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가르친다는 것은 예술에 관한 지식이나 정보를 주는것이 아니다. 대상과 마주해 놀라거나, 슬퍼하거나, 분노하거나,
기뻐하는 감성을 환기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것이 가능할지 시행착오를 거듭해 왔는데, 이제는 코로나 사태까지 덮쳤다.
대면 수업은 불가능하고 많은 미술관, 영화관도 폐쇄됐다. 학생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작품을 감상한 뒤 소감이나 의견을나눌 수 없게 됐다. 이런 식으로 ‘예술‘을 가르칠 수 있을까? 어느 동료 교수(소설가이기도 하다)가 교육에는 ‘육감‘과 ‘육성‘이필요하다고 역설했는데, 정말이지 그렇다.
그렇긴 하나 나는 D군의 리포트에서 다소 위로를 받았다. D군은 위에 인용한 글을 다음과 같이 이어 나간다. "만약 내일이 세상이 끝나 남은 24시간을 좋아하는 데 써도 된다면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싶다. 그리고 미술관에 가서 르네상스 시대의 정열적인 작품들을 기억 속에 담아 두고 싶다." - P406

"지금 또다시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고 있다......."
지난 9월 11일 일본 펜클럽에서 발표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긴급 메시지‘는 이 한 문장으로 끝맺고 있다. 얼마나고독하고 두려운 일인가. 나는 난처한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도늘 수심에 차 있던 그의 표정을 떠올린다. 자신이 인터뷰한 수백명의 ‘작은 사람들‘(서민)이 그랬듯, 그 자신이 끝없이 이어지는고난과 고뇌 속에 있는 것이다.
나와 그는 지금까지 일본에서 두 차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위해 대담을 했다. 첫 번째는 2000년 <파멸의 20세기-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서경식>), 두 번째는 알렉시예비치가 노벨상을 수상한 이듬해인 2016년 (<마음의 시대‘작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찾아서>)으로, 이때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지를 함께걸었다. - P409

2016년의 대담 때 알렉시예비치는 이야기에 열중하다 그만약 먹는 시간을 놓쳐 고통스러운 듯 대화를 중단하고 휴식을 취했다. 지병을 앓던 그는 몹시 지쳐 있었다. 그런 그의 문을 지금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두드리고 있다. 나는 만년을 나치의 압박과 감시 아래 보내다가 나치 독일의 항복 직전에 고독하게 병사한 여성 예술가 케테 콜비츠를 연상하기도 했다.
알렉시예비치는 2015년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다. 지금은 벨라루스 펜클럽의 회장이자 루카셴코 정권을 비판하다 탄압받고 국외로 피신한 야당 후보자와 시민 단체 대표들이 설립한 ‘조정평의회‘라는 조직의 간부이기도 하다. 9월 9일 발표된 그의 ‘긴급 메시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 P410

"이제 ‘조정 평의회‘의 간부회에는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벗이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다. 모두 옥중에 있거나 국외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오늘은 마지막 한 사람 막심 즈나크가 체포되었다. 처음에는 나라를 탈취하더니 지금은 우리의 가장 좋은 사람들을 강탈해 가고 있다. 그러나 강제로 앗아 간 동료들 대신에다른 몇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들고일어난 것은 ‘조정 평의회‘가 아니다. 나라가 들고일어난 것이다."
러시아와 유럽연합 국가들 사이에 끼인 벨라루스에서는루카셴코 대통령의 강권 정치가 1994년 이래 26년이나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알렉시예비치의 대표작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국내 출판을 금지당하는 등 언론·사상의 자유도 제한되었다. - P410

유럽행 비행기가 우랄산맥을 넘어갈 때면 눈 아래로 평탄한 숲의 바다가 펼쳐진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나는 그 숲의 바다가눈앞에 떠오르는 것을 느낀다. 끝없는 고뇌의 수해樹海다. 당장 20세기에 독소(독일-소련)전쟁의 주된 전장이었던 그곳에서는 마을들이 불타고 무수한 사람들이 잔혹하게 학살당했다. 유대인 주민에 대한 학살도 있었다. 역사가 티머시 스나이더 TimothySnyder는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해, 북으로는 발트 3국, 남으로는 우크라이나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블러드랜드‘(유혈지대)라 명명했다. 그곳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들, 알렉시예비치의 저작에는 그들의 목소리가 ‘이걸로도 부족한가‘ 하고 말하듯 가득 들어차 있다.
2016년의 대담이 끝나갈 즈음 나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100년이 걸리더라도 좋은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고 말합니다. 나는 거기에 경외심을 느낍니다. 이념이나 이상을 단념한 다채 이익이나 욕망만 추구하는 상황이 러시아에서도, 미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계속되고 있는데, 당신은 무엇을 근거로 미래를믿는지요?"
그는 말을 고르고는 대답했다.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갈 길이 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스로에 대한 나의 답입니다. - P412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작은 일을 해 나가며 선한 쪽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직히 말해 나는 그의 이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고는 할 수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늘 "선한 쪽에 서려고 하는 사람들이 한국과 벨라루스를 포함한 세계 각지에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지금 만일 그 사람들이 절멸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희망 자체의 절멸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알렉시예비치의 메시지는 끝으로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나는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오랜 관습에 따라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에게 호소하고자 한다. 어째서 당신들은 침묵하는가? 지원의 목소리가 좀체 들려오지 않는다. 작은, 긍지 높은 국민이 짓밟히고 있는 것을 보고도 어째서 침묵하는가? 우리는 지금도 당신들의 형제인데 말이다. 우리 국민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랑합니다.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째서 당신들은 침묵하는가?"라는 물음은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에게만 던져져 있지 않다. - P413

아. 세계는 얼마나 무자비한가. 나는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연대의 뜻을 전하는 짧은 메일을 보내는 것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라면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 이렇게나 멀리 떨어진 극동의 땅에 무력하나마 당신의 고통에 공감하는 자가 있다. 그것만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F도 연대의 메일을 보내도록 힘을 실었다.
미얀마, 벨라루스, 홍콩....... 손 닿지 않는 세계 곳곳에서, 서로 만날 수도 얼굴을 마주할 수도 없는 곳에서 사람들의 고뇌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고뇌에 ‘공감compassion‘하는 이는 해결되기 어려운 고뇌를 떠안고, 자신의 심신마저 상처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감‘ 같은 건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공감‘하게 되는 게 인간이 아닐까. ‘연대‘하려 하는 게 인간이 아닐까. 그런 정신의 기능까지 포기할 때 ‘비인간화‘가 완성되고 ‘전염병‘이 개가를 올릴 것이다. -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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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된 지 2주 남짓 지났다. 내 마음은 점점 우울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말할 나위 없이 지난해 말 일본과 한국의 선거 결과 때문이다. 일본의 새 정권은 올여름 참의원 선거를 의식해 일시적인 인기몰이 정책을 잇달아 내세우는 한편으로 외교, 안보, 교육 등의 분야에서 극단적인 우경화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극우 이데올로그들이 여봐란듯이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60여 년을 살아온 나는 이 예상외의 장수 덕분에 보고 싶지 않은 꼴을 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내 인생을 20년씩 세 시기로 나눠 보면, 앞의 20년은 일본전후 민주주의의 융성기에 해당하며, 다음 20년은 대학 투쟁의 패배를 거친 탈정치의 시기, 뒤의 20년은 경제성장의 정체와 보수화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바라지는 않지만, 내가 만일 20년을 더 산다면 그것은 대반동의 시기가 될 것이다. 일본은 패전과 맞바꿔 얻은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라는 귀중한 재산을 이 반동기 - P301

