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학경 Theresa Hak Kyung Cha

한국전쟁 중이던 1951년 3월 4일 부산의 피난민 가정에서 태어나 열한 살이던 1962년에 가족을 따라 하와이로 이주했다. 2년 후인 1964년,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했다.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학풍으로 유명한 UC버클리에서 비교문학과 미술을 공부했다. 이때 한국 현대시를 비롯하여 유럽의 모더니스트 작가들을 많이 탐독했는데, 그중에서도 사뮈엘 베케트, 제임스 조이스, 스테판 말라르페,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을 즐겨 읽었다. 그리고 "프로듀서, 감독, 연기자, 비디오와 영화작가, 공간설치예술가, 공연과 출판문학가" 라고 자평할 만큼 전방위적인 작품 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1976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영화 이론을 공부한 뒤, 1980년 뉴욕으로 가서 작품 활동을 하는 한편, 친구가 경영하는 출판사에서 작가 및 편집자로 일했다. 1979년 말에는 한국을 떠난 지 18년 만에 고국을 방문했으며, 1981년 다시 방문해 기획 영화 「몽골에서 온하얀 먼지 촬영을 남동생과 같이 시작했다.
그러나 31세이던 1982년 11월 5일, 불의의 죽음을 당했다. 사진작가 리처드 반스와 결혼한 지 6개월, 그의 첫 책 『딕테』가 출간된지 3일째 되던 날이었다.

육신보다 더 적나라하고, 뼈대보다 더 강하며,
힘줄보다 더 질기고, 신경보다 더 예민한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사포

문단 열고 그날은 첫날이었다 마침표 그녀는 먼 곳으로부터 왔다 마침표 오늘 저녁 식사 때 쉼표 가족들은 물을 것이다 쉼표 따옴표 열고첫날이 어땠지 물음표 따옴표 닫고 적어도 가능한 한 최소한의 말을 하기 위해 쉼표 대답은 이럴 것이다 따옴표 열고 한 가지밖에 없어요 마침표 어떤 사람이 있어요 마침표 멀리서 온 마침표따옴표 닫고 - P11

그녀는 말하는 시늉을 한다. 말과 비슷한 것을 무엇과 비슷하다면.) 노출된 소음, 신음, 낱말들로부터 뜯겨 나온 편린들. 그녀는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해 주저하기 때문에, 입으로 흉내 내는 짓을 할수밖에 없다. 아랫입술 전체가 위로 올라갔다가는 다시 제자리로 내려앉는다. 그러곤 그녀는 두 입술을 모아 뾰족이 내밀고 무엇을 말할듯. (한마디. 단 한마디.) 숨을 들이쉰다. 그러나 숨이 떨어진다. 머리를 약간 뒤로 젖히고, 어깨에 힘을 모아 이 자세로 남아 있는다. - P13

오 뮤즈여, 나에게 이야기해주소서
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 오 여신이여, 제우스의 딸이여
원하시는대로 어디에서든지 시작해, 우리에게까지도 이야기해주십시오. - P17

유관순

출생: 음력 1903년 3월 15일
사망: 1920년 10월 12일 오전 8시 20분

그녀는 한 어머니와 한 아버지로부터 태어났다. - P35

그녀는 삶의 시간을 완성시킨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시간을 완성시켰듯이 그들은 자신의 생애를 끊이지 않는 신화로 만들었고, 역사의 재고에 따라 자신의 행적이 거짓이나 진실 중 어느 것으로 판명될지 따져볼 여유도 없이 그들의 행동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었다.


진리는 그 자체 외의 모든 절제를 진실과 함께 포용한다. 그 밖의시간, 그 밖의 공간, 자체의 시간의 유유한 광휘, 죽음의 유유한 표식을 상관하지 않고, 다른 삶들과 병행한다. 그 자체에게는 전혀 모르게. 그러나 노래하기 위하여. 누구에게 노래하기 위하여, 아주 부드럽게. - P38


그녀는 잔 다르크 이름을 세 번 부른다.
그녀는 안중근 이름을 다섯 번 부른다.


국가가 없는 민족은 없고, 조상이 없는 민족은 없다. 아무리 영토가 작다 해도 자주성을 지킨 나라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천년의 역사를 가지고도, 일본에 그것을 빼앗겼다.
"일본은 즉시 의회를 창립했다. ‘그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모든 일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천황의 이름으로, 이 의회는 처음에는 날마다 열렸는데, 후에는 더 긴 기간을 두고 열렸다. 서울에는 50명이 넘는 일본인 고문들이 투입되었다. 그들은 경험 없고 책임은 더욱 없는 남자들이었으며 그들은 하루 해가 떠서부터 질 때까지 그사이에 한국을 변형시키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 P38

관순은 애국자 아버지 어머니의 네 자녀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그의 행동은 남달랐다. 역사는 그녀의 짧고 격렬했던 삶의 전기를 기록한다. 그녀의 행동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의 역정과 갈라놓는다. 그러한 인생 역정의 정체성은 역사 속의 어느 다른 여성 영웅들과 바꾸어도 상관없다. 그들의 이름, 시대, 행위들은 관대함과 자기희생의 헌신으로 따로 정의를 내릴 필요가 없다.
관순이 16세 되는 해, 1919년, 한국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일본의 음모는 명성황후와 그의 왕족들을 암살함으로써 성취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관순은 동료 학생들과 함께 항거 단체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혁명운동을 시작한다.  - P40

이미 민족적으로 조직된 운동 단체가있었는데, 그들은 관순의 진지함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어린 여성이라는 것 때문에 그녀의 위치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녀를 설득해 단념시키려고 했다. 그녀는 용기를 잃지 않고, 그들에게 자신의 신념과 헌신을 보여주었다. 1919년 3월 1일 민족적 대시위를 조직하기 위해 그녀는 40여 군데의 마을을 도보로 여행하며, 천명을 받은 사신의 역할을 해냈다. 이날은 역사의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이날의 시위는 한국인들이 일본의 지배에 항거한 최대 규모의 시위였으며, 그들은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쳤다.
네 자녀 중의 외동딸인 그녀는 다른 형제들이 그러했듯이 자신의 - P40

삶을 완성해나갔다. 그녀의 어머니 그녀의 아버지 그녀의 오빠들.


"나는 네 곳에서 적군과의 교전을 보았다. 한 곳에서는 일본이 다섯 명의 사상자와 함께 후퇴한 무승부 전쟁이었다. 다른 세 곳에서는 장거리 총과 우세한 탄약으로 인해 일본이 승리했다. 그중 사상자 없이 이긴 곳은 단 한 군데였다. 일본인들에게 이것이 단순한 소풍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보았다."
"산도적에 불과한 이 남자들은 도대체 누가 지휘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전쟁 방식은 순진무구한 사람들을 선동하여 미치도록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해낸 것 같다. 이것이 그들의 목표인가? 아니라면, 왜 그들은 이다지도 악랄하고, 광적인 정책을 실행하는가? 공권력으로 하여금 호의를 잃은 지역을 효과적으로 정당하게 순찰하거나, 아니면 한국에 대한 통치에 있어서 무능력함을 고백하라!" - P41

‘원수‘. 누구의 적, 적국, 전체 민족에 대항하는 또 다른 민족 전체. 한민족이 다른 민족의 제도화된 고통을 즐거워한다. 적은 추상화된다. 그 관계는 추상화된다. 그 민족, 그 원수, 그 이름이 그 자신의 정체성보다 더 거대해진다. 그 자신의 크기보다 더 커진다. 자신의 속성보다도 더 커진다. 자신의 의미보다도 더 커진다. 이 국민에게는 그들의 원수인 국민들에게는, 그들의 통치자의 지배와 통치자의 승리인 국민들에게는.
일본은 기호가 되었다. 알파벳, 어휘, 
이 원수의 민족에게. 그것의 의미는 도구이며, 살갗을 찌르고, 살을 저미는 기억, 기록으로 남아있는 낭자한 피, 물리적 실체인 피의 양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사적으로 남아 있다. 이 원수 민족의. - P42

목격해보지 않은 민족은, 이와 같은 억압으로 지배받아보지 않은민족, 그들은 알지 못한다.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 특수 용어들: 원수, 악랄, 정복, 배신, 침략, 파괴, 그것들은 다만 한 적대 국가가 다른나라의 인간성을 말살시켰다는 명백하고도 어김없는 기록, 즉 역사적 기록에 대한 커다란 지각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이것은 실로 실체적이 못 된다. 살과 뼈로 된, 골수까지, 각인된, 개입이 필요한그 지점까지, 이 경험을, 이 결과를, 표현을, 새로 발명하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하기를 그치지 않는 그것과는 다르다.
다른 민족에게는, 이 이야기들은 (또 하나의) 먼 땅, (다른 어떤)먼 땅과 같이, 이야기에 나타나는 아무런 특징도 없이, (다 똑같이) - P42

다른 어느 것과 마찬가지로 멀리 들릴 것이다.
이 기록은 전달된다. 똑같은 수단으로, 아무런 특징 없이 같은 경로로 같은 양식으로 전달되어 알려진다: 그 말. 그 영상, 대중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정보를 조작하여 단조롭고, 속되게 만들어버린다. 그들의 연출이 아무리 매혹적이라고 해도 더 이상 그들 자신의 공모의 수법을 벗어나지 못한다. 반응은 미리 정해져 있다. 아무리 수동적으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무반응을 성취하기 위해, 흡수시키고, 일방적 소통에 순응시키기 위해 중화되어 있다.
왜 지금 그 모든 것을 부활시키는가. 과거로부터 역사를, 그 오랜 상처를 지난 감정을 온통 또다시. 그것은 똑같은 어리석음을 다시 사는 것을 고백하기 위해서다. 지금 그것을 불러일으켜 잊힌 역사를 망각 속에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말과 영상 속에서 또 다른말과 영상을 조각조각 끄집어내어, 잊힌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다. - P43

