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의 성폭행 피해와 관련해 신뢰할 만한 통계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아시아 태평양 성폭력 연구소는 아시아 여성의 21~55퍼센트가 신체적, 성적 폭력을 경험한다고 밝혔는데, 이것은 다소 폭넓은 수치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모든 인종 가운데 아시아계 미국 여성의 성폭력 신고율이 제일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조사는 "표본 크기가 너무 작다"라는 이유로 아시아 여성을 아예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나는 이 조사 결과들을 도저히 신뢰할 수가 없었다. 내가 남자를 사귈 때 엄마는 이렇게 묻곤 했다. "너 무슨 못된 짓 하는 거 아니지?" 그것이 섹스에 대한 엄마의, 말하자면 완곡어법이었고, 그 외에는 절대로 언급되는 법이 없었다. 나는 실종되거나 실성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 P212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엄마는 아무 일도 아니라며 조용히 하라고 했다. 아시아 문화에서 여자들이 이유 없이 사라지거나 실성하는 이야기는 무성하다. 노출되는 부분은 기껏해야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것뿐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신경을 자극하는 고통은 일단 그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면 신체로부터 분리된다고 본다. 고통을 명명하면, 일어났던 일에서 아픔이 떨어지고, 한계가 그어지고, 그 일을 감당하고 심지어 소멸까지 가능해진다. 그러나 나는 마치 말이 치유법이 아니라 남을 오염하는 독인 양, 자칫 고통을 언급했다가는 정신적 외상을 또 한 번 입을 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입히게 되는 문화에서 자랐다. 이런 비밀과 수치의 문화에서 성폭행을 고발할 만큼 대담한 아시아 여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 P213
현실 부정은 항상 상처에 바르는 연고가 되어주지만, 그건 국소적 요법에 불과하다. 겪은 일이 꿈에 나오거나 다른 더 치명적이고 만성적인 형태로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 학자인 친구에게 왜 아무도 차의 죽음에 관해 쓰지 않는지 의견을 물었다. "아마 차의 가족에게 또다시 트라우마를 주고 싶지 않아서일 거야"라고 그가 말했다. 그말을 듣자, 나를 포함한 차의 비평가들이 차의 이야기의 일부로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은 여성 시인 중에서도 거인에 해당하는 실비아 플라스를 생각한다. 플라스에 관한 각종 평전 출간이 그동안 일종의 소규모 산업을 이루며 떠올랐다. 평범한 독자에서 가장 헌신적인 학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탐정이 되어 뒷소문을 교환하고, 그의 삶에서 간과된 부분을 - P213
찾아내려고 서한과 일기를 샅샅이 뒤졌다. 실비아 플라스 재단과 학자들 사이의 법적 분쟁이 길게 이어졌다. 지인들은 나름대로 회고록을 써서 혹독한 관점을 제공했다. 그러나 플라스와는 달리 차의 개인사는 대부분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았다. 학자들이 역사적 참극에 의해 침묵당한 한국 여성들의 삶을 차가 어떻게 재발견했는지에 대해서는 열심히 논하면서 차의 생명을 앗아간 참극에 대해서는 끈질기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이해되지않는다. 일레인 킴, 노마 알라콘이 엮은 평론집 『자기 쓰기,민족 쓰기』와 앤 안린 쳉, 티머시 유 같은 학자들의 논문 등「딕테」와 관련해 중요한 학술 연구가 존재한다. 그러나 딕테』는 해당 학자가 몸담은 학술 분야를 장황하게 인증하는 도구로써 이용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나는 차에 관해서 읽으면 읽을수록그를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를 모르면 모를수록, 차도 결국 아무 설명 없이 사라진 또 한 명의 여성으로 보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 P214
