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 가서 이상한 걸 물고 있었더니 기계가 주위로 빙글빙글 돌아가더라구요.

그리고 나서 엑스레이 사진이 나왔는데, 해골바가지의 치아부분만 나왔어요.

턱까지 보였는데 뼈가 참 신기.... 치아가 있으면 보통 우리가 보는 치아 크기 (예를 들어 1cm라고 치면) 보다 2배는 더 되는 치아 뿌리가 안에 있더라구요.

음, 상황은 조금 충격적..

..충치가 왜이리 많은지-. 옆에 있는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충치때문에 정말 큰 주사 .... 대략 15cm를 뛰어넘는 정말 큰 주사를 맞는 걸 보고 경악..

저는 충치가... 5개 이상이어서 <정말 미치겄다> 만약 주사를 맞는다면 5번 이상일까요....뜨든.

살아오면서 초콜릿을 엄청나게 먹은게 원인인거같습니다 <오늘도 먹었다....>

다행히 충치치료는 오늘 안했구요 <보호자동반시에만 치료 가능, 혼자갔거든요>

스케일링도 해야되고 저번에 치료한 말간어쩌구가 변형되서 더 깊게 썩어서 한개는 금니로까지 해야된다고 합니다.

친구한테 물어보니 그녀석은 아예 전체를 하는데 25만원이 들었다는데...

...저는 때우는거니까 조금 덜 들겠죠ㅜㅜ? 제발.

이제 앞으로 정말 열심히 닦아야겠어요!!

으으 너무 슬픕니다.ㅜㅜ

사실 예전에 충치치료 받다가 너무아파서 의사선생님 손을 콱 물어버렸었는데 이번에도 그럼 안되겠죠!!! 자자, 긴장해서 잘해봅시다 - -;;

정말 무지 무서워요- ㅜ.... 충치치료 얼마나들까용용용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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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 비키 1
한승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별 5개로도 부족할것같은 이 만화는 초등학생때 나나라는 지금의 밍크나, 슈가?? 뭐 그런것같은 달마다 나오는 걸로 기억하는 잡지였는데, 그 잡지에서 나는 빅토리 비키만 봤었다. 기억으로는 오추매라고 웃겼던것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빅토리 비키가 재밌어서 어린 나이에 만화는 전혀 보지 않아도 이 잡지만은 가끔씩 기억날때마다 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그런지 나를 만화계로 이끈 이 만화가 재판될때 대여점에서 빌려봤었는데 아- 어쩜 세월이 그렇게 흘렀어도 재미난걸까..ㅜㅜ사려고 들어오면 꼭 품절이나 절판이다. 으아!! 비키도 웃기고 지그재그도 그렇고 팜팜도, 또 소니랑 하는 대화가 특히 웃겼다. 아직까지 이름도 안잊어먹고 이렇게 술술 써내는것도 신기하네;; 아, 옛날에 길에서 헌책방 지나가다가 비키 팔길래 아빠가 한권 사줘서 색칠하고 그랬었는데... 여러모로 옛생각이 나는 만화, 아이들의 장난감의 사나랑 비키는 굉장히 비슷한것같다. 그림체도 예쁘고 여러가지 볼거리도 많은 너무너무 좋아하는 만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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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5-01-23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ㅋㅋ 나나를 아시는군요 ㅋㅋ 저도 만화의 세계로 들어온 계기가 나나 때문이었어요. 비키는 여자아이 취향에 맞는 부분이 많았지요. 드레스라든가...무슨 공작부인이라든가..^^ 랄랄라님 이야기 들으니 지그재그도 기억이 나네요 흐흐흐

즐거운랄랄라 2005-01-23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만화로 들어온 계기라!! 캬~ 좋아요 > <ㅋㅋㅋ 나나좋죠!
이젠 없어져서 ... 서운하지만 .ㅜ.ㅜ 그때 아카시아도 했던것같은데... ㅎㅎ
 
