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상은 내 머릿속에 있다. 내 몸은 세상에 있다.

2세상은 내 생각이다. 나는 세상이다. 세상은 당신의 생각이다. 당신은 세상이다. 나의 세상과 당신의 세상은 같지 않다.

3인간 세상 외에는 세상이 없다. (여기서 인간 세상은 보이고, 느껴지고, 들리고, 생각되고, 상상될 수 있는 모든 걸 의미한다.)

4세상에 객관적 존재는 없다. 존재는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의 지각은 필연적으로 제 - P11

한되어 있다. 따라서 세상은 한계를 지니며 어딘가에서 멈춘다. 하지만 내게 세상이 멈추는 지점에서 반드시 당신에게도세상이 멈추는 건 아니다.

5예술 이론은(그런 게 가능하다면) 인간의 지각 이론과 분리될 수 없다.

6하지만 우리의 지각만 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언어 (우리가그 지각들을 표현하는 수단)도 제한적이다.

7언어는 경험이 아니다.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수단이다.

8그렇다면 언어의 경험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에게 세상을 주었다가 빼앗아 간다. 단숨에

9인간의 타락은 죄나 위반, 부도덕한 행위의 문제가 아니다.
언어가 경험을 정복하는 것의 문제다. 즉, 세상이 말 속으로 떨 - P12

어지는 것, 눈에서 입으로 내려가는 체험의 문제다. 그 거리는8센티미터쯤 된다.

10눈은 유동적인 세상을 본다. 말은 그 흐름을 붙잡고 고정하려는 시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경험을 언어로 바꾸기를 고집한다. 그래서 시가 쓰이고 일상의 삶이 말로 표현된다. 그것은보편적 절망을 방지하는 그리고 야기하기도 하는믿음이다.

11예술은 <인간의 기지를 보여 주는 거울이다>(크리스토퍼 말로). 거울에 비치는 상(像)은 적절하다ㅡ 그리고 깨지기 쉽다.
거울을 박살 내어 그 조각들을 재배열해 보라. 결과는 여전히무언가의 반영일 것이다. 어떤 조합이라도 가능하고 조각들을원하는 개수만큼 빼도 된다. 단 한가지 필요조건은 적어도 파편 하나는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햄릿 Hamlet』에서자연을 거울에 비추는 것은* 크리스토퍼 말로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왜냐하면 자연의 모든 것들은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설령 자연 자체는 그렇지 않대도 말이다. (세상이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어떤 상황에 - P13

서건(고대건 현대건, 고전주의 낭만주의건) 예술은 인간 정신의 산물이다. (인간의 흉내이다.)

12말에 대한 믿음을 나는 고전주의라 부른다. 말에 대한 의심은 낭만주의라 부른다. 고전주의자는 미래를 믿는다. 낭만주의자는 자신이 실망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욕망은 결코 실현되지 못할 것임을 안다. 그는 세상이 말로 표현될 수 없으며 말의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13언어에서 멀어진 기분을 느끼는 건 자신의 몸을 잃는 것과같다. 말이 당신을 저버리면 당신은 무의 상(像)에 녹아든다.
사라져 버린다.

1967년 - P14

내가 볼 때 중요한 것은굶주림을 방치하는 문화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소위 문화라는 것으로부터 굶주림의 힘과동일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아이디어를이끌어 내는 것이다.
- 앙토냉 아르토


한 젊은이가 도시로 온다. 이름도 집도 직장도 없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도시로 왔다. 그는 글을 쓴다.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글을 쓰지 않는다. 그는 죽기 일보직전까지 굶주린다.
그 도시는 크리스티아나(현재의 오슬로)이고 때는 1890년이다. 젊은이는 거리를 헤맨다. 도시는 굶주림의 미로이고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매일 똑같은 나날을 보낸다. 그는 지역 신문사에 보내려고 청탁받지 않은 글들을 쓴다.  - P17

소설 『굶주림』에는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 예술의 성격에관해 뭔가 새로운 생각을 내놓는다. 그것은 예술을 만들어 내는 예술가의 생활과 구분이 되지 않는 예술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자서전적 과도함의 예술이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예술이란 예술 자체를 표현하기 위한 노력의 직접적 표출이라고 말하려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예술이란 굶주림의예술, 혹은 결핍·필연. 욕망의 예술인 것이다. 이 예술 속에서확실함은 의심스러움으로 바뀌고 형태는 과정에 밀려난다. 이제 임의로 질서를 부여하는 일은 불가능하지만, 그런 만큼 어떤 명료성을 획득하려는 의무는 더 강해진다. 그것은 세상에정답은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출발하는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을 제대로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런 질문을 직접살아 본사람만이 그것을 발견한다. 사뮈엘 베케트는 말했다. - P30

장편소설 「하늘의 푸른빛 Le Bleu du ciel』의 서문에서 조르주바타유는 실험을 목적으로 집필된 책과 간절한 욕구에 의해집필된 책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바타유는 말한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교란을 일으키는 힘이며 <공포와 전율 속에서 마주친 현존으로서 인생의 진실과 엄청난 가능성을 우리에게 계시할 수 있다. 그러니까 문학은 연속되는 하나의 흐름이 아니라일련의 일탈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소중하게여기게 될 책은 통상 집필 당시의 문학 사상에 역행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바타유는 모든 위대한 작품의 집필동기 혹은 하나의 불꽃에 대해 <분노의 순간>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 불꽃은 의지를 발동해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고 언제나 문학 바깥의 원천에서 온다. 그는 말한다. <저자가 꼭 쓰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없이 쓴 책을 우리가 어떻게 오래 붙잡고 있겠는가?> 자의식적인 실험은 문학적 규약의 장벽을 무너뜨리고싶다는 간절한 소망에서 나온다.  - P34

초기 아방가르드 운동 중 하나인 다다는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비록 단명했지만(1916년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에서 야간 행사로 시작되어 1922년 트리스탄 차라의 희곡 「가스가 들어찬 마음Le Coeur à gaz」에 대한 격렬한 항의로 사실상 끝나 버렸다) 그 정신은 저 멀리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때로부터 50년 이상이 흐른 지금도 철철이 다다에 관한 책이나 전시회가 기획된다. 우리가 다다가 제기한 문제들을 추적하는 데는 학술적 관심 이상의 이유가 있다. 다다의 질문이 곧 우리의 질문인 것이다. 예술과 사회의 관계, 예술과 행동, 행동으로서의 예술 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다다에 시선을 돌려 하나의 원천 혹은 사례를 찾아내려고 한다. 우리는 다다라는 운동 자체를 알고 싶어 하는한편 그것이 현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 P45

존 애시버리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친밀하게 말을 걸어오는 시인이다. 우리는 그의 세계를 우리의 세계로 인식하고 그의 언어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언어이다. 하지만 그처럼우리의 확실성을 사정없이 허물어 버리고, 또 그처럼 풍성하게우리 의식의 애매모호한 지역을 탐구하는 시인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방심했다가 균형을 잃고 놀라게 된다. 어조의 단조로움과 친밀함에 유혹당하기 때문에 일탈감은 그만큼 더 혼란스럽다. 평범한 사물이 기이한 사물로 바뀌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해 보였던 것이 갑자기 의심스러운 무엇으로 돌변해 버린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으나 어떤 것도 예전과 같지 않다. - P54

그의 시를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목적과 방식의 일관성이다. 애초부터 로라 라이딩은 자신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알았으며, 자신의 시를 독립된 서정시가 아니라 거대한 시적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읽어 달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아닌지 더 잘 알아야 한다.
우리는 바람이 아니다.
집 없는 어질어질한 상태로 우리를 유혹하는변덕스러운 기분이 아니다.
우리는 더 잘 분간해야 한다.
우리 자신과 낯선 자들을
우리가 아닌 것들이 많이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굳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 바람의 이유The Why of the Wind 중에서

이 시는 라이딩의 본질을 잘 보여 준다. 담화의 추상적 차원, - P61

파울첼란은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고 프랑스에살면서 독일어로 시를 썼다. 제2차 세계 대전의 희생자였고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으며 쉰이 되기 전에 자살했다. 첼란은추방의 시인이었고 자신이 쓴 시의 언어에서조차 국외자였다.
그의 생애는 고통의 전형적 사례였고 20세기 중반 유럽에서 벌어진 일탈과 파괴의 표상이었다. 그의 시는 도전적일 정도로 특이하고 언제나 절대적으로 그의 것이었다. 독일에서 그는 릴케와 트라클의 동급으로 여겨지고 횔덜린의 형이상학적 서정성을 계승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다른 곳에서도 그의 작품은 높이 평가되는데, 조지 스타이너는 최근 이런 말을 했다. <첼란은1945년 이후 유럽의 주요 시인 중 한사람이다. 하지만 첼란은아주 읽기 어려운 시인이다. 그의 시어는 조밀하면서도 불투명하다. 그는 독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특히 후기 시는 너무나 격언적이어서 여러 번 거푸 읽어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주 지적이고 현기증 나는 언어의 힘을 구사하는 첼란 시 - P83

는 페이지 위에서 폭발적인 힘으로 튀어 오르고, 따라서 그의시를 처음 읽는 사람들은 아주 인상적인 경험으로 그 만남을기억하게 된다. 가령 홉킨스나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처음 발견했을 때 느끼는 기이하면서도 흥분된 느낌을 받는 것이다. - P84

따라서 시는 이미 알려진 세상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글쓰기 행위는 첼란에게 있어개인적 모험을 요구한다. 첼란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정립하고 이 세상에 우뚝 서기 위해 시를 썼다고 할수 있다. 바로 이런 절박한 필요의 느낌이 독자들에게 강하게호소한다. 첼란 시는 문학적 유물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 P90

반 고흐를 논한 1946년의 논문에서 마이어 샤피로는 리얼리즘의 개념을 진술했는데, 그것은 첼란 시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나는 오늘날 통용되는 좁은 의미의 리얼리즘을 지지하지 않는다. 리얼리즘이란 결국 외부적 리얼리티를 강력한욕망이나 욕구의 대상, 인간이 소유하거나 성취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태도이다. 이 때문에 리얼리티는 예술의 필연적 터전이 된다> 이어 마이어 교수는 <나는 가능한 것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 두렵습니다>라는 고흐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같이 주장한다. <개개의 대상을 축소하는 원근법에 대항하면서 고흐는 대상을 실물보다 더 크게 만든다. 물감을 두껍게 사용하는 것은 이런 전략의 일환이다. 사물의 이미지에 유형의물성을 포함하고, 사물 못지않게 단단하고 구체적인 것을 캔버스 위에 창조하려는 광기 어린 노력의 일환이다.>인생관과 예술관이 고흐와 비슷한 첼란은, 고흐가 물감을사용한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두 사람의 작품은그 정신이 비슷한 바가 많다. 반 고흐의 화필이나 첼란의 문장 - P90

은 구상화를 지향하지 않았다. 그들이 볼 때 <객관적> 세계는그들 자신의 지각과 깊이 연계되어 있었다. 리얼리티에 침투하려는 노력 없이 리얼리티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예술을 계속해서 이어지는 과정으로 보고 작업해 나가고자했던 태도는 이런 욕망과 관련이 있다. 반 고흐가 그린 대상이<리얼리티처럼 리얼한 구체성을 획득한 것과 마찬가지로, 첼란의 시어도 사물의 조밀성을 지녔다. 첼란은 시어에 실체성을부여했고, 그리하여 시어가 단순히 거울 노릇을 하는 게 아니라이 세상, 혹은 그의 세상의 일부가 되게 했다. - P91

회흑색 황무지 저 너머에
실낱 같은 햇살.
나무 높이의
생각은 빛의 음조를 터트리고
인류를 넘어선 곳에 - P96

아직 부를만한
노래가 있나니.