1919년 3월 1일. 모든 사람들은 자신 속에 나라의 국기를 지니고 다닐 것을 알고 있다. 동시에 모든 사람들은 이 행동에 따른 처벌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행진이 시작되고, 태극기는 꺼내져, 보이고, 물결치고, 개인마다 이 나라 이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부르짖는다. 이에 따른 처벌을 잘 알면서도 앞장서서 행진하던 그녀의 부모가 쓰러졌다. 그녀의 오빠들도. 수많은 사람들이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적의 군대가 무차별하게 휘두른 칼에 찔렸다. 관순은 혁명의 지도자로 체포되고, 거기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다. 그녀는 칼로 가슴을 찔리고, 문초를 받지만 아무 이름도 밝히지 않는다. 7년의 형이 내려지고 그때에 그녀의 대답은 나라 자체가 감옥살이를 한다는 것이다.
어린 혁명가 어린 애국자 여자 군인 민족의 구원자. 영원히 기억될 한 행위. 한 존재의 완성이다. 한 순교. 한 나라의 역사를 위한, 한 민족의 - P47

어떤 사람들은 나이를 모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시간이 멎는다. 시간은 어떤 사람들을 위해서는 멈추어 준다. 그들을 위해 특별히, 영원의 시간. 나이가 없는 시간은 일부 사람들을 위해서 고정된다. 그들의 영상, 그들의 기억은 쇠퇴하지 않는다. 자신을 재생산과 번식으로, 영혼으로부터 추출되어 잡힌 이미지와는 달리, 그들의 면모는 성스러운 아름다움, 계절의 부패를 모르는 아름다움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며, 피할 수 없는 것이나, 죽음도 아니고 죽는것 자체를 상기시킨다. - P47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 대보면, 그것은 빠져 있다. 그것이 빠져 있다. 여전히. 시간은 어떠한가. 움직이지 않는다. 거기에 머물러 있다.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시간이 말이다. 나머지 모든 것, 모든 나머지 것들. 모든 다른 것은, 시간에 지배된다. 시간에 대답해야 한다. 다만, 사산된. 무산된. 겨우. 영아. 씨, 씨눈, 새싹, 그보다도 못한 잠자고 있는 정체되어 있는, 사라져버린.


목이 잘린 형상들. 낡은. 흉진, 이전의 형상의 과거의 기록, 현재의 형상은 정면으로 대면해 보면 빠진 것, 없는 것을 드러낸다. 나머지라고말-해-질, 기억. 그러나 나머지가 전부다.


기억이 전부다. 잃어버린 것에 대한 열망, 빠진 것을 지킨다.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부정의 사이에 고정되어 진보의 표시라고는 보이지않는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나이를 먹는다. 단지.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없다.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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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학경 차는 
˝민주주의를 시행하는 척하면서 오히려 민주주의에 연속적인 굴절을 초래하는 장치를 저지하라˝고 적는다. 서구의 가장 파괴적인 유산은 누가 우리의 적인지 규정하는 권력이며, 이 권력에 의해 우리는 남북한이 그랬듯 동족을 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나의 적으로 삼는다. p257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의 성폭행 피해와 관련해 신뢰할 만한 통계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아시아 태평양 성폭력 연구소는 아시아 여성의 21~55퍼센트가 신체적, 성적 폭력을 경험한다고 밝혔는데, 이것은 다소 폭넓은 수치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모든 인종 가운데 아시아계 미국 여성의 성폭력 신고율이 제일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조사는 "표본 크기가 너무 작다"라는 이유로 아시아 여성을 아예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나는 이 조사 결과들을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남자를 사귈 때 엄마는 이렇게 묻곤 했다. "너 무슨 못된 짓 하는 거 아니지?" 그것이 섹스에 대한 엄마의, 말하자면 완곡어법이었고, 그 외에는 절대로 언급되는 법이 없었다.
나는 실종되거나 실성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 P212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엄마는 아무 일도 아니라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아시아 문화에서 여자들이 이유 없이 사라지거나 실성하는 이야기는 무성하다. 노출되는 부분은 기껏해야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것뿐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신경을 자극하는 고통은 일단 그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면 신체로부터 분리된다고 본다. 고통을 명명하면, 일어났던 일에서 아픔이 떨어지고, 한계가 그어지고, 그 일을 감당하고 심지어 소멸까지 가능해진다. 그러나 나는 마치 말이 치유법이 아니라 남을 오염하는 독인 양, 자칫 고통을 언급했다가는 정신적 외상을 또 한 번 입을 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입히게 되는 문화에서 자랐다. 이런 비밀과 수치의 문화에서 성폭행을 고발할 만큼 대담한 아시아 여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 P213

현실 부정은 항상 상처에 바르는 연고가 되어주지만, 그건 국소적 요법에 불과하다. 겪은 일이 꿈에 나오거나 다른 더 치명적이고 만성적인 형태로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 학자인 친구에게 왜 아무도 차의 죽음에 관해 쓰지 않는지 의견을 물었다. "아마 차의 가족에게 또다시 트라우마를 주고 싶지 않아서일 거야"라고 그가 말했다. 그말을 듣자, 나를 포함한 차의 비평가들이 차의 이야기의 일부로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은 여성 시인 중에서도 거인에 해당하는 실비아 플라스를 생각한다. 플라스에 관한 각종 평전 출간이 그동안 일종의 소규모 산업을 이루며 떠올랐다. 평범한 독자에서 가장 헌신적인 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탐정이 되어 뒷소문을 교환하고, 그의 삶에서 간과된 부분을 - P213

찾아내려고 서한과 일기를 샅샅이 뒤졌다. 실비아 플라스 재단과 학자들 사이의 법적 분쟁이 길게 이어졌다. 지인들은 나름대로 회고록을 써서 혹독한 관점을 제공했다. 그러나 플라스와는 달리 차의 개인사는 대부분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았다. 학자들이 역사적 참극에 의해 침묵당한 한국 여성들의 삶을 차가 어떻게 재발견했는지에 대해서는 열심히 논하면서 차의 생명을 앗아간 참극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이해되지않는다. 일레인 킴, 노마 알라콘이 엮은 평론집 『자기 쓰기,민족 쓰기』와 앤 안린 쳉, 티머시 유 같은 학자들의 논문 등「딕테」와 관련해 중요한 학술 연구가 존재한다. 그러나 딕테』는 해당 학자가 몸담은 학술 분야를 장황하게 인증하는 도구로써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차에 관해서 읽으면 읽을수록그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를 모르면 모를수록, 차도 결국 아무 설명 없이 사라진 또 한 명의 여성으로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 P214

차가 사망한 뒤 「딕테」는 금방 절판되었다.
그랬다가 침묵의 10년이 흐른 후, 형식상 접근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애초에 「딕테」에 무관심했던 전위 영화 비평가및 아시아계 미국인 학계가 순서대로 서서히 주목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사에서 재출간된 『딕테』는 이제 아시아계 미국 문학에서 중대한 작품으로 간주되어 여러 대학에서 널리 교재로 쓰이며, 그의 비디오 아트, 조형 작품, 사진 등은 전부 버클리 미술관 및 태평양 영화 보관소에 보존되어 전 세계 주요미술관에서 전시된다.
나는 「딕테」를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접근하라고 일러준다. 그 언어가 말하는 사람을 직접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입속에 치아를 본뜨는 퍼티를 넣어 모음을 찍어내는 것처럼 생각하라고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차가 마치 아직도 가톨릭 여고에서 서투른 영어로 이야기를 구술하는 학생인 것처럼 글을 쓰기 때문이다. - P219

차가 마침표를 사용하는 방식은 너무나 공격적이어서 그의목소리를 기계적이고 단단한 드릴 소리로 완전히 바꿔놓는다. 점묘화를 그릴 듯한 이 마침표들은 사실상 우리가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예컨대, 차가 운전자라면, 그가 브레이크를 밟고, 또 밟아서, 글이 앞으로 찔끔 나가다가 멈추고, 찔끔 나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나는 그의 문체가 꼭 즐겁지는 않더라도 해방감을 준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차가 -실은 프랑스어, 영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이민자가 영어에 느끼는 불편을 하나의 잠재적 표현 형식으로 삼았기때문이다. - P220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은 자국어 사용을 금지당했고 심지어 자기 이름을 버리고 일본식 성을 써야 했다. 독립하자마자 한반도는 양분되어 각각 미군과 소련군에 점령당했다. 조국의 식민 역사 때문에 차는 언어를 상처로 취급하기도 하고 상처를 내는 도구로 취급하기도 한다. 차의 언어는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언어다. 그의 예술 작업에서 언어는 영어든 프랑스어든 한국어든 관계없이 고무도장처럼 뻣뻣하고, 돌에 새긴 무늬처럼 불가사의한 질감을 지닌 대상물로,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 자신과 동떨어진 대상물로 간주된다.
글과 저자를 독실하게 분리하는 후기구조주의 학파비평계는 『딕테』가 자서전이기를 거부하는 책, 파도에 떠밀려온 편지들을 엮은 원고라고 조심스럽게 강조한다. 차의 가족은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 차는 막 출간된 『딕테」 한 부를 - P220

사망하기 며칠 전에 부모에게 발송했고, 그 책은 차의 장례일에 도착했다. 존이 우편물을 뜯어 책을 펼쳤는데 제일 먼저 보이는 사진에 어느 일본 탄광에 갇힌 한국 광부들이 탄광 벽에 낙서한것을 복사한 흐릿한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아이 같은 글씨로 끄적거린 낙서를 옮기면 이렇다.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 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와서 너무심란해진 존은 어머니가 보지 못하도록 책을 숨겼다. 두 달 후 어머니는 『딕테』를 읽다가 딸이 당신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느껴져서 몇 번이고 읽기를 멈추어야 했다. - P221

나는 차가 침묵으로 미학을 다듬고, 생략법을 통해 영어가 동포들이 견뎌낸 역사적 참변을 포착하기에 지나치게 빈약하고 간접적인 매체임을 명백히 한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사포의 파편화된 시처럼 그 공포의 일부만 표현하고 나머지는 남겨두어, 차마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독자가 상상하도록 청하는 것이 더 진실했다. 어떤 의미에서 앞서 언급한 학자는 차가 구사하는 침묵의 수사법을 미러링하고 있다. 그 학자는 차의 죽음을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밝힘으로써("1982년 11월 5일, 차는 죽임을 당했다") 그 살해 사건이 작가 약력을 통해 전달하기에는 지나치게 잔혹하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고 암시한다. 하지만 차를 무시하는 침묵이 끝나고 차를 존중하는 침묵이 시작되는 경계선은 어디인가? 침묵의 문제점은 침묵하는 이유를 목청 높여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침묵은 쌓이고, 증폭되고, 우리의 의도 밖으로 자체의 생명을 얻어 무관심이나, 회피나, 심지어 수치심으로 잘못 해석될 수있으며 결국 이 침묵은 망각으로 이어진다. - P222

