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몸을 완전히 한바퀴 도는 데에는 46초가 걸린다.
*눈을 한번 깜빡이는데 걸리는 시간은 1/40초이다.
*혀에 침이 묻어 있지 않으면 절대로 맛을 알수없고 코에 물기가 없으면 냄새를 맡을 수 없다.
*갓난아기는 305개의 뼈를 갖고 태어나는데 커 가면서 여러 개가 합쳐져서 206개 정도로 줄어든다.
*사람의 허파는 오른쪽보다 왼쪽이 더 무겁다.
*인간의 수명을 70세라 할 때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면, 소변을 본다: 38300리터, 꿈을 꾼다: 127500번, 심장이 뛴다: 2700000000번, 운다 3000번, 난자 생산량: 400개, 정자 생산량: 400000000000마리, 웃는다: 540000번,음식물을 먹는다: 50톤, 눈을 깜빡인다: 333000000회, 물을 마신다: 49200리터,머리카락이 자란다: 563Km, 손톱이 자란다(한손가락): 3.7m, 심장에서 피를 퍼보낸다: 331000000리터.

*모든 인간은 코에 극소량의 철(Fe)을 가지고 있어서 커다란 자장이 있는 지구에서 방향을 잡기 쉽도록 해준다. 빛이 없을 때 이것을 이용해서 방향을 잡는다.
*눈의 근육은 24시간 동안 약 100000번 움직인다. 다리가 이 정도의 운동을 하려면 적어도 80Km는 걸어야 한다.
*두개의 콧구멍은 3~4시간마다 그 활동을 교대한다. 즉 한쪽 콧구멍이 냄새를 맡는동안 다른 하나는 쉰다.
*뼈의 조직은 끊임없이 죽고 다른 조직으로 바뀌어 7년마다 한번씩 몸 전체의 모든 뼈가 새로 바뀐다.
*하루에 섭취하는 열량의 1/4이 뇌에서 사용된다.
*눈을 감고 재채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채기는 시속 160Km의 속도로 퍼지는데 이는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보다 훨씬 빠르다.
*인간의 몸에서 가장 강력한 뼈는 넓적다리뼈이다. 이는 강철과 같은정도의 압력을 견디어낼수 있다.
*어린애가 두살이 되면 그 키가 태어날 때의 두배가 되는데 이는 어른이 되었을 때의 키를 예측하는 기준이 된다. 두살된 남자아이의 키는 어른이 되었을 때의 49.5%이고 두살된 여자아이는 어른이 되었을 때의 52.8%라 한다.
*손톱, 발톱의 경우 뿌리 부분이 완전히 손톱 끝까지 성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6개월이 걸린다.
*여자가 임신을 하면 피의 양이25%정도 증가한다.
*뇌는 몸무게의 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뇌가 사용하는 산소의 양은 전체 사용량의 20%이다. 뇌는 우리가 섭취한 음식물의 20%를 소모하고 전체 피의 15%를 사용한다. 뇌는 10000000000개의 신경 세포와 100000000000000개의 신경세포 연결부를 가지고 있어서 뇌속의 상호 연결은 사실상 한계가 없다.

 

와, 대단하죠. 아무일도 아닌건데 이런 대단한 것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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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지식in>

*에- 너무 길어서 짧게 요약하자면-.

차이코프스키가 비창교향곡 초연 1주일후 콜레라로 죽었다고 알고 있었고 어디에나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차이코프스키의 사인은 그가 원래 호모였으며 그게 세상에 알려지자 법률학교 동창생들이 모교의 수치라며 그에게 자살하도록 강요해서 비산이라는 독을 마셔 죽었다는 것이에요.

아- 이런거 정말 말도안돼ㅡㅡ, 충격적이에요

명화와의학의만남 ▒

저자 문국진

 

“차이코프스키의 사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기록에 따르면 그가 콜레라에 걸렸는데도 면회가 허용됐고 죽은 뒤에는 손이나 이마에 입을 맞추도록 허용됐답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유명인이라 해도 전염병을 앓았는데 격리되지 않다니…”

그는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러시아는 동성애자를 처형하거나 시베리아 유형을 보냈는데 대법관, 검찰 부총장 등 권력 핵심에 있던 동창들이 그의 명예를 고려, 콜레라 전염으로 죽었다고 위장하기 위해 사약을 내린다. 저자는 사약을 비소로 추정한다. 비소를 먹으면 콜레라 증세인 쌀뜨물 같은 설사를 하기 때문이라고.

 

 

다음은 '음악세계'에서 출판된 법의학자 문국진의 『모차르트의 귀』에서 발췌·정리한 글이다.

 

Ⅰ. 중독물질에 의한 죽음의 미스테리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 P. I. Tschaikowsky 1840∼1893》

 

●우라르의 윕트킨스크에서 광산 감독관인 아버지와 프랑스 이민 3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다방면으로 재능을 보였다. 음악뿐 아니라 언어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6세에 프랑스오와 독일어를 이해하였으며 7세에 프랑스어로 시를 썼다고 한다. 음악에 대해서는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귀를 지녔으며, 7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차이코프스키는 법률학교에 들어가 법학을 공부하였는데 나중에는 음악을 더 좋아해 1862년에 성(聖)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하여 작곡과 지휘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의 병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우울증, 동성해, 그리고 자살에 관한 것이다.