까트린 이야기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뭐라고 해야 좋을까... 여기 책 속의 말에 따른 안경을 벗으면 폭신폭신한 세상이 펼쳐진다고 했는데 바로 그런 느낌의 추억이야기다. 안경을 안 쓰는 사람들은, 눈이 나쁜 대신에 안경을 쓰는 나같은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자욱한 안개가 눈앞에 서려있는 느낌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이건 역시 눈이 나쁘다는 단점이자 장점인 것이- 밤에 고속도로가 정체되어 내 쪽부터 저~어기 끝까지 자동차들의 밍기적거리는 느린 행렬을 보고 있자면 잠시 안경을 벗고 바라볼 때 안경을 썼을 때 그저 자동차의 불빛. 뭐냐 헤드라이트라고 하던가, 뭐 그런것들이 갑자기 보석처럼 영롱하게 동그랗게 빛난다. 주황색, 노란색, 가로등불빛은 옅은 오렌지색으로 -갑자기 동그랗게 되어 중앙부분이 제일 밝게 빛나면서 금은방 유리 속에 있는 보석들의 빛깔처럼 하나하나 결이 있는 그런 식으로 빛난다. 눈이 더 나쁜 사람은 더 뿌옇게 보이겠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결하나하나가 보이는것처럼- 빛나는데 그럴때 가장 예쁘다. 눈물방울같기도 한 빛들이 보석처럼 도로에 늘어져 있는거다. 그것도 까만색 배경속에서 별처럼 반짝반짝하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안경을 벗었을 때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뭔가 동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안경을 벗으면 또렷한 세상대신에 푸근하고 폭신폭신한 느낌의 말랑거리는 세계가 눈앞에 있어서 아무것도 겁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때가있다. 이 책의 내용도 그런것같다. 아련하게 뚜렷하진 않아도 느낌처럼 다가오는 그런 식의 예쁜 내용들이 꼭 안경을 벗고 있는것같다. 그리고 상뻬의 귀여운 그림들이 나오는것도 역시 좋다. 그냥 조금은 지루했을 소설이었을 만한 소설들도 조금만 그림이 들어가면 왜그리 예쁘게 보이는 건지.. 보는 내내 즐거웠다. 까트린하고 까트린 아빠가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앉아있는 장면이 제일 좋다. 말로는 뭐라고 하지 못할것같아서 안경-을 벗는다는 식으로 ... 어쨌든 내 느낌 그대로... 조금은 뿌옇고 말랑말랑하고 폭신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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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가 몸을 완전히 한바퀴 도는 데에는 46초가 걸린다.
*눈을 한번 깜빡이는데 걸리는 시간은 1/40초이다.
*혀에 침이 묻어 있지 않으면 절대로 맛을 알수없고 코에 물기가 없으면 냄새를 맡을 수 없다.
*갓난아기는 305개의 뼈를 갖고 태어나는데 커 가면서 여러 개가 합쳐져서 206개 정도로 줄어든다.
*사람의 허파는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무겁다.
*인간의 수명을 70세라 할 때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면, 소변을 본다: 38300리터, 꿈을 꾼다: 127500번, 심장이 뛴다: 2700000000번, 운다 3000번, 난자 생산량: 400개, 정자 생산량: 400000000000마리, 웃는다: 540000번,음식물을 먹는다: 50톤, 눈을 깜빡인다: 333000000회, 물을 마신다: 49200리터,머리카락이 자란다: 563Km, 손톱이 자란다(한손가락): 3.7m, 심장에서 피를 퍼보낸다: 331000000리터.

*모든 인간은 코에 극소량의 철(Fe)을 가지고 있어서 커다란 자장이 있는 지구에서 방향을 잡기 쉽도록 해준다. 빛이 없을 때 이것을 이용해서 방향을 잡는다.
*눈의 근육은 24시간 동안 약 100000번 움직인다. 다리가 이 정도의 운동을 하려면 적어도 80Km는 걸어야 한다.
*두개의 콧구멍은 3~4시간마다 그 활동을 교대한다. 즉 한쪽 콧구멍이 냄새를 맡는동안 다른 하나는 쉰다.
*뼈의 조직은 끊임없이 죽고 다른 조직으로 바뀌어 7년마다 한번씩 몸 전체의 모든 뼈가 새로 바뀐다.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의 1/4이 뇌에서 사용된다.
*눈을 감고 재채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채기는 시속 160Km의 속도로 퍼지는데 이는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보다 훨씬 빠르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강력한 뼈는 넓적다리뼈이다. 이는 강철과 같은정도의 압력을 견디어낼수 있다.
*어린애가 두살이 되면 그 키가 태어날 때의 두배가 되는데 이는 어른이 되었을 때의 키를 예측하는 기준이 된다. 두살된 남자아이의 키는 어른이 되었을 때의 49.5%이고 두살된 여자아이는 어른이 되었을 때의 52.8%라 한다.
*손톱, 발톱의 경우 뿌리 부분이 완전히 손톱 끝까지 성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6개월이 걸린다.
*여자가 임신을 하면 피의 양이25%정도 증가한다.
*뇌는 몸무게의 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뇌가 사용하는 산소의 양은 전체 사용량의 20%이다. 뇌는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의 20%를 소모하고 전체 피의 15%를 사용한다. 뇌는 10000000000개의 신경 세포와 100000000000000개의 신경세포 연결부를 가지고 있어서 뇌속의 상호 연결은 사실상 한계가 없다.