나는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내 인종 정체성을 소재로 글을 쓰는 일은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다는 편견을 한참 고수했는데, 그런 변명의 저변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 그것을비집어 열어야 했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마치 해부용 테이블에 뇌를 올려놓고 반으로 갈라 글쓰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신경을 핀셋으로 골라내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이 우리라는 것과 씨름해야 했다. 저들에게 맞서는 수천 개의 나팔과도 같은 우리를 청중에게 강력하게 내세울 만한 자신감이 내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너무 불특정해서 공유하는언어가 있는지조차 의문인 아시아인이라는 인종 집단을 내체험의 무게로 - 동아시아인, 전문가 계급, 시스젠더 여성,
무신론자, 반골로서 - 규정해 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누가 건드린 달팽이 촉수처럼 오그렸다. - P245

나는 2008년 이후로 서울에 가지 않았지만, 당시 100세인 할머니를 뵈러 갔더니 열악한 요양원에서 천천히 노쇠해지고 계셔서 지금도 할머니만 생각하면 가족들에게 화가 난다. 그 요양원은 기괴한 탁아소처럼 벽을 온통 분홍색으로 칠하고 아이들이 합창하는 섬뜩한 찬송가 녹음을 온종일 틀어놓았다. 10인 1실로 꽉 찬 방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은 방문한 자녀들에게자주 좀 오라고 투정했다. 중증 치매인 우리 할머니를 돌보기에 나머지 친척들은 너무 노령이었기 때문에 내 동생이 1년 동안서울에서 할머니를 돌봤다. "늙어서 가족이 나를 버리기 전에 죽고 싶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서울에서 못 산다. 그곳은 여자들이 살기 좋은 곳이 못된다. 많은 여성이 선천적으로 넓은 몽골형 얼굴을 성형수술로 깎아 하얗게 표백한 하트형 얼굴로 만든다. 교육제도도 무자비하다. 금융위기 수습을 위해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이한국에 58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그 조건으로 - P256

외국 투자자에게 시장을 개방하고, 노동시장 규제를 완화해 노동자의 고용과 해고를 용이하게 하고, 탄소 배출 기준을 완화해 미국 자동차 수입을 허용하도록 했다. 이제 실질 임금은 침체되었다. 실업률도 심각해졌다. 대학생들은 억압적 봉건체제였던 조선왕조의 이름을 따서 자기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른다. 탁하고 뿌연 미세먼지가 서울 전역에 내려앉는다. 그 먼지는 육안으로는 안 보여도 목 뒤로 느껴지며 장기적으로 암같은 병을 일으킨다. 한국인들은 특정한 몇 개월 동안은 밖에도 잘 안 나가고 나갈 때는 수술용 마스크를 쓰지만, 그것도 그들을 충분히 보호해주지는 못한다. - P257

그렇다면 미국에 사는 것을 은혜로 여겨.


테레사 학경 차는 "민주주의를 시행하는척하면서 오히려 민주주의에 연속적인 굴절을 초래하는 장치를 저지하라"고 적는다. 서구의 가장 파괴적인 유산은 누가 우리의 적인지 규정하는 권력이며, 이 권력에 의해 우리는 남북한이그랬듯 동족을 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나의 적으로 삼는다. - P257

내가 한국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곳과 그곳의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이다. 한때 운동가들이 쓰던 표현으로 바꿔말하면,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신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 P258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신이 내 조상의 나라를 둘로 쪼개놓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설픈 중간급 미군 장교 두 명이 1945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지도를 놓고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을 자의적으로 그었고,
결과적으로 이 분단은 우리 할머니의 가족을 비롯해 수백만 가족을 갈라놓았다. 그 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역에서 일본군에게 투하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과 네이팜을자유의 기치 아래 좁은 우리 땅에 투하했다. 한국전쟁과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기막힌 사실 하나는 당시 한국에서 복무하며 화상 피해자를 치료했던 미국 외과 의사 데이비드 랠프 밀러드가 바로 아시아인의 눈을 서구적으로 만드는 쌍꺼풀 수술을 창시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수술법을 한국 성노동자들에게 시술하여 미군 병사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오늘날 쌍꺼풀 수술은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형수술이다. 내 조상의 나라는 당신이 영구적 전쟁과 초국가적 자본주의를 통해 필리핀, 캄보디아, 온두라스, 멕시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엘살바도르,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나라에서 저지른 살상과 자원 착취의 작은 예시에 불과하며, 이것은 주로 미국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배를 불렸다. 그러니까 나한테 은혜를 논하지 말란 말이다. - P259

우리가 각자 치는 인종 차단선은 우리 서로를 고립시키며, 우리의 투쟁이 너무 특별하여 우리 집단에 속한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공감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강화한다. 바로 그래서 나와 나를 통해 대리되는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을 더 인간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보편성을 파괴하고 싶다.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다. 우리야말로 지구상에서 다수이므로, 보편적인 것은 백인성이 아니라 우리의 차단된상태다. 여기서 우리란 비백인을 말한다. 즉 과거에 식민 지배를 받았던 자, 조상이 이미 멸망을 겪은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생존자, 서구 제국이 초래한 기후 변화 때문에 악화된 가뭄과홍수와 집단 폭력으로부터 피신한, 현재 멸망을 겪고 있는 이주자와 난민을 가리킨다. - P261

나는 빚진 상태를 통째로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과거에 투쟁한 운동가들에게 빚지고 있다. 나는 학경 차에게 빚지고 있다. 윤리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역사에 책임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나는 세상이 자기에게 빚지고있다고 여기는 부류의 백인 남자가 되느니 차라리 빚을 지겠다.
또한 나는 우리 부모님께 빚지고 있다. 하지만 내 삶을 비밀로 유지하거나 내 것을 챙기는 사유화의 꿈을 뒤쫓는 방식으로 부모님께 진 빚을 갚지는 못하겠다. 엄마는 내게 감사할 것을 거의 매일 요구했다. 엄마는 내가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도록 미국에 온 거라고 거의 매주 말했다. 그러고는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니?" - P266

아시아계 미국인은 무슬림이나 트랜스젠더처럼 보이지만않으면 다행히 심한 감시 속에 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일종의 연성 파놉티콘 속에 산다. 이것은 아주 미묘해서 우리는 이것을 내면화하여 자기를 감시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의 조건부 실존을 특징짓는다. 우리가 여기서 4세대째 살았어도우리의 지위는 여전히 조건부이다. 만족을 모르고 사들이는 물질적 소유물이든 주류 사회에 편입했다는 마음의 평화로서의 소속감이든 빌롱잉(belonging: 이 문장에서 소유물과 소속감이라는이중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옮긴이)은 언제나 약속되며,
아슬아슬하게 손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 우리가 유순하게 처신하도록 유도한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의식이 해방되려면 우리는 이 조건부 실존으로부터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투쟁을 이어가기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할까? 아니면 그저 우리의 고통을 자각하는 것을 의미할까? 나는 다른 이들이 보여준 행동을 통해서만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 현재 나는 역사가 - P267

디지털 아카이브로 대거 흡수되어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글을 쓰고 있다. 미국 정부는 오클라호마주에 설치했던 일본인 강제 수용소 한 곳을 다시 열어 중남미 아동들로 채우려고 계획 중이다. 일본인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소수의 생존자가 이 재설치에 반대하는시위를 매일 벌이고 있다. 한때 나는 일본인 강제 수용소생존자가 다들 어떻게 됐는지 한가한 태도로 궁금해하곤 했다. 왜 자취를 감췄지? 왜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 재설치반대 시위에서 톰 이케다가 말했다. "우리는 취약한 공동체에 동맹이 되어주어야 한다. 1942년에 일본계 미국인은 그런 동맹이 없었다."
우리는 이 나라에 늘 있었던 존재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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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나는 심하게 외로웠고 별로 활기도 없었다. 나는미술을 할 때, 나중에는 시를 짓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생기를 되찾았고, 그 속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왜냐하면 내 육체가 비물질화되고, 내 정체성이 떨구어지고, 내가 다른 삶을 사는것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모든 글이 이 자유를 인증했다. 존 키츠에 따르면 시인은 "정체성이 없다 - 시인은끊임없이 어떤 다른 사람을 대신하고 그 사람의 역할을 한다".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문학은 모든 주체가 피해 가는 그 중립자,
그 합성물, 그 모호성이며, 글을 쓰는 사람의 정체성을 비롯하여 모든 정체성이 실종되는 덫이다". - P67

그러나 시집을 내고 시인으로 데뷔하자, 내가 무슨 글을 쓰든지 아시아 여성이라는 내 정체성을 결코 차단할 수 없다는 것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육체의 개입이 없더라도 저자로서의 내 정체성은 귀신처럼 독자에게 내 목소리가 도달되는 강도와 범위를 제약했다. 내가 독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신이 된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얼마나순진한가! 휘트먼 작품 속의 나가 다중을 담고 있다면, 내 작품속의 나는 이 나라 인구의 5.6퍼센트를 담고 있었다. 가슴으로 진정하게 느껴지는 내용이라면 뭐든지 써도 좋으나 기왕 아시아인이니 아시아인에 관한 주제를 꾸준히 다루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독자, 스승, 편집자 등이 여러 방식으로 내게 조언했다. 아시아인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예컨대 자연에 관해서 쓰면 자연에 관해서 쓰는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할 테니 내게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었겠는가. - P68

시인 프라기타 샤마가 말한 대로, 미국인은 죽음을 애도하는 일도 기한을 정해놓고 하듯 인종에 관해서도 유효 기간을 설정한다. 미국인들은 일정 기한이 지나면 우리가 인종 문제를 극복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비록 나는 회의적이지만, 이 기회에 우리가 미국 문학계를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우리의 정체성을 자동으로 규정하는 낡은인종 서사, 우리의 삶을 백인 청중의 구미에 맞추면서 우리가 실제로 체험하는 다양한 현실을 삭제해버리는 낡은 인종 서사를 갈아치우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주어진 공식에 따라 우리 자신을설명하는 일을 그만두자는 것이다. - P75