에 거의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과거에서 배우지 않고 또 타자를해칠 것이다. 어떤 계기로 반동을 극복할 때가 온다고 해도 그때까지 막대한 희생과 시간을 대가로 치러야 할 것이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게 됐다고 했는데, 지난해 말의 한국대선 전에 본 시인 김지하의 모습은 정말 보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1970년대의 험악하기 짝이 없던 유신 독재 시대에 일본에서출판된 그의 시집 (일본어판)이 내게 남아 있다. 당시 한국 국내에서는 금서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먼저 출판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40년, 나는 그것을 읽고 또 읽었다. 지위도 권력도 없는 젊은이, 재일조선인이라는 피차별 소수자, 정치범의 가족이었던 나는 진정 "타는 목마름으로" 그것을 읽었다.  - P302

거기서 절망속에서도 고개를 쳐들고 싸우는 숭고한 조국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팔레스타인에서, 남아프리카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뒷골목 젊은이들이 부러진 분필로 ‘민주주의‘라고 쓰는 모습을 떠올렸다. 나도 그런 사람들의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나는 거기서 절망의 극점으로서의
‘희망‘을 읽어 내려 한 것이다. 지금도 한국에서, 일본에서, 세계각지에서 버림받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희구하고있다.
지난해 말 ‘시인회의‘라는 단체의 창립 50주년 대회에서 기념 강연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나는 「시가 투영하는 동아시아 근현대사」라는 제목으로 이상화, 윤동주, 김지하, 박노해, - P302

최영미, 정희성 등의 시를 소개했다. 나는 1990년대 말 도쿄에서열린 기미가요. 히노마루 법제화 반대 시민 집회에서 김지하의「타는 목마름으로」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일본 사회가 현재에 이르는 우경화의 가파른 비탈 아래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한 무렵의일이다. 우리 조선인들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우리 재일조선인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일본의 전후 교육이었다. 그 민주주의는 한국에서는 막대한 희생을 통해 쟁취되었으나, 일본에서는 이렇다 할 저항도 없이 내버려질 상황에 직면했다. 민주주의가 안락사 직전에 놓인 것이다. 이것이 그때 내가 한 이야기의 취지였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본의 민주주의는 무자각속에 단말마의 위기를 맞았고, 한국은 일찍이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했던 시인이 자신의 시를 배반하는 무참한 꼴을 드러내고 있다. - P303

1970년대 당시, 그런 암흑 속에서도 인간은 이렇게 빛날 수있다는 걸 느꼈다. 나뿐만이 아니다. 일본인을 포함한 세계 각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감격을 공유하며 한국 민주화 투쟁을 성원했다. 지금 우리는 그토록 빛나던 시인이 이토록 범용하고어리석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오늘날의 암흑이다. 얼핏 보기에는 지난날과 같은 폭력적인 모습은 아니지만, 인간 정신에 대한 실망과 냉소가 만연해 있다. 우리는앞으로 이 냉소의 어둠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 P303

이미 1990년대 초부터 나는 몇 번에 걸쳐 
김지하를 비판한적이 있다. 그는 왜 저 꼴이 되고 만 걸까? 한국의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김지하‘는 어느 개인의 이름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집합명사로, 암흑시대에 함께 싸운 사람들의 정서가 그의 시에 모여 결정체를 이루었기에 책임도 명예도 김지하 개인에게만 돌아갈 수는 없다고 답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떤 시대정신을 투영한 시의 가치는 그것을 쓴 시인 개인의 존재를 넘어선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면김지하 개인이 보여 준 천박성 역시 한 시대를 살아온 일군의 사람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김지하라는 개인만이 기인이요 어리석은 자라면 문제는 간단하며, 이렇게 탄식할필요도 없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나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앞으로도 계속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그것을 통감하는 정초다. - P304

‘유대인‘이라는 존재가 먼저 있었던 게 아니라 반유대주의가 유대인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장 「유대인 되기의 강제성과 불가능성에 대해」는 이에 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지금도 일반 사람들 대다수가 지닌 유대인에 대한 고정관념을깨기 위해서는 물론이고, ‘인종‘, ‘민족‘, ‘국민‘, ‘고향‘, ‘조국‘이라는 통념의 ‘강제성과 불가능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도 읽어 봐야 할 고찰이다.
지은이 아메리는 빈대학에서 문학과 철학 학위를 받은 일급지식인으로,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하자 벨기에로 탈출했다. 1940년 독일군의 벨기에 점령 뒤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했고 1943년 7월 게슈타포에 붙잡혔다. 1944년 1월에는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강제 노동을 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기 직전, 후퇴하던 독일군이 강요한 ‘죽음의 행진‘에 수인 대다수와 함께 끌려갔다. 부헨발트 수용소를거쳐 1945년 4월 베르겐벨젠 수용소에서 연합군에 의해 마침내해방됐다. 전쟁 중 벨기에에서 연행된 유대인 2만 5,000여 명 중 겨우 615명만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해방된 뒤 그는 알게 됐다. - P317

"나로 하여금 2년간의 수용소 생활을 견디게 한 바로 그 사람의죽음"을 "그 사람"은 나치 지배하의 오스트리아에서 함께 탈출한 아내였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수기로서 널리 알려진 책으로는 빅토어 프랑클Viktor Frankl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프리모 레비의「이것이 인간인가』가 있다.
아메리, 프랑클, 레비 세 사람은 똑같이 강제수용소를 체험했지만, 문제 의식 면에서는 큰 차이를 보인다. 프랑클은 ‘고통받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며, 아우슈비츠가 등장한 이유를 묻기보다는 주어진 극한상황이 인간 정신을 어떻게 고양시키는지를 중시한다. 한편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란 무엇이며, 왜 등장했는가 하는 근원적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 비유하자면 프랑클과 레비 사이에는 ‘임상적‘ 차원과 ‘병리학적‘ 차원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P318

아메리의 책은 이 둘과 크게 다르다. 아메리는 "지겨울 만큼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낯설게 남아 있는 것속을 힘겹게 더듬어 나가듯이 책을 썼다고 이야기한다(1966년초판 서문). 그 특징은 희생자인 아메리 자신의 내면세계를 가혹하리만치 철저하게 파고들어 사색하는 점에 있다.
그에 따르면 아우슈비츠에서 ‘정신‘은 무력했다. 그곳에서
"정신과 야만의 만남"이 "순수한 형태로 나타난 결과 "정신은우리를 저버렸다." "정신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데에는 쓸모 - P318

가 있었다."
저항운동을 하다 체포된 아메리는 벨기에 브렌동크 수용소에서 게슈타포의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이 책의 ‘고문‘ 장은 그때의 체험을 반추한 것이다. "몇 개의 육중한 창살문을 지나면끝에는 창 하나 없는 둥근 천장의 방이 있었다. 그곳에는 괴상하게 생긴 철제 도구들이 널려 있었다. 어떤 소리도 바깥으로 새어나갈 수 없었다."
나는 10여 년 전 브렌동크를 찾아가 그 내부를 본 적이 있다. 고문실은 아메리가 묘사한 대로 암울 그 자체로서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눈으로 확인했다고 해서 내가 무엇을 알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최초의 일격과 함께 일단 세계에 대한 신뢰라 부를 수 있는무언가를 잃게 된다." - P319

아메리는 고문을 성폭행에 비유한다. "아무런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경우, 타자에 의한 육체적 압도는 결국 완전한 실존적 절멸 행위가 된다." "고문당한 자는 두 번 다시 세상을 친숙하게 느낄 수 없다. 절멸의 굴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분적으로는첫 일격에 의해, 전체적으로는 고문에 의해 무너진 세계에 대한신뢰는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고문 희생자의 심리를 ‘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고문 희생자가 아메리와 같은 고찰을 남기는 경우는 매우 - P319

드물다. 우선 당사자로서 기억하고 말함으로써 추체험하는 게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성폭행‘의 비유가 시사하듯, 폭력에 완전히 굴복한 체험은 사그라지기 어려운 굴욕감으로 반복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결정적인것은, 설령 이야기해 봤자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으며 그들의 몰이해와 무관심과 맞닥뜨릴 때는 자신이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는체념과 고립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단절의 체험‘이다. 아메리의 책을 관통하는 것은 이 절대적인 고독감이다. 따라서 그가 1978년 자살한 사실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레비는 그9년 뒤에 자살했다). 이런 세상에서 태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쪽이 이상한 게 아닐까. - P320