이러한 시들에서 첼란은 목표를 아주 높게 설정했고, 그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 자기자신을 넘어서야 했다. 정체성에 매달리기 위해 허공 속으로 삶을 밀어 넣어야 했다. 처음부터 재앙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불가능한 투쟁이었다. 시가 영혼을구제하거나 세상을 회복시켜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시는단지 주어진 것을 확인할 뿐이니까. 결국 첼란의 절망은 너무커져서 감당할 수 없는 것이 되었고, 그리하여 세상은 첼란에게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므로 더는 할 말이 없게 되었다.

당신은 나의 죽음.
모든 것이 나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나는 당신을 붙들 수 있으리라.

1975년 - P97

앨런 맨델봄은 번역 시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웅가레티의 <나>는 멀리 나아간다기보다 장중하고 느릿느릿하며집중적이다. 그의 동경은 드라마가 된다. 《나》가 절망의 무작위적 중심이 아니라 중력에 의해 묶인 신체이기 때문이다. 그<나>는 단단하고 뻣뻣하고 실체적인 대상으로서 소망하기보다 의지를 발동하고, 몽상하기보다 《발굴》한다.>웅가레티의 후기 시들은 약속된 땅이라는 단 하나의 이미지안에서 정점에 이른다. 그것은 『아이네이스Aeneis(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와 성경에 나오는 약속의 땅이다. 로마와 사막을위한 약속의 땅이다. 「칸초네 Canzone」, 「디도의 심리 상태를묘사하는 코러스Cori descrittividi stati d‘animo di Didone」,
「팔리누루스를 위한 송가Recitativo di Palinuro」, 「약속된 땅을위한 최후의 코러스Ultimi cori per la Terra Promessa」 같은 주요시는 그의 모든 전작을 언급하면서 그것들에 최종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듯하다. 베르길리우스의 무대를 시에 가져왔다는 것은 시력(詩歷) 말기에 귀향했다는 뜻이다. 사막은 젊은시절의 풍경을 되살려 놓았지만 또다시 그를 최후의 영원한추방 속으로 밀어붙인다.

우리는 마음속에 남은 초창기의
이미지를 품은 채 사막을 건넌다. - P106

살아 있는 사람이 약속된 땅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1952년과 1960년 사이에 쓰인 「최후의 코러스」는 「노인의공책// Taccuino del Vecchio』에 수록되었다. 이 시는 웅가레티 시의 본질적 주제들을 다시 천명한다. 웅가레티의 우주는 그대로남아 있고 그는 초기 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언어로 죽음을 준비한다. 그의 진짜 죽음, 그에게 실제로 벌어지는 최후의 죽음.

솔개는 그 푸른 발톱으로 나를 잡는다.
태양의 정점에 올라가
나를 사막 위로 떨어트려
갈까마귀의 밥으로 준다.
나 이제 더는 어깨에 진흙을 묻히지 않으리.
불은 내가 깨끗하다는 것을 알리라.
꺽꺽거리는 부리들
자칼의 냄새나는 아가리.
이어 그는 모래밭을 지팡이로
헤집어 가며 찾으리라. 그 베두인족은
희고도 흰 뼈를
가리키리라.

1976년 - P107

에드몽 자베스는 1912년 부유한 이집트 유대인의 아들로태어나 프랑스어를 쓰는 카이로 동네에서 성장했다. 젊은 시절막스 자코브 폴 엘뤼아르, 르네 샤르와 교류했고 1940년대와1950년대에 자그마한 시집을 여러 권 발간했는데, 거기 실린시들은 나중에 나는 나의 집을 짓는다 Je batis ma demeure』에다시 수록되었다. 그 시점에 이르러 시인으로서의 명성은 확고해졌지만 프랑스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널리 알려지지는않았다.
1956년 수에즈 위기는 자베스의 생활과 작품 활동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나세르체제에 의해 추방되어 프랑스 정착하게 된 그는, 집과 재산을 모두 빼앗긴 채 난생처음 유대인으로 사는 것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자신이유대인이라는 것이 하나의 문화적 사실로서 삶의 우연한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유대인이라는 사실 하나로 고통받게 되었고 그리하여 타자가 되었다. 이 갑작스러운 추방의감각이 그를 설명하는 가장 기본적인 형이상학이 되었다.
어려운 시절이 뒤따라왔다. 자베스는 파리에 직장을 잡았고그의 글은 대부분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집필되었다. 파리에아리마 출판사에서 그의 시집이 - P109

나왔다. 그 시집은 앞으로 다가올 것들의 선언이라기보다 새로운 파리 생활과 흘러가버린 과거 사이의 경계 짓기였다. 자베스는 탈무드와 카발라 등 유대 텍스트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독서가 유대교 신앙으로의 복귀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유대의 역사 및 사상과 자신의 연계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베스를 감동케 한 것은 토라라는 1차 텍스트보다 디아스포라에서 집필된 저술과 랍비의 주석이었다. 자베스는 이런 책들에서 유대인의 강한 힘을 발견했고 그 힘이 생존의 양식을 제공했음을 알아보았다. 추방과 메시아의 강림 사이에 놓인 긴시간 동안 하느님의 사람들은 성경의 사람들이 되었다. 자베스는성경이 고국의 의미와 무게를 감당하게 되었다고 여겼다. - P110

 마지막으로 자베스의 책은 19세기말에 시작된, 지속적인 프랑스 시적 전통의 일환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자베스는 이 전통을 유대의 담론과 결합하려 한다.
그는 이 작업을 강한 확신 속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둘의 결합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물음의 서』는 자베스가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생겨났다. 마리나 츠베타예바는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대부분이 기독교신자인 이 세상에서 모든 시인은 유대인이다.> 바로 이런 정신이 자베스 작품의정중앙에 놓인 핵이고 그로부터 모든 것이 흘러나온다. 자베스가 볼 때, 먼저 글쓰기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서는 대학살에 관해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언어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려면 작가는 자신을 의심의 유배지, 불확실성의 사막으로 추방해야 한다. 사실상 그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부재의 시학을 창조하는것이다. 죽은 사람들을 다시 살려 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의말을 들을 수는 있고 그들의 목소리는 <책> 속에 살아 있는 것이다.

1976년
- P117

우리는 조금씩 카프카에 대해 알기 시작한다. 그는 현대 작가들 중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접근하기가 까다로우며 생애와예술은 자주 오해받아 왔다. 그가 생전에 발표한 작품이 얼마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친구 막스 브로트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카프카라는 이름은 1924년 그의 사망과 함께 사라져 버렸을 것이다. 브로트는 미발표 유고를 사후에 모두 불태워 달라는 카프카의 부탁을 무시해버렸다. 카프카 작품은 등장 자체가 미스터리와 모호함에 둘러싸여 있다. 왜 그의 장편소설들은 미완성인가? 그 탁월함과 독창성에도 왜 저자는 소설들을 파기하라고 했을까? 카프카에게는 일정한 이미지가 있었다. 몸을 움츠리는 관료, 현대 사회의 전형적인 피해자, 일종의 그림자 인간 대중의 마음속에서 그는 『변신 DieVerwandlung』의 그레고르 잠자가 되었다. - P118

톡 놀라운 사람입카프카는 엄청난 모순을 내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친구와친지들에게 그는 놀라운 재치와 매력을 가진 사람, 아주 관대한 사람, 멋지게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사람, 백절불굴의 정신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들이 카프카에 관해 써놓은 이야기를 읽어보면, 그의 희생정신, 순수함과 성실함, 잊어버릴수 없는 인품 등에 강한 인상을 받게된다. 간단히 말해서 그만 한 사람은 없었다. 야누흐의 카프카와의 대화Gespräche mitKafkas에서 그는 성인으로 묘사되기까지 했다. 반면에 일기Tagebricher 속의 카프카는 자기 자신과 대결하는 사람, 자기회의로 괴로워하는 사람, 거의 병적일 정도로 자신의 단점을의식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카프카는 결혼, 가정, 공동체, 글쓰기의 욕구(그 때문에 약혼은 두 번이나 파국을 맞이했다) 사이에서 분열되었고, 가정과 위압적인 아버지의 숨 막히는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자기 향상의 노력(정원 가꾸기, 채식주의, 목수 일, 히브리어 공부 등)에 강박적으로 집착했고, 작가로서의 재능을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써놓은 글을 깊이 확신하지 못했다(발행인, 평론가, 친구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 - P119

작가의 편지를 읽는 것은 때때로 난처한 일이 될 수 있다. 개인적인 영역에 침범해 들어간다는 느낌, 일반인을 의식하지 않고 쓴 글을 엿본다는 느낌이 들 뿐만 아니라 때로는 독자로서의 당초 의도와는 다르게,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주는 대목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편지를 읽는 일차적인 목적이 그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카프카의 경우 편지는기본 연구 자료이다. 일기의 내면적 싸움과 전기의 객관적 이야기 중간쯤에 해당하는 그의 편지들은 카프카와 세상의 관계를 이해하게 해주고, 카프카라는 위인의 맥락 속으로 침투해들어가는 수단을 제공한다. 여기서 하나의 결론이 자연스럽게도출된다. 카프카는 타고난 작가였고 엉성한 문장을 쓴다거나자신을 서투르게 표현하는 일 따위는 아예 못하는 사람이었다. - P120