 

①어머니에 대한 지나친 사랑

 

-성(聖) 페테르부르크의 법률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에 들어가기 위해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을 때 어린 차이코프스키는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 사람들은 그를 강제로 떼어놓아야만 했다. 어머니가 바래다주고 돌아가려 하자 그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뛰쳐나와 어머니가 타고 가는 마차에 몸을 던졌다고 한다. 이 어린 시절의 체험은 영구적인 쇼크가 되어 차이코프스키의 일생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어머니 이외의 여성에 대한 사랑을 숙명적으로 거부하는 계기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그의 이러한 동성애의 원인을 살펴보면, 어린 시절의 어머니에 대한 지나친 사랑, 그리고 그가 14세(1854년)되던 해에 유행한 콜레라로 인한 어머니의 사망이다. 즉, 이렇게 영원히 문이 닫혀 버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그로 하여금 다시는 어떤 여성과도 사랑할 수 없는 상처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극복하고자 했다.

 

「나는 이같은 성향이 나의 행복에 가장 큰 장애라는 것을 알고 있어. 힘을 다해 나 자신과 싸워야 해.……결혼이 그것을 해결해준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거야. 만일 결혼할 만큼 충분한 용기가 없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이 오래된 고질적인 악습을 정복하고 말겠어.」

②우울증

 

- 차이코프스키는 너무나 신경이 날카롭고 감상적이었기 때문에 일생을 불안과 고독으로 살아야 했다. 또, 그는 신경질적인 데다가 겁이 많았다. 짐에 있어도 불안했고 집을 떠나 여행을 해도 불안했다. 그 불안의 원인을 자기 자신도 알 수 둁벗었다. 그래서 스스로가 한심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눈물을 자주 흘렸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평론가는 그를 '눈물 제조기'라고 표현했다.

「호텔에 들어와 여장을 푸니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우선 나는 모든 일은 다 젖혀놓고 실컷 울었다. 그리고 나서 목욕을 하고 식사를 했다.」

 

「그때처럼 작곡가로서 긍지를 느낀 경우는 아마도 나의 생애를 통해 다시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눈물이 흔한 남자가 나 말고도 또 있었다는 사실이다. 」

 

③파국을 부른 결혼

 

- 차이코프스키는 1877년 7월에 자신보다 10년 연하의 음악학교 학생이었던 안토니나 이바노브 밀류코바의 끈질긴 구혼에 결혼을 하였으나, 9주만에 파국을 맞았다.

 

안토니나는 바람을 피워 3명의 아이를 났고, 차이코프스키는 이혼을 원했다. 그러니, 안토니나가 부부관계의 지속을 원해 법률상으로 그들의 관계는 지속되었다. 차이코프스키가 이혼에 대해 강하게 나오지 못한 것은 그녀가 그의 동성애를 폭로할까봐서였다. 차이코프스키는 아내의 성 관계 요구에 자살 기도도 했었다. 결국 그녀는 정신병에 걸려 죽게 되었고 차이코프스키는 그녀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면서 그녀의 죽음을 슬퍼했다.

 

④ '나데츠다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

 

- 차이코프스키의 작품을 몹시 좋아하던 폰 메크 부인은 '절대로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을 전제로 경제적인 후원을 하겠다는 독특한 제의를 해왔다. 차이코프스키는 이를 쾌히 수락하여 그 후 14년에 걸쳐 많은 액수의 후원금을 받았다. 도 두 사람은 만나지 않는 대신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그 편지의 수가 무려 1,100여 통이나 되며 편지 속에는 음악에 대한 의견과 개인적인 속사정까지 쓰여 있어 훗날 학자들이 차이코프스키를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차이코프스키의 생애에서 폰 메크 부인이 차지했던 비중이 컸다. 그렇기 飁문에 폰 메크 부인과의 결병을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890년 10월 4일 폰 메크 부인이 차이코프스키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녀가 파산하기에 이르러 앞으로는 그에게 보내던 지원금을 보낼 수 없게 되었다고 하고, 편지의 끝에는 그들의 우정도 끝났다는 것을 암시했다. 폰 메크 부인과의 편지 왕래가 끊긴 데서 온 낙심과 울분은 차이코프스키의 만년을 온통 어둡게 채색했다며, 죽는 순간까지도 그는 이 엄청난 충격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임종 때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도 격분하고 원망스러운 어조로 계속 "저주받을 그녀!"라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하는데 두 사람이 단순한 사이가 아니었던 것을 분명하다.

 

⑤조카 '봅(블라디미르)다비도프'와의 동성애

 

- 차이코프스키는 조카와의 사랑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세밀하게 그려 놓았다.

 

1845년 5월 1일

내 사랑, 무엇과도 비할 수 없이 매혹적이고 이상적인 봅과 2중주를 했다. 그는 몹시 즐거워했다.

5월 22일

일을 하지 않거나 걷지 않게 되면(걷는 것도 내게는 일이다) 나는 봅이 못견디게 그리워지는 것을 느낀다. 그가 없으면 고독해진다. 무섭도록 그를 사랑하고 있다.

5월 31일

저녁 식사 뒤 그 무엇에 비할 데 없이 사랑스럽고 근사한 봅과 떨어져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발코니에서 서성대거나, 작은 벤치에 비스듬히 앉은 매혹적인 모습으로 내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 했다.