차가 사망한 뒤 「딕테」는 금방 절판되었다. 그랬다가 침묵의 10년이 흐른 후, 형식상 접근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유로 애초에 「딕테」에 무관심했던 전위 영화 비평가및 아시아계 미국인 학계가 순서대로 서서히 주목하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출판사에서 재출간된 『딕테』는 이제 아시아계 미국 문학에서 중대한 작품으로 간주되어 여러 대학에서 널리 교재로 쓰이며, 그의 비디오 아트, 조형 작품, 사진 등은 전부 버클리 미술관 및 태평양 영화 보관소에 보존되어 전 세계 주요미술관에서 전시된다. 나는 「딕테」를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접근하라고 일러준다. 그 언어가 말하는 사람을 직접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입속에 치아를 본뜨는 퍼티를 넣어 모음을 찍어내는 것처럼 생각하라고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차가 마치 아직도 가톨릭 여고에서 서투른 영어로 이야기를 구술하는 학생인 것처럼 글을 쓰기 때문이다. - P219
차가 마침표를 사용하는 방식은 너무나 공격적이어서 그의목소리를 기계적이고 단단한 드릴 소리로 완전히 바꿔놓는다. 점묘화를 그릴 듯한 이 마침표들은 사실상 우리가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 예컨대, 차가 운전자라면, 그가 브레이크를 밟고, 또 밟아서, 글이 앞으로 찔끔 나가다가 멈추고, 찔끔 나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나는 그의 문체가 꼭 즐겁지는 않더라도 해방감을 준다고 보는데, 왜냐하면 차가 -실은 프랑스어, 영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이민자가 영어에 느끼는 불편을 하나의 잠재적 표현 형식으로 삼았기때문이다. - P220
일제 강점기에 한국인은 자국어 사용을 금지당했고 심지어 자기 이름을 버리고 일본식 성을 써야 했다. 독립하자마자 한반도는 양분되어 각각 미군과 소련군에 점령당했다. 조국의 식민 역사 때문에 차는 언어를 상처로 취급하기도 하고 상처를 내는 도구로 취급하기도 한다. 차의 언어는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는 감추는 언어다. 그의 예술 작업에서 언어는 영어든 프랑스어든 한국어든 관계없이 고무도장처럼 뻣뻣하고, 돌에 새긴 무늬처럼 불가사의한 질감을 지닌 대상물로, 자신의 일부가 아니라 자신과 동떨어진 대상물로 간주된다. 글과 저자를 독실하게 분리하는 후기구조주의 학파비평계는 『딕테』가 자서전이기를 거부하는 책, 파도에 떠밀려온 편지들을 엮은 원고라고 조심스럽게 강조한다. 차의 가족은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 차는 막 출간된 『딕테」 한 부를 - P220
사망하기 며칠 전에 부모에게 발송했고, 그 책은 차의 장례일에 도착했다. 존이 우편물을 뜯어 책을 펼쳤는데 제일 먼저 보이는 사진에 어느 일본 탄광에 갇힌 한국 광부들이 탄광 벽에 낙서한것을 복사한 흐릿한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아이 같은 글씨로 끄적거린 낙서를 옮기면 이렇다. "어머니 보고 싶어. 배가 고파요. 고향에 가고 싶다." 차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와서 너무심란해진 존은 어머니가 보지 못하도록 책을 숨겼다. 두 달 후 어머니는 『딕테』를 읽다가 딸이 당신에게 직접 말하는 것처럼느껴져서 몇 번이고 읽기를 멈추어야 했다. - P221