브로트는 카프카의 편지를 제일 많이 받은 친구였고, 우정을 나눈 20년 동안 카프카는 브로트에게 영혼을 드러내 보였다. 브로트에게 보낸 편지들은 서한집에 실린 다른 편지들보다도 내밀하면서도 개인적이고 문학적인 문제, 그리고 카프카의일상생활에서 벌어진 수많은 사건을 특히 많이 다룬다. 또 카프카가 말년에 옮겨 다닌 여러 요양원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곳들의 분위기를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 편지들을 읽노라면 두사람의 깊은 우정, 끈끈한 신뢰, 강한 유대에 감탄하게 된다. 그것들만으로도 하나의 놀라운 책이 될 법하다. 그밖에 다른 편지들도 있다. 카프카가 책의 발행인인 쿠르트 볼프에게 보낸편지에는 겸손한 내용이 가득하다. 자신의 작품을 하도 낮추어말해서 그런 단편소설을 발간해 주는 볼프가 마치 특혜를 베푼 것 같은 인상을 줄 정도다. 카프카는 정서 장애를 겪는 어린소녀 민제 아이스너와도 편지를 교환했는데, 그 소녀에게 친구가 되어 주고, 격려해 주고, 또 자상한 조언도 하면서 어려운청소년기를 헤쳐 나가도록 도와주었다.  - P122

다. 우리는 아주 다양한 관점에서 카프카를 관찰할 수 있고 또다양한 사람과 교제하는 그를 만날 수 있다. 그리하여 그의 개성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지켜볼 수 있고, 인간 카프카와 대면할 수 있다. 이 책의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의 카프카 읽기는 영구히 예전과는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 여덟 페이지는 <대화 쪽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임종의 병상에 누워있던 카프카가 도라 디아만트와 로베르트 클롭슈토크에게 휘갈겨 쓴 짧은 글들이다. 두 친구는카프카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켰고 카프카는 그들을 자신의<작은 가족>이라고 불렀다. 카프카는 후두 결핵을 앓았고 말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식사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행위였기때문에 병이 말기로 진행되는 동안 그는 거의 굶어 죽다시피했다. 이 짧은 쪽지들은 카프카가 쓴 모든 글 중에서 가장 슬픈내용을 담고 있다. 카프카는 꽃으로 둘러싸인 병상에 누워서두 친구의 시중을 받는다. 단편소설 「단식 예술가의 교정을보면서 죽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P123

그저 물을 한 사발 크게 마실 수 있다면. (…) 작약은 너무 약하기 때문에 직접 보살펴 주고 싶어. ・・……) 라일락을양지로 옮겨 놔 줘. (…………) 어쩌면 앞으로 일주일은 더 버틸수 있을 거야. (……) 뉘앙스란 묘한 거야. (…) 내가 당신들 얼굴에 기침을 할지 모르니 조심해. (………) 내가 당신들 - P123

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아. 이건 미친 짓이야. (・・・・・…) 공포,
공포, 공포 (·····…) 주된 이야깃거리가 없다면 대화의 주제는없는 거야. (……) 문제는 말이야, 내가 물을 단 한 컵도 마시지 못한다는 거야. 물론 물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좋은 일이지만. (………) 저거 멋지지 않아? 저라일락 죽어가면서도 물을 마시고 계속 들이켜네. (……) 잠시 당신들 손을내 이마에 얹어 나를 격려해 줘.

마침내 의사가 그를 살펴보고 나갔다.

그래, 도우러 온 사람이 도움을 주지 못하고 다시 가네.

그는 마흔한 살이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득 품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는 나이였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죽음은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을 안겨 준다.

1977년 - P124

1.
찰스 레즈니코프는 눈의 시인이다. 그의 작품의 문턱을 넘는 건 물질의 선사(先史)를 꿰뚫어 보는 것이며, 아직 언어가창조되지 않은 세계에 노출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의시에서 보기는 늘 말하기에 선행한다. 그의 시적 표현은 눈의소산이며, 눈에 보이는 것을 존재의 비정하고 해독되지 않은암호로 옮겨 적은 것이다. 그러므로 글쓰기라는 행위는 현실의질서 정연한 배열이라기보다 현실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는 사물들과 그 이름들 사이에 자리하는 과정이다. 시인이 그 조용한 중간 지대에 서서 주의 깊게 응시함으로써 사물들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보이고 이름을 부여받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처음 태어난 인간인 동시에 마지막 인간이다. 아담이며 만대의 끝, 바벨탑을 세운 자들의 무언의 후예다. 왜냐하면 그는 눈으로부터 말하는 법을 배워서 입으로 보는 습성을 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 P125

요점은, 요점이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전통적 의미에서는말이다. 이 시들은 보편적 진리를 주입하거나 기교로 독자를감동시키거나 체험의 모호성을 끌어내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시들의 목적은, 한마디로 명료함이다. 보는 것과 말하는 것의명료함. 그러나 이 시들이 불안하리만큼 검소하다고 해서 이들이 지닌 야망의 대담함을 보지 못해선 안 된다. 지극히 짧은이 시들도 레즈니코프 시학의 요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레즈니코프 시학은 글쓰기 이론인 동시에 시적 순간의 윤리학이며, 그 메시지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달라지지 않는다. 시는 단순한 말들의 구성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 그 메시지이다. 그렇다면 예술은 무언가를 위한 것이다.  - P127

메서는 좀처럼 어디든 스케치북 없이는 가지 않는다. 그는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격정적으로 달려들어 빠른 손놀림으로 붓을 휘두른다. 순간순간 화판에서 눈을 들어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곁눈질하면서. 그러므로 메서와 함께 앉아식사를 할 때에는 언제나 그의 화판 앞에서 당신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난 7~8년 동안 우리는 내가 그 점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만큼 여러 번 그런 과정을 거쳤다.
나는 그가 처음 찾아왔을 때 그에게 타자기를 가리켰던 것은 기억하지만 그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루인가 이틀 뒤에 그가 다시 찾아왔다. 그날 오후 나는 집에 없었지만 그는 아내에게 타자기를 한 번 더 살펴보러 1층에 있는- 내 방으로 내려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가 거기에서 무엇을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내 타자기가 그에게 무슨 말인가를 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때인가부터는 그가 어떤 식으로든 타자기를 설득해 영혼을 드러내도록 했다고까지 믿게 되었다. - P203

그 뒤로도 샘은 몇 번을 더 찾아왔고 찾아올 때마다 새로 그림을 그리거나 스케치를 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그는 홀린 듯내 타자기에 빠져들었고 조금씩 그 생명없는 물체를 개성과품격을 지닌 존재로 바꾸었다. 그 타자기는 이제 나름대로의기분과 욕구를 가지고 있어서 울적한 분노와 열광적인 기쁨을표현하며, 금속으로 된 회색 몸체 안에 갇혀 있는 심장이 뛰는소리까지도 들리는 지경이다.
‘나는 그 모든 일로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림들은 훌륭하게 완성되었고 나는 내 타자기가 그처럼 가치있는 존재임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 자랑스러웠지만, 그와 동시에 메서는 나로 하여금 내 오랜 동반자를 다른 식으로 보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지금도 나는 적응 과정에 있다. 그러나 내가이 그림들 중 하나(우리 집 거실 벽에 두 점이 걸려 있다)를 볼때면 내 타자기를 물체로 생각하기가 어려워진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물체가 인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 P204

오래되어 낡고 시대에 뒤처진 고물, 기억으로부터 빠르게사라져 가는 시대의 유물인 이 타자기는 내게서 떠난 적이 없었다. 우리가 함께 지낸 9천4백 일을 돌이켜 보는 동안에도, 이높은 지금 내 앞에 앉아서 오래되고 귀에 익은 음악을 토닥토닥 내보낸다. 주말 동안 우리는 코네티컷에 와 있다. 여름이다.
그리고 창문 밖의 아침은 따갑고 푸르고 아름답다. 지금 타자기는 주방 식탁 위에 있고 내 손은 그 타자기에 놓여 있다. 한글자 한 글자씩, 나는 그 타자기가 이런 단어들을 치는 것을 지켜보았다.

2000년 7월 2일 - P205

「뉴욕New York』 지의 질의에 대한 답변

<뉴욕>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센트럴 파크 남쪽의 콜럼버스 서클 모퉁이에 있는우리 할아버지네 60층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풍경이다.
창문은 열려 있고, 나는 손에 1페니짜리 동전을 쥐고 창가에서서, 동전이 도로에 떨어지는 것을 보려고 그것을 창밖으로내던지려 하고 있다. 그때 나는 기껏해야 네 살이나 다섯 살이었을 것이다. 내가 막 손가락을 펴려는 순간, 할머니가 나를 바라보면서 소리쳤다.
「안 돼! 그 동전이 누군가에게 맞으면 머리 속으로 곧장 뚫고 들어갈 거야!」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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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을 만나려면 영도 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러나 건너지못했다. 경찰의 막강한 저지로, 남포동 비프광장에 머물 수밖에없었던 희망버스 소풍 모임은 거기서 밤을 새웠다. 노숙을 했다.
준비해온 침낭과 담요를 길바닥에 착착 깔고 누워 잠이 들었다.
잠들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위해서 세 명의 시인‘이 조용히 천막을 쳤다. 광목천에 크레용으로 ‘문학천막‘이라고 쓴 간판을 내걸었다. 안에는 촛불 두 개, 집에서 싸 들고 온 책 몇십 권그리고 공책 몇 권과 볼펜 몇 자루, 누군가 군중을 벗어나 조용히 있고 싶다면, 누군가 이 소풍길에서 느낀 소회를 어딘가 풀어놓고 싶다면 여기에 있어보라는 뜻에서였다. 작고 허름한 둥지속에 쪼그리고 앉아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문학은 그런 거다. 소풍간의 대오에서 불현듯 내가 왜 여기에있지? 저 혼자 질문하고 대답하기 위해 잠시 대오를 이탈하는 - P111

일. 혼자만의 방에서 정연해지지 못하는 생각들을 기록해보는일, 잠들지 못한 몇몇 사람들이 문학천막 속에 들어가서 오래 앉아 있다가 나왔다. 바깥에서 셋은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새벽을보냈다. 사람마다 여기에 온 이유가 다 다르겠지? 라든가, 모두가다 내몰린 자들이겠지, 김진숙처럼. 그럼 네 이유는 뭐야? 우리는 대화를 천천히 이어갔다.
내 이유는 시간마다 변했다. 맨 처음 이유는 약속 때문이었다. - P112

3차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집결하던 밤에, 트위터로 중계되던 시시각각의 위험한 상황을 내 방 컴퓨터 앞에서 겪었다. 너무 애가 타서 현장에 있는 친구와 통화도 했다. 혼자 앉아 상황을 전해 듣는 게 현장에 있는 것만큼이나 어렵고 불편했다. 그 마음을 트위터에 적었다. 현장에 있던 어떤 분이 나의 한마디에 힘이난다며 실시간 답글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희망버스를 꼭 타보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그게 첫 번째 이유였다. 5차희망버스엔 꼭 함께하겠다고 말했더니, 심보선은 문학천막을 제안했다. 배낭 속에 간식 대신 책 열권을, 공책과 볼펜을, 광목천과 크레파스를 챙겨 넣었다. 무슨 일이든 함께하면 신이 나는 친 - P112