6월 3일

한 가지 기묘한 일, 나는 여기를 떠나지 낳으려는 소망이 간절하다. 그 모든 것이 봅과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차이코프스키의 사인

 

- 차이코프스키의 사인에 대해서 설은 구구하다. 그는 콜레라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종래의 전기에 의하면 차이코프스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비창》의 초연을 지휘하고 나서 9일째 되는 날인 1893년 11월 6일에 사망하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자살설이 제기되어 왔다. 자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차이코프스키가 그렇게 정성을 다하여 작곡했다고 자랑하는 《비창》에 대한 일반의 반응이 그리 시원치 않은 것에 참담한 실패감을 느껴 자살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독사발을 받고 강요된 자살을 했다는 의견도 있다. 이것은 그 당시 권세가였던 스텐복크 훼르모 공작의 조카와 동성애 관계에 의한 것으로, 비밀재판의 결과로 독약을 먹고 죽으라는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독약이 몸 안에 퍼지는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밤이 되자 그는 "이것으로 죽는다. 마지막이다"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고 한다.

 

그는 '쌀뜨물 같은 설사'를 했다. 이것은 콜레라로 사망했다는 가장 중요한 소견이다. 그러나, 그런 증상을 보이는 독극물이 있는데 바로 '비소'이다.

즉, 차이코프스키는 '비소'가 들어간 독극물을 먹고, 콜레라와 같은 증상을 보이며 사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특징은 우울하고 감상적이고 정서가 끈끈한 작품이 많다.

 

뮌헨 정신과의 폰 뮤렌다르 박사에 의하면, 차이코프스키는 26세부터 52세까지의 26년 동안에 12회의 울병기를 보냈 다고 한다. 박사는 정신과 입원 환자에게 여러 가지 음악을 들려줘 보았는데,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을 들려 주면 내인성 울병 환자의 증상이 심해지고 절망적이며, 때로는 자살하려는 마음까지 갖게 되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따라서 박사는 차이코프스키의 울병은 내인성일 것이라고 하였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힘차고 화려하며 또 정열에 넘친 일면과, 우울하고 감상적인 일면이 있다. 이것은 차이코프 스키의 정신적인 양면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눈과 얼음에 갇힌 조국 러시아를 그린 교향곡 제1번 "겨울날의 환상"의 우수의 느낌,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밝은 햇빛 아래서 작곡한 교향시 "이탈리아 기상곡"에서 보는 명랑함과 경쾌함, 그리고 라로의 "스페인 교향곡"을 듣고 만든 바 이올린 협주곡의 화려함과 같은 식이었다.

 

차이코프스키는 처음에는 법률 학교에 들어갔으나 음악으로 입신하기 위하여 1862년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입학했 다. 그 동안 몇 번 생활을 위해서 신문사와 교원의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나 1876년이 되자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 가 없게 되었다. 그것은 폰 메크의 미망인인 나데주다가 그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후 13년간 에 걸쳐 그를 위해서 6000루불의 종신 연금 등 거액의 돈을 지출하기도 했다.

 

37세까지 독신이었던 그는 1877년 7월에 28세의 음악원 여학생 안토니나 이류코바와 결혼했으나, 결혼전의 우울 상 태가 심화되었고 작곡 활동도 완전히 저하되었다. 모스크바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꾀했으나 미수로 끝났다. 그것은 안 토니나가 히스테리성 여성으로 그녀의 강력한 구혼에 저항할 수 없어 결혼했으나 9주만에 파탄이 오고 더욱 심한 우 울 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후의 걸작이라고 전해지는 교향곡 "비창"을 1893년 10월 28일 초연하였다. 그뒤 8일 후에 사망하고 말았다. 사인은 콜레라였다. 교향곡 "비창"을 초연했을 당시 청중들은 냉담과 무료함을 나타냈으나 사후에 즉시 이 곡이 재현 되자 청중은 감동하고 흐느껴 우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소리를 능가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이 곡은 어둡고 우 울하며, 특히 제 4악장은 차이코프스키가 자기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처럼 여겨졌다.

 

차이코프스키의 사인은 콜레라가 아니고 자살이라는 설이 있다. 차이코프스키가 동성연애자였다고 한다. 그 상대는 스텐본크 툴몰 공작의 조카였다. 그는 근사한 청년 이었다. 그 두사람의 교제에 무엇이 있었는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공작이 황제에게 차이코프스키를 고소하는 편지를 썼고 그 고소장이 입법부의 주임소추인이며 부 검사총장이었던, 니콜라이 볼소비치 야코비의 손에 넘어간 일이었다. 동성애는 그리스도와, 러시아 정교에서 기피되 었는데 그것은 최대의 파렴치이며 신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당시 그와 같은 자는 투옥을 당하거나 유형에 해당되는 범죄였다. 야코비는 차이코프스키의 명예를 생각하여 그에게 자살을 권했다. 그리하여 차이코프스키는 독물을 먹고 자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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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1-17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고 하네요...
 