 

와, 대단하죠. 아무일도 아닌건데 이런 대단한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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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식in>

*에- 너무 길어서 짧게 요약하자면-.

차이코프스키가 비창교향곡 초연 1주일후 콜레라로 죽었다고 알고 있었고 어디에나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차이코프스키의 사인은 그가 원래 호모였으며 그게 세상에 알려지자 법률학교 동창생들이 모교의 수치라며 그에게 자살하도록 강요해서 비산이라는 독을 마셔 죽었다는 것이에요.

아- 이런거 정말 말도안돼ㅡㅡ, 충격적이에요

명화와의학의만남 ▒

저자 문국진

 

“차이코프스키의 사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그가 콜레라에 걸렸는데도 면회가 허용됐고 죽은 뒤에는 손이나 이마에 입을 맞추도록 허용됐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유명인이라 해도 전염병을 앓았는데 격리되지 않다니…”

그는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러시아는 동성애자를 처형하거나 시베리아 유형을 보냈는데 대법관, 검찰 부총장 등 권력 핵심에 있던 동창들이 그의 명예를 고려, 콜레라 전염으로 죽었다고 위장하기 위해 사약을 내린다. 저자는 사약을 비소로 추정한다. 비소를 먹으면 콜레라 증세인 쌀뜨물 같은 설사를 하기 때문이라고.

 

 

다음은 '음악세계'에서 출판된 법의학자 문국진의 『모차르트의 귀』에서 발췌·정리한 글이다.

 

Ⅰ. 중독물질에 의한 죽음의 미스테리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 P. I. Tschaikowsky 1840∼1893》

 

●우라르의 윕트킨스크에서 광산 감독관인 아버지와 프랑스 이민 3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다방면으로 재능을 보였다. 음악뿐 아니라 언어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6세에 프랑스오와 독일어를 이해하였으며 7세에 프랑스어로 시를 썼다고 한다. 음악에 대해서는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귀를 지녔으며, 7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차이코프스키는 법률학교에 들어가 법학을 공부하였는데 나중에는 음악을 더 좋아해 1862년에 성(聖)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여 작곡과 지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의 병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울증, 동성해, 그리고 자살에 관한 것이다.

 

①어머니에 대한 지나친 사랑

 

-성(聖) 페테르부르크의 법률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을 때 어린 차이코프스키는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 사람들은 그를 강제로 떼어놓아야만 했다. 어머니가 바래다주고 돌아가려 하자 그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뛰쳐나와 어머니가 타고 가는 마차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이 어린 시절의 체험은 영구적인 쇼크가 되어 차이코프스키의 일생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어머니 이외의 여성에 대한 사랑을 숙명적으로 거부하는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그의 이러한 동성애의 원인을 살펴보면, 어린 시절의 어머니에 대한 지나친 사랑, 그리고 그가 14세(1854년)되던 해에 유행한 콜레라로 인한 어머니의 사망이다. 즉, 이렇게 영원히 문이 닫혀 버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그로 하여금 다시는 어떤 여성과도 사랑할 수 없는 상처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극복하고자 했다.

 

「나는 이같은 성향이 나의 행복에 가장 큰 장애라는 것을 알고 있어. 힘을 다해 나 자신과 싸워야 해.……결혼이 그것을 해결해준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거야. 만일 결혼할 만큼 충분한 용기가 없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이 오래된 고질적인 악습을 정복하고 말겠어.」

②우울증

 

- 차이코프스키는 너무나 신경이 날카롭고 감상적이었기 때문에 일생을 불안과 고독으로 살아야 했다. 또, 그는 신경질적인 데다가 겁이 많았다. 짐에 있어도 불안했고 집을 떠나 여행을 해도 불안했다. 그 불안의 원인을 자기 자신도 알 수 둁벗었다. 그래서 스스로가 한심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눈물을 자주 흘렸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평론가는 그를 '눈물 제조기'라고 표현했다.