구 덕분에 두 번째 이유가 보태졌다.
비프광장에서 집회를 마치고 영도 다리 진입을 다시 시도하기위해 우리는 행진을 했다. 경찰이 강경하게 길을 막고 물대포를쏘아댔다. 우리는 뒤로 돌아 다급히 뛰었다. 내가 도망치는 사이에, 맨 앞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기 시작했다. 도망치며 친구를 챙기려고 주변을 둘러볼 때였다. 그 순간, 사람들의 표정을보았다. 모두가 잔뜩 겁에 질린 얼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노래를부르고 춤을 추고 구호를 외치며 흥겹던 얼굴들. 삽시간에 두려움에 떠는 얼굴로 변해 있었다. 나는 이 두려움의 얼굴이 우리의본래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공포와 두려움, 이게 우리 삶의 진짜얼굴임을 그때 나는 보고 말았다. 그때 우리는 공포와 두려움을나눈 사이가 되고 말았다. 각자의 두려움을 서로 보여준 사이가되었다. 그런 사이끼리는 맨 처음 이유가 다를지라도, 같은 희망을 공유하게 된다. 그 희망은 희망을 희망할 권리였다.
- P113

지금 여기, 우리가 하필 같이 있을 때, 우리가 같이 있는 이유가 만들어진다. 이유는 변한다. 세밀해지고 증식된다. 절망과 두려움은 이겨내는 게 아니라 밥처럼 마주 앉아 나누는 것이다. 나누는 사이로 희망이 끼어들어 이유를 완성한다. 희망을 싣고 달리기 때문에 희망버스가 아니었다. 달리다 보면 희망이 실리기때문에 희망버스였다. 김진숙을 못 보고 돌아왔지만 소풍은 좋았다. 하나의 이유가 너무 많은 이유를 만나고 돌아왔다. 빈 도시락을 들고 갔다가 꽉 찬 도시락을 챙겨 들고 돌아온 소풍이었다. - P115

한밤중에, 등불조차 켜지 않은 채로, 어디로 흘러가는지 노늘쪽배 위에 누워 별자리를 바라보며, 창세기부터 지금까지의 우주만물의 역사에 대해 가만히 혼자 헤아리는 사람이 있다 합시다.
그의 뼈에 연보라색 불이 켜집니다. 밤하늘을 날던 반딧불이들은 그가 거대한 동족인 줄 착각합니다. 그는 손가락을 길게 뻗어밤하늘의 별 하나에 갖다 됩니다. 별 하나가 그렇게 이 지구 위의한 사람과 연결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그는 밤하늘의 별에게 말합니다. 바로 여기에 있을게. 그는 수천 년 전부터그렇게 누워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 시대의 미라, 시인입니다. - P122

내 시에 눈물이라는 시어가 많아졌다. 그게 타자의 눈물이었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타인이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나는울음을 듣는다. 누군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릴 때, 나는 나의 무용합을 직시한다. 그 눈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채 방면한다. 위로하지 못한다. 아니, 위로의 무능함에 나 또한 울고 싶어진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시를 쓴다. 이것도 다행한 일이다. 눈물을 기록하다 보니 눈물을 오해 없이 이해하게 되었다. 어떤 눈물은 목적이 따로 있었고, 어떤 눈물은 맹목이었다. 어떤 눈물은 가뭄에쏟아진 소나기였고, 어떤 눈물은 골절되어 살갗 바깥으로 삐져나온 뼈였다. 그렇게 눈물의 맛을, 눈물의 너머를 감지하는 게 내가 한 일의 전부였을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울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서 눈물겨운 사연을 털어놓곤 했다. 흘리는 건 눈물이었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손짓이었다. 누군가를 향한, 누군가를 찾는. - P125

 발화한다는 것. 그 발화를 입증하고 실천한다는 것. 그빤한 거짓말에도 절실함은 절절하다. 그 거짓말과 절실함의 모순과 균열 속에서 인간은 속절없이 명멸한다. 시인이라면, 말의 본질과 발화된 말 사이에서 더더욱 처참하게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 사이를 접착하는 불가능함을 순진하게 욕망한다. 그 불가능한 접착을 모든 인류를 대신해서 욕망하는 자, 그자가 바로 시인이다. 사람의 말로 사람의 일을 기록해야 하는 시는, 그러므로 불가능성을 향해서 간다. 불가능한 줄 알고도 간다. 개의치 않는다.
그 불가능성이 시의 토양이고, 불구의 자리에서 영원히 서성이는자, 그자가 시인이다. - P128

가장 안락한 자리는 언제나 당신들의 눈물 자리였다. 가지 끝에매달린 것들을 눈물이라고 생각할지 이슬이라고 생각할지는 순전한 내 몫이었다. 눈물을 매단 가지를 나는 뼈라고 생각했다. 뼈를 손짓이라고 여겼다.


나는 계속 덧나기만 했어요. 덧난 자리마다 부끄러운 길을 만들고 그 길은 또다른 길들로 무수히 갈라졌어요. 갈라져서 돌아오지 못했어요. 이제 가느다란 가지들로 남아 나는 아무것도 붙잡을 수가 없어요. 내 산책은 당신을 붙잡을 수 없어요. 다만 이렇게, 흔들리기 위해 이렇게 오래 흩어졌던 거예요. 내 생의 이렇게많은, 다른 가지들을 만들었던 거예요. 당신이 손짓하는 것이 보였어요.

이수명, 「생의 다른 가지」에서 - P129

그해 여름에, 그해 겨울에, 나는 혼자서 혹은 누군가와 함께길을 걸었고 무언가를 주웠다. 사소했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물로 가져와 간직하며 지냈다. 어떤 것은 추억을 직조해주었고어떤 것은 계속해서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마음 아픈 것들은 내내 마음을 아프게만 했다. 내가 그 사물과 만난 것은 너무나 사소한 일이지만 사소한 일들은 마음 아픈 일일수록 운명처럼 커다래진다. 주워 온 사소한 사물들을 내가 간직하는 것은 추억이소중해서가 아니라, 사소함이 이토록 커져간다는 것을 잊지 않고 싶어서다. - P144

인간은 고통에 관한 한 무력하다. 나쁜 말은 육체에 새겨진 통점을 아주 쉽게 건드리고 상승작용을 한다. 육체에 내장된통점은 나쁜 말에 순발력 있게 반응한다. 인간이 고통을 잊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고통을 망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고통의 숙주가 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잊기보다는 익숙해지기. 고통의 숙주가 되어간다는 것은, 통증의 수위만큼을 인내심으로 제방을 쌓아두는 행위이다. 인내심이라는 제방은 한꺼번에무너져버리거나 혹은 서서히 균열이 간다. 결국 인내심은 거짓말의 또 다른 얼굴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언젠가는 그렇게 된다. 사랑 가득했던 과거완료형의 말들이 오히려 기억하기조차 끔찍한 거짓말과 같아지는 순간. - P164

쉽게 전화를 걸고 쉽게 전화를 받고, 쉽게 한숨을 섞고 쉽게걱정을 하고, 쉽게 위로를 하고 쉽게 눈물이 난다고 말하는 오래된 벗처럼, 나는 쉬운 얼굴이 되었으면 한다. 쉽게 읽히는 글처럼쉬운 얼굴이 되었으면 한다. 바라보는 것에도, 듣는 것에도, 입술을 떼는 것에도, 헤아림도 없고 헷갈림도 없고 헤맴도 없었으면한다. 쉽게 불러내어 만날 수 있는 벗처럼 쉽게 드는 잠처럼.
행복 같은 게 저 멀리 있는 듯하여 부지런히 그쪽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은 피로함. 저쪽으로 달려가다 매번 넘어져버리는 삶.
넘어져, 흰 셔츠호주머니에 고이 넣어둔 버찌, 양손 가득 소중하게 들고 있던 토마토가 뭉개져버리는 이번 가을은 호주머니가비어 있었으면 한다. 양손 모두 허전한 채로 비어 있었으면 한다.
달려갈 곳도 없이 그냥 텅 비었으면 한다. - P171

히말라야에 갔을 때였다. 지금보다 세상이 좀 더 녹록해 보이던 때였다. 세상에는 일말의 가능성이 새벽녘 희미한 빛처럼 푸르게 존재했고, 내 영혼에도 그 정도의 푸름이 있던 때였다. 길고긴 밤엔 할 일이 없어 지루할 테니 두꺼운 책을 들고 가라는 누군가의 충고를 듣고서, 쉼브르스카의 시집을 배낭에 넣어 갔다. 밤마다 몇 편씩 읽었다. 몇 편 읽으면 스르르 잠이 왔다. 지루해서였다. 그녀의 시를 읽으며 나는 결핍감을 느꼈다. 아름다운 이미지와 매혹적인 시어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멋이 있지 않았다. 말맛의 쾌락도 잘 모르는 고지식하고 답답한 한 시인의 목소리가 잔소리하는 교감 선생처럼 거드름을 피우며 배어 있었다. - P173

쉼브르스카의 시집에도 성공하지 못한 히말라야 원정에 대한기록이라는 시가 있었다. 모닥불을 앞에 두고 나는 이 시를 친구에게 읽어주었다. 히말라야 원정에 실패했기 때문에 쓰인 시덕분에, 무언가에 실패했기 때문에 태어난 지상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배낭을 끌러 시집을 책꽂이에 다시 꽂고, 나는 쉼브르스카를 잊었다. - P174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일기에 이런 문장을 적게 됐다. 사실은모든 시에는 가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나는 시의 진실됨에대해 비관하는 사람에 속한다. 시의 미묘한 나약함에 대해서 어떤 때는 눈물겹고 어떤 때는 지겹고 어떤 때는 그게 진짜 가능성같지만, 사실은 대체로 그게 참 치욕스럽다. 그 치욕이 내 발가락에서 발아하여 허벅지를 타고 허리를 감고 가슴을 스쳐 목덜미즈음으로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할 때에, 위의 문장을 무심고 적었다. 적어두고 보니 기시감이 들었다. 쉼보르스카의 시집을 펼쳐보았다. 사실상 모든 시에는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있다 ‘사실상 모든 시에는」라는 문장을 발견했다. 어느 날은 새벽 네시에 10cm의 〈새벽 네시〉라는 노래를 들으며, 새벽 네시의 가능성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었다. 새벽 네시는 하루가 얼마가 남았는지를 생각할 수 없는 곤란한 시간이지만, 하루가 시작되려면얼마나 남았는지를 생각하게 되는 설레는 시간이다. 하루 24시간중에 그나마 일말의 가능성이 있는 미묘한 시간인 것이다. 얼마나 남았는지와 일말의 가능성, 이것 역시도 쉼브르스카 시 [선택의 가능성]에서 본 문장이었다. - P175