지난 20년 동안, 그리고 아주 최근까지도, 줌파라히리의 작품들은 아시아계 이민자는 순응적인 노력가라는 환상을 지탱하는 인종적 소설의 전형이었다. 내 생각에 이것은독자를 몰입시키는 이야기꾼인 라히리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작품을 이민자의 삶에 대한 "단일한 이야기"로 포지셔닝했던 출판업계의 잘못이다. 라히리는 문화적 차이를 찾는 백인독자의 취향을 만족시키기에 딱 적당할 수준으로 편안한 인종적소품을 이용해 무덤덤하고 억제된 어조로 글을 썼으며, 작품속 인물들은 생각하거나 느끼지 않고 그저 행동한다. "나는..은행 계좌를 트고, 우체국 사서함을 빌리고, 울워스 마트에 가서플라스틱 그릇 하나와 수저 하나를 샀다." 라히리 작품에 나오는 인물은 언제나 절제되고 그 어떤 내면 지향성도 회피한다.
이것은 제인 후가 『뉴요커』 기고문에서 지적한 대로 독자에게 - P75

아시아성(사실 남아시아보다는 동아시아적 성격)을 암시하는상당히 전형적인 문학적 정서가 되어버렸다.
라히리의 단편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에서 주인공은 콜카타에서 보스턴으로 이민 와 집 주인인 백인 할머니와 함께사는데, 할머니는 그를 어린 소년처럼 취급한다. 주인공은 그런 구식 인종주의에도 개의치 않고 할머니를 좋아하게 되고 그들은 암묵적으로 문화적 이해에 도달한다. 나중에 주인공의 아내가 보스턴으로 와서 합류하고 그들은 놀랄 만큼 쉽게 동화하게되며 "우리는 이제 미국 시민이야" - 아들은 자라서 하버드대학에 입학한다.
라히리의 소설은 설명하지 말고 보여주라(show, don‘t tell)라는 문예창작 과정의 교리를 대체로 잘 따르고 있다. 그렇게 하면 독자는 등장인물의 고통을 체험하면서도, 수전 손택이 말한 대로 자신의 특권을 등장인물의 고통과 "동일한 지도" 위에 위치 매김하지 않아도 된다. 등장인물의 내면적 생각이 제거되었으므로 독자는 빈번한 사견 개입에 방해받지 않고 등장인물의 의식이라는 조종석에 앉아 영화 보듯 등장인물의 시각을 체험할수 있다. - P76

물론 유색인종 작가는 인종적 트라우마를 이야기해야하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너무나 오랫동안 백인이 상상하는 대로 구성되어왔다. 출판업계는 작가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사적인것으로 간주하기를 기대한다. 즉 등장인물이 특이한 가족 관계나 역사적 비극에 의해 시험에 들었다가 결국 자기 긍정이라는 계시에 도달하는 이야기를 기대한다. 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들의 소설을 보면 작가가 트라우마의 배경을 머나먼 고국 땅이나 고립된 아시아계 가족 내부로 설정하여, 그들의 아픔이 미국의 제국주의 지정학이나 미국 내 인종주의에 대한 새삼스러운증거가 아님을 확실히 해두는 작품이 많다. 그들에게 고통을주는 외부적 요인은 -가부장적인 아시아인 아버지, 과거 시대의 백인들- 독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도록 충분히 멀찌감치 설정한다. - P77

인종에 관한 글쓰기는 이제까지 우리를 지워버린 백인 자본주의 인프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점에서 격렬한 비판을 담지만, 우리의 내면이 모순들로 뒤엉켜 있다는 점에서 서정시이기도 하다. 나는 손쉬운 극복의 서사에는 저항하지만 우리가 인종 불평등을 극복할 거라는 신념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민자가 고생하는 감상적인 이야기들은 짜증스럽지만 한국인은 내가 아는 한 가장 심하게 트라우마를 겪은 민족에 속한다. 내 안에 깃든 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고정 관념을 넘어서려고 시도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how)인식되는지가 내가 누구인지(who)에 내재한다는 점이 명확해진다. 인종에 관해 진실한 글을 쓰기 위해, 나는 거의 서사를 거슬러 글을 써야 한다. 인종화된 마음은 프란츠 파농이 말한 대로 "지옥 같은 악순환"(infernal circle)이기 때문이다. - P95

퀴어이론가 캐서린 본드 스톡턴은 퀴어 아동이 어떻게 옆으로(sideways) 자라는지" 적으면서, 퀴어의 삶이 흔히 결혼과 출산이라는 직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말한다. 스톡턴은 유색 인종 아동 역시 옆으로 자라는데 그들의 어린 시절도 퀴어 아동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백인 아동이라는 모델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내 경우는 어린시절을 옆으로 보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지금도 그때를 돌아보면, 어린 소녀가 내 시선을 피해 숨으면서 나의 기억들을 깜박거리는 환상의 그림자놀이로 유도한다.
옆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른 것을 함축한다. "곁눈질"은 의심, 의혹, 심지어 경멸을 암시한다. 나는 사춘기 때 학교에서 온갖 성장 소설을 잔뜩 접했다. 교사가 비타민 풍부한 채소처럼강권하던 윌리엄 셰익스피어나 너새니얼 호손의 작품과는 달리, 성장 소설은 우리도 이제 주인공과 공감할 수 있을 연령이니 좋아할 것으로 여겼다. - P101

번스틴에 따르면 인종적 순수란 단순히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아는 것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상태"로서 "음, 나는 인종이 문제라고 보지 않는데"와 같은 언급속에 엉켜 있으며, 여기서 ‘나‘는 보는 일을 가로막고 있다. 순수는 하나의 특권이자 인지 장애, 즉 잘 보호된 무지의 상태이며, 일단 이것이 성인기까지 오래 이어지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굳어진다. 순수는 성적인 것만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굳이 특정해서 "표시되지 않으며"(unmarked) "자유롭게 본연의 너와 나가 될 수 있다"라는 신념에 기대 사회경제적 위계 속에 놓인 자신의 지위를 외면하는 것이다. 이런 순수가초래한 아이러니한 결과는 백인이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학자 찰스 밀스는 말한다.
따라서 아이들이 인종적 서열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집요하게 상기당하고 그 위치 때문에 심지어 범죄자가 되면 순수할 자격을 박탈당한다. 리처드 프라이어가 농담한 대로다. "나는 여덟 살때까지 아이였어요. 그 후 깜둥이가 되었지요." - P108

순수를 뒤집으면 수치심이 된다. 아담과 하와가 순수를 잃었을 때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수치심을 느꼈다". 수치심이란 원숭이의 뻘건 엉덩이처럼 훤하게 노출되었다는 것을 매섭고 따갑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낸 신경증적인 상처다.
수치심을 일으킨 공격자가 내 삶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도, 나는 계속 존재한다고 상상하고 내 그림자를 그자로 착각하여 몸을 움츠린다. 수치심은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 같아서, 집밖으로 잠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도 수용체가 자극받아 나는 반응한다. 체면을 잃는 것과는 다르다. 수치심은 내 얼굴을 깔고 앉아버린다. - P109

사람들은 흔히 수치심을 아시아적인 속성과 유교적인 명예 체계, 그리고 그와 관련된 불가해한 수치심의 의례와 연결짓지만, 내가 말하는 수치심은 그 수치심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수치심은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상호 관계에 영향을 주는 권력의 역학을 뼈아프게 인식하는것이며, 그 서열에서 내가 피해자 -또는 가해자로서 점하는위치를 깨닫고 몸이 오그라들도록 느끼는 치욕이다. 나는 개들이 목에 두르는 수치의 깔때기이다. 나는 남자 소변기에 부착하는 수치의 변기 탈취제다. 이 감정이 내 정체성을 갉아먹어 결국 몸은 껍데기만 남고 나는 하얗게 불타오르는 수치심 덩어리로화한다. - P109

수치심은 나 자신을 1인칭과 3인칭으로 분리하는 능력을 부여한다. 사르트르가 쓴 대로 "타자가 나를 보는 대로" 나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다 자란 지금에야 나는 어렸던 내가 의도치않게 저지른 불복종에서 유머를 발견한다. 양반다리를 하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이야기에 열중하는 여섯 살짜리들에게 교사가 책을 읽어주는데 얌전하고 어린 아시아 소녀가 난데없이 이야기 중간에 태연하게 일어나 교실 밖으로 나간다. 이듬해, 그 얌전하고 어린 아시아 소녀는 포르노 티셔츠를 입고 등교한다.

