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사람 그리운 도시』 『하루치의 희망』 『마음의 수수밭』 『오래된 골목』 『너무 많은 입』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새벽에 생각하다』 『지독히 다행한』 『몇차례 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무사하였다』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현대문학상, 청마문학상, 만해문예대상 등을수상했다. - P-1

시를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는 말하지 않은 말, 침묵의 말을 듣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말하지 않은 말을 듣는 능력이 있다. 시의 침묵과 여백과 행간에는 말하지 않은 말, 말이 되기 이전의 원초적인 말, 말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반죽 상태로 있는 말, 자극을 받으면 깨어날 수 있는 말이 풍부하다. 우리의 내면에도 그런 말들이 있다. 시를 읽으면서 깊이 공감할 때 그 시가 나의 이야기가 되는 이유는 시 속의 말과 내 안의 말이 서로 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가 나의 말을 꺼내준 것 같기도 하고 나의 말이 시가 되어 나오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60년간 농축된 시인의 삶과 시적 고뇌와 희열이 짧은 시의 침묵과 여백 속에 어떤 모습으로 쟁여져 있을까. 어떻게 그 말들은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말들을 흔들어 깨워서 움직이게 할까.
짧은 시 안으로 들어가 말하지 않은 말을 엿들어보니 왜 이 시선집이 짧은 시들로 묶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문장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가 얼마나 풍부한지, 읽으면 읽을수록 짧은 시가 어떻게 큰 시가 되는지 체험하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천양희의 시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이 시선집은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것 같은 경험을 주는 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ㅡ김기택 시인, 발문‘에서 - P-1

ㅣ시인의 말


일상에서 일생까지
울음에서 웃음까지
슬픔에서 기쁨까지
머리에서 가슴까지
먼 길 돌아와

자연이
새봄을 펼쳐 보이듯 참으로
한 순간을 눈부시게 하는 것이
짧은 시였으면 했다

작은것이 아름답다는 말이
짧은 시에 겹친다

나는 잘 살기 위해서 시를 쓰지만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 위해
눈물을 보탠다는 것은 더 어려운 것 같다 - P-1

나에게 남은 유일한 위안은
오늘을 살아가는 너에게
짧지만 긴 여운을 보내는 것이다

2025년 여름
천양희 - P-1




올라갈 길이 없고
내려갈 길도 없는 들

그래서
넓이를 가지는 들

가진 것이 그것밖에 없어
더 넓은 들 - P-1

뒤편


성당의 종소리 끝없이 울려 퍼진다
저 소리 뒤편에는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다

백화점 마네킹 앞모습이 화려하다
저 모습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다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을 것이다 - P-1

벌새가 사는 법


벌새는 일초에 아흔번이나
제 몸을 쳐서
공중에 부동자세로 서고
파도는 하루에 칠십만번이나
제 몸을 쳐서 소리를 낸다

나는 하루에 몇번이나
내 몸을 쳐서 시를 쓰나 - P-1

머금다


거위눈별 물기 머금으니 비 오겠다
충동벌새 꿀 머금으니 꽃가루 옮기겠다
그늘나비 그늘 머금으니 어두워지겠다
구름비나무 비구름 머금으니 장마 지겠다
청미래덩굴 서리 머금으니 붉은 열매 열겠다

사랑을 머금은 자
이 봄, 몸이 마르겠다 - P-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