그러나 고문이 나치의 독점물은 아니다. 그것은 가까운 과거의 한국에서, 일본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자행됐으며, 지금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안다‘고 할 수는 없을지언정우리는 아메리의 고찰을 거듭 곱씹어야만 한다. 우리가 무엇을모르는지 알기 위해.
「사람은 얼마나 많은 고향을 필요로 하는가」와 「원한, 장을 언급할 지면은 없지만, 특히 후자는 ‘역사 문제‘나 ‘식민 지배 책임‘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 할 때 반드시 읽어야 할 고찰이라는점만 지적해 둔다. 아메리는 결코 안이한 ‘용서‘나 ‘치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이 책을 읽는 건 독자에게는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대 ㅡ아우슈비츠 이후의 시대ㅡ를 살아가는 우리가 ‘인간‘이고자 할 때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다. - P320

프랑코군을 지원하는 나치 독일 공군이 바스크 지방의 작은마을 게르니카에 무차별폭격을 가한 1937년, 아시아에서는 중일전쟁이 시작되어 난징 대학살이 자행됐다. <게르니카> 이후80년,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그리고 수많은 전쟁을 경험했다. 〈게르니카>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으나 그것을 그린 피카소의 정신, 그 그림을 울면서 바라본 사람들의 심정에 공감하는 사람은 지금 얼마나 될까.
예술에 전쟁을 막는 힘이 있는지, 악한 권력을 무너뜨릴 힘이 있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 어떤 악몽의 시대에도관용과 연대, 그리고 공감을 추구하는 인간 정신이 살아 있다는것을 가르쳐 준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예컨대 하시모토 도루 전 오사카 시장)라면 <게르니카>를 낙서라고 매도할 것이다. 예술 따위는 ‘엘리트‘의 사치품이라고 큰소리칠 것이다. ‘대중‘은 더 쉽게 와닿는즐거움을 찾는다면서. 그런 생각이야말로 대중 멸시이며, 더없는 반지성이다. 그들의 언동을 보고 나는 원형경기장에 기독교 - P326

도(당시의 피차별 마이너리티)들을 몰아넣어 맹수들의 먹이가 되게 해 놓고 로마 시민들의 볼거리로 제공한 고대 로마의 지배자들을 떠올렸다.
예술에는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게르니카>는 아직 잠들수 없다. - P327

윤동주는 당시 일본인들 사이에서 철저히 고립되어있었을 것이며, 주변의 일본인 중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자는 거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창밖에 밤비가속살거려/육첩방房은 남의 나라"(「쉽게 씌어진 시)라는 시구가 더욱 가슴을 저미는 것이다.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하기직전에 질렀다는 마지막 외마디도, 그 의미를 알아들은 일본인은 아무도 없었다.
시인은 자신의 모어로 시를 쓰는 것조차 금지당했다. 증거물로 압수된 미발표 원고는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형사로부터 폭행과 조롱을 당하고 억지 설교를 듣다가 이국의 감옥에서 죽어야만 했다. 그 억울함과 슬픔, 분노는 지금도 많은 조선 민족이 공유하는 바다. 그 감정들은 어째서 아직도 사라지지않는가?  - P332

그것은 가해자들이 책임을 조금도 자각하지 못하고, 과거를 반성하기는커녕 치안유지법이 적법하다고 아무렇지 않게공언하기 때문이다. 치안유지법은 적법하며, 희생자에 대한 조사나 사죄는 필요치 않다는 것은 패전과 포츠담 선언 수락이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에 대한 부인을 의미한다. 일본이 조선, 대만 등의 식민지를 포기한 것은 포츠담 선언 수락에 의해서였다.
요컨대 그들은 식민 지배 책임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는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진상 규명조차 불철저했던 우리는 치 - P332

안유지법 등에 의한 정치 탄압 문제에는 거의 손도 대지 못한 상태다. 해방 뒤 통일체로서의 조선 민족이 주체가 되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을 이어 나갔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민족 분단이 일본의 극우파와 역사수정주의자를 돕는 꼴이 됐다. 통탄스러운 일이다. 이제부터라도 그 작업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상황이 이러한 가운데, 일본에서 배외주의의 창끝은 점점 ‘한국인‘, ‘조선인‘을 향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23일 나고야의 재일조선인계 신용조합에 한 남성이 난입해, 등유에 적신 천에 불을 붙이고는 등유가 든 기름통과 함께 카운터안쪽으로 던진 사건이 있었다. 종업원이 불을 끈 덕에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조금만 잘못되었어도 대참사로 번졌을 것이다. 경찰에 출두한 용의자(65세)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전부터 한국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라고 진술했다고한다. 헤이트스피치 수준을 한참 벗어난 명백한 ‘테러‘ 사건이다. 더 이상의 확대를 막기 위해 일본 정부는 테러 행위를 엄중히 비난하고 재발 방지에 힘쓸 것을 선언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 P333

국가권력의 횡포 이상으로 개탄스러운 것은 반지성주의가 횡행하고 냉소와 무관심이 만연해 있는 지금 상황이다. 지식인들은 이 위기에 저항할 책무를 지고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지식인다수도 이 증상에 감염되어 자기 역할을 포기하거나 오히려 자진해서 반지성주의 쪽에 가담해 가짜 지식인으로 전락하고 있다.
가토 슈이치가 쓴 「언어와 탱크」라는 글이 있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자유화‘ 운동이 일어나자 소련이 군사개입으로 진압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이 사건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했다. "언어는 아무리 날카로워도, 또 아무리 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되더라도 한 대의 탱크조차 파괴할수 없다. 탱크는 모든 목소리를 침묵시킬 수 있고, 프라하 전체를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프라하 거리의 탱크라는 존재 자체를 스스로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언어가 필요하다. (...) 1968년 봄, 가랑비에 젖은 - P339

프라하의 거리에서 마주한 것은 압도적이고 무력한 탱크와 무력하지만 압도적인 언어였다."
그 시기(1960년대 후반) 한국에서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박정희 정권이 베트남에 파병하고, 이후의 유신 체제를 향해 독재를 강화하고 있었다(1969년 ‘3선 개헌‘).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측근의 손에 사살당했고, 프라하보다 10년 남짓 늦게 한국에도 ‘봄‘이 찾아왔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1980년 광주 5.18 때탄압당했다. ‘탱크‘가 ‘언어‘를 뭉개 버린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 뒤 ‘언어‘가 ‘탱크‘를 압도하는 순간이 거듭찾아왔다. 그 최근의 것이 시민의 평화적 시위로 박근혜 대통령탄핵을 쟁취한 투쟁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언어‘가 자근자근압살당해 공동화되고 말았다. ‘언어‘에 대한 신뢰가 근본적으로 파괴되어 일본의 정치권력은 ‘탱크‘ 없이도 인민을 통치할 수 있다. 이에 저항하려는 사람들은 ‘언어‘를 재건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문필가, 저널리스트, 교원 등 언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무겁다 - P340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미켈란젤로 89년 
생애의 마지막 그리고 미완의 작품이다. 바티칸의 피에타를 비롯한 많은 피에타상은 어머니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품에 안은 모습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어머니가 등 뒤에서 아들을 껴안고 서 있다. 무덤에서 주검을 끌어내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 존재하는 ‘지옥‘에서 무수한 어머니들이 자식의 주검을 등 뒤에서 껴안고 서 있다.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이토록 우매하고 무력하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데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예술에 무슨 존재 가치가 있을까? 그러나 만약 예술마저 없었다면, 인간에게는 어떤 존재 가치가 있을까....... 무력한 나는 그렇게 중얼거린다. - P358