의 가능성」에서다시, 쉼보르스카를 읽었다. 오후 네 시쯤 책상에 앉아서 읽기시작하여 새벽 네 시까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로, 단숨에 읽었다. 연필을 들고 얼마나 많은 밑줄을 그었는지 모른다. 페이지 귀퉁이를 얼마나 많이 접었는지 모른다. 그 히말라야에서 나는 대체 쉼보르스카의 무엇을 읽은 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름다운이미지와 매혹적인 시어에 대한 결핍감을 왜 느꼈는지, 내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지루한 논문에서나 나올 법한 어떤 단어들이, 아버지의 입술을 통해서나 들었을 법한 고루한 단어들이 내가 좋아하던 시들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무미건조한 플롯들이 페이지마다 소신에 찬 어조 위에 얹어져 있었다. 처음 느꼈던 결핍감은 그 결핍을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고야 마는 소신으로 다가왔다. - P176

나의 육체에도 푸른 빛이 점등되고 있었다. 물속에 풀려나가는 푸른 잉크 한 방울처럼, 푸른 멍 하나가 온몸에 번져갔다. 나는 푸른 멍이 든, 불길한 사람이 되어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누군가 내게 편지로 물었다.
이것은 내가 다른 이들에게 묻고 싶었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또다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앞에서 내내 말했듯이,
이 순진하기 짝이 없는 질문보다
더 절박한 질문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20세기의 마지막 문턱에서」에서 - P178

우리는 알고 있다. 봄날에 내렸던 어이없는 폭설도 극렬한 투쟁임을, 아스팔트 균열 사이를 비집고 나온 잡풀도 투쟁하는중임을 엉뚱한 행동, 기괴한 상상력, 불편한 공간, 까칠한 성격등도 실은 투쟁의 산물이다. 우울하고 슬프며, 서럽고 괴로워 흐물대는 우리의 실상도 실은 투쟁의 산물이다. 이 기괴한 모습을지닌 텍스트, 이 우울한 모습으로 무장된 사람을 극구 옹호하는 것도 우리에겐 투쟁의 일부다. 여기엔 싸우고 이겨서 쟁취해낼 거란 의지 따위는 없다. 낙오를 각오한다는 의지 또한 없다. 있는 것이라고는, 이렇게밖에는 할 수 없다는 천성과 이렇게 해야만 내가 조금은 행복해진다는 진심이 있을 뿐이다. 내팽개쳐진,
인간의 천성과 인간의 진심을 사모하기 위해 삶을 낭비해도 괜찮다는, 투쟁이 있을 뿐이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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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무어라고 부르면 좋을까. 제육체의 일부를 입에 물려갓 태어난 목숨의 허기를 달래주는 사람.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던 생각보다 감정이 앞서던 허수아비와 마음을 갖고 싶어하던양철나무꾼과 자신감이 없어 용기조차 없는 줄 알고 살아간 사자를 합쳐놓은 것 같은 사람. 그릇이면 그릇, 솥이면 솥, 움푹 파여 있어 무언가를 채워 넣어야만 하는 물건만을 관장하는 사람.
이 사람도 누군가의 젖을 물고 오직 응애응애 울며 채워달라고채워달라고 보채던 아기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 P64

나 걸어갈 때
발밑에 쌓이던 가시들
아무래도 내가 시계가 되었나 봐요
내 몸에서 뾰족한 초침들이
솟아나나 봐요
그 초침들이
안타깝다
안타깝다
나를 찌르나 봐요
밤이 오면 자욱하게 비 내리는 초침 속을 헤치고 - P65

백살 이백살 걸어가보기도 해요

저 먼 곳에
너무 멀어 환한 그곳에
당신과 내가 살고 있다고
아주 행복하다고

김혜순, 「생일」에서 - P66

침묵은 무엇을 지키는 데에 쓰이기도 하지만 무엇을 행사하는데에도 쓰인다. 침묵은 경청과 묵살이라는 두 극단을 모두 포함한다. 침묵이라는 것은 내가 행할 때는 가장 신중한 방패지만, 타자가 행할 때는 가장 뾰족한 창일 수 있다. 나의 침묵은 방패처럼 나를 보호해주지만, 너의 침묵은 뾰족한 창처럼 나를 찌를 수있다. 나는 말보다는 침묵에 가까운 사람이지만 우선 말해볼 것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 그러므로 실은 우리를위해서, 매사에 번번이 계속해서. - P70

 친구는 살아오면서잃은 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고, 나는 잃은 것에 대해 말할 게 없는 사람이다. 친구는 잃었다는 상실감이 충격이 될 만큼 무엇을 가진 적이 있던 사람이고,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손에 쥔 적이 없어서 잃을 것도 없지만 온통 잃어버린 것투성이인 것 같은 사람이다. 어쨌거나 지쳐 있다는 것에서는 공통점이 있는, 아무것도 손에 쥔 게 없는 초라한 두 사람이 함께 스웨덴의 상하이로 간다. 가서 나는 이 시구를 읽어줄 것이다.


지친 것들에게도 도리가 있다. 벼락 맞아 꺾인 도리, 뼈만 남은도리, 풍경을 뼈로 완성한 도리. 같은 노래를 반복해 부르지 않는도리.

허연, 산맥, 시호테알렌」에서 - P91

날이 어둑해지자 뿔뿔이 앉았던 사람들이 자연스레 벽난로앞에 모여 앉는다. 한 사람은 우비를 입고 마당에 나가 모란꽃을툭툭 치고, 한 사람은 술안주를 내오고, 한 사람은 휴대폰을 받느라 들락거리고, 한 사람은 팔짱을 끼고 유리문에 기대어 장대비가 오는 바깥을 바라본다. 모두의 귓속에는 빗소리가 스민다.
예순에서 스물 몇까지, 서로 다른 나이를 살고 있는 우리 대여섯 사람은 계절마다 한 번쯤은 만난다. 서로 말은 궁하지만 마음은 족하다는 이 모임. 크게 불편한 사람도 없고 크게 재미 보는사람도 없는, 헐렁하지만 어딘가 다정한 모임. 아침부터 만났지만, 점심과 저녁 두 끼를 함께 먹었지만, 날이 어둑해지고서야 대화가 대화를 신속하게 잇기 시작한다. 여전히 앉은 자리 간격은꽤 넓은 편이지만, 모종의 한솥밥 냄새가 그때부터 풀풀거리기시작한다. 오늘의 첫 주제는 몽골. - P93

내 세대는 부모에게서 늘 한국전쟁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요즘 젊은이들은 전쟁 체험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전쟁 체험을입에 달고 사는 세대와 전쟁 얘기를 직접적으로 들어본 적 없는세대 사이에 존재하는 내 세대. 그런 까닭에 이상하고도 외롭게,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지나가는 세월의 길목에서 서성이는 내 세대. 1950년대는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과도 같다.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버린 그때와 지금을 이어줄 단어는 외국이라는 말밖에 - P95

싱겁고 느슨한 모임 속에서 느리게 반응하고 성기게 대화하며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꽤 먼 곳으로 꽤 가파른 곳으로 떠밀려 온 것만 같다. 대화의 간격 속에 묻어 나온 세월의간격이 까마득해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기증이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두리번거린다. 무언가 한참이나 잘못된 듯싶어 절망스럽기도 하고 절망이 아무렇지 않기도 하다. 이상한 것이 손 안에 쥐어져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바통 비슷한것이 슬프지만 슬픔이 전부는 아닌 괴이한 물질. 이것은 세월의 선의일까? - P96

아, 어쩌면
누군가가 여기에다 부려놓은
고통을 내가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많이 닮았을지도 모른다

조은, 「소용돌이」에서 - P97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세심한 배려와 살가운 표현에 능숙한 성격이 나는 언제나부럽다. 좋은 마음을 전하려 어어, 하는 사이에 기회는 물 건너가고, 좋아하는 누군가를 만나러 나갔다가 아무 표현도 못하고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기가 일쑤다. 하고 싶은 유일한 말을 그래서 시에다 적고는 한다.


하고 싶은 유일한 말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반짝인다.
전당포 안의
은그릇처럼.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사월과 침묵」 에서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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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시인. 아무도 내게 시를 써보라고 권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를쓰는 사람이 되었다. 시집 읽는 걸 지독하게 좋아하다가, 순도100퍼센트 내 마음에 드는 시는 직접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했다. 그 생각을 했던 도서관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 그곳에 다시 가고 싶을 때마다, 나는 인파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바쁜걸음들 속에서 혼자 정지한 듯한 시간이 좋다. 혼자가 아닌 곳에서 혼자가 되기 위하여, 어디론가 외출하고 어디론가 떠난다.
그곳에서 좋은 시를 쓰고 싶다는 열망보다 내 마음에 드는 시를 꼭 쓰고 싶다는 소망을 꺼내놓는다. 소망을 자주 만나기 위해서 내겐 심심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노력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심심하기 위해서라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심심함이 윤기 나는 고독이 되어갈 때 나는 씩씩해진다. 조금 더 심심해지고 조금 더 씩씩해지기 위하여, 오직 그렇게 되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다.

시집 『극에 달하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눈물이라는 뼈와 산문집 마음사전』을 펴냈다.

사람을 잘 사귀는 이들을 보면 참으로 부럽단 생각이 든다. 잘다가가고, 잘 대해주고,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고 잘 논다. 유쾌하고 단순하게 깔깔거리는 사람들이 참으로 부럽다. 나는 누군가에게 잘 다가가질 못한다. 잘 대해주지도 못한다. 자주 연락할 줄도 모르고 자주 만날 줄도 모르고 잘 놀 줄도 모른다. 사람은 언제나 어렵다. 사람 앞에서 나는 언제나 서툴다.
그나마 내가 친해질 수 있었던 사람들은 먼저 내게 다가와준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다가왔던 사람들 몇몇은 더 즐거운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고 또 멀어져갔다.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미안한 마음과 마주하는 혼자만의 시간이 점점 많아졌다. 고마워하는 마음과 마주하는 혼자만의 시간도 많아졌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오래 교차될 때, 나는 그리움이란 직물을 직조해낸다. 혼자만의 방에서, 이직물에 풀을 먹이고 다림 - P7

질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사람과 사귀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 직물을 무릎담요처럼 덮고서 나는 시를 썼다.
사람을 만나러 나가지 않는 대신에, 사람의 삶을 엿보는 일을은밀하게 즐겼고 혼자 상상하며 그 삶을 완성해보곤 했다. 친구들의 시를 엿보며 그 상상력을 은밀하게 훔치곤 했다. 사람을 만나서 나의 결핍을 채우는 대신에, 내 결핍의 영역에 존재할 은밀한 상처들을 해석하는 일을 해왔다. 나혼자 잘 살기 위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반드시, 선물로 내밀 만한 것을 만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서 그랬다. 건네받은 선물은 많은데 건네줄 선물이 궁색했던 나에겐, 이 방법밖에 없었다. - P8

이번 선물은 시옷의 낱말들이다. 사람이, 무엇보다 사람의 사랑이, 사랑의 상처가, 실은 그 선물이, 그리하여 사람의 삶이, 삶의 서글픔이, 그 서글픔이 내는 한 줄 시가 된다. 세상을 바꾸려는 손길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시선이 되는 그런 시에다 옷을 입히듯 나의 이야기를 입혀보았다. 나의 이야기가 내가 좋아하는 시 구절과 사이좋게 사귀는 모습을 보고 싶어 - P8

서였다.
나는 떠올리는 것으로써 친구를 사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에게 세 걸음 이상 다가오지 않아준 배려 깊었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나에게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아준 한결같았던 친구들을 떠올리며 혼자서 설레어한다. 세 걸음 이상 다가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우정을 다하는 아직 만나본적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설레어한다.