나는 차가 침묵으로 미학을 다듬고, 생략법을 통해 영어가 동포들이 견뎌낸 역사적 참변을 포착하기에 지나치게 빈약하고 간접적인 매체임을 명백히 한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사포의 파편화된 시처럼 그 공포의 일부만 표현하고 나머지는 남겨두어, 차마 말할 수 없는 부분을 독자가 상상하도록 청하는 것이 더 진실했다. 어떤 의미에서 앞서 언급한 학자는 차가 구사하는 침묵의 수사법을 미러링하고 있다. 그 학자는 차의 죽음을극도로 절제된 방식으로 밝힘으로써("1982년 11월 5일, 차는 죽임을 당했다") 그 살해 사건이 작가 약력을 통해 전달하기에는 지나치게 잔혹하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고 암시한다. 하지만 차를 무시하는 침묵이 끝나고 차를 존중하는 침묵이 시작되는 경계선은 어디인가? 침묵의 문제점은 침묵하는 이유를 목청 높여 말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침묵은 쌓이고, 증폭되고, 우리의 의도 밖으로 자체의 생명을 얻어 무관심이나, 회피나, 심지어 수치심으로 잘못 해석될 수있으며 결국 이 침묵은 망각으로 이어진다. - P222
나는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내 인종 정체성을 소재로 글을 쓰는 일은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다는 편견을 한참 고수했는데, 그런 변명의 저변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 그것을비집어 열어야 했다. 이 작업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마치 해부용 테이블에 뇌를 올려놓고 반으로 갈라 글쓰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신경을 핀셋으로 골라내는 것 같았다. 게다가 나는 이 우리라는 것과 씨름해야 했다. 저들에게 맞서는 수천 개의 나팔과도 같은 우리를 청중에게 강력하게 내세울 만한 자신감이 내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그러나 여전히 너무 불특정해서 공유하는언어가 있는지조차 의문인 아시아인이라는 인종 집단을 내체험의 무게로 - 동아시아인, 전문가 계급, 시스젠더 여성, 무신론자, 반골로서 - 규정해 버릴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일인칭 복수 대명사를 누가 건드린 달팽이 촉수처럼 오그렸다. - P245
나는 2008년 이후로 서울에 가지 않았지만, 당시 100세인 할머니를 뵈러 갔더니 열악한 요양원에서 천천히 노쇠해지고 계셔서 지금도 할머니만 생각하면 가족들에게 화가 난다. 그 요양원은 기괴한 탁아소처럼 벽을 온통 분홍색으로 칠하고 아이들이 합창하는 섬뜩한 찬송가 녹음을 온종일 틀어놓았다. 10인 1실로 꽉 찬 방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은 방문한 자녀들에게자주 좀 오라고 투정했다. 중증 치매인 우리 할머니를 돌보기에 나머지 친척들은 너무 노령이었기 때문에 내 동생이 1년 동안서울에서 할머니를 돌봤다. "늙어서 가족이 나를 버리기 전에 죽고 싶다."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서울에서 못 산다. 그곳은 여자들이 살기 좋은 곳이 못된다. 많은 여성이 선천적으로 넓은 몽골형 얼굴을 성형수술로 깎아 하얗게 표백한 하트형 얼굴로 만든다. 교육제도도 무자비하다. 금융위기 수습을 위해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이한국에 58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그 조건으로 - P256
외국 투자자에게 시장을 개방하고, 노동시장 규제를 완화해 노동자의 고용과 해고를 용이하게 하고, 탄소 배출 기준을 완화해 미국 자동차 수입을 허용하도록 했다. 이제 실질 임금은 침체되었다. 실업률도 심각해졌다. 대학생들은 억압적 봉건체제였던 조선왕조의 이름을 따서 자기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른다. 탁하고 뿌연 미세먼지가 서울 전역에 내려앉는다. 그 먼지는 육안으로는 안 보여도 목 뒤로 느껴지며 장기적으로 암같은 병을 일으킨다. 한국인들은 특정한 몇 개월 동안은 밖에도 잘 안 나가고 나갈 때는 수술용 마스크를 쓰지만, 그것도 그들을 충분히 보호해주지는 못한다. - P257
그렇다면 미국에 사는 것을 은혜로 여겨.