인종주의의 한 가지 특징은 아동을 성인처럼취급하고 성인을 아동처럼 취급한다는 점이다. 부모가 아이처럼 굴욕당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깊은 수치심을 유발한다. 우리 - P111

부모가 백인 성인에게 무시당하거나 놀림당하는 것을 수없이보았다. 그런 일이 너무 관행처럼 발생해서, 엄마가 어떤식으로든 백인 성인과 상대할 때면 나는 늘 바짝 경계하면서중간에 끼어들거나 엄마를 옆으로 잡아끌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국에서 아시아인으로 자란다는 것은 권위 있는 사람이어야할 부모의 굴욕을 목격한다는 것, 그리고 부모에게 의지하지않는 법을 배운다는 것을 뜻한다. 부모가 아이를 보호할 수 없기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아시아인으로 사는 굴욕은 잘 알려져 있지않다. 우리는 아시아인은 좋은 처지에 있다는 거짓말에 주눅이들어 있다. 근면성을 발휘하면 존엄성으로 보상받으리라 믿고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지만, 근면은 우리를 보이지 않는 존재로만들 뿐이다. 우리가 목청을 높이지 않으면 우리의 수치심은억압적인 아시아 문화와 우리가 떠나 온 나라가 초래한 것이되고 미국은 우리에게 오로지 기회를 주었을 뿐이라는 신화를 영구화하게 된다. 아시아인이 좋은 처지에 있다는 거짓말은 너무나 은근히 퍼져 있어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나도 남들에 비하면 나쁜 처지가 아니었다는 의심에 시달린다. 그러나 인종적 트라우마는 누가 앞서고 뒤지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문제는 내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이례적이 아니라 실은 오히려 전형적이었다는 데 있다. - P112

시인 바누 카필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극우파가 득세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려면 그냥 눈만 감으면 된다. 그리고 내 어린시절을 회상하면 된다." 친구들도 그 심정에 똑같이 공감했다.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어린 시절의 기억이 촉발되었다고했다. 아이들은 잔인하다.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에게 들은 인종차별적인 개소리를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직설적인 방식으로 앵무새처럼 재생한다. 트럼프 행정부 밑에서 요즘 인종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아이들 사이에서 인종주의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이 기억의 촉발은 꼭 특정한인종차별 사건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감정을 되살린다.
한 오라기의 두려움과 수치심, 동물처럼 바짝 긴장한 경계심같은 것 말이다. 순수한 상태로 향수에 젖어 회귀하는 것이든 불안과 걱정을 갑작스럽게 떠올리는 것이든 간에, 어린 시절은 하나의 정신 상태다. 어린 날의 순수가 보호받고 위안받을때의 정신 상태라면, 어린 날의 불안은 그 사람이 최소한으로만 보호받고 위안받는다고 느낄 때의 정신 상태다. - P113

가족이 과테말라에서 왔건, 아프가니스탄에서왔건, 한국에서 왔건, 1965년 이후의 이민자들이 공유하는 역사는 미국을 넘어서 각자의 출신국으로 확장된다. 그곳에서 우리의 동족들은 서구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미국이 세우거나 지원한 독재 정권에 의한 대량 살상을 겪었다. 미국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애쓰느라고 우리는 인생에서 제2의 기회를 선사받은양 황송해한다. 그러나 이민자들이 공유하는 뿌리는 이 나라가 우리에게 부여한 기회가 아니라, 백인 우월주의의 자본주의적 확장이 우리의 조국의 피를 빨아 부를 챙긴 방식이다. 우리가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백인 순수의 유아론을 뒤집어, 우리의 국민 의식이 그 이란계 미국인 소년 같은 아이들의 정신과 더 비슷한 모습이 되도록 일조할 작정이다. 그 아이의 정신은 글도 깨치기 전에 벌써 이 나라가 어떤 폭력을 가할 수있는지를 인지하는 무방비 상태의 의식이며, 역사에 시달리는 아이의 의식이 언젠가 다수를 차지할 때 새하얀 이미지들을 퇴색시킬 것이 틀림없다. - P126

나는 자신감 부족에 시달리지 않을 때면 걷잡을 수 없이 거만했다. 우리 셋 모두 그랬다. 우리는 백인 남성의 자신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자신감은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가면서 급속히 위축되었다.
그때 우리는 경력을 쌓는 모든 단계에서 매번 과소평가 당했기때문에 각자 능력을 되풀이해서 증명해야 했다. 그렇더라도 나는 다른 길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고전했기 때문에 나는 우리의 우정으로 배양된 창의적 상상력에 꾸준히 충실할 수있었으며, 그 상상력은 우리의 불만족스러운 의식의 진실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엄밀성과 깊이에 의해 다듬어졌다. 다른사람은 아무도 우리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예술가가 되라고 촉구한 유일한 사람은 바로 우리였다. - P203

1982년 11월 5일, 그러니까 그해 가을 들어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추워진 날에 31세의 미술가 겸 시인 테레사 학경 차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직물 부서에서 사직했다. 그는 하얀앙고라 스웨터에 빨간 가죽 코트를 입고 적갈색 베레모를 썼다. 가죽 장갑도 끼고 양말도 두 겹으로 신었다. 그는 다운타운 행지하철을 타고 허드슨 거리에 있는 비영리 갤러리 아티스츠스페이스(Artists Space)에 가서, 큐레이터 발레리 스미스가 준비 중인 합동 전시회용 사진 작품을 큼직한 서류 봉투에 넣어 제출했다. 차의 사진은 갖가지 손짓을 하는 손을 소재로 했으며, 고대 중국 판화에서 근대 프랑스 회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출처에서 얻은 이미지를 편집하고 재현했다. 스미스는 뉴욕주 대법원에서 증언할 때 차가 피로하고 긴장한 모습이었으며 15분동안 머물면서 전시회 홍보물에 서명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는 차가 아티스츠 스페이스에서 4시경에 떠났다고 했다. 갤러리에서 나가 북동쪽으로 걸어갔다고 했다. - P207

여기서부터 나는 16밀리 영화를 보듯 차를 상상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는 불어오는 바람에 어깨를 움츠리고서, 판자로 창문을 막은 버려진 주철 건물과 도로 복공판 위를 터덜거리며 굴러가는 구식 쉐보레 카프리스 택시들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친다. 그가 입은 가죽 코트의 붉은색이 흐릿하고 뿌연 영화 조명 속에서 바래 보인다. 나는 그가 자신의 책 「딕테』를 교정하며 여러 시간을 보낸 화이트 거리의 태넘 출판사 사무실을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런 다음 브로드웨이 거리에서 한때 배 돛에 쓰는 천을 짜는 공장이었던 하얀 주철 건물을 끼고 좌회전한다. 그로부터 25년 후 나는 남편과 그 건물에서 임대료 - P207

안정화 제도의 적용을 받는 재임대 아파트에 살게 될 것이다. 내가 심사한 경연대회에 출품된 시들을 거대한 봉지 두 개에 담아 재활용 쓰레기로 거둬 가라고 그리로 끌어다 놓을 것이며, 그 봉지들은 밤사이 활짝 열릴 것이다. 그러면 내가 사는 블록은 색종이 가루 흩날리는 축하 퍼레이드처럼 시로 뒤덮일 것이다. 시가 자동차 앞 유리와 청바지 상점 진열장에 붙고, 자전거거치대 주변에 구깃구깃 널리고, 나무 위에 천막처럼 걸리고,
우리 건물 건너편 아파트 정면에서 태극권을 연습하는 중국인 할머니들의 발치에도 흩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시가 없었다.
텅 빈 하역장에 쓰레기만 쌓여갈 뿐이었다.
차는 뉴욕에 지쳐 있어2년 전이 - P208

차는 뉴욕에 지쳐 있었다. 그는 개념미술계에 진입하려고2년 전인 1980년에 남편 리처드와 함께 뉴욕으로 이사 왔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미술계는 줄리언 슈나벨, 프란체스코클레멘테, 데이비드 살리 같은 스타 미술가들의 번쩍거리는 전성시대에 평정당해 이미 활기를 잃었다. 오빠 존에게 보낸 1982년 6월 25일 자 서한에서 차는 성공하려면 "도덕의 찌꺼기, 돈, 기생충 같은 실존 상태"를 감수해야 하는데 "솔직히 구역질이난다"라고 적고 있다.
그날 밤 차는 절친한 친구 수전 울프, 샌디 플리터먼 -루이스와 만나 퍼블릭 극장에서 영화감독 듀오 장마리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의 영화 한 편을 감상할 계획이었다. 뉴욕이 불만스럽기는 해도 경력 면에서 슬슬 진전을 보이고있었다. 그는 12월에 열릴 합동 전시회에 참여할 예정이었고, 지난 몇 년 작업한 책 『딕테』도 막 출간된 참이었다. 존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 P208

느끼는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자유롭다고 느끼고, 또 벌거벗은 느낌도 들어. 원고는 작업할 시간이 없을 때조차 내 몸에서 물리적으로 떠난 적이 없어. 어디든 원고를 휴대했고 그야말로 잘 때도 끼고 잤는데, 이제 완성됐어... 근무 시간과 휴식 시간 사이에, 자는 동안에, 리처드와 말다툼하는 사이사이에, 이 직업, 실업, 가난이 초래한 그 모든 미친 절망감속에서도 일을 조금씩 차곡차곡 진행해서 뭔가 작업이 완성된 것을 보면 나는 언제나 깜짝 놀라."
그날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가기 전에 라파예트 거리의 퍽(Puck) 빌딩에서 5시에 남편과 만나야 했다. 남편은 그 건물의 리모델링 작업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일을 했다. 퍽 빌딩은 붉은벽돌로 지은 거대한 기념비적 건축물로 소호 지역의 한 블록을 통째로 차지한다. 9층 높이로 솟은 그 건물은 아치형 창문과 밝은청록색 창틀을 갖추었다. 건물 정면 출입구 위에는 장난꾸러기 아기 요정 퍽이 실크해트를 쓰고 열린 프록코트 사이로 통통한배를 드러낸 모습을 형상화한 금빛 소형 동상이 올려져 있다.
- P209

퍽이 만년필을 지팡이처럼 짚고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유유히 응시한다. 일몰 직후에 차가 멀베리 거리 쪽으로 난 퍽 빌딩 뒷문으로 들어가는데 경비원 조지프 산자가 보였다.