박꽃이 하얗게 필 동안
밤은 세 걸음 이상 물러나지 않는다

신대철, 박꽃」에서 - P9

사라짐첫눈이 왔다. 눈이 내리던 밤에 나는 사람들과 술집에 있었다.
창밖으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을 골똘하게 쳐다보았다. 사람들은 아, 하고 신음과도 같은 짧은 탄성을 뱉었다. ‘아‘ 속에는 얼마나 많은 아련한 추억들이 담겨 있을까. 추억 한 자락이 없다면 도저히 불가능할 가냘픈 그 깊은 탄식이 들릴 때, 이 첫눈을 보고있을 많은 이들의 입술이 떠올랐다. 모두의 입술 속에서 일제히,
조용히 새어나오는 탄식과 그 탄식을 먼발치에서 받아내며 떨어지는 희디흰 눈송이들. 어떤 눈송이들은 지금쯤 우리집 장독대위로 소복소복 떨어져 내릴 테고, 어떤 눈송이들은 지금쯤 바다위로 떨어져 내려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다. - P17

보이니?
눈 오는 숲은 일요일이다.
영원히 계속될 듯.
하지만 마침내 그칠 것이다.
그때 눈은 숲의 내부로 스며든다.

내 손이 닿지 않는 데까지
낙망하지는 말아다오.
어쨌든 지금은
순수한 현재,

황인숙, 「흰눈 내리는 밤」에서 - P23

이렇게 소중한 것이 함부로 지지 않도록, 잘 지킬 수는 없는것인가 하고. 그녀는 밤새 연꽃에 우산을 씌워준 채 비를 맞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소중한 걸 지킨다는 게 무언지 종내에는 알게 될까. 그래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떤 걸 종내에는지킬 수 있는 능력이 생길까. 그녀는 철들지 않고 살아온 날들에곱표를 한다. 이 시를 읽고 또 읽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베르톨트 브레히트,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P40

남천은 자기 몫의 온도가 부족할 겨울을 대비하는 것이다. 우선,
잎을 버릴 계획을 세운다. 잎을 다 버려야 아주 적은 에너지만으로도 건조하고 추운 겨울을 버텨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잎을 버리기 위해 나무는 잎자루에 떨켜를 만든다. 떨켜는 잎이 광합성해서 만든 탄수화물과 아미노산이 줄기를 통해 이동하는 것을 막는다. 그럴 때 나뭇잎에 축적된 오도가도 못하던 영양분이 색소변화를 일으키고 낙엽을 물들이는 것이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도종환, 「단풍 드는 날」에서 - P44

 그러니까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표현은 틀린 표현이다.
상상력이 정확하다라는 표현이 오히려 더 옳다. 보이는 세계와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숨겨진 공간들, 그 경계의 영역들, 그이상한 미지의 세계에 대해 느끼는 우리의 모호함을 시인은 상상력의 힘으로 정확하게 호명해낸다.


음악은 (…) 붙들려 있는 듯싶다가 다시 떠나는 무엇이다. 지속되는 것과 흘러가는 것 사이를 잇는 가느다란 줄 달아나버리는것. (…) 소멸되는 빛 속에 간직된 불안정한 동요.

미셸 슈나이더,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에서 - P46

상반되는 두 쌍의 동사가 세 번 나오는 이런 문장이 있다. 붙들려 있다와 떠나다, 지속되다 흘러가다, 소멸되다와 간직되다.
이 여섯 낱말은 음악이라는 모호한 물리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되었다. 음악은 명명백백한 세계가 아니다. 경계에서 창조되는 경계의 세계다. 붙들렸는가 싶으면 떠나고, 지속되는가 싶으면 흘러가고, 소멸된 줄 알았던 것들이 간직돼 있다는 것을 우리 - P46

상상력는 음악을 들으며 느낀다. 서로 모순된 단어를 두 개씩 세 쌍을나란히 배열해야만 설명될 수 있는 세계 음악은 바로 그런 세계이고,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가 바로 그 세계다. 우리는 살면서 종종 느끼곤 한다. 붙들렸는가 싶으면 떠나버리고, 지속되는가 싶으면 흘러가버리고, 소멸됐는가 싶으면 간직되어 있는 신비한 어떤 것을 그 느낌이 만져질 듯 만져질 듯 우리 주변을 감싼다. 그때에 우리는 기쁘면서 애달프고, 허무하면서 뿌듯하다.
이 이상한 느낌을 가장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이 음악의 세계다.
과녁의 정중앙에 화살이 날아가 꽂힌 듯한 정확함 때문에, 음악을 듣는 우리 마음은 된통 애잔해지는 것이다. - P47

주법은 진동의 미세한 입자를 시간 속에 끼워 넣으며 악기의 경계와 세계의 경계를 건드릴 뿐인데 이 건드림, 이 건드림이 직조해내는 무늬, 진동의 미세한 입자들이 뿜어내는 숨과 그 숨의 웅숭그림이 천변만화해내는 세계,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 뒤표지에서 - P47

악기는 악기의 몸과 악기 바깥의 세계 그 경계를 연주자가 건드려줄 때에 연주된다. 주법은 음이라는 미세한 입자를 흔들어시간 속에 퍼뜨려놓는다. 입자는 흔들리며 파도처럼 공간으로퍼져나간다. 그때 비로소 음악이 들린다. 경계에 도사린 무수한숨결을 우리는 음악을 통해서 지각할 수가 있다. 음악이 경계의숨결을 무늬로 그려내지 못했다면, 우리는 감지 가능한 많은 세계를 다 놓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 P48

문자는 그 자체가 기호이자 그림이다. 그게 문자가 지닌 일차적인 매력이다. 그런데 한자는 기호보다 그림 쪽에 약간 더 치우쳐 있다. 그 점 때문에 나는 서예도 좋아하고 전각도 좋아한다.
잘하진 못하지만, 혼자서 입춘대길을 써서 해마다 현관문에 붙여놓을 정도는 된다. 벼루를 꺼내 먹을 오래 갈아 준비해놓고 화선지를 펴 문진을 올려놓은 다음, 호흡을 가다듬고 붓을 드는 느린 동작들이 좋다. 찬찬히 찬찬히 좋은 구절을 고전 속에서 찾아내어 천천히 천천히 한 획 한 획을 긋는 일은 나를 사람답게 만든다. 찬찬함과 천천함 덕분에 내가 사람다워지는 느낌이 난다. - P53

그릇 하나하나마다 이야기가 피어올랐다. 마룻바닥을빼곡히 메운 채 동그랗게 포개진 그릇들 사이에 나도 동그란 그릇처럼 쪼그려 앉아 그 얘기를 들었다. 엄마의 움푹 팬 물건을바라보려니 허기가 졌다. 어째서 엄마가 애지중지해온 물건들은이토록 움푹 패어 있어 무언가 채워넣게 생긴 걸까. 채워 넣고채워 넣는 것으로 평생을 보냈을 엄마의 하루하루가 난데없이몰려와서, 그릇만 물끄러미 쳐다보았을 뿐인데도 허기가 포만감처럼 밀려왔다. 엄마를 무어라고 부르면 좋을까. 엄마라는 이름에 담긴 슬픔들이 국그릇 엎어지듯 쏟아졌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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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아침, 광교산으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시집 <수학자의 아침>에서 ‘여행자‘를 읽었다. 갑자기 먼 곳으로 떠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폭우에 넓어진 하천이 새로웠고 산빛은 먹먹하게 깊어서 우림의 숲을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휴일답지 않게 한산한 버스에다 냉방이 잘 되어선지 이 습한 곳을 떠나 미시령쯤 지나간다면 좋겠다싶은, 잠깐 간절해지는 십 분이었다.
어디로든 떠날 수 없으니 느끼고 싶어졌다.
시인의 여행 산문집을 읽기로한다.
<그 좋았던 시간에>를 읽는다. 문장보다 사진을 보는 시간이 더디다
<시옷의 세계>도 읽고 싶다.
작은 싸이즈의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가 눈에 먼저 띄었다. 그렇게 계통없이, 맥락없이, 뜬금없이, 널 뛰는 독서중이다.
읽었던 책들이고
<시옷의 세계>를 제외하곤 실망했던 책들인데... 다시금 읽힌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기운을 감지한다.

인용되는 ‘정희진‘의 책들, 신간들 또한 기다리고 있다.
시리즈를 처음부터 다시 읽을까? 어쩔까? 어정쩡하고있다.
‘버지니아 울프‘를 읽고나니 ‘정희진‘, ‘레베카 솔닛‘, ‘임은정‘도 마구 읽고 싶다.
마음이 바쁘다.
시간이 없다.
언제나 시간과 마음이 문제다.
어제부터 아침, 저녁 바람이 달라졌다. 가을이 묻어있다. 곧 이 여름을 추억하게 되리라. 시간이 쏜살같다. 60키로다.

여튼 우선은 다음도 김 소 연이다.