간단히 답을 얻을 수 없는 깊은 물음(대체로 인간에 관한 물음은 모두 그러하다)에 침잠해 끝없는 문답에 몰두한다. 그 사고과정 자체가 풍요와 기쁨에 차 있다. 그것이 곧 ‘도서관적 시간‘이다. 스마트폰의 검색 기능에 의존하면서 그런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주어지는 ‘해답‘을 따르는 태도는 한 사람의 불행일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평화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그것은 만사를 단순하게 유형화해 파악해서는 타자를 한데 묶어 차별하고 적대시하는 자세로 이어진다. 혐오범죄의 온상이며, 전쟁 배양기다. 지배자가 바라는 것이 그런 ‘신민‘이다.
인간 이외의 존재가 책을 쓰고 읽을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쁨, 자유로운 인격으로 자신을 형성해 가는기쁨이다. 그런 기쁨을 학생들에게 제공하려는 장소가 바로 도서관이다. 그러려면 자유롭고 관대한 ‘도서관적 시간‘을 되찾지않으면 안 된다. ‘신자유주의적 시간‘과 ‘천황제적 시간‘에 대항해서 인간의 시간을 되찾기 위해. - P378

일본에서는 민주적 절차나 인권의 원칙이 ‘비상시 대응‘의 방해가 된다는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수많은 비리와 부정의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 한다는 비판에대해, 코로나 대책에 주력하고 있으므로 정권을 놓을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재해나 역병까지도 권력의 연명에 이용하려는 너무나도 노골적인 태도 표명이다.
정부가 지급을 검토하고 있는 생활지원금 대상에서 ‘외국인‘을 제외하라고 주장하는 국회의원이 있다. ‘외국인‘도 납세자고 사회의 불가결한 구성원인데도 말이다. 기존의 기초생활수급자도 제외하라고 트위터로 떠드는 ‘작가‘가 있고, 이에 대해10만 건이 넘는 ‘좋아요‘가 달린다. 이런 때는 손쉬운 차별일수 - P394

록 더 많은 지지를 얻는다. 이런 정치,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역병을 능가하는 재앙이다.
역병이나 자연재해는 인간의 생활과 생명을 빼앗지만, 실은인간을 죽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 자신이다. 이익이나 권력에 홀린 인간들에 의해. 그리고 사고가 정지된 채 사태를 방관하는 인간들에 의해. 도쿄 올림픽 1년 연기라는 비합리적이고 위험한 선택이 일본 사회에서 환영받는 듯 보이는 것이 바로 그 좋은예다.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는 500년도 더 전에, 인간은 진보하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죽음‘은 승리할 것이고 ‘죽음‘
에는 저항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죽음‘에는 저항할수 없을지라도, 인간의 ‘불의‘에는 마지막까지 저항할 작정이다. - P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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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대한 어떤 확신도 없이 맞은 오늘의 마흔은 미혹이다. 내경험에 비쳐보자면, 마흔은 분명 어른이 아니다. 공자시대에 마흔은 어른이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마흔에 이른 사람들은 철이 나지 않은 그저 늙은 소년이다. 마흔의 소년 소녀들. 그들은 확신도, 삶의 목적도모호한 채 여전히 흔들린다. 마흔이 불안한 건 그 때문이다.
왜 그럴까? 삶을 통찰하는 지혜가 없거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혜 대신에 실용을 따르고 익혔다. 한마디로 천박한 실용주의이다. 돈만 있으면 잘 살 수 있다고 배워온 것이다. 정말로 돈만 있다고잘 살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문제는 지혜이다. 지혜를 배우지못한 채 맞은 마흔은 미혹이고 재앙이다. 흔들린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흔들림도 흔들림 나름이다. 마흔, 그들은 방황한다.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 P29

공자는 낚시는 했지만 그물을 가지고 물고기를 잡지는 않았고, 새를 활로 쏘아 잡기는 했지만 둥지에서 잠자는 새를 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그물을 써서 고기를 잡으려고 한다. 둥지에서알을 품고 있는 새라도 잡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더 많은 물고기를잡고 더 많은 새를 잡는 것을 더 훌륭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공자는 왜 굳이 낚시대를 드리워 물고기를 낚고 둥지에 있는 새는 잡지 않았을까? 공자는 사람이 인애 없이 사는 것을 천하게 여겼다. 세상이 인애를 업신여기고 물질을 숭상하면서 날이 갈수록 살기가 팍팍해졌다. 탐욕은 세상을 삭막하고 황량한 사막으로 만든다. 공자의 가르침처럼 인, 의, 예지, 신이 펼쳐지면 세상이라는 사막을 초원으로 바꿀 수 있다. 이것들은 다 개인의 도덕적 수양과 관련이 있다. 더나은 세상이 되기 위해 세상을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 P30

행복은 거창한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사소함에서 온다. 햇빛 한 줄기, 메아리, 솔숲의 향기, 물의 반짝임, 불쑥 솟은 모란의 붉은 움, 아이들이 까르륵 웃는 소리, 이웃의 친절함, 안 먹고 안 쓰며 평생모은 재산을 사회에 내놓는 할머니들, 여름 새벽의 차가운 공기들, 연잎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들, 반딧불이들, 소나기 뒤 앞산 골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새벽 수련꽃, 새벽에 배달된 신문, 방금 구워낸 크로아상,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황금빛 맥주 첫 잔, 제주도의 비자나무 숲길, 앵두열매, 레몬향, 따뜻한 크림스파게티, 구운 양고기, 창가에 울리는 편종소리, 재즈의 다정하고 슬픈 선율들, 어디선가 들려오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곡, 함흥냉면, 베트남 쌀국수, 팥빙수, 다정한 키스의 순간들, 작은 선물, 풀밭 위를 날아가는 꼬리에 점박이무늬가 선명한 나비....... 이 모든 것들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대개는 돈 없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이고, 이것들은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일상을 둘러보라. 그리고 그것들에게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어라. - P50

고독은 그 본질에서 혼자 있는 능력이다. 혼자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혼자 있는 능력은 귀중한 자원이다.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내면 가장 깊은 곳의 느낌과 접촉하고, 상실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하고, 태도를 바꾼다." (《고독의 위로》) 창의성의 발현과 개인 자아의 발달은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혼자 있는 능력 속에서 길러진다.
고요는 혼자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고요 속에서 사람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일들과 차마 하지 않으면 안 될 일들의 분별이 나타난다. 세상이 시끄러운 것은 그런 분별이 있는 사람들이 줄어든 탓이다. 활달한 소통은 인생의 성공으로, 고립은 그 반대로 비치기 쉽지만, 실상을 따지고 보면, 세상에 잘 적응함은 심리적인 불완전함의 결과물이다. 반면에 자발적 고독은 욕망과 두려움의 지배에서벗어나 심리적 평형 속에서 안정된 인격을 갖춘 사람들의 태도이다.


고독은 개인화 과정에서 누구나 불가피하게 겪는 경험이라는 걸 받아들이자. 사람은 고독 속에서 자기를 깊이 돌아보고 마음의 평화를얻는다. 고독은 불완전한 것이며 부적응의 결과이지만, 그것은 완전과 적응으로 가는 도약대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 P85

혼자 있어보라. 혼자 그윽함에 머물면서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일에 부지런해져 보라. 고독을 권하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통해서만존재의 심연에 이를 수 있는 까닭이다. 고독에 처하지 않는다면, 고요도 있을 수 없다. 부지런함이란 무엇인가? "갠 날에 할 일을 미적거리다가 비를 만나게 하지 않는다. 비오는 날에 할 일을 꾸물대다가 날이개게 하지 않는다."(정약용) 갠 날에 할 일은 갠 날에, 비오는 날에 할 일은 비오는 날에 하는 것, 그것이 부지런함이다. 부지런하되 항심을 유지할 것. 새벽이 오면 새벽에 마음을 두고, 저녁이 되면 저녁에 마음을 둘 것. 이 모든 일이 마음이 고독 속에 있을 때 가능하다. 새벽 숲속을 채우는 청아한 새소리들, 아기 웃음소리, 실내에서 저 혼자 타는 촛불, 사랑하는 이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 저물녘 만조에 이른 바다. 새해 처음으로 맞는 일출의 장엄함....... 이런 것들에 가슴이 뛰지않는다면, 이미 당신의 인생에서 봄과 아침은 지나가버렸음을 알아야한다. 봄과 아침을 헛되이 흘려보냈다면 살아 있는 게 곧 기적이라는 사실도 알 수가 없다. - P87