내가 최초로 차의 『딕테」를 접한 것은 1996년 오벌린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시 과목을 수강했다. 객원교수로 온 시인 명미 킴이 가르치는 과목으로,
나는 그의 지성을 존경했고 그의 시를 흉내 내려고 노력했다. - P209

킴이 「딕테」를 읽기 과제로 냈는데 나는 딕테』의 내용보다도 그 형식에 더 호기심이 일었다. 분류는 자서전으로 되어 있으나「딕테」는 회고록, 시, 에세이, 도표, 사진을 혼합한 브리콜라주에 더 가까웠다.
지금은 사라진 태넘 출판사에서 1982년에 출간된 『딕테」는 어머니들과 순국자들, 혁명가들과 항쟁들에 관한 책이다. 그리스신화의 아홉 뮤즈의 이름을 따서 아홉 개의 장으로 나뉜 『딕테」는 저자의 어머니가 겪은 이야기,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대일 항쟁을 주도하다 체포되어 일본군에게 고문받고 옥사한 17세의 순국열사 유관순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사의 잔혹상을 기록한다. 또 다른 장에서는 잔 다르크를 호출하되 프랑스 수녀 성 테레즈드리지외 등 다른 여성들에 의해 재현된 인물로서 그려낸다. - P210

차는 전통적인 서사를 피하고 그 대신 내가 볼 때 일종의구조주의 영화 대본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구조를 취한다. 장면은 무대 연출처럼 묘사된다. 시는 영화 중간에 들어가는독백처럼 배치된다. 환히 빛나는 하얀 화면처럼 보이도록 영화스틸컷 사이사이에 텅 빈 백지가 삽입된다. 차는 딕테」를 어떻게 풀이해야 할지 전혀 안내하지 않는다. 프랑스어를 번역하거나 이승만 대통령이 프랭클린 D. 루스벨트에게 보낸 편지의 맥락을 짚어주거나 칼 드레이어 감독의 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에 나오는 프랑스 배우 르네 잔 팔코네티의 사진에 설명 붙이기를거부한다. 독자는 나름대로 단서를 연결해 퍼즐을 풀어가는 탐정이 된다.
당시 나는 이래저래 접한 일부 아시아계 미국인 소설과 시에 공감하지 못했다. 더 나은 표현을 찾지 못해 하는 말이지만 - P210

작품이 마치 백인 배우에 의해 연기된 듯 진정성이 느껴지지않았다. 혹시 영어가 문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한테는그게 확실히 문젯거리였다. 영어는 단조여야 할 체험을 장조로 바꾸어놓았다. 영어로 써놓으면 한국어에 서린 친밀감과 우수가 사라졌다. 영어는 내가 어릴 때부터 세관 직원, 위협적인 교사,
홀마크 카드와 연관 짓던 언어였다. 영어를 배운 지 그렇게 여러 해가 흘렀어도 영어로 글을 쓰려면 아직도 빈칸 채우기를하거나 남의 원문을 재인용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러나 영어는 자신의 언어가 아니고, 자신의 의식을 결코 진정으로 반영할 수 없고, 하나의 표현 형식인 만큼이나 자신의 의식에 지워진 부담이라는 것을 내비쳤다는 점에서 차가 구사한 언어는 나의 언어였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딕테』가 진실하게 다가왔다. - P211

차가 뉴욕에서 경비원에게 강간 살해당했다는 것을 킴의 수업에서 처음 들었다. 킴이 그 이야기를 어떤방식으로 전달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때 들은 사실관계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후 여러 해 동안 『딕테」를 다시 읽어보거나, 교재로 삼아 가르치거나, 강연회에서 소개하면서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차의 죽음은 내가 ‘딕테」를 읽고 이해하는데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책에 신들린 듯한 예언자적 아우라를 부여했다. 어쨌거나 『딕테』는 폭력적인 죽음을 맞은 젊은 여성들에 관한 책이 아니던가. 내가 강의나 강연에서는 그런 - P211

식의 해석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몇 년 전 차에 관해 논평하는 글을 쓰면서 나는 차가 강간살해당한 날짜를 확인하기로 했다. 차에 관한 문헌을 뒤지다가 그 범죄를 다룬 문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어쩌다 살해가 언급되는 경우에도 학자들은 간단히 한 문장 정도를 할애해 그것을 불쾌한 사실로 취급하고 넘어갔으며 서둘러「딕테」의 서사적 "불확정성"을 논하기에 바빴다. 더 황당한 것은 차가 강간도 당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무나 집요하게 그 사실이 누락되어, 나는 차가 정말로 성폭행도 당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재판기록까지 들춰봐야했다. 그 사실을 몰랐나? 조심스러워서 그랬나? 살인은 범죄통계쯤으로 둔감하게 인식되지만, 그게 강간이라는 단어와 합쳐지면 여성의 육체를 정면으로 마주해야만 한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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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테˝를 읽기 전에 ˝마이너 필링스˝를 다시 읽기로한다.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다. 내용을 다 잊어서인가, 새롭게 읽히는 시야탓인가. 모르겠다... 끝까지 읽어보면 알게될까?

「마이너 필링스」는 나 자신의 인종 정체성을 내 나름대로솔직하게 성찰하고 따져본 결과물이다. 이 책은 개인적인 수필집이다. 이렇게 미국에서 보이지 않는 몸 안에 살면서 느끼는 나 자신의 상반된 감정을 가능하면 투명하게 풀어놓고자한다. 또한 이 책은 한국전쟁 후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 겪는 세대 간 트라우마에 대해서도 다룬다. 우리 부모님은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 무관심했으며 오로지 앞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고 무엇이 우리에게 상처나심지어 굴욕을 주었는지 밝혀내지 않으면 진전이 있을 수 없다.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들이 겪는 정신 질환 문제를 숨기지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인들은 정신 건강 문제를 수치로여겨서 그것이 개인적, 사회적 치유에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 P14

마지막으로 이 책은 창의력과 예술 창작에 관해서 다룬다. 나는시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항상 지지해주신 부모님을 고맙게생각한다. 부모님은 내가 가려는 길을 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아시아계 미국인 작가로 성공해보려고 힘겹게 고투하는 내내 무척이나 필요했던 격려를 보내주셨다.
나는 남들에게 좀 더 이해받고 눈에 덜 안 보이는 존재가되고자 이 책을 썼다. 한국 독자들이 마이너 필링스』를 읽으면서 아시아인을 예속시켜온 백인 우월주의의 복잡하고도 견고한 근원을 더 잘 파악하게 됐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 책 속에서 독자들이 자신의 일부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21년 7월
캐시 박홍 - P15

한 공간에 아시아인이 너무 많으면 짜증이난다. 이 아시아인들을 다 누가 들여보낸 거야? 속으로 투덜거린다. 다른 아시아인들과 함께 있으면 결속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 경계선이 흐려지고 한 무리로 뭉뚱그려져서 더 열등해지는기분이 든다.
자기를 혐오하는 아시아인은 내 세대를 끝으로 사라질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런 생각도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가르친 세라 로런스 칼리지의 학생들은 맹렬하여 -자율적이고 정치적 참여도 열심히 하고 똑똑했다- 참 다행이다, 이 학생들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아시아인 2.0이다. 고함을 내지를 준비가 된 아시아 여성들이다, 라고 생각했다.
또 그러다가도 다른 대학교 강의실에 가보면 머리만 예쁘게 매만지고 아무 말 없이 생쥐처럼 얌전히 앉은 아시아 여학생들을 만나는데, 그럴 때는 닦달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너 입 좀 열어라! 안 그러면 저들에게 완전히 짓밟힌다고! - P27

1917년 미국 정부는 이민 금지를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 적용했으며, 필리핀은 한때 미국의 식민지였는데도 필리핀 사람들의 이민마저 제한했다.
기본적으로 그런 이민 금지 조치는 전 세계적 규모의 인종 분리정책이었다. 1965년에 미국이 "하급 인종"을 다시 받아들이게된 것은 소련과 이념 경쟁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미국은 홍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가난한 비서구권 국가에서 일렁이는공산주의의 물결을 막아내려면 인종차별적인 짐 크로법의 이미지를 지우고 재부팅해 미국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증명해야했다. 해결책은 비백인의 미국 유입을 허락해 직접 실상을 보도록 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모범 소수자 신화가 대중화되어 공산주의자들 - 그리고 흑인- 을 견제하는 작업에이용되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성공 신화를 퍼뜨려 자본주의를 선전하고 흑인 민권 운동을 깎아내렸다. 우리 아시아인은 뭘 요구하지도 않고, 근면하고, 절대로 정부에 손을 내밀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고분고분하게 일만 열심히 하면 차별은없다며, 저들은 우리를 안심시켰다. - P42

미국의 인종 구분에서 이 부분이 바로 우스운지점이다. 일본이 한때 한국과 중국의 일부를 식민지로 삼았고2차 세계대전에서 필리핀을 침략했어도 상관없다. 인도와파키스탄이 카슈미르 지방을 둘러싸고 오랜 세월 유혈 영토분쟁을 일으켰든, 라오스가 베트남전쟁 후 몽족을 체계적으로학살했든, 알 바 아니다. 너의 민족이 다른 아시아 민족과 어떤권력 다툼을 벌였든 -그 분쟁의 대부분은 서구 제국주의 및냉전의 영향으로 발생했다-  차이에 무지한 미국인들에 의해 납작하게 찌그러졌다.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당선된 직후 아시아인을 겨냥한 증오 범죄가 급증했는데, 대개는 그리고 특별히 무슬림이나 무슬림 같아 보이는 아시아인이 표적이 되었다. 2017년 어느 백인 우월주의자가 인도인 힌두교도 기술자두 명을 이란 테러리스트로 착각해서 사살했다. 그다음 달에는 어느 인도인 시크교도가 시애틀 교외의 자택 차고 진입로 밖에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소리와 함께 총격을 당했다. - P43

작가 제프 창은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싶다"라고 적으면서,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지 몰라서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도 그 불확실함에 동의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인가? 아시아계 미국인 의식이라는 관념은 도대체 존재하는가? 그것은 W. E. B. 뒤부아가 한 세기도 더 전에 확립한 이중의식 같은 걸까?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딱지에 칠해진 페인트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이 용어는 거추장스럽고, 버겁고, 나의 존재 위로 어색하게 올라앉아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 운동가들이 블랙팬서와 손잡고 저항운동을 벌였던 1960년대 말 이후로 우리만의 대중운동이라고 일컬을만한 것이 없었다. 쓰기가 조심스러운 "우리"라는 대명사는앞으로 하나의 공통된 집합체로 결속될 것인가? 아니면 갈라진 상태로 우리 중 일부는 여전히 "외국인"이나 "갈색인"(brown:인종 범주라기보다는 피부가 갈색인 중남미, 중동, 남아시아,
동남아시아계 사람들을 아우르는 용어로 최근 영미권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옮긴이)으로 남고, 다른 일부는 부를 늘리거나 인종 간 결혼으로 백인 세상에 "입장할" 것인가? - P50

나는 "다음은 아시아인이 백인이 될 차례"라는 소리를 들으면 "백인이 될"을 "사라질"로 교체한다. 다음은ㅈ아시아인이 사라질 차례다. 우리는 성취가 대단하고 법을 잘지킨다는 평판을 듣다가 기억상실의 안개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권력자가 되지 못하고 그저 권력에 흡수될 것이고,
백인의 권력을 나눠 갖지 못하고 우리의 조상을 착취한 백인 이데올로기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다. 우리의 인종 정체성은 쟁점에서 벗어나며, 괴롭힘을 당하거나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매번 발언을 방해받는 것도 인종 정체성과는 무관한 거라고 - P57