사랑에 대한 산문을 쓰겠다는 말을 누군가에게 하면, 둘중 하나는 표정을 찡그리거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응한다. 왜 사랑 타령을 하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다. ‘멜로melo‘적인 사랑 타령이겠거니 지레 거부감을드러낸다. 식상해서 도저히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다는표정임에 틀림없다.
멜로. 원래는 ‘노래‘라는 뜻의 그리스어다. 멜로드라마는 노래가 곁들여진 연극이 그 기원이다. 프랑스혁명이후부터 흥행하기 시작한 멜로드라마는 기존의 정통극과 달리 통속성과 오락성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 통속성과 오락성은 멜로드라마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되었다. 스토리텔링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는 이후로 대중이 가장 잘 몰입하고 가장 손쉽게 음미하는 소재가 되었다. - P11

나는 사랑에 무능력했던 나의 경험들이 사랑에 대한무지와 두려움에서 기인되었다고 생각해왔다. 언젠간 이 - P12

두려움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기위해서, 사랑을 멜로로 연결 짓고 식상해하던 습관이 사랑에 대한 결례라는 걸 우선 알아채야 했다. 사랑의 적들은 사랑의 반대편에 있지 않고 사랑의 내부에 매복해 있다는 것도 알아채야 했다. 사랑의 적들이 겹겹이 덧씌워진 채로 사랑은 본래의 얼굴을 잃은 지 오래되어 보였다.
사랑에 대하여 무지한 채로도 사랑을 했던 나같은 이들이, 사랑으로부터 소외되는 것으로써 사랑을 소외시켜왔던 것이다. - P13

세상에서 사람이 비루해지거나, 사람 앞에서 세상이비루해지는 걸 자주 목격했다. 사랑이 그 비루함을 어떻게든 구원할 수 있다고 여겼다. 사랑의 뒤꽁무니를 좇는사랑이 아니라, 사랑이 끝나면 다른 사랑을 이어가면서,
사랑에 의해 사람이, 혹은 사람에의해 사랑이 마모되는류의 사랑이 아니라, 단 하나의 사랑을 인간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 그녀는 알고 싶었다. 어떻게 사랑을 시작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사랑을 완성하는지를.
사랑의 무수한 결을 차곡차곡 조심스레 펼쳐서 잘 키워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랑의 기쁨을 만끽하기에 인간의 삶은 너무 길고, 사랑을 온전히 이해하기에 인간의 삶은 너무 짧은 것 같았다. - P23

 사람들은 여전히 둘을 비교했다. 누군가 비교를 하더라는 말을 전해주기도 했다. 누가 누구를 버렸는지를 궁금해하고, 누가 더 안 좋아지고있는지를 평가했다. 그와 함께 술을 마시던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그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지금 그와 함께 있다며, 그녀를 불러내려 할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짓궂었고, 사람들은 여전히 두 사람을 묶어서 생각했다.
자세한 속 얘기를 듣고 싶어 하는 가까운 이들에게 무슨말이든 하고 나면, 돌아서서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했던 말들이 벌떼처럼 그녀를 에워싸고 윙윙댔다. 그녀는 자신이 뱉은 말들 속에서 벌에 쏘인 것처럼 앓았다. 퉁퉁 부은 붓기와 따끔거림이 그녀의 신체가 되어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입 밖으로 뱉어지는 이야기는 매번 어리석었다. 정교할 수 없고 정확할 수 없는 엉터리였다. 아예입을 다물면, 그만큼의 오해가 또 다른 편에 쌓여갔다. - P31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제도, 가장 부패한제도,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는 가족이다. 가족은 곧계급이다. 교육 문제, 부동산 문제, 성차별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부뿐만 아니라 문화 자본, 인맥, 건강, 외모, 성격까지 세습되는 도구다. 간단히 말해, 만악의 근원이다.

정희진, 「가족 밖에서 탄생한 가족: 가족의 탄생」, 「혼자서 본 영화, 교양인,
2018, p. 27.



편한 사람. 나를 믿어주는 사람.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편에 서줄 사람. 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는 ‘가족 같은 사람‘이라 칭한다. 타인이 가장 친밀히여겨질 때 ‘가족 같다‘는 표현을 쓸 만큼, 가족이란 말은 - P34

유대의 최대치를 표현한다. 날로 험해지는 세상에 비해 날로 나약해지는 개인은 어떻게든 보호를 받고 싶은데, 그럴 때 우선 떠올리게 되는게 가족밖에는 없다는 듯.

우리는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실재하는 가족은 특별함을 일찌감치 지나쳐 온갖 문제가 산적한 집합체가되어 있다. 우리들 내면에 간직된 상처의 가장 깊숙하고거대한 상처는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 P35

옳은 방식이 미리 결정되어 있을 때, 우리가 그은 것을 모두에게 강제할 때는 그 삶 자체가 배척당한것일 수도 있다.

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 조현준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5. p. 68,


서로를 선택할 수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좋아할 수없는 사람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당위가 가족에게는 있다. 이 당위가 인간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줄아는 능력을 보장해주면 좋으련만, 사랑이 지닌 위험으로 기울 때가 많다. 그래서 타고난 사랑의 능력을 훼손당하기도 하고, 인간을 무의식적으로 불신하기도 하며, 미지에 대한 당연한 불안에 내성이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사랑의 압력과 폭력에서 기인된 트라우마가 심장 깊숙이 각인되어버리기도 한다. 오래된 제도로서의 가족은서로를 계속해서 희생해야만 존속될 수 있다. 개인의 서사가 두려움 없이 전달되고 이해되며 존중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 P39

어떻게 하면 사랑이란 걸 잘 줄 수 있는지를,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들은 궁리한다. 사랑을 잘 주는 일은그래서 곧잘 자기계발서의 주요 아이템이 되어왔다. 특히 구애의 기술에 대해서는 매뉴얼이 차고 넘친다. 자신의 사랑이 잘 전달되기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매뉴얼이 머릿속에 그럴듯하게 장착되어 있다.
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받는 자의 제대로 된 행동인지, 잘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지침들은 거의 없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결여와 반대에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결여 없이 시작되는 노력과 궁리는 없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는 자는 사랑에 대하여굳이 궁리하고 배울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 P73

상처를 남기고 종결된 사랑은 대개 초라함과 추악 사이에 놓여 있다. 상처를 남기지 않고 종결된 사랑은 별로없다. 사별의 경우가 아니고서는 사랑했던 사람을, 사랑이 시작될 때의 그 아름답던 사람으로 기억해주는 이 역시 별로 없다. 이미 초라함과 추악 사이에 버려진 사랑을스스로의 발화로 인해 보다 더 초라하고 보다 더 추악한것으로 재편하면서까지 자신의 실책을 덮어버리려 해서는 안 된다. 차라리 지나간 사랑은 봉인해야 옳다. 입을다무는 게 낫다. 마치 처음 포옹을 하던 그 순간처럼,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온전히 포갬으로, - P83

그녀는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어디까지 용서해야하고, 어떻게 용서를 해야 하는지, 용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지, 처절하게 질문을 해본 적이 누구나 있다는 사실을말이다. 용서에 대한 우리의 질문은 종교적인 차원에서의용서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공허한 넋두리일 뿐이라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심리치유자이며 작가인 스캇 펙은 이 용서라는 개념을 용인이라는 개념과 대비하여 설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흐릿한 이해를 앞세운 후 잘못을 저지른 자를 외면하고 체념하는 것을 용인이라고 한다면,
당신의 문제는 바로 이것이라며 잘못을 분명히 해두는것을 앞세운 후에 그자를 다시 포용하는 것은 용서라고. - P100

사랑에 위기가 올 때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게 된다. 한계랄 것도 없고 직시랄것도 없다. 뻔하디뻔한, 좁디좁은 자신의 그릇. 그 초라한 됨됨이 앞에서 원래의 자신보다 좀더 큰 그릇이 되려고, 그걸 억지로 해보려고 애를 쓰느라 남모르게 힘이 든다. 사랑에 위기가 올 때에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척을 하느라 힘들어한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 돌연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왜 나를 괴롭히면서까지이해와 관용을 한없이 펼쳐야 하는가. 나는 어쩌다가 매번 그런 역할만을 맡는가. 한숨에 회한이 섞인 채로 이렇게 되뇌게 된다. "도대체 왜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할까?" - P101

 용서받은 자가용서한 자의 미덕을 닮아가는 경우보다 용서한자가 용서받은 자의 악덕을 닮아가는 경우가 더 빈번하다. 사람을더 많이 만날수록, 경험이 더 쌓일수록, 세월이 더 흐를수록 용납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흐지부지 용납하고 있는사람이 되어간다.
도대체 어디까지 용서해야 옳을지를 고민할 때에 그녀는 멈칫한다. 용서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거둔다.
사람이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윤리마저자기 자신으로부터 스르르 빠져나가버리는 사태가 두려워서다. 무엇보다 용서하는 주체의 ‘용서-하다‘라는 말의 자격을 그녀는 갖고 있지 않다고 여긴다. 용서라는 말이 용서를 하고 싶어 한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용서를 받고 싶어 한 누군가에 의해서 발명된 말 같아서다. - P104

지우개 가루를 호호 불어버리는 그 시간동안에, 그녀는 그리움으로 인하여 괴롭지 않았다. 그리워만 하느라 애가 닳던 시간들은 이미 저 너머로 가 있었고 그녀는 견딜 수 없는 어떤 상태에서 조금 비켜나 있을 수 있었다. 실물도 없이 사진도 없이, 다만 기억만으로 그리운 얼굴을 완성할 수 있었던 그녀의 경험을 무엇이라 이름 붙이면 좋을까. 가려운 부위를 벅벅 긁는 시간과 닮은 것은아닌지, 치통 같은 것에 복용했던 진통제와 닮은 것은 아닌지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지루함을 게임이나 오락영화같은 것으로 때우는 것과 닮은 것은 아닌지. 보고 싶은사람과 연결되어 문자를 주고받거나 화상 채팅을 하는것하고는 어느 정도 비슷한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때 이후로 그녀는 사람의 얼굴을 선으로 그리는 데에 따른 두려움 같은 게 사라졌다. 그림 실력이 향상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냥 그리고 싶으면 마음껏 그릴 수있는 자유가 생긴 셈이었다.
- P108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 연작을 보았을때도 그녀는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 그림을두고 수련이 피어 있는 모네의 정원을 상상할 수도 있고,
모네의 정원에 기웃대는 빛의 다양한 실체를 보며 경이로위할 수도 있다. 모네가 인상주의 화가로서 어떤 경지에도달했는지, 모네의 예술적 집념이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수련> 연작이 주는 경이로움은화폭에 표현된 것에 국한될 리가 없다. 모네의 수련은 단지 짚 더미이거나 양산을 쓴 여인이거나 바람에 살랑이는 들판이어도 된다. 하지만 하필 수련이, 눈이 멀어가는 - P110