「호텔에 들어와 여장을 푸니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우선 나는 모든 일은 다 젖혀놓고 실컷 울었다. 그리고 나서 목욕을 하고 식사를 했다.」

 

「그때처럼 작곡가로서 긍지를 느낀 경우는 아마도 나의 생애를 통해 다시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눈물이 흔한 남자가 나 말고도 또 있었다는 사실이다. 」

 

③파국을 부른 결혼

 

- 차이코프스키는 1877년 7월에 자신보다 10년 연하의 음악학교 학생이었던 안토니나 이바노브 밀류코바의 끈질긴 구혼에 결혼을 하였으나, 9주만에 파국을 맞았다.

 

안토니나는 바람을 피워 3명의 아이를 났고, 차이코프스키는 이혼을 원했다. 그러니, 안토니나가 부부관계의 지속을 원해 법률상으로 그들의 관계는 지속되었다. 차이코프스키가 이혼에 대해 강하게 나오지 못한 것은 그녀가 그의 동성애를 폭로할까봐서였다. 차이코프스키는 아내의 성 관계 요구에 자살 기도도 했었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에 걸려 죽게 되었고 차이코프스키는 그녀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면서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다.

 

④ '나데츠다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

 

-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을 몹시 좋아하던 폰 메크 부인은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을 전제로 경제적인 후원을 하겠다는 독특한 제의를 해왔다. 차이코프스키는 이를 쾌히 수락하여 그 후 14년에 걸쳐 많은 액수의 후원금을 받았다. 도 두 사람은 만나지 않는 대신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 편지의 수가 무려 1,100여 통이나 되며 편지 속에는 음악에 대한 의견과 개인적인 속사정까지 쓰여 있어 훗날 학자들이 차이코프스키를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차이코프스키의 생애에서 폰 메크 부인이 차지했던 비중이 컸다. 그렇기 飁문에 폰 메크 부인과의 결병을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890년 10월 4일 폰 메크 부인이 차이코프스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녀가 파산하기에 이르러 앞으로는 그에게 보내던 지원금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고 하고, 편지의 끝에는 그들의 우정도 끝났다는 것을 암시했다. 폰 메크 부인과의 편지 왕래가 끊긴 데서 온 낙심과 울분은 차이코프스키의 만년을 온통 어둡게 채색했다며, 죽는 순간까지도 그는 이 엄청난 충격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임종 때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격분하고 원망스러운 어조로 계속 "저주받을 그녀!"라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하는데 두 사람이 단순한 사이가 아니었던 것을 분명하다.

 

⑤조카 '봅(블라디미르)다비도프'와의 동성애

 

- 차이코프스키는 조카와의 사랑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세밀하게 그려 놓았다.

 

1845년 5월 1일

내 사랑, 무엇과도 비할 수 없이 매혹적이고 이상적인 봅과 2중주를 했다. 그는 몹시 즐거워했다.

5월 22일

일을 하지 않거나 걷지 않게 되면(걷는 것도 내게는 일이다) 나는 봅이 못견디게 그리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가 없으면 고독해진다. 무섭도록 그를 사랑하고 있다.

5월 31일

저녁 식사 뒤 그 무엇에 비할 데 없이 사랑스럽고 근사한 봅과 떨어져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발코니에서 서성대거나, 작은 벤치에 비스듬히 앉은 매혹적인 모습으로 내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했다.

6월 3일

한 가지 기묘한 일, 나는 여기를 떠나지 낳으려는 소망이 간절하다. 그 모든 것이 봅과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사인

 

- 차이코프스키의 사인에 대해서 설은 구구하다. 그는 콜레라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종래의 전기에 의하면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비창》의 초연을 지휘하고 나서 9일째 되는 날인 1893년 11월 6일에 사망하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자살설이 제기되어 왔다. 자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차이코프스키가 그렇게 정성을 다하여 작곡했다고 자랑하는 《비창》에 대한 일반의 반응이 그리 시원치 않은 것에 참담한 실패감을 느껴 자살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독사발을 받고 강요된 자살을 했다는 의견도 있다. 이것은 그 당시 권세가였던 스텐복크 훼르모 공작의 조카와 동성애 관계에 의한 것으로, 비밀재판의 결과로 독약을 먹고 죽으라는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독약이 몸 안에 퍼지는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밤이 되자 그는 "이것으로 죽는다. 마지막이다"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고 한다.