어떤 책을 읽었을 때, 우리는 그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존재의 생물학적 인지적 형질이 미묘하게 바뀌어버려 우리는 더 이상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책과 그것을 읽는 사람은 항상 역동적 상호작용을 한다. "텍스트와 인생의 경험 사이의 역동적 상호작용은 양방향적이다. 우리는 인생 경험을 실어 텍스트를 이해하고 텍스트는 삶의경험을 뒤바꿔놓는다." (《책 읽는 뇌>> 새로운 책을 읽을 때마다 뇌의 역량이 커지고 생각과 감정은 성장한다. 존재의 내적 형질이 바뀔 뿐만 아니라 내적 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울러 책 읽기는 치유와 정화의 힘을 준다. D.H. 로렌스는 그의 시<치유>에서 이렇게 적는다. "오랜 기간의 혹독한 참회 / 삶의 과오에대한 각성, 그리고/ 오류의 끝없는 반복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 우울한가? 따분한가? 자기가 무력하다고 느껴지는가? 그때마다 나는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기 위해 책으로 달려간다. 책 읽기는 인생의 슬픈 터널을 지나서 의식의 고양이라는 신세계로 가는 길이다. 이가을 아침에 가슴이 뛰는 것은 내가 책 속에서 사는 까닭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읽은 모든 책들이 내 안에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 P123

보르헤스는 우주를 거대한 도서관으로 상상했지만, 나는 우주를 한권의 책으로 상상한다. 우주는 인류가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읽어왔고,
앞으로도 여전히 읽어갈 거대한 한 권의 책이다. 우리는 책이라는 낙타를 타고 우주라는 이름의 사막을 타박타박 횡단하는 중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싶다는 인간의 불가피한 욕망이야말로 문명의 진화를추동해온 힘이다. 책 읽기를 그친 세계에서는 문명의 역동적인 발전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세계는 아주 빠르게 쇠퇴하고 소멸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인류 문명의 발전이라는 거창한 소명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한 권이나 두 권의 책을읽는 것은 거기에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 P132

지금 붉은 병꽃이 한창이고 뜰에는 모란과 작약의 꽃도 만개했다. 뜰에 핀 갖가지 꽃들. 그 꽃들 위에서 잉잉대는 벌들. 꽃과 벌들을 바라보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영원의 흐름 속에 있는 시간의 일부이다. 아침을 먹고 난 뒤 산책을 하고, 오후에는 시립도서관에서 대출해온 책들을 반납하러 간다. 밥을 먹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더러는 누군가를 만나고, 더러는 어딘가로 움직인다. 그게 바로 나다. 나는 나의 생각함이 아니다. 생각함이란 존재에 대한 머뭇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배고픔 앞에서 헐떡거리고 목마름 앞에서 물을 갈망하며 서 있는 나일 뿐이다. 순수의식 그 자체로 대면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나이다. 책은 이 순간과 순간의 나를 아름답게 한다. 순간마다 책을 수유함으로써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삶이 쓰여진다. 휘리릭 넘기며사는 삶보다는 순간의 페이지를 음미하는 삶이고 싶다. - P190

벚꽃이 피고, 모란과 작약이 만개한 이 봄날, 나는 내가 살아온 과거도 아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도 아니다. 나는 바로 이 순간에 있으며, 내 자신 속으로 깊이 빠져든 존재다. 나는 나 아닌 것의 모든 것이며, 지금 이 순간은 지금 이 순간 아닌 것의 모든 것이다. 나는 나로서 살 수 있는 솔직성 그 자체, 즉 지금 이 순간 이루어지는 존재의 운동 그 자체이다. 이 우주에서 먹고 자고 욕망함으로써 유일한 가능성으로 출현할 수 있는 나! 나는 삶을 소유할 수 없다. 삶 그 자체가 바로 나이고 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 P191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마당 웅덩이에 술잔의 물을 부으면 겨자씨로 배를 만들어야 한다. 술잔을 띄우면 붙어버릴 것이니 물은 얕고배는 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기가 깊지 않으면 대붕도 큰 날개를 띄울힘이 없다. 그러므로 구만리의 바람이 발아래에 있어야만 바람을 탈 수 있다. 푸른 하늘을 등에 지고 막힘이 없어야만 장차 남쪽으로 날아갈 수 있다.
장자, <소요유>, <장자> - P279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이 커다란 날개를 가진 대붕은 제 날개의 힘만으로는 날지 못한다. 대붕이 구만리 상공으로 치솟아 날기 위해서는큰바람이 있어야 한다.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작은새는 작은 바람을 타고 날아오를 수 있지만 대붕은 큰바람이 일어야만날 수가 있다. 하물며 큰 인물은 어떠하랴. 대자유를 누리는 큰 인물은 타고난 바 현실 조건을 뛰어넘는 자이고, 그 현실 조건을 뛰어넘을 때 따르는 시련과 수난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대자유인도 있을 수없다. 장자의 자유, 유유자적한 삶을 이해하고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우리는 더욱 깊어져야 한다. - P279

부엌에서 노모는 간고등어를 굽고 그 비릿내와 함께 청국장을 한 상에 올린다. 청빈하지만 부족함이 없는 조촐한 식탁이다. 아, 흰밥과 김장김치와 함께 떠먹는 청국장이 혀끝에서 아득해진다. 늦가을의 모근들은 왜 헐렁해지고, 청국장엔 왜 ‘청‘이 들어가는가. 산림욕장을 다녀오던 오후 내내 병자호란 시절 청나라 군사들이 먹었다는 청국장이 지금 내가 먹는 그 청국장과 맛이 같은가에 대한 생각으로 골똘해진다. 들에 지천으로 널린 야생초 가운데 여가 어여쁘고, 입에 들어가는 것들 중에는 청국장이 혀에 달다. 그랬으니 이 나라 상고시대 조상들이 먹었던 청국장을 먹으며 가난해도 외롭지 않다고 자부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백석) 어여쁘고 달고 쓸모 있는것들과 더불어 사니 그 누구도 부럽지 않다. 그러니 나도 정녕 늦가을의 풍운아 아닌가! - P328

늦가을 저녁 부엌에서 흰밥과 청국장과 간고등어로 배를 채운 뒤홑이불 속에 몸을 뉘고 저 북쪽 마을에 언제 첫눈이 내리는가를 짚어본다. 무서리 내리고 울타리의 황국이 시든 뒤 물은 얼고 첫눈은 오는가. 머잖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이어지는 산과 산을 성큼성큼 달려와미시령 천지간까지 눈보라는 자욱하게 덮게 될 것인가. 청국장은 청국장을 모르고 사랑은 사랑을 몰라본다. 눈보라치는 새벽에는 외로움에 진절머리를 치며 밀항한 남자가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추위로 곱은 손을 녹이며 두고 온 처자에게 편지를 쓸 가슴이 아직도 나에겐 남아 있는가. - P329

나는 늦가을의 사람으로 너무 늦지도 않고 너무 빠르지도 않게 늦가을에 안착한다. 영원이라는 잣대로 재면 하루는 찰나이고, 일생은열린 문 앞을 지나가는 빠른 말과 같다. 늦가을 해질녘의 고즈넉한 시간을 서성거리며 나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한 사람, 나와 태어난곳은 다르지만 태어난 해가 겹치는 한 사람의 죽음을 기억한다. 그는아침마다 거울을 보면서,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라고 물었다. 철학자같이 삶을 통찰한 그는 이런 핵심에 닿는다. "삶이라는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그러니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사느라 낭비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도그마에 얽매이지 말라. 만약에 그렇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의 결과로 자신의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1955~2011)의 말이다. - P332