백두산 천지 괴물은 백두산 천지의 괴물은 말하자면 `네스류'이다.
모든 탐사에서 괴물의 존재가 확인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렇지만 괴물 애호가들과 인근주민들은 낙담하지 않는다. 호수밑 동굴에 숨었다든가 하는 이유를 댄다. 탐사 자체가 완벽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과학자들은 다른 동물이나 물고기 또는 자연현상을 괴물로 착각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목격담이 주로 나오는 이른 봄과 늦가을에 호수물에 밀도가 다른 층이 생기고, 그곳에 `정 진동'이라는 거대한 물살이 생겨 바닥에 가라앉은 나무둥치를 괴물처럼 움직이게 만든다는 설득력 있는 이론도 제시됐다. 무엇보다 진화생물학은 한 종이 수만년 동안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최소한 500마리는 있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괴물은 떼로 존재하거나 아예 없거나 둘중의 하나라는 얘기다.

천지의 괴물 괴물이 나타났다는 말 때문에 천지는 더욱 신비로움을 갖게 되었다.
이 괴물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부석이라고 하며 어떤 사람들은 곰이 천지를
헤엄치는 것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1903년에 천지에서 화산폭발이 있었기에 괴물이 있을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역사적 자료와 목격담에 의해 천지에 괴물이 있다고 인정한다.
1908년에 출판된 '장백산지략(長白山志略)', 1928년에 출판된 '무송현지 (撫松縣志)',
1992년에 출판된 '안국현지(安國縣志)'에는 천지에서 괴물을 보았다는사실이 적혀 있다. 또 괴물을 직접 본사람들도 적지않다.


목격담
1962년 8월 중순에 주봉영이 천문봉에서 6배 망원경으로 천지 동쪽 천지 수면에 있는
괴물을 보았다고 하는데 몸체는 흑갈색으로 머리는 개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1976년9월 천문봉에서 휴식하고 있던 36명의 유람객들이
천지 복판으로 헤엄쳐 가는 괴물을 보았는데 크기는 소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1980년8월 기상소의 많은사람들이 사흘동안에 세 차례나
보았는데 머리는 사람머리 정도이고 눈은 밤알만큼 컸다고 했다.
1981년 6월 백두산 자연보호국에 있는 6명의 직원들이 괴물을 보았는데
길이는2미터,머리는 표범 머리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1981년9월 이소빙 기자가 천지 괴물의 사진 찍었다.
1962년부터 1993년에 이르는30여 년 동안에 수백 명이 수십 차례나 천지의 괴물을 보았다.
괴물을 본사람들의 말을 정리하여 괴물의 모습을그리면 소만큼
크고 회색이고 반지르하다. 머리는 개 머리와 비슷하고 눈은 밤알만하며 주둥이는 앞으로 나왔다. 목의 지름은 약 10cm, 길이는 1.5 ~2m, 몸체 쪽에는 흰 무늬가 있다.
또다른 모습은 몸의 길이는 2미터 정도이고 머리는 표범 비슷하고 머리 위와 앞턱은 흰색이고 다른부위는
노란색이라 한다.
괴물을 본사람들의 시간기록을 정리해 보면6월 중순, 8월 중순,9월 중순인데 8월 중순에 나타난 것이 가장 많다.
그러므로 백두산을 관광하는 사람들은 어느달이든 괴물을 볼수있는가능성이 있게 된다.
특히 천지의 괴물은 길상의 상징이므로 순간을 잡아 보기만
하면 그들에게는 행운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한다.


피흘리는 석가상
원흥사(경기도 가평군 소재)사찰에서 지난 6월 21일부터
사찰 법당내 관세음부처님의 팔에서 피를 흘리고 딱지가 붙은 기적 같은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부처님의 피 흘리는 현상은
우연하게도 불교일보 취재팀이 7월 11일에 미리 약속했던 원흥사 천도재의식을 취재하고 있던 중, 기자가 부처님의 상태가 이상함을 주지 스님에게 지적하자 주지 스님이 그간의 일을 알려주어서 본지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주지 구천 스님의 말에 따르면
지난 6월 21일(음력 5월1일) 아침 일찍 일어나
평소처럼 새벽 예불을 드리고 난 후 법당을 살피던 중

관세음부처님의 모습이
평소와는 다르게 보임을 느끼고 자세히 살펴보니

부처님의 왼쪽 팔 부분에
핏물이 흐른 흔적이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관세음부처님은 원흥사 법당을 들어서자마자
정면에 보이는 부처님 세분 중 왼쪽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피를 흘린 자국과 딱지가 붙은 위치는

관세음부처님 오른쪽 팔의 팔꿈치부분과 피가 흐른 오른쪽 발 아래부분,
왼쪽 감로수를 든 팔꿈치 부분(오른쪽 팔꿈치 부분과 비슷하다) 피가 흐른 오른 발 옷부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딱지의 상태는 보통 피가 흐르다 멈춘 피딱지와 같이 보이고 있으며 딱지가 두꺼운 상태로 있다.

구천 스님은 그 당시 부처님에 핏물이 흐르는 등의 기이한 현상은
나라가 어려울 때에 나타나는 징조로 판단하고 이 사실을 일절 외부에 알리지 않은 상태에서
나라의 안녕을 비는 국태민안 기도를 하루 6시간이상씩 했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구천 스님의 기도원력 덕분인지 그동안 20일이 넘게 흐르던 핏물은 2,3일전부터 조금씩 멈추기
시작했으며 11일 오후에는 딱지가 생성되었음을 불교일보 취재팀이 확인했다


땀흘리는 비석

『사명대사에 고향에 전각을 세우고 그곳에 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여
훗날까지 스님의 충혼을 모시도록 해라.』

임금의 명이 떨어지자 사명대사의 출생지인 경남 밀양군 무안면 산강리에는 사당이 세워지고
스님의 영정이 봉안됐으며, 선조는 이 전각을 「표충사」라 사액했다.