노년의 화가 앞에 펼쳐져 있었고 수면에 고요히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모네는 잘 보이지 않는 시력으로 수련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지금 자신 앞에 펼쳐져 있는 그것. 언제나 한결같이 그 자리에 수런거리고 있는 그것. 그것을 그 큰 화폭에 담아내기까지, 250점에 가까운 연작을 계속해서 그려내기까지 수련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만한 그림들을 그릴 그만한 시간이 모네에게는 있었다.
이것은 풍경을 그린 것이라기보다는 풍경을 그려낸 시간을 그린 것에 해당된다. <수련> 연작이 인상주의를 넘어서서 추상의 세계를 여는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라고 평가를 받는 것도, 모네가 자신의 황량하고 드넓은 시간을 드넓은 화폭에 담아냈기 때문일 것이다. - P111

외로움이 윤기 나는 상태라는 실감은 그녀에게 그리오래된 것은 아니었다. 외로울때면 쉽게 손을 뻗어 아무에 가까운 사람과 애인이 되었던 시절도 있었고, 외롭다는 사실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늘 누군가와 연결되어 아무 말이든 나누어야 잠이 들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고 혼자서 식당에 찾아가 밥을 먹는 일이 도무지 어색해서 차라리 끼니를 굶던 시절도 있었다. 연락처 목록을 뒤져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지만 겨우 숨을 쉴 수 있을것 같은 나날도 있었고,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히는 게 두려워 누군가가 그녀를 생각하고 있다는 확인을 해야 안도가 되는 나날도 분명 있었다. 누군가와 연결이 되어야만 겨우 안심이 되던 그 시절들에 그녀는 사람을 소비했 - P119

리베카 솔닛이 제안하는 산책도 구애가 필요치 않다.
구애의 절차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행위이다. 평범하디평범한 행위인 산책. 걷는 것. 나란히 걷는 것. 같은 길 위에 서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마주 보는 것이 아닌 것.
구애의 방식보다 더 깊고 정확한 구애 같다. - P15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곁에 두되, 다른 노선은 정녕 없는 걸까.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안을 연료로 사용할 수는 없는 걸까. 이 시스템으로부터 이탈하는 데에 필요한 용기를 서로 보태기 위한두 사람. 거대하고 획일화된 악습들의 연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관성을 멈추기 위해 뜻을 같이하는 두 사람. 시스템의 바깥에서 자기 자신의 내적 질서와 부합되는 새롭고 자그마한 시스템을 함께 모색하는 두 사람, 이인삼각처럼 헛둘헛둘 발을 맞추는 것에 사랑을 사용하면 좋겠다. 목표를 향해서 헛둘헛둘 뛰어가는 게 아니라, 목표를 지워버린 채로 출렁이는 불안의 요동에 리듬을 맞춰그렇게 하면 좋겠다. - P155

가장 아껴 말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장 용기 있게 말해야 할 단어가 ‘우리‘라는 단어라고 이제 나는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어떨 때는 남용되거나 오용되고 어떨 때는 의미를 소실한 듯 사어처럼 들리기도 하는 단어이다.
드넓은 복수형으로 쓰이지 않고 단 두 사람으로 쓰일 때에만 겨우 제 뜻을 표상해내는 듯 유약해진 단어이다.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민감한 단어이다. 이 유약하고 민감한 단어를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지 고민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고민의 방향이 대체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왔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병률은 이런단어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향하게 다룰 때가 더러 있다. "우리라는 말도 이제 힘이 없습니다"라고 적고야 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병률이 이 문장을 적어둔 자리의 맥락 속에서 이 씁쓸하고 쓸쓸한 문장은 야릇한 힘을 얻는다. 애써 우리를 우리라고 위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과 우리를 우리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우리는 우리일 수밖에 없다는 안전한 결속, 어느 한쪽에 의해서 보이지 않게 행해질지라도 괜찮을 듯한 든든 - P178

같은 게 배어 나오고야 만다. 그는 어느덧 이렇게 문장을 다스려 가장 단정하게 다룰 줄 아는 시인이 되어 있다. 시인은 문장을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 가장 능란해야옳지만, 능란한 문장을 쓴다는 걸로 가장 좋은 시인이 될수는 없을 것이지만, 문장을 정말로 능란하게 다루려면그 문장의 깊이만큼 깊이 있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문장을 한 걸음 앞에 던져놓고서, 그 문장과 닮은 사람이 되기위해 문장을 쓴다. 그래서 문장은곧 서약과 다름없다. 이병률이 한번도 직접적으로 적어둔 적은 없지만, 바다는 잘 있습니다』곳곳에는 서약을갈음하는 문장들이 불씨처럼 숨어 있다. 자신이 쓴 시와더 겹쳐지고 더 닮아가는 그가 가장 분명하게 다짐을 해둔 문장을 오래 들여다본다. - P179

"기다린다 이제 밥을 기다리는 일과/주문을 기다리는 감정의 경중은 같다"는 그 "지탱하려고 지탱하려고감정은 한 방향으로 돌고 도는 것으로 스스로의 힘을 모은다"는 그, 그래서 지탱이 가능해짐으로써 또다시 새로워지는 그. 지금 이병률은 인간의 한 생애에서 가장 괜찮은 순간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그는 사람들이 으레시인에게 기대해온 열정이나 낭만의 상태가 아니다. 그의시는 대단한 결기로 포장되어 있지도 않고 냉소나 환멸로 손쉽게 치환되어 있지도 않으며, 그래도 그럭저럭 살만하지 않으냐눙치려 들지도 않는다. 낙담의 자리에서
"지탱하려고 지탱하려고" "힘을 모으는, 은은하고도 든든한 모습으로 그는 서 있다(「생활이라는 감정의 궤도). - P180

그는 "발을 땅에 붙이고서는 사랑을 따라잡을 수가없다"(이토록 투박하고 묵직한 사랑」)는 걸 알고 있는사람이다. 사랑이 이 지상으로 내려와서 우리 곁에 넉넉하게 머물러주기를 밑도 끝도 없이 기다리는 시인들과사랑이 우리 곁에 이제는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 P180

든 온몸으로 입증하려는 시인들이 많고 많은 와중에, 이병률은 우리들 속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사랑과 가까워지는 것에 힘을 모으는가보다. 한 발짝 물러선 것이 아니라 들어올려서 나는 이런 사람이 쓴 새 시집을 가장 먼저읽은 사람이 되었다. 행운이라 할 만하다. 나는 항상 가장 나쁠 때에 가장 운이 좋았다.

우리가 살아 있는 세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계와 다를 테니
그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어 만나자
- 이 넉넉한 쓸쓸함」 부분 - P181

우리 시대의 유일무이한 리얼리스트
-최승자, 『빈 배처럼 텅 비어

시인 최승자는 잘 알려져 있다. 이성복, 황지우와 더불어시의 해체를 도모한 3인방으로 잘 알려져 있고, 그 누구보다 독하고 끔찍한 시를 온몸으로 썼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고, "정신분열증"으로 인해 병원에서 지낸 세월이 태반이었던, 아슬아슬한 우리 시대의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불행한 시인의 대명사처럼 최승자를 인용했고, 문학에서 페미니즘을 논할 때마다 최승자를 여전사처럼 앞세웠고, 새로운 여성 시인에게서 독한 목소리를발견할 때마다 ‘최승자‘라는 어머니의 뒷줄에 세우고 ‘최승자처럼 쓴다‘며 계보‘를 매겼다. - P182

최승자가 쓴 시도 잘 알려져 있다. ‘아픈‘ 최승자의
‘독한‘ 시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미 죽어 있다"고 말했던 최승자의 독한 탄식에 충격을 받았고 감동을 받았다. 그의 독한 어법은 사랑받았고 예찬받았다. 모든 예찬속에서 진정한 승자처럼 보이는 최승자의 삶은 그럼에도불구하고 점점 더 악화되어갔다. 널리 알려진 모든 것이그러하듯이, 최승자의 시는 실제로 읽히는 일보다 풍문으로 퍼져가는 일을 더 많이 겪었다. 실제로 읽힐 때에도읽혀왔던 방식으로만 읽힐 뿐, 새롭게 읽히는 적은 드물었다. 그간 최승자에게 바쳐졌던 찬사와 걱정 들은, 그가이 세계에 일체의 편승도 하지 않았다는 염결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 염결함을 알아보는 이는 많았어도, 그염결함을 잘 이해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들은 최승자의 시세계에 전적인 탑승을 하지 않음 [못함]으로써, 이 세계에 편승하고 있었던 우리의 염결하지 못함을 되려 염결하게 지키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P183

사랑했던 그대여 나는

김치수와 김현을 비롯한 많은 비평가는 최승자 시의 키워드를 ‘사랑‘이라고 파악했다. "미흡한 사랑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은 〈존재의 쓸쓸함〉"이며, "이별의 아픔을 통해 진정한 사랑의 불가능을 겪은 경험"이며, "운명론적 불행"이라고 해석했다.

잡탕찌개백반이며 꿀꿀이죽인
나의 사랑 한 사발을 들고서,
그대 아직 연명하고 계신지
그대 문간을 조심히 두드려봅니다.

- 그대 영혼의 살림집에 부분 - P184

만장하신 여러분
나를 죽이고 싶어 환장하신 여러분
오늘 내가 죽는 쇼는 이것으로 끝입니다.
십년 후 똑같은 시각에
똑같은 염통을 달고
이 장소로 나와주십시요.

「무제2」 부분

이 위의 시에서 상정한 10년 후는 대략 1994년이었다.
최승자는 "죽는 쇼"를 그때 끝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한 번 죽고 다시 살아나서 가까스로 시를 쓰며 연명해왔을지도 모르겠다. 연명이라는 말에도 최승자에게 가혹한 요청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담긴 것 같아서 고쳐 적어본다. 최승자는 자주 아프지만 자주 회복했고, 회복할 때마다 시집을 출간해왔다. 어쩌면 시집 출간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회복되어갔는지도 모른다. 지금으로부터 다시 "십년후 똑같은 시각에/똑같은 염통을 달고/ 이 장 - P206

소로" 우리들이 나간다면, 최승자와 거의 비슷한 모습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우리가 더 이상 죄 짓기를 거절하고, 최승자처럼 차라리 아프기를 각오한다면 말이다. 최승자는 "우리가 천사처럼 보이지않는 것은/세상 환영에 속아 살고 있기 때문이다"라 말하고 있다. "우리는 ㅅ도 아니고 도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ㅅ이 될 수 있고 詩가 될 수 있을까. - P207

내가 궁금했던 것은 사랑에 대한 개념이 아니라 사랑함에 대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사랑함은 사랑과는 다른 얼굴이어야 한다. 사랑은 사랑을 재배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사랑을 돌아보고 돌보는 것이어야 한다. 사랑을 사랑해온, 사랑을 명사로 고정하는 사랑의 담론들에 비켜서서, 사랑이 더 이상 감정의 영역에 머물러 있게내버려두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학습해온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 힘도없다. 하지만 사랑함은 그렇지 않다. 삶이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세상이 사랑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세상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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