삶은 갈망에서 타오르는 것이고, 우직한 도전에서 빛나는 도약을하는 것! 갈망이 다하면 풀들은 시들고, 갈망이 다하면 숲속의 가왕포으로 군림하던 매미나 능란한 사냥꾼인 늙은 사마귀도 죽어 풀밭에나뒹군다. 시인 쉼보르스카는 "지나간 옛사랑이여, 새로운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한 점 뉘우치노라, 기차역에서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여, 새벽 다섯 시에 곤히 잠들어 있어 참으로 미안하구나"라고 적었다. 나 역시 늦은 사랑을 첫사랑으로 착각하고, 새벽 다섯 시에는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뉘우치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늦가을이니까. - P334

동물의 세계를 살펴보아도 인간처럼 허둥거리는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부지런한 벌‘이나 ‘근면한 개미‘도 예외가 아니다. 그 곤충들이 일하는 모습은 부지런해보이지만, 사실은 전체의 78%의 시간을 쉬거나 빈둥거린다.
동물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긴장을 풀고 쉬는 데 사용한다. 그들이 활동하는 것은 꼭 먹이가 필요할 때뿐이다. 그밖에는 내키는 대로 게으름을 피우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제멋대로 상상하듯 권태에 빠지지는 않는다.

레기네 슈나이터, <소박한 삶>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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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민족국가든 개인 차원에서는 좋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특정 민족 전체를 좋은 사람 또는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위험하다. 3월의 지진 직후 일본에서 일어난 ‘일본은 강한 나라‘, ‘힘내라 일본‘ 따위의 캠페인이나 거기에 호응해 한국에서 고조된 지극히 정서적인 일본 동정론도 마찬가지로 단순한 발상의 산물이다. 그런 단순한 유형화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이 어떤 사회에 속한 사람들을 ‘국민‘이라는 지표로 일괄하고, 자기 자신도 거기에 포함시켜 유형화함으로써안심을 얻으려 하는 ‘국민주의‘ 심성이다. 이 심성은 ‘국민‘ 내부의 차이나 대립을 은폐하고, 동시에 내부의 타자를 항상 외부화해 배제하려는 기능을 지닌다.
국민주의에 뿌리박은 단순한 일본 이해는 
일본의 중간파나 리버럴파가 지닌 한계나 문제점에 대해서는 둔감한데, 그것이야말로 위험하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을 올바로 아는 것은 ‘한국‘ - P276

이라는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 모두의평화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이제부터 내가 써 나갈 ‘일본통신‘은 타자를 위협하며 몰락해 가는 일본 사회에 사는 한 ‘내부의 타자‘가 쓰는 보고서가 될것이다. 일본에 사는 개인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갖가지 문제를 구체적 에피소드와 함께 전할 요량이다. - P277

이번 제주도행은 바쁜 와중에도 우리 세 사람이 일정을 조정해 3박 4일간 머물 작정이었다. 그런데 하필 태풍 산바를 만났다. 비행기 결항으로 섬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우리는 일정을 하루 앞당겨 서울로 돌아왔다.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하는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달려갔더니 이미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난민‘이라는 말이 떠올랐으나 물론 4.3사건의난민과 비교할 수는 없다. 군경의 초토화작전에 쫓기던 그들은미군 함정에 엄중하게 포위된 섬에서 필사적 탈출을 감행했다.
많은 사람이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가까스로 일본에 표착한 사람들은 밀입국자로 검속되어 한국으로 강제송환되었다. 당시 법적으로 일본 국적 보유자였던 조선인을 "외국인으 - P290

로 간주"해 검속할 수 있게 한 것은 쇼와 천황의 마지막 칙령인 외국인등록령이다. 그것은 1947년 5월 2일, 즉 4.3사건 발발 직후에 공포됐다. 일본은 4.3이라는 정치 폭력의 직접적인 가담자였던 것이다.
4.3평화공원의 행방불명자 묘역에는 유해가 없는 빈 무덤뿐이다. 하지만 그곳은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라고 지적한 "소름 끼치는 국민적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이런 위령과 추도를 통해 국가는 사람들을 국민으로 통합하려 한다. 하지만 다카하시 교수가 중요한 지적을 했다.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와 달리 이 자기분열적인 위령의 장소는 어쩌면 지금의 국가를 넘어서는 차후의 공동체, 바로 다음에 올 ‘상상의 공동체‘를 향한 어렴풋한 희망을 시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국가에 회수되고 말 것인지, 국가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지, 싸움은 계속된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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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묘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던 세계‘다. 19세기 영국에서 아프리카인 남성이 댄디라는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한다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매일이 표상을 마주했던 주류 영국인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어떤이는 불쾌하게 여기고 또 어떤 이는 공감했겠지만, 좋든 싫든 자국이 자행한 식민 지배의 사실, 그 상흔, 건드리고 싶지 않은 죄책감은 떠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설령 심기가 불편할지라도 마음속 깊이 헤치고 들어가 탈식민지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이런 물음이 필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파시즘 국가 중 전쟁 전과 같은군주의 가계를 줄곧 받들어 모시고, 같은 국가와 국기를 계속 사용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영국과 같은 전승국조차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전쟁이 끝난 뒤로 옛 자국 식민지 민족들과의 ‘다문화 공생‘을 표방해 왔다. 그렇기에 쇼니바레와 같은 아티스트가활동할 공간이 생겼다. 이를 생각하면, 일본은 매우 특수한 나라 - P131

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전반까지 인류 사회가 막대한희생을 대가로 손에 넣은 평화, 인권, 평등, 반차별 등의 지적·사상적 성취에 완고하게 등을 돌리고 국민 다수도 그 편협한 자기애自己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잉카 쇼니바레의 작품은 일본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기껏해야 ‘포스트콜로니얼(식민지 이후) 아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서 지적으로 소비될 뿐, 그것을 자국의 입장에 옮겨 놓고 성찰하는 이는 얼마 안 될 게 분명하다. 지금 《잉카 쇼니바레 MBE: 찬란한 정원으로》전이 대구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의 관객은 그의 작품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 P132

니키는 팅겔리와 함께 1966년 스톡홀름근대미술관에서 〈혼Hon)이라는 작품을 제작해 전시했다. 그것은 길이 28미터, 너비6미터나 되는 거대한 ‘나나‘다. 관람객은 미술관 입구에서 다리를 벌린 채 그들을 맞이하는 이 여성상의 성기 안으로 들어가 몸속을 관람한다. 독일 하노버의 시립 공원에는 커다란 나나상이세워져 있는데, 이를 두고 시민 사이에 찬반양론이 벌어졌다고한다. 어느 다큐멘터리 영화에는 그곳의 노부인이 이 상을 가리키면서 "만일 총통이 건재했더라면……"이라고 몹시 불쾌한 듯투덜거리는 장면이 나온다. 히틀러라면 그걸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니키의 예술이 지닌 가치를 역설적으로 대변하는 장면이다.
니키는 1984년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 부지를 얻어 ‘타 - P137

로 정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타로 카드에서 구상을 얻은 <정의>, <악마> 등의 대형 조형물이 배치된 널따란 정원이다. 니키는 남성 원리가 전쟁과 환경 파괴의 원흉이라는 사상을 실천하면서 여성 원리와 ‘마술성‘의 가치를 강조했다. 타로 정원에는거대한 손 모양 조형물이 있다. 그 손은 그곳으로부터 20킬로미터쯤 떨어진 원자력발전소 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원전이여, 멈추어라."라며 염력을 쓰는 것이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뒤 이탈리아에서는 격렬한 논란 끝에 원전 가동을 중단했다. 그것은 타로 정원의 손이 발휘한 힘 덕분이었다고 니키는 말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부터 불과 4년째인 올해, 많은반대의 목소리를 묵살하고 가고시마현 원전을 재가동했고, 나머지원전들도 잇따라 재가동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P138