『누구든 이 표충사 근처를 어지럽히거나 신성시 하지 않을시는 엄히 다스리도록 하라.』

친히 사액한 선조는 고을 원에게 이처럼 신신당부하여 사명 스님의 호국정신을 치하했다.


그로부터 관료는 말할 것도 없고
백설들까지도 그 사당 앞을 지날 때는
늘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올렸다.

그렇게 백 여 년의 세월이 흘러 당우가 퇴락하자
사명 스님의 5대 법손인 남봉선사는
표충사를 중수하는 동시에 스님의 공적을 기리는
표충비를 세웠다.

때는 영조 14년, 1738년이었다.

표충비를 세울 돌을 고르기 위해 경상도 경산까지 가서 높이 3.9m, 폭 97cm, 두께 70cm 크기의
돌을 구해온 남봉 스님은 당시 정승 이익현에게 비문을 부탁했다.

『내 본시 승려의 부탁으로 글짓는 것을 즐기지 않았으나 오직 대사님의 사정이 간절하여
이를 물리치기 어려워 특례로 곧 비에 글월을 새기는 것입니다.』

배불숭유 정책으로 불교를 탄압했던 당시의 정승 역시
사명대사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외면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표충비가 세워지고 다시 백 년 후, 그러니까 조선 제24대 헌종 5년(1839),
사명대사의 8대 법손인 월파선사는 표충사를 밀양 영정사로 옮기고 절 이름을「표충사」로 바꿨다.

표충서원을 옮겨 가자 사명 스님의 고향엔 표충비만 남게 됐다.

지방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어 지난날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이 비석은
현재 몸체에 금이 간 채 비각 안에 세워져 있다.


표충비각
비석 몸체에 금이 간 것은 일제 때였다.

사명대사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일본 사람들은
잔꾀를 냈다.

『저 비석은 보기만 해도 왠지 섬뜩하단 말이야.
마치 사명대사 귀신이라도 담긴 것만 같으니
무슨 방법을 쓰는 것이 어떻겠소?』

『좋소. 나도 동감입니다.
저 비석 옆에다 담배 창고를 옮겨 짓도록 합시다.』

일본인들이 사명대사의 혈맥을 끊기 위해 비석 옆에다 창고를 세우던 날이었다.

비석은 마치 살아있는 듯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한동안 못 견딜 정도로 몸부림치니 비석 몸체에 마치 피를 흘리는 듯한 형상으로 「쫙」금이 갔다.

일본 사람들이 표충비를 무서워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물론 임진왜란 때 왜구를 물리친 용맹스런 승장의 비라는 점도 없지 않으나
마치 스님의 구국혼이 비석에 어린 듯 나라에 큰일이 일어날 때면
비석에서 땀이 흐른다는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진 것이다.

예전 것은 기록이 없어 알 수 없고
비석이 세워진 후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 땀을 흘렸다는 첫기록은
1894년 갑오경장이 일어나기 7일 전으로 되어 있다.

비석이 있는 곳을 지나던 한 아낙은
매서운 겨울 날씨인데도 비석 몸체에서 땀이 흐르듯 물기가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낙은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 역시 가만히 두고만 볼 일이 아니다 싶어 관가로 달려가 고했다.



표충비
당시 비석이 흘린 땀이 3말 1되나 된다고 한다.

그 뒤,
군지(郡誌)에 기록된 표충비의 땀 기록은

경술합방 , 기미독립만세운동 , 8·15 해방 ,
6·25 동란, 4·19 학생의거, 5·16 혁명 등
여섯 차례이다.

그 중 가장 많은 땀을 흘린 것은
기미년 만세사건 때와 5·16 혁명 때로

기미독립운동 때는 19일간에 걸쳐 5말 7되를,
5·16 혁명 때는 5일간 5말 7되를 흘렸다.

군(郡)의 공식 기록은 없으나
육영수 여사가 입적한 다음 날도
비석은 땀을 흘렸다고 한다.

이렇듯 나라에 중대사가 있을 때면
미리 땀을 흘려 어려움을 예고해 주니,

마을 사람들은 비석의 영험을 받아들여
대소사에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6·25 동란 때는 전쟁이 일어나기 25일 전부터 3말 8되나 흘렸다.

『표충비가 땀을 흘린다는 소문이 동네에 나돌기 시작하자
주민들은 아무래도 무슨 변이 있을 조짐인 듯하다며 양식이며 비상약품 등을 준비했지요.』

6·25 무렵을 회고하는 주민 이씨의 말처럼 마을 사람들은 땀 흘리는 비석의 영험을 믿으며
크고 작은 일에 조심하고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

『우리 마을에선 사명대사의 구국 충혼이 이 표충비에 서려 있다고 믿고 있지요.
매년 관광철이면 이 비석을 보려고 1백 여 명의 관광객이 들르는데 주민들은 너나없이
사명대사의 호국정신을 강조하며 자랑스럽게 안내합니다.』

사명당 추모회 구장회 회장의 말처럼
마을 주민들은 사명대사의 정신을 이어 대체로 정의감이 강하다는 소문이다.