이 나라는 우긴다. 우리 인종은 심지어 이 나라와도 무관하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론조사에서 흔히 "기타"로 분류되고 신고된 강간, 직장 내 차별, 가정폭력 사건의 인종별 집계에서도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사회적 신호를 박탈당해 나의 행동을 타인과의 관계에 비추어 가늠할 수단이 없으니 유령 취급을 당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행동하면 좋았을지, 무슨 말을하면 좋았을지 내 생각을 샅샅이 점검한다. 내가 보는 것, 내가 듣는 것을 신뢰하지 못한다. 자아는 자유 낙하하는데 초자아는 무한대로 커져서, 나라는 존재는 부족하다고, 결코 충분치 못하다고 다그친다. 그러므로 더 잘하고, 더 잘되려고 강박적으로 노력하며, 자기 이익이라는 이 나라의 복음성가를 맹목적으로 따라 부르고, 내 순가치를 늘려 내 개인적 가치를 입증해 보이는 짓을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한다. - P58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저서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농담을 경향성 없는 농담과 경향성 있는 농담의 두 범주로 분류한다. 경향성이 없는 농담은 아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들려주듯 무해하고 무독하다. 경향성을 갖는 농담은 공격적이거나 저속하거나 아니면 둘 다여서 우리의 의식 속에서 억눌린 부분을 캐낸다. 1940년대 미국 흑인 연예인들은 무대뒤에서 터무니없이 과장된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런 농담을 가리켜 ‘거짓말‘이라고 불렀다. 그 ‘거짓말‘은 경향성을 지녔으며, 고지식한 백인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길모퉁이, 당구장, 이발소에서 구전되었다. 프라이어는 이야기를 왜곡하고, 시끄럽게 불평하고, 큰소리치고, 볼링핀이든 오르가슴에 이른촌놈이든 닥치는 대로 흉내 내며 -거짓말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프라이어가 들려주는 거짓말은 내가 당시 읽고 있던 대부분의 시와 소설보다 인종에 관해서 솔직했다. - P62

우리 시인들은 청중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시인들도 위상에 집착할 수 있고 내가 알기로 남의 인정을 무척이나 받고 싶어 한다. 환심을 살 청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시인들이 왜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지 외부인들은 어리둥절할 수 있다. 사실 시인의 청중은 제도다. 우리는 학계, 심사위원단, 펠로십 제도라는 고등한 관할권에 의존하여 사회적 자본을 획득한다. 수상 제도를 거치는 것은 시인이 주류적 성공에 이르는 소중한 길이며, 수상 결과는심사위원단이 공들여 이뤄낸 타협에 의해 결정된다. 이 타협은 미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수상작에 아무 위험성이 없음을보장한다.
프라이어를 보며 나는 내가 아직도 그 제도를 상대로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리기 어려운 습관이었다. 나는 백인의 환심을 사도록 양육되고 교육받았으며, 환심을 사려는 이 욕망이 내 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위해 글을 쓰겠다고 선언하더라도, 그것은 백인의 환심을 사고싶어 하는 나 자신의 일부를 위해 글을 쓴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을 피할 방법을 알 수 없었다.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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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뉘며, 대다수는 그중 첫 번째 범주에 속한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자신이 현재의 상태에서 성공을 향해 더 나아갈 수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하리라는 것을깨닫는 사람들. 그러고 나면 자신의 삶에 주어진 운명을 합리화하고그 자리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는 시점은 놀랍도록 일러서, 대체로 스무 살이 되기 전에도달한다. 교육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 또한 서른에서 마흔 살 사이에는 같은 결론에 이른다. 일부 사람들은 출생 환경이나 그 자신의야망, 그리고 재능에 힘입어 대략 쉰 전후에 비슷한 깨달음을 얻는데, 그 정도 나이에 이르면 이러한 소강도 그렇게 끔찍해 보이지 않는 법이다. - P387

두 번째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 자아의 상승과 확장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말이다. 김성수는 이미 태어난 순간부터 도내 네 개 군에 걸쳐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비옥한 논밭을 상속받을 부잣집 장손 신분을 타고났을 뿐 아니라, 어느 장관의 외동딸을 아내로 맞으면서 바로 이 범주에 속한 남자가 되었다. 아들이 없었던 성수의 장인은 당시 관례대로 남자 친척을 양자로 삼는 대신 자신의 딸에게 모든 재산을 다물려주었다. 게다가 바로 그 이듬해, 역시 외아들이었던 성수의 사촌 형제가 예쁘고 젊은 정부와 관계를 갖던 중 의문의 복상사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삼촌이 아직 살아 있긴 했지만 성수는 그의 재산까지 물려받을 후계자가 되었고, 이렇게 한 가족 안에서 두 갈래로뻗어나갔던 부는 성수에게로 우아하게 다시 돌아와 결합하였다. - P388

성수는 자신의 비범한 행운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천박하거나 무지하지 않았다. 가끔 그는 인생이 불공평할 정도로 자신에게 관대하다고 느끼곤 했다. 쉰한 살, 중년의 활력이 정점에 이른 그는 여전히사무실에 출입하며 정기적으로 책을 출간했다. 많은 또래 동료들처럼 방황하거나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지도 않았다. 경기가 침체하고가산이 줄어들면서 성수의 지인 중 상당수는 적절한 직업을 찾지 못한 채 소속도 목적도 없이 떠돌아다녔고, 일부는 삶의 의지조차 잃은 채였다. 그의 친구였던 극작가가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한것도 벌써 3년 전이었다. 성수는 잠시 슬픔에 잠기긴 했지만, 사실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연민을 느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불행은, 결국 그 모든 것을 용케 피한 - P388

자신이 매우 뛰어난 인물이라는 성수의 믿음을 더욱 단단히 만들 뿐이었다. 경성 시내의 모든 이가 성수를 알아보고 그를 존경했다. 지하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들만큼은 예외였지만, 어차피 그들은곧 정부의 단속에 무릎을 꿇을 처지였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성수의 마음을 불안케 했다. 천문학적으로 보이는 그의 재산이 꽤 빠른 속도로 고갈되어 가는 듯 보인다는 점이었다. 성수 자신도 늘 돈 쓰는 재미를 알았고, 고급 식당이나 옷, 여자에 들이는 비용을 줄일 계획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외동아들이자신을 본받아 가산을 탕진하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을 쓰게 될지는 도무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들놈은 성수가 했던 그 모든 방탕한 짓거리를 훨씬 더 큰 규모로 벌였을 뿐 아니라, 도박과 아편이라는 새로운 폐해까지 더했다. 성수는 이미 부유한 마을 두어 곳과 그에 딸린 농지 가격에 맞먹을 만큼 막대한 아들의 빚을 갚아준 터였다. 이제 그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 P389

군중이 일순간에 조용해졌고 모든 시선은 갑자기 주변보다 더 밝아진 성당 중앙의 입구로 향했다.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상태였음에도 신부의 모습은 너무나 사랑스러워, 촛불만 켜진 어두운 신도석사이를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 자신이 지닌 빛을 환하게 내쏘는 듯했다. 모든 하객이 일순 가슴을 아리게 하는 아픔을 느꼈고, 몇몇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기도 했다. 한 여자의 아름다움이 그처럼 마음을 순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 누가 알았을까.
"환하게 뜬 달을 보는 것 같아…... 월향 언니 이름처럼 말이야."
옥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그 순간 신부를 바라보지 않는 이는 딱 한 사람, 오직 정호뿐이었다. 그는 자신과 바싹 붙어 앉은 옥희의 이마가 그리는 곡선을 그리고 그의 검은 눈, 슬픔과 기쁨이 똑같은 깊이로 차올라 반짝이는 저두 개의 우물을 자신의 영원한 기억에 새겨 넣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는 옥희의 스웨터에 감싸인 채 나란히 솟은 한 쌍의 가느다란 어깨뼈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보니 저 옷 안에 감춰진 맨살까지 그려지는 듯했다. 만일 장의자 등받이를 따라 팔을 뻗어 옥희의 아름다운 등을 감싸 안는다면, 그의 심장은 이 자리에서 바로 멈추고 말리라. - P407

모두가 꿈을 꾸지만, 그중 몽상가는 일부에 불과하다. 몽상가가 아넌 다수의 사람들은 그냥 보이는 대로 세상을 본다. 소수의 몽상가들은 그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달, 강, 기차역, 빗소리, 따스한죽 한 그릇처럼 평범하고 소박한 것들도, 몽상가들은 여러 겹의의미를 지닌 신비로운 무엇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세상은 사진이라기보단 유화여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바깥쪽에 있는 색깔만을 바라볼 때 이들은 영원히 그 아래 감춰진 색깔을 바라본다.
몽상가가 아닌 사람이 유리를 통해 보는 풍경을, 몽상가들은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는 셈이다.
이는 결코 지능이나 열정의 차이로 결정되는 자질이 아니다. 이두 가지는 몽상가의 타고난 자질과 가장 자주 혼동되는 것들이다. - P415

옥희가 아는 가장 지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인 단이의 경우, 그의 시야는 그의 태도와 원칙만큼이나 또렷하고 날카로웠다. 이는 가능한 한 최대한의 우아함과 침착성을 발휘하여 세상의 불순을 바로잡는 것에만 집중할 뿐, 그 아래 묻혀 있을지도 모를 차마 형언할 수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것들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옥희는 달랐다. 무용과 연기를 그만두자마자 자신의 삶에서 모든 색채가 빠져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이제 몽상가가 아닌 사람들의 세상에 있었고, 그곳은 낯설고 매 순간 숨이 막히는 장소였다. 인생에서 이처럼 외로워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단이는 옥희가 어서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면 그만이라고 믿는 듯했다.
"불경기 때문이야." 어느 날 아침 단이가 돋보기안경을 끼고 신문을 훑어보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영화관에 다니면서 쓸만한 돈이 없는 거지. 요즘 폐업하는 식당들도 많다면서. 네 탓으로 돌릴 것 없어." - P416