니키가 ‘사격 회화‘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때로부터 이미 반세기가 지났으나 그의 작품은 아직 낡지 않았다. 이는 여성 등 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겉으로는 어찌 됐든)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일본은 국회의원의 여성 비율(8.1퍼센트)이 세계 129위인 나라다(16.3퍼센트인 한국도 87위로 낮다. 국제의회연맹 조사, 2014년11월 현재), 남성 원리가 의기양양하게 지배하는 사회에서 니키는 결코 낡을 수 없는 것이다. - P138

12월 1일 전시 개막식 행사에서 약 250명의 비교적 젊은 청중을 앞에 두고 나는 켄트리지와 공개 대담을 했다. "계몽의 프로젝트는 좌절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묻자, 그는 곧바로 "그렇게생각하지 않는다."라며 분명히 말했다. "자유, 인권, 평등, 민주주의, 이런 계몽의 프로젝트는 미완이며 여전히 진행 중이다."라고.
그에게도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타도된 순간은 "축제와 같았다." 뒤돌아보면 우리 민족에게도 ‘축제‘와 같은 순간은 있었다.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순간, 군사정권이 타도된 민주화 실현의순간, 새해 첫날을 맞아 나는 이런 순간의 환희와 그 순간을위해 희생된 수많은 사람을 다시금 기억하고자 한다.
‘9.11‘ 이후 에드워드 사이드는 "중요한 목표"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문화와 저항』). "중요한 목표"란 "자유와 해방과 계몽을 요구하는 모든 민족이 모이는 승리의 회합이다. 눈앞의 어둠은 짙지만, 식민 지배를 경험한 우리 민족 역시 "승리의 회합에 참가한다는 꿈을 잃어서는 안 된다. - P146

딕스의 동판화 <전쟁> 연작은 1924년에 간행됐다. 그해는 ‘반전의 해‘라고도 불리는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고작 6년, 사람들은 전쟁의 기억을 빨리도 과거로 흘려보내고 다음 전쟁을 향해 가파른 언덕을 굴러가기 시작했다.
올미 감독의 영화 끝부분에서 설원에 높다랗게 선 나무가 포화 속에 불탄다. 나무는 숯이 되고, 무참한 파괴의 상흔이 펼쳐진다. 엔딩으로 양치기의 말이 흐른다. "언젠가 이 땅에 숲이 되살아나고, 여기서 벌어진 일은 믿어지지 않게 [잊히게] 되리니."
영화관을 나서니 초여름 햇빛이 넘실대는 간다의 거리를 남녀노소가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곧 치러질 참의원 선거도 개헌을 획책하는 집권 여당에 유리한 상황이라고 한다. 결국 일본국민은 헌법 9조(전쟁 포기 조항)를 스스로 내버리는 것일까.
숲은 되살아날 것이다...... 이것은 재생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말일까? 불탄 자리에 잡초의 신록이 싹을 틔우듯 인간들은계속 나고 자란다. 비참한 일은 잊히고 참화는 거듭된다. 시간의흐름은 망각의 편이다. 시간의 여신과 전쟁의 신은 사이가 좋다. 레마르크, 딕스, 올미..... 예술가들은 이 무자비한 적과 승산이 희박한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 - P162

하지만 네루다의 매력은 그 ‘정치적 올바름‘에만 있는게 아니다. 이 영화는 그것을 잘 전해 준다.

풍만한 여인이여 살[肉]의 사과여 달의 
불이여
짙은 해초 내음이여 빛에 단련된 진흙이여
어떤 어스름한 빛이 그 원주 사이로 열리는가
어떤 고대의 밤이 남자의 오감을 홀리는가

ㅡ「풍만한 여인이여」(『100편의 사랑 소네트』)에서 - P174

얼마나 거리낌 없고 관능적인 노래인가. 이는 지금도 뭇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군부 쿠데타 후 멕시코로 망명한 칠레의 영화감독 미겔 리틴Miguel Littin은 1985년 계엄하의 칠레에 잠입해 네루다가 오랫동안 산 이슬라네그라Isla Negra의 집터를 찾았다. 그곳에서 리틴이 마주한 것은 시인이 사망하고 방치된 집에 새로운 세대가 끊임없이 찾아오는 광경이었다. 그곳을 찾은 젊은 연인들은 집 울타리에 낙서를 남기고 간다. 그중 하나는 말한다. "사랑은 결코 죽지 않는다. 장군이여, 아옌데와 네루다는 살아 있다. 1분의 어둠이 우리를 눈멀게 할 수는 없다." (<엄하의 칠레 잠입기 Acta General de Chile>, 1986)이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네루다>는 보여 준다. 네루다의 시가 칠레 민중에게 끼치는 영향력, 시의 위대한 힘을. - P174

칠레에서 이런 격렬한 투쟁과 비극이 진행되던 시기에 지구반대편의 한국에서도 유사한 현실이 진행되고 있었다. 박정희정권이 1972년 10월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유신 체제‘를 확립한것이다. 나도 1980년대 중반 한국 정치범의 석방을 호소하기 위해 찾아간 캐나다의 지방 도시에서 칠레 망명자 가족이라는 소녀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는 쿠데타로부터 10년 이상이 흐른 뒤로, 여전히 피노체트 정권이 버티고 있어 망명자들은 귀국할 수없는 상황이었다. 나와 소녀는 말이 통하지 않아 이야기다운 이야기도 나눌 수 없었으나 금세 서로의 처지와 심정을 이해했다.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칠레의 역사는 우리 것이기도 하다.
네루다라는 존재는 우리 것이기도 하다. - P176

아, 가도다, 가도다, 쫓겨 가도다
잊음 속에 있는 간도와 요동벌로
주린 목숨 움켜쥐고, 쫓겨 가도다
진흙을 밥으로, 해채를 마셔도
마구나 가졌드면, 단잠은 얽맬 것을
사람을 만든 검아, 하루 일찍
차라리 주린 목숨, 뺏어 가거라!

ㅡ이상화, 「가장 비통한 기욕析慾」(1925)에서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푸르른 대해大海. 하늘 높이 바닷새 한 마리, 자연의 광대함과 아름다움을 구가하는 듯하다. 그 해면에 하나의 점 같은 배가 떠 있다. 카메라가 다가가니 구명조끼를 입은 사람들로 빽빽하다. 지중해를 건너려는 난민들을 가득 실은 배다. 메마른 사막. 줄곧 차가운 비가 퍼붓는 변경의 철도역. - P177

군사용 철조망으로 무자비하게 나뉜 경계. 찬비에 젖은 채 멍하니 선 사람들, 주린 배로 추위에 떨며 피로와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실로 "진흙을 밥으로, 해채[시궁창에 고인물]를 마"시는 사람들의 행렬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화의 시구가 뇌리에 떠올랐다. 1920년대 한반도에서 만주로 흘러든 숱한 난민, 2017년 중동에서 유럽으로 향한 숱한 난민, 두 행렬은 100년의 시차를 두고 한줄기로이어져 있다. 긴 행렬은 전 세계에 걸쳐 있으며, 언제 끊일지도알 수 없다. 아아, "사람을 만든 검 [神]아 (...) 차라리 주린 목숨,
뺏어 가거라!" - P178

그 영화는 아이웨이웨이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유랑하는 사람들)이다.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가자지구에서 여러 유럽 국가, 튀르키예,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 이르기까지세계 23개국 40곳의 난민 캠프를 돌며 제작되었다. ‘난민 문제‘
의 최전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거대한 투시도. 그 영상은 아름답고 처절하다. 화면에는 때때로 감독 자신이 효과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예컨대 난민 캠프의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는 모습, 미국-멕시코 국경 지대에서 오토바이를 탄 국경순찰대원에게 느긋한 말투로 말을 거는 모습. 고대 중국의 신선 같기도 하고, 시골 농부 같기도 하다. 그 모습이 이 영화의 주제가 가진 장대한 서사시적 척도를 실감하게 한다. - P178