비석이 땀을 흘릴 때는
사람이 땀 흘리는 형상과 똑같아서 앞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뺨으로 흘러내리는 듯
비석 전후면 머리 쪽에서 땀이 나와 비문 글귀 사이를 타고 흘러내린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외지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기후·습도 운운하지만 여러 차례 땀 흘리는 광경을 목격한 저희들은
사명대사의 충혼이 서리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을 촌노 한 분은 자신의 믿음을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62년 장마 때는 보리가 썩어 나갈 정도였는데도 비석엔 습기 하나 차지 않았다."며
사명대사의 높은 도력을 거듭 강조한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앞으로는 이 비석이 나라의 경사로 땀 흘리는 일이 많기를 발원하고 있다.

 

*엥, ㅜㅜ 상상하면 은근히 무서워요. 우으 ~ 그나저나 나도 한번 천지에 가보고싶네.

그걸 보면 행운이 온다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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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사람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듯이 이란성 쌍둥이는 유전이고, 일란성 쌍둥이는 유전이 아니다. 일란성 쌍둥이는 난자 한 개와 정자 한 개가 만나 임신이 된 후 세포 분열중에 일종의 사고로 두 세포군으로 분리돼 쌍둥이가 되지만, 이란성은 한 번에 난자 두 개가 배란되는 모체의 특성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일란성 쌍둥이가 결혼해 다시 쌍둥이를 낳을 확률은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지만 이란성 쌍둥이를 낳은 엄마가 다음 출산 때 쌍둥이를 낳을 확률은 다른 사람에 비해 2~3배 높으며, 이란성 쌍둥이인 여자가 결혼해 쌍둥이를 낳을 확률도 다른 사람에 비해 높다. 하지만 이란성 쌍둥이인 남자가 결혼해 쌍둥이를 낳을 확률은 다른 사람과 별반 차이가 없다.




주위를 둘러봐도 키는 유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자녀의 키는 아빠로부터 30%, 엄마로부터 35% 유전되고 나머지 30%는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엄마 아빠 중 한 사람이 또래 집단에서 3% 이내에 들 정도로 키가작다면 아이 역시 작을 확률이 높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키가 큰 인자를 가지고 태어나더라도 성장하면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거나 병치레를 하면 유전적으로 결정된 수치까지 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유전적으로 우리 아이의 키는 얼마나 될지 추측해 보자.


몸무게

특히 비만은 키에 비해 유전적인 영향이 크다. 다이어트를 시도한 사람의 5년 후 몸무게를 조사한 결과 3% 정도만 성공했다는 의학 보고에서 비만의 원인은 단순히 과식이나 운동 부족이 아니라 유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계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부모가 모두 비만인 경우 자녀가 비만이 될 확률은 80%, 한쪽 부모가 비만인 경우는 40%, 부모가 모두 야윈 경우 비만이 될 확률은 9%로 유전적인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유명한 발레리나 양성소에서는 응시생은 물론이고 엄마의 몸매까지 참고하여 입학을 결정한다. 이는 엄마가 뚱뚱하면 자녀도 뚱뚱해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능

머리가 좋고 나쁜 것 또한 유전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어느 학자는 다수의 가정을 표본으로 지능 지수 데이터를 모아 평균을 낸 결과 자녀의 지능은 아빠에게서 30%, 엄마에게서 30% 유전되고 나머지는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최근 X염색체가 사람의 지능을 결정하므로 엄마로부터 X염색체를 받고 아빠로부터 Y염색체를 받는 아들의 지능에 엄마의 지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연구 발표가 있었다. 하지만 부모의 유전적인 지능 지수 못지않게 부모가 만들어 주는 지적인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외모

피부색, 눈의 크기와 모양, 쌍꺼풀, 머리카락의 모양, 체형 등 외모는 유전적인 성향이 강하다. 주근깨도 유전되는데 부모 중 한쪽이라도 주근깨가 있다면 아이에게 주근개가 생길 확률은 50~100%, 부모 한쪽이 둥근 코라면 아이도 둥근 코일 확률은 50~100%이며 부모 한쪽이 화살코 모양이라면 아이 역시 화살코일 확률은 100%이다.
곱슬머리인 엄마와 직모인 아빠가 아이를 낳으면 아이는 반곱슬머리이고, 부모 모두 곱슬머리이면 아이는 100% 곱슬머리다. 엄마와 아빠 모두 직모여야만 아이 머리가 직모가 된다. 반곱슬머리 엄마와 곱슬머리 아빠가 만나면 곱슬머리일 확률과 반곱슬머리일 확률이 각각 50%, 또 반곱슬머리 부모가 아이를 낳으면 곱슬머리일 확률과 직모일 확률이 각각 25% 정도다. 반곱슬머리와 직모 부모가 만나면 반곱슬머리와 직모 아이가 태어날 확률이 각각 50%다.
엄마와 아빠 모두 둥근 눈이라면 아이 역시 둥근 눈이지만 부모 중 한쪽만 둥근 눈이라면 아이가 둥근 눈일 확률은 13% 정도다. 부모 모두 둥근 눈이 아니라면 아이가 둥근 눈일 확률은 0~25%다. 눈 크기를 큰 눈과 보통 눈, 작은 눈으로 나눴을 때 부모 눈이 모두 크다면 아이는 100% 눈이 크다. 하지만 부모 중 한쪽만 눈이 크고 다른 한쪽이 보통이라면 아이 눈이 클 확률은 50%, 한쪽은 눈이 크지만 다른 한쪽이 작다면 아이 눈은 보통이다. 부모 모두 보통 눈이라면 눈이 큰 아이가 태어날 확률은 25%다.