 

그는 '쌀뜨물 같은 설사'를 했다. 이것은 콜레라로 사망했다는 가장 중요한 소견이다. 그러나, 그런 증상을 보이는 독극물이 있는데 바로 '비소'이다.

즉, 차이코프스키는 '비소'가 들어간 독극물을 먹고, 콜레라와 같은 증상을 보이며 사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특징은 우울하고 감상적이고 정서가 끈끈한 작품이 많다.

 

뮌헨 정신과의 폰 뮤렌다르 박사에 의하면, 차이코프스키는 26세부터 52세까지의 26년 동안에 12회의 울병기를 보냈 다고 한다. 박사는 정신과 입원 환자에게 여러 가지 음악을 들려줘 보았는데,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을 들려 주면 내인성 울병 환자의 증상이 심해지고 절망적이며, 때로는 자살하려는 마음까지 갖게 되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따라서 박사는 차이코프스키의 울병은 내인성일 것이라고 하였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힘차고 화려하며 또 정열에 넘친 일면과, 우울하고 감상적인 일면이 있다. 이것은 차이코프 스키의 정신적인 양면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눈과 얼음에 갇힌 조국 러시아를 그린 교향곡 제1번 "겨울날의 환상"의 우수의 느낌,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밝은 햇빛 아래서 작곡한 교향시 "이탈리아 기상곡"에서 보는 명랑함과 경쾌함, 그리고 라로의 "스페인 교향곡"을 듣고 만든 바 이올린 협주곡의 화려함과 같은 식이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처음에는 법률 학교에 들어갔으나 음악으로 입신하기 위하여 1862년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했 다. 그 동안 몇 번 생활을 위해서 신문사와 교원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나 1876년이 되자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 가 없게 되었다. 그것은 폰 메크의 미망인인 나데주다가 그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후 13년간 에 걸쳐 그를 위해서 6000루불의 종신 연금 등 거액의 돈을 지출하기도 했다.

 

37세까지 독신이었던 그는 1877년 7월에 28세의 음악원 여학생 안토니나 이류코바와 결혼했으나, 결혼전의 우울 상 태가 심화되었고 작곡 활동도 완전히 저하되었다. 모스크바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꾀했으나 미수로 끝났다. 그것은 안 토니나가 히스테리성 여성으로 그녀의 강력한 구혼에 저항할 수 없어 결혼했으나 9주만에 파탄이 오고 더욱 심한 우 울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후의 걸작이라고 전해지는 교향곡 "비창"을 1893년 10월 28일 초연하였다. 그뒤 8일 후에 사망하고 말았다. 사인은 콜레라였다. 교향곡 "비창"을 초연했을 당시 청중들은 냉담과 무료함을 나타냈으나 사후에 즉시 이 곡이 재현 되자 청중은 감동하고 흐느껴 우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소리를 능가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 곡은 어둡고 우 울하며, 특히 제 4악장은 차이코프스키가 자기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처럼 여겨졌다.

 

차이코프스키의 사인은 콜레라가 아니고 자살이라는 설이 있다.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연애자였다고 한다. 그 상대는 스텐본크 툴몰 공작의 조카였다. 그는 근사한 청년 이었다. 그 두사람의 교제에 무엇이 있었는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공작이 황제에게 차이코프스키를 고소하는 편지를 썼고 그 고소장이 입법부의 주임소추인이며 부 검사총장이었던, 니콜라이 볼소비치 야코비의 손에 넘어간 일이었다. 동성애는 그리스도와, 러시아 정교에서 기피되 었는데 그것은 최대의 파렴치이며 신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당시 그와 같은 자는 투옥을 당하거나 유형에 해당되는 범죄였다. 야코비는 차이코프스키의 명예를 생각하여 그에게 자살을 권했다. 그리하여 차이코프스키는 독물을 먹고 자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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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1-17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