‘민적‘은 일제가 통감부 시대에 조선 민족에게 강요한 제도다. 그것에 저항한 사람들에게는 ‘인권‘이 없었다. 현재도 난민이나 이민은 각종 증명서를 소지할 의무가 있어, 번잡한 절차와 굴욕을 강요받는다. 증명서가 없는 자(프랑스어로 ‘상 파피에sans-papiers‘, 즉 ‘종이가 없는 자)에게는 "인권이 없는" 것이다.
한용운의 시구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난민들의 고통을 예견했다. 참으로 천재적인 통찰! 한용운과 제거스는 이어져 있다. 시인들에게 그런 통찰을 요구하는 상황은 지금도 여전하다. 아니더욱 정치精緻하고 가혹하게 이어지고 있다.
한용운은 8·15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제비 떼 까맣게날아오길 기다리나니"라고 노래했던 이육사는 중국 대륙에서항일 독립운동에 종사하다가 일본 영사관 경찰에 붙잡혀 베이징 - P182

에서 옥사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고 노래한 윤동주는 일본 도시샤대학에 유학하던 중
‘독립 기도‘ 혐의로 검거되어 해방을 반년 앞두고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이 시인들은 그나마 시를 통해 가까스로우리에게 메시지를 남겼으나, 다른 많은 이들은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한 채 무참하게 목숨을 앗겼다.
3·1독립운동으로부터 100년 ㅡ나는 이른 봄 도쿄에서 두 편의 영화를 보고 생각한다. 아, 참으로 긴 난민들의 행렬. 참으로많은 눈물과 피. 그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전 세계에서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역사수정주의자가 권력을쥐고 있고, 다수 국민 사이에 식민주의의 심성이 오히려 증식하고 있다.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 P183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나 「아사히 저널」(1984년 9월 21일 호)이라는 잡지에 선생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거기에는 음악 이야기뿐 아니라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내 형들을 비롯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모든 정치범의 석방을 요구하는 이야기도 담겨있었다. 해방 직후 ‘보도연맹‘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힌 희생자들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정치범의 석방이 실현될 때까지 한국 정부가 요청하는 귀국은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나는다시금 크게 감동했다. 선생이 내 형들을 비롯한 정치범들에게마음을 썼다는 데 대해서만이 아니다. 그 인터뷰는 몹시도 지친몸으로, 제한된 시간의 1분 1초까지 작곡을 위해 쓰고 싶다는 심경일 때 이루어진 것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의 비위를 거슬러 귀향의 꿈이 더욱 멀어질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선생은한국 사회 (그리고 인류 사회)의 개선이라는 목적에 자신이 할 수있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 P209

김영삼 문민정부 탄생을 전후해 한국 내에서 오래 계속되어온 윤이상 음악을 금기시하는 풍조가 완화되면서 1994년 9월
‘윤이상 음악제‘ 기획이 추진됐다. 그러나 선생은 한국 정부가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범민련‘의 해외본부장이라는 지위에 있었기에 귀국은 정치적 의미를 띨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행동에 반성할 만한 점도 있다." "앞으로 북과는 일절 관계를 끊겠다."라는 뜻을 표명하라는 한국 정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선생은 또다시 귀국을 단념했다. 그 뒤 선생은 미국에서 남북의 음악가를 모아 음악제를 여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북측 음악가의 참가가 취소되어 실현되지 못했다.
윤 선생의 마지막 작품은 교향시 <불길에 휩싸인 천사들>(1994)이다. 노태우 정권의 부정과 탄압에 항의해 잇따라 분신자살한 젊은이들을 추념하는 음악이다. 1995년 12월 20일, 선생의유해는 베를린의 묘지에 안장됐다. 해방을 갈망했으나 차마 거기에 도달하지 못한 상처 입은 용의 생애였다고 할 수 있으리라.
선생의 후두부에는 (머리카락에 덮여 보이지 않지만) 큰 거미나 게가 달라붙어 있는 듯한 흉터가 있었다. 1967년 7월 동베 - P210

틀린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옥중에서 자살을 기도하면서 고문실에 있던 무거운 금속제 재떨이로 제 머리를 내려친 상흔이다. 고문실에서의 굴욕, 고통, 절망이 얼마나 혹독했겠는가.
이 위대한 예술가는 자민족의 국가권력에 의해 말살될 수도 있었다. 그런 생각에 새삼 섬뜩해졌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그의 작품은 대부분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말살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은 그 심연에서 생활했을 뿐 아니라 참으로 놀랍게도 더욱 거대한 존재로 되살아났다. 지금 한국에서 그의 탄생100주년이 어떻게 이야기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이런 경위를 깊은 아픔과 부끄러움과 함께 기억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최근 알게 된 바로는, 박근혜 정권 시절의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윤이상평화재단‘도 올라 있었다고 한다. 이를 등재한 자들은 윤이상의 음악을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들어 본 적이 있을까? 도대체 어느 세월에 이런 수치스러운 어리석음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 P211

숨을 삼킨다는 게 이런 걸까. 국도에서샛길로 빠져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가자 돌연 눈앞에 작은 분지가 펼쳐졌다. 주위를 에워싼 산들은 화사한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어젯밤부터 내린 비는 그쳤으나 하늘에는 구름이 겹겹이흘러가고 있었다. 낮은 쪽 구름은 엷은 먹빛, 높은 쪽 구름은 솔로 싹 쓸어 낸 듯 희다. 강풍에 날려 가던 구름의 갈라진 틈새로화살 같은 햇빛이 대지에 내리꽂힌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요란하게 흔들자 붉고 노랗게 물든 잎이 어지럽게 춤춘다. 신화 세계의 광경이다. - P220

도쿄에 사는 나의 상상력은 피해지 주민들이 경험하는 불안에 닿지 못한다. 오사카나규슈 사람들의 상상력은 훨씬 더 닿기 어렵다. 한국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즉 방사선량뿐 아니라 상상력 역시 동심원적으로 멀어진다는 역설이 나타나는 것이다. 동심원 중심에 가까운사람들은 공포와 불안에 대한 실감이 그만큼 강하다. 그렇기에 "편리한 진실"(프리모 레비)을 찾아내서 거기에 매달리는 심리가 작동한다.
재난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중심을 향한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중심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현실에서 눈을 돌리면 사태의 본질을 냉철하게 인식해 재발을 방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사태이다. 우리는 이 ‘동심원의 패러독스‘를 의식해서 중심과 먼 사람들일수록 중심을 향한 상상력을 갈고닦고, 중심에 가까운 사람들일수록 엄혹한 현실을 더욱 직시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대단히 어려운 일이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태가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상력이 시험받는 것이다. - P228

가해의 책임까지 분명하게 언급하며 일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사죄의 뜻을 표명한 점이다. 언제나 그렇듯 피해를 당한 사람들,
고통받고 있는 미약한 존재가 타자와의 진정한 연대를 추구하는지혜와 용기를 보여 준다. 타자를 해친 자들,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은 고개를 돌리거나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오만한 태도로 일관한다.
합천 대회를 마치고 서울에 돌아가니 거리는 비상경계 상태였다. 거리에서 지하철역까지 곳곳에 경찰 부대가 깔려 있었다.
‘핵안보정상회의‘ 때문이었다.
‘핵안보정상회의‘는 핵에 더해 부와 권력까지 쥔 자들이 앞으로도 핵을 ‘안전‘하게 독점하기 위한 모임이다. 그에 비해 합천은 핵 따위는 갖지 않은 미약한 사람들, 소수자들의 모임이었다. 어느 쪽에 ‘희망‘이 있는지는 명백하지 않은가. 이 글이 신문에 실릴 즈음이면 한국은 총선 직전일 것이다. 탈핵이라는 화두가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한국 국민이 현명한 판단을 내릴수 있기를 기원한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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