술을 잘 먹는 것

우리 주변에는 알코올에 극히 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이 있다. 술에 약한 사람이 술 마시는 연습을 아무리 많이 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것은 술에 대한 저항력이 부모로부터 유전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00%는 아니더라도 술을 잘 먹는 엄마나 아빠의 자녀는 술을 잘 먹게 될 확률이 높다.


대머리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늙으면 머리카락이 줄어든다. 그러나 젊어서 대머리가 되는 것은 특별한 외적 환경 때문이 아니라 유전 때문이다. 아버지가 젊어서 대머리가 되면 그가 낳은 아들의 반은 젊어서 대머리가 된다.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형제가 젊어서 대머리가 되었더라도 아버지가 정상이면 아들이 대머리가 될 가능성은 적다.


성격

활발한 아이, 조용하고 차분한 아이, 내성적인 아이 같은 특징이 유전되는지, 환경의 영향을 받아 결정되는지는 학자들 사이에서 아직도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사람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주는 유전자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선천적인 유전자가 기질의 큰 줄기를 이루어 낸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일란성 쌍둥이가 한 집에서 자란 형제보다 성격면에서 더 닮은꼴이라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이렇게 각각 다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면 어떻게 성격이 변할까? 큰 줄기의 기질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세밀한 성격은 환경에 따라 많이 변한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지않는다거나 쉽게 화를 내는 기질은 교육되는 것이 아니고 유전적으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쌍꺼풀

서구적인 미인을 원하는 요즈음에는 쌍꺼풀이 있는 아이가 태어나기를 원한다. 하지만 부모 모두 쌍꺼풀이 있는데도 아이에게는 없는 경우가 있다. 쌍꺼풀이 있는 아이가 태어날 확률은 부모 모두 쌍꺼풀이 있으면 62%, 한쪽에게만 쌍꺼풀이 있으면 43%지만 둘 다 없을 때에는 0%다. 하지만 부모 모두 쌍꺼풀이 없더라도 아이가 쌍꺼풀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부모가 쌍꺼풀 유전자는 가지고 있지만 나이가 적어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쌍꺼풀은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경우가 많다. 20대 남자 중에서 쌍꺼풀이 생기는 확률은 52%인 반면 40대 이상 남자에게 쌍꺼풀이 생길 확률은 80%로 나이에 따른 차이가 크다.


유전병

질병은 유전과 관계가 깊다. 진료시 가족의 병력을 묻고 그에 따라 질병을 예측하고 치료하는 것은 질병이 유전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 유전되는 것으로 알려진 대표적 질병은 당뇨병과 고혈압. 부모 중 한쪽이 당뇨병일 때 그 자녀가 당뇨병에 걸릴 확률은 8~15.3%다. 부모 모두 정상일 때 아이가 당뇨벼에 걸릴 확률은 3.2~7.7%인 것에 비하면 당뇨병의 유전 정도는 높은 편이다. 부모가 모두 고혈압이면 자녀의 50%가 고혈압에 걸리고 부모 중 한쪽이 고혈압이면 30%가 고혈압에 걸린다. 부모가 정상일 때 자녀의 4%가 고혈압에 걸린다는 수치와 비교해 볼 때 고혈압도 유전적 성향이 강한 질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암 역시 유전성이 있는 질환이지만 환경적인 영향도 많이 받기 때문에 친척이나 가족 중에서 암 환자가 있다면 암에 걸리지 않도록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정신 질환 중에도 유전 질환이 많다. 자폐증과 분열증, 조울증, 간질병, 정신 박약이 유전될 확률이 높은 질병이다. 특히 아버지가 자폐증인 경우 자녀가 자폐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어떤 연구에 따르면 50%가 넘는다고 한다. 안과 질환도 유전되는데 색맹과 중학생 이전에 나타나는 근시, 사시가 대표적인 질환이다. 부모 중 한 쪽이 사시면 자녀의 20%가 사시가 된다. 해피올닷컴

 

 

*허허ㅡ  술먹는것까지.ㅋㅋㅋㅋ 그래서 그런지 저한테는 술이 맞지 않는 거군요ㅡㅡ....

쳇!!!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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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Pei 2005-01-17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 정말 신기한 이야기이네요. 대부분 납득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실은 저의 아들의 사촌형들(즉 저의 조카들)이 이란성 쌍둥이인데, 나의 동생(쌍둥이 아빠)가 더 한명 여애를 갖고 싶다, 고 하는데 다시 쌍둥이가 태어나면 집 경제가 망한다고 결단 못한다고 하고 있어요. 있을 수있는 일이거든요.
또 술 먹는 것. 이것 100% 납득. 저의 아버지는 술 냄새를 맡은 뿐으로 취한다는 극단한 체질인데요, 저도 술은 전혀 못마신답니다. 1년 내내 술이 없어도 문제없이 생활할 수있는 체질이에요.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은 이 40년간 한번도 없었어요.

이것 퍼가요.

즐거운랄랄라 2005-01-1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그렇군요, 주위에 쌍둥이가 많네요 . 음. 제 주위에도 있거든요 ^^
역시 한꺼번에 둘이나 생기면 - 조금은 곤란할것같아요. ^^ 많이퍼가세요.ㅋㅋ
오랜만이에요.
 