테레사 학경 차는 "민주주의를 시행하는척하면서 오히려 민주주의에 연속적인 굴절을 초래하는 장치를 저지하라"고 적는다. 서구의 가장 파괴적인 유산은 누가 우리의 적인지 규정하는 권력이며, 이 권력에 의해 우리는 남북한이그랬듯 동족을 적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나의 적으로 삼는다. - P257
내가 한국 이야기를 꺼낸 것은 이곳과 그곳의거리를 좁히기 위해서이다. 한때 운동가들이 쓰던 표현으로 바꿔말하면,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신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 P258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신이 내 조상의 나라를 둘로 쪼개놓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설픈 중간급 미군 장교 두 명이 1945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지도를 놓고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을 자의적으로 그었고, 결과적으로 이 분단은 우리 할머니의 가족을 비롯해 수백만 가족을 갈라놓았다. 그 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역에서 일본군에게 투하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과 네이팜을자유의 기치 아래 좁은 우리 땅에 투하했다. 한국전쟁과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기막힌 사실 하나는 당시 한국에서 복무하며 화상 피해자를 치료했던 미국 외과 의사 데이비드 랠프 밀러드가 바로 아시아인의 눈을 서구적으로 만드는 쌍꺼풀 수술을 창시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수술법을 한국 성노동자들에게 시술하여 미군 병사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오늘날 쌍꺼풀 수술은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형수술이다. 내 조상의 나라는 당신이 영구적 전쟁과 초국가적 자본주의를 통해 필리핀, 캄보디아, 온두라스, 멕시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엘살바도르,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나라에서 저지른 살상과 자원 착취의 작은 예시에 불과하며, 이것은 주로 미국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배를 불렸다. 그러니까 나한테 은혜를 논하지 말란 말이다. - P259
우리가 각자 치는 인종 차단선은 우리 서로를 고립시키며, 우리의 투쟁이 너무 특별하여 우리 집단에 속한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은 아무도 공감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강화한다. 바로 그래서 나와 나를 통해 대리되는 다른 아시아계 미국인을 더 인간화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보편성을 파괴하고 싶다.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다. 우리야말로 지구상에서 다수이므로, 보편적인 것은 백인성이 아니라 우리의 차단된상태다. 여기서 우리란 비백인을 말한다. 즉 과거에 식민 지배를 받았던 자, 조상이 이미 멸망을 겪은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생존자, 서구 제국이 초래한 기후 변화 때문에 악화된 가뭄과홍수와 집단 폭력으로부터 피신한, 현재 멸망을 겪고 있는 이주자와 난민을 가리킨다. - P261
나는 빚진 상태를 통째로 부인할 수는 없다. 나는 과거에 투쟁한 운동가들에게 빚지고 있다. 나는 학경 차에게 빚지고 있다. 윤리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역사에 책임지는 것을 의미하므로, 나는 세상이 자기에게 빚지고있다고 여기는 부류의 백인 남자가 되느니 차라리 빚을 지겠다. 또한 나는 우리 부모님께 빚지고 있다. 하지만 내 삶을 비밀로 유지하거나 내 것을 챙기는 사유화의 꿈을 뒤쫓는 방식으로 부모님께 진 빚을 갚지는 못하겠다. 엄마는 내게 감사할 것을 거의 매일 요구했다. 엄마는 내가 힘들게 살지 않아도 되도록 미국에 온 거라고 거의 매주 말했다. 그러고는 물었다. "너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니?" - P266
아시아계 미국인은 무슬림이나 트랜스젠더처럼 보이지만않으면 다행히 심한 감시 속에 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일종의 연성 파놉티콘 속에 산다. 이것은 아주 미묘해서 우리는 이것을 내면화하여 자기를 감시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의 조건부 실존을 특징짓는다. 우리가 여기서 4세대째 살았어도우리의 지위는 여전히 조건부이다. 만족을 모르고 사들이는 물질적 소유물이든 주류 사회에 편입했다는 마음의 평화로서의 소속감이든 빌롱잉(belonging: 이 문장에서 소유물과 소속감이라는이중의 의미로 쓰이고 있다-옮긴이)은 언제나 약속되며, 아슬아슬하게 손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 우리가 유순하게 처신하도록 유도한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의식이 해방되려면 우리는 이 조건부 실존으로부터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투쟁을 이어가기위해 고통을 감수하는 것을 의미할까? 아니면 그저 우리의 고통을 자각하는 것을 의미할까? 나는 다른 이들이 보여준 행동을 통해서만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 현재 나는 역사가 - P267
디지털 아카이브로 대거 흡수되어 우리 스스로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글을 쓰고 있다. 미국 정부는 오클라호마주에 설치했던 일본인 강제 수용소 한 곳을 다시 열어 중남미 아동들로 채우려고 계획 중이다. 일본인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소수의 생존자가 이 재설치에 반대하는시위를 매일 벌이고 있다. 한때 나는 일본인 강제 수용소생존자가 다들 어떻게 됐는지 한가한 태도로 궁금해하곤 했다. 왜 자취를 감췄지? 왜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 재설치반대 시위에서 톰 이케다가 말했다. "우리는 취약한 공동체에 동맹이 되어주어야 한다. 1942년에 일본계 미국인은 그런 동맹이 없었다." 우리는 이 나라에 늘 있었던 존재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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