체포라는 충격적인 경험과 실연의 상처에도불구하고, 단이는 패배라는 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에게 실패란 마치 올이 나간 스타킹과 같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일이지만, 그걸 남들에게 눈치채이는 건 당사자의 잘못이라는 식이었다. 실패를 감추고 처음부터 없었던 일인 양 폐기하려는 노력은 단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인 동시에 예의의 문제였다. 이는 일종의 멋지고 귀족적인 감성이었으나, 단이의 역할을 다정하고친밀한 친구보다는 존경하고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한정 짓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껏 옥희는 자신의 제작사가 이미 파산했다는이야기도, 또 정확히 서른 살이 된 지금 자신의 저축액이 점점 축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차마 그에게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서른 살. 그가 지닌 여성으로서의 가치가 논리적으로 소멸되기 시작하는 기준점이자, 따라서 계산대로라면 그동안 저금해 온 돈과 착실한 후원자를 통해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며 경제적으로 자립해 있어야할 나이였다. - P417

다음이 없다는 걸 알면서 듣는 "다음에 또 봐요"라는 그 말이 얼마나 더 애틋한가? 종말에 가까워질수록 얼마나 더 자비와 용서의 마음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는가? 경성에 있을 때,
그의 분노는 천천히 타오르기 시작해 좀처럼 꺼질 줄 모르는 잉걸불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제 그 불씨는 모두 물에 씻겨 내려간 듯 깨끗이 사라져 버렸고, 남아 있는 것은 자유로움뿐이었다.
정호는 부두 옆에 늘어선 자동차들을 지나쳐 선창을 따라 걸으며 숙련된 하늘의 선원처럼 날갯짓하며 떠다니는 갈매기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매일 이곳을 찾아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하늘의 빛깔, 새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태평양의 파도 위에 부서지는 태양도, 하루하루 조금씩 달랐다. 세상이 매일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은 뼈저리는 아름다움을 그에게 안겨주었고, 다만 그는 그것을 조금만 더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 P485

"아무도 믿지 말고, 불필요하게 고통받지도 마. 사람들이 하는 말뒤에 숨겨진 진실을 깨닫고, 언제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그게 널 위한 내 조언이야."
"왜 내가 살아남아야 하지?" 옥희가 물었다. "그래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은데, 세상은 무너져 내리면서 매일같이 더 사악하고 어두운 곳이 되어가고, 나한테는 아무도 없는데 말이야." 옥희는가로등도, 음악도, 달빛도 없는 창밖의 후텁지근한 풍경을 눈짓으로 가리켜 보였다. 땅에 떨어져 말라 죽은 잎들이 바스락대는 소리만이따금씩 들려올 뿐 거리는 온통 무거운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넌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군." 이토가 대답했다. 그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서로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알기에 아무런 설득도, 아니 설득의 가망성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 P512

옥희는그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창살 안에 갇힌 호랑이를 독살하는 걸 즐기지 않듯이. 이는 원칙이라기보다 취향의 문제였다. 옥희는 당황해서 붉어진 얼굴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차에서 내렸다.
다음 날 옥희는 이토의 운전기사가 전해준 소포 꾸러미를 하나받았다. 상자 안의 흰 봉투 속에는 빳빳하고 깨끗한 새 지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천 원이라는 거액이었다. 그 옆에는 옥희의 손너비보다 살짝 클까 싶은 자그마한 청자 화병도 하나 있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채 춤추는 백학들이 섬세하게 상감된 그 화병의 바탕을 이루는 빛깔은 더없이 아름다운 옥색이었다. - P515

8월 6일, 인간의 힘으로 지구 표면에도 태양의 불을 붙일 수 있다는 발전을 통해 전 세계는 중대한 변화를 겪을 것이었다. 하지만 7월의 야마다겐조는 아직 이 사실을 몰랐다. 그는 피할 수 없는 최후의 상황과 마주하기 위해 만주로 돌아와 있었다. 부대의 병사들은 역대 가장 열악한 환경에 처해, 군복이며 군화며 모두 형편없는 수준이었고 매 끼니를 때울 만한 식량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배급받은 무기라곤 딱 하루의 교전이 가능한 정도의 탄약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여름날의 잔디밭에 잠시 머물러 있을 때면 병사들은 여전히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담배로 물물교환을 하고, 옷을 벗어 세탁하고, 차가운 호수에 뛰어들어 아이들처럼 첨벙대며 웃고 떠들었다. 적어도 이 평화로운 북방 숲속의 군인들은, 야마다가 - P516

과거 숱한 기동작전을 지휘하며 목격한 바 있는 그런 종류의 타락으로 이끌리지 않는 듯했다. 이 병사들이 딱히 다른 부대에 비해 선천적으로 순수한 성품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또 야마다가 과거에 이끌었던 병사들 역시 그런 광포한 야수성을 타고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 병사들도 만약 이곳에 있었더라면 지금 이 숲의 나무둥치 위에 각자 사랑하는 애인의 이름을 새겼을 것이며, 현재 이 천진난만한 병사들도 과거와 같은 상황 속에 있었더라면 자신에게 강간당하고 있는 여자의 목을 베는 끔찍한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난징에서야마디는 중위 하나가 바로 그런 짓을 하고, 그 뒤에도 여전히 체온이 남아 있는 시체를 계속해서 강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일을 끝내자 그는 돌아서서 약간 쑥스러운 어조로 야마다에게 이렇게말했다. "그냥 하는 것보다 더 좋거든요." 야마다는 중위를 그 자리에서 죽여버릴까 고려했으나, 그것은 반역죄가 되는 행위였다. 제국의 적들을 강간하고 살해하는 일은 전쟁의 자연스러운 일부였다. 명랑하고 쾌활한 지금의 부대원들을 둘러보며, 야마다는 이 전쟁의 끝이 임박했다는 걸 과연 그들이 모르고 있는 건지, 혹은 알아도 별로개의치 않는 건지 궁금해했다. - P517

그 태연자약한 풍경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은 것은 엄청난 사건, 그러니까 단 하나의 폭탄으로 한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죽은 일이었다. 오후가 되어서야 히로시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무전으로 메시지를 받았으나, 야마다는 여전히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이 연보랏빛 꽃들, 호수에서 나른하게 헤엄치는 거북이들, 상쾌한 이 여름 사이에최대한 많이 자라기 위해 힘을 쏟아 가지를 뻗는 나무들이 있는 세상에서 동시에 눈을 멀게 하는 무시무시한 백색광선, 검게 그을려 녹아내리는 살, 얼굴 전체가 날아간 사람들이 남은 잿더미 도시가 있을 수 있는가? 이들이 어떻게 양립할 수 있단 말인가? 세상은이제 완전히 무의미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마치 그게 말이 되는 것처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가장 큰 중죄였다. 그런데도 사령관 회의에서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듯 임박한 소련의 공격에 계속 대비하고 있으라는 결정이 내려졌다. - P518

아주 오래전, 여기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어느 산속에서 바로 이렇게 눈 위에 누워 있는 남자를 발견하지 않았던가. 시체나 다름없이 보이던 그 남자. 낡고 해져 너덜너덜한 옷을 걸치고 있던, 믿을 수 없이 수척하고 앙상한 몰골의 그 사람. 당시의 야마다는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이 바뀌리라는 걸짐작조차 못했지만, 그 이후 일어났던 모든 일을 조화롭게 맞물리게 하는 어떤 절대적인 필연성이 수정처럼 또렷한 의식의 물결 속에서 그를 압도했다. 논리적으로든 비논리적으로든 발생했던 불가역적인 사건들, 그 모든 일이 그를 정확한 최종 목적지인 이곳에 안착시켜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왜‘라는 물음조차, 이제 새하얀 저 하늘에서 깨끗하게 녹아 사라지는 듯했다.
"이제 알겠군." 그는 중얼거렸다. 아니, 어쩌면 속으로 생각하기만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의 언어가 목구멍을 떠나 음성이 되었는지, 혹은 그의 머릿속을 떠다니는 의식의 단편으로만 남았는지도 더는분명하지 않았다. 그가 실제로 소리를 냈다 한들, 그걸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야마다는 마침내 평온을 찾았다. - P527

열여섯 살쯤 되었을 때였던가, 책 한 권에 푹 빠져 읽느라 지새우던 밤, 바로 이 시간에 자신이 한낮의 정오보다 더 생생하게 깨어 있으며 살아 있음을 실감했던 것이 기억났다. 어린 명보는 자신의 앞에 인생 전체가 펼쳐져 있음을 확신했고, 새벽 4시의 신선하면서도 그을린 듯한 냄새는 형언할 수 없는 행복감으로 그를 가득 채웠다. 이제 그는 백발이 성성하고 불편한 다리를 절뚝이며 걷는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 모든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노년이란, 인생의 모든 행복이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 아닌 이미 지나간 날들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그는 어쨌든 자신의 역할을 다했으며, 자신보다 더 위대한 무언가를 위해 살았다.
명보가 3층 감방에 갇힐 즈음 새로운 공화국의 태양이 떠올랐다. 창문이 그리 높지 않았기에 그는 귤색 빛을 받아 반짝이는 기와지붕들과 헐벗은 가지의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하늘을 활공하며 지저귀는 새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침의 영원한 이 고요가 그에게 참을수 없는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시간의 흔적이 깊게 쓸고간 명보의 두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삶을 위해 지불하기에 죽음은 아주 작은 대가였다. - P552

은은하고 희미하게 빛나는 완벽한 구체. 내 손바닥 위에 놓인 그것은, 새벽달처럼 옅은 분홍색과 회색으로빛나는 진주 한 알이었다.
한참이나 그걸 바라보던 나는, 정호가 아직도 나를 돌봐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저세상에 가서도 말이다. 그리고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있을 거라는 것도 삶을 계속 놓아주고 또 붙잡고 버티면서, 오직 바다에서 온 나의 일부만이 남을 때까지.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때문에.
나는 진주를 옷 가방에 넣고 물가로 걸어 나왔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시원한 청색 파도 사이를 둥실둥실 부유했다. 살아가면서 처음으로, 그 어떤 것에 대한 소망도 동경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마침내 바다와 하나였다. - P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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