1. 지퍼에는 YKK라는 이니셜이 있다. 이는 세계 최대의 지퍼 회사‘Yoshida Kogyo Kabushibibaisha’의 약자.

2. 갓 따른 샴페인에 건포도를 하나 넣으면 유리잔내에서 계속 위 아래로 오르락 내리락 한다.

3. 오리가 꽥꽥거리는 소리는 메아리가 생기지 않는다. 아무도 그 이유는 모른다.

4. 맥도날드는 해피밀 세트 판매가 전체 수익의 40%를 차지한다.

5. 1996년판 웹스터 사전에는 315개 단어의 철자가 잘못 표기됐다.

6. 하루 평균 12명의 신생아는 부모가 바뀐다.

7. 초콜렛은 강아지를 죽일 수 있다. 초콜렛은 개의 심장과 신경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주 소량의 초콜렛으로도 강아지를 죽일 수 있다.

8. 대부분 립스틱 성분에는 물고기 비늘이 포함돼 있다.

9. 1830년경에는 케첩이 의료용으로 판매됐다.

10.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한 손으로 글을 쓰고 나머지 한 손으로 그림 그리기를 동시에 했다.

11. 2차대전 중에는 금속이 부족해 오스카상을 나무로 제작했다.

12. 라스베가스의 카지노에는 시계가 없다.

13.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가위를 발명했다. 그리고 모나리자의 입술을 그리는데 10년이 걸렸다.

14. 브루스 리(이소룡)의 몸동작은 너무 빨라서 그의 움직임을 보려면 테이프를 느리게 재생해야 한다.

15. 나비의 원래 이름은 ‘flutterby'였다.

16. 천천히 다리를 올리고 누우면 유사(빠져드는 모래)에 빠지지 않는다.

17. 모기약은 모기를 쫓는 게 아니라 사람을 숨겨주는 것이다. 모기약 스프레이는 모기의 센서를 방해해 사람이 있는 곳을 찾지 못하게 한다.

18. 치과의사들은 ‘flush’(변기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생기는 공기중 미생물로부터 칫솔을 보호하기 위해선 화장실에서 1.8m 정도 떨어진 곳에 칫솔을 놔두기를 권한다.

19. 최초의 바코드 상품은 Wrigley사의 껌이었다.

20. 말보로사의 초대 회장은 폐암으로 사망했다.

21. 마이클 조던은 나이키 사의 공장 모든 직원들의 월급을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돈을 매년 나이키로부터 벌고 있다.

22. 마릴린 먼로는 한 쪽 발에 여섯 개의 발가락을 갖고 있었다.

23. 히틀러의 어머니는 심각하게 낙태를 고려했으나 의사의 만류로 그만뒀다.

24. 지구상에서 가장 값나가는 브랜드는 순서대로 말보로, 코카콜라, 버드와이저다.

25. 왼손만 가지고 타이핑할 수 있는 단어 중 가장 긴 것은 'Stewardesses'

26. 악어입에 물렸을 때는 손가락으로 악어 눈을 공격해라. 악어가 즉시 놔줄 것이다.

27. 111,111,111 곱하기 111,111,111을 하면 12,345,678,987,654,321 의 결과가 나온다.

28. 세계에서 제일 흔한 이름은 무하마드(Mohammed).

29. 사람들이 잠에 들기까지 평균 7분이 걸린다.

30. 키보드의 ‘Pound(#)’ 키는 ‘octothorp’라고 불린다.

31.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은 유일한 가축은 ‘고양이’다.

32. 고무밴드는 냉장고에 놔두면 더 오래간다.

33. 사람들은 보통 타이핑할 때 평균적으로 왼손을 56% 사용한다.

34. 영어중에서 'mt'로 끝나는 유일한 단어는 ‘Dreamt'

35. 눈을 뜬 상태에서 코를 골 수 없다.

36. KFC의 슬로건 “손가락을 빨아도 맛있어요”는 중국어로 손가락을 먹어치워라”가 된다.

37. 바퀴는 머리가 잘려도 10일 동안 생존할 수 있다.

38. 유럽 여성들은 1900년까지 속옷을 입지 않았다.

39. 인간은 살면서 18kg 가량의 피부를 벗는다.

40. 요요는 한때 필리핀에서 무기로 사용됐다.

41. 코카콜라는 자동차용 오일로 사용 가능하다.

42. 멕시코시티는 매년 0.254m씩 가라앉고 있다.

43. 두뇌는 텔레비전을 볼 때보다 잠잘 때 더 활동적이 된다.

44. 미국인의 80%가 좋아하는 색상은 파란색이다.

45. 스리랑카에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이 “그렇다”라는 긍정의 대답이다.

46. 지구상에는 사람보다 닭이 더 많다.

47. 아이슬란드에서 개를 키우는 건 불법이다.

48. 엄지 손가락의 손톱이 가장 천천히 자라며 가운데 손가락의 손톱이 가장 빨리 자란다.

49. 영어에서 모음이 역순으로 정리된 단어는 ‘subcontinental'

50. 워싱턴에는 사람보다 전화기 수가 더 많다.

51. 베토벤은 작곡하기 전에 머리에 얼음물을 쏟아부었다.

52. 파키스탄 에서는 남에게 발을 보여주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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