하게 끝나는 것도 있고 그냥 재미없는 것도 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명작도 있고. 잘 쓰긴 하지만 고르게 쓰지는 못하는. 그래도 전체적으로 재미있는 쪽이 더 많기에 히가시노 히가시노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이번에 나온 책은 전에 나왔던 책을 새롭게 펴냈는데 그래서 소재가 시의성면에서 약간 떨어지는 면도 있다.아직 도래하지 않은 기술이긴 해도 이미 많은 소재로 다루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래의 사건을 예측해서 범인을 잡는다는 것. 소재의 제약이 없이 다방면으로 글을 쓰는 히가시노가 이번에는 첨단 과학을 소재로 한 책을 썼는데 그것은 DNA를 이용한 범죄 예방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다.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이 남긴 흔적에서 DNA를 추출한다. 이것을 분석해서 키, 얼굴, 체질, 성격등을 종합적으로 유추해서 범인이 될 확률이 높은 사람을 찾는 시스템이다. 아무 증거도 남지지 않았다고 해도 DNA만 확보된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수많은 데이터를 비교 분석해서 가장 범인에 가까운 인물을 지목하게 되고 실제로 그것이 진짜 범인일 확률이 높은걸로 판명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많은 사람들의 DNA를 등록해야 더 정교해지는데 일반 국민들을 강제로 등록시킬 방법이 없다. 개인 정보라는 문제도 있지만 어떻게 국민의 사적인 정보를 마음대로 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 시스템은 결국 한계성이 있었지만 그래도 많은 범인들을 검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날 시스템에서 범인을 찾을 수 없는 미제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이 시스템으로도 찾기 어려웠지만 반복되는 사건을 통해서 오히려 여러 단서가 규합이 되면서 시스템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윽고 범인일 확률이 높은 사람을 특정해가는데 놀랄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이 시스템을 만든 개발자가 살인 용의자로 몰리게 된 것이다. 자신이 만든 기계에 자신이 범인으로 몰리게 된 상황. 주인공은 이 상황을 타개 하기 위해서 분투하기 시작한다. 가깝게는 그를 쫓는 형사로부터 멀게는 국가로부터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건 싸움에 뛰어드는 것이다.

 

아마 이 책을 본 사람들이라면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생각이 날 것이다.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미리 예측해서 그 사건의 당사자를 제거한다는 내용. 조금 다르긴 하지만 이 책의 시스템도 결국 미리 예단한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것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전 국민의 데이터가 필요한데 설사 전 국민의 자료가 있다고 해도 그 작은 DNA 자료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것을 이용해서 편하게 범인을 잡을려고 한다. 만일 그 범인이 진범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증거나 단서가 없는 상태에서도 그 예측 시스템에 특정이 되었다고 해서 그를 범인이라고 단정지을수 있을까.

 

이 책은 과학을 인간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선하게도 악하게도 쓰일 수 있다는 오래된 진리를 다시끔 상기시켜준다. 이 시스템을 만든 국가는 면목상 범인을 좀 더 빠르고 신속하게 잡기 위해서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결국 속내는 국민의 정보를 한 손에 움켜쥐고 말 그대로 자신들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것이다. 국가에 반항하는 자는 이 시스템을 이용해서 얼마든지 범죄자로 만들수 있는 것이다. 그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한 협박과 위협이 된다. 단순한 편리함이 아니라 그런 무서운 음모가 자리 잡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그런 저의가 없다고 해도 이 시스템만으로 범죄자를 잡을 수가 없다. 기계는 인간 고유의 감성과유동적인 마음을 정확히 잡아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DNA는 하나의 자료일뿐. 인간은 수많은 상황에서 수백가지 다른 행동과 다른 결론을 낸다. 모든 것이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고 없기에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스템은 결정적으로 한계를 가지는 것이다.

 

이야기는 재미있다. 작가 특유의 쉬운 문체로 휘몰아치면서 읽게 하는 마력이 있다. 초반의 상황 설명에서는 천천히 가다가 중반부터 속도감 있게 읽힌다. 아쉬운 것은 플롯이 아주 복잡한 것은 아니라서 미스터리가 치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도 한편의 SF소설을 보듯 흥미롭게 잘 읽힌 책이었다.

 

과학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과학에는 아무런 가치판단이 없다. 그것이 어떻게 쓰여지는것에 따라서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도덕성과 인간성이 결여된 과학은 그것 자체로 인간을 파멸로 이끌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 혁명은 고도로 발달된 과학을 기반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인데 그로 인해 생겨날 수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흥미로운 내용속에서 과학과 인간의 욕망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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