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저녁, 늘 그렇듯 서로 어울리지 않는 여섯 명의 목적 없는 수다로 채워진 긴 하루의 끝에, 나는 로더의 수영 의식을 위해 그와 함께 해변으로 걸어 내려갔다. 로더는 돌들을 밟으며 조심스레 물가로 걸어갔고, 나는 곁에서 그를 쳐다보지않고 걸었다. 우리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은서늘하고 눈부셨으며 가슴이 아플 만큼 감미로웠다. 그러다 내가 로더를 향해 몸을 돌렸다. 사라져가는 빛 속에서 로더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거기, 물가에 수평선을 내다보며 서 있었다.
그의 뒤로는 사람들이 있었고, 앞으로는 자연의 세계가 펼쳐져있었다. 로더의 얼굴에는 강렬한 안도감이 담겨 있었다. 그의식을 하게 만드는 것은 그 강렬함이었다. 문득, 로더가 혼자 갇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더가 자연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의 외로움을 잊도록 자연이로더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 P151

나는 마치 로더 안에서 분노를 찾아냄으로써 내 안의분노를 줄이려는 것 같았다. 로더와 함께 지내는 동안 나는 정말로 그의 불능 상태를 숭배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자신의 일부에 계속 몰두할 수 있었다.
나는 장례식장에 놓인 로더의 관을 바라보았다…. 내가 밑바닥으로 가라앉혀버린 수년 동안의 멋진 대화를, 침몰해버린황금과 건져낸 쓰레기들을….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군가가 말하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내가 무엇을 할수 있을까? 배는 벌써 몇 시간 전에 가라앉았고, 나는 경험이너무도 부족한 수영 선수였다. 나는 몸을 돌려 열린 문을 향해걸어갔다. - P166

얼마 전 뉴욕에서 열린 어느 파티에서 샬럿과 우연히 마주쳤다. 다음 날에는 식당에서 대니얼을, 그다음 날에는 우체국에서 마이라를 만났다. 나는 이 사람들을 무척 좋아했는데 (얼마나좋아했는지 모른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들 머릿속에 들어있는 문장들이 간절히 듣고 싶었으니까.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내가 그들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말하는 문장의 형태에 반응할 때면 내 문장들도 풍요로워지고 자유로워진다. 생각은 풍부한 표현으로 넘치고, 감정들은명확해지고, 다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진다. 내게 곧바로 반응해주는 누군가의 지성이 있는 곳에서 내 지성이 작동하는 소리만큼 나를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샬럿이나 마이라, 대니얼과 대화할 때면 서걱거리는 느낌이 씻겨나간다. 나 자신에게 연결된 나는 이제 다른 사람들과도 연결된다. 고독이 사라진다. 피부 아래, 나의 내면은 평화롭다. - P169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는 일상적용도로 쓰이지 않게 되었고,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가아니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한다.
대학에서의 시간을 헤쳐나가는 여정은 내게 마치 순례길과도 같았다. 나는 지역 인사들, 존경받는 사람들, 귀하신 분들 사이를 이리저리 오갔다. 때로는 환영받았고, 때로는 무시당했으며, 또 때로는 동등한 사람을 대하는 정중한 태도로 받아들여졌다. 만남마다 제각기 다른 결과가 뒤따랐다. 나는 받아들여지면서 무언가를 배웠고, 무시당하면서 또 다른 무언가를 배웠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어떤 경우든 나는 매일의 대화가 굴러떨어지는 텅빈 공간에, 열렬한 수다를 둘러싼 그윙윙거리는 침묵에 충격을 받는다. 내가 학교에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 침묵의 역사다. - P176

내가 처음으로 ‘대충 만들어낸 반응 증후군‘을 구분하게 된것은 임팔라에서였다. 그때는 내가 그 증후군의 피해자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이번에는 나 자신이다소 큰 규모로 ‘대충 만들어낸 반응‘을 보였고, 그러자 그 역학이 뚜렷하게 다가왔다. 일의 앞뒤가 딱 맞았다. 학기가 진행될수록 낭독회의 객석이 점점 비어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맥 디엔스택이 왜 소외당하는 문제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 P208

나는 커피를 한 잔 타려고 일어났다. 이건 바보 같은 짓이야, 나는 물이 끓어오르기 직전인 주전자에 대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책망해봐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안 좋은 생각은몇 시간이나 며칠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내가 무엇을 하든, 강의를 하든, 책을 읽든, 운전을 하든 갑자기 ‘로이드와 캐럴과폴‘이 기억났고, 그 생각은 바늘처럼 내 마음을 찔러댔다. 내가원하는 것이라고는 오직 그들과 함께 있는 것, 그들의 관심, 그들의 즐거움뿐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꼴찌에게 주는 상처럼 감흥이 없었다. - P213

저녁이 끝날 무렵, 배가 부른 나는 식당을 나섰다. 늦은 시간이었다. 열기는 사라져 있었다. 나는 사막의 깨끗한 공기에숨을 깊이 내쉬며 잠깐 걸었다. 임팔라 어느 곳에서도 나 자신을 되찾게 해주는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런 대화를 많이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한 번 정도만 있어도충분할 텐데, 그 한 번이 내겐 없었다. 비슷한 대화는 많이 나눴지만, 정확히 그런 대화는 나누지 못했다. 그러니 로이드와 캐럴과 폴에 관한 생각을 곱씹을 수밖에. - P214

결혼은 친밀감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유대감은 부서져 내린다.
공동체는 우정을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참여는끝이 난다.
지적인 삶은 대화를 약속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삶의 신봉자들은 괴상해진다. - P216

사실은 정말로 혼자 있는 게 더 쉽다. 욕망을 불러일으키면서 그것을 해결해주려 하지 않는 존재와 함께 있는 것보다는.
그럴 때 우리는 결핍과 함께하게 되는데, 그건 어째선지 참을수 없는 일이다. 그결핍은 가장 나쁜방식으로 우리가 정말로혼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다시 말해 우리의 상상을 억누르고, 희망을 질식시킨다. 우리가 처음에 갖고 있던 활기를 억누른다. 사기가 꺾이고 무기력해진다. 무기력은 일종의 침묵이다. 침묵은 공허함이 된다. 사람은 공허함과 함께 살아갈 수 없다. 그 압박감은 끔찍하고, 사실 참기 힘들며, 견뎌서는 안 되는것이다. 그 압박감을 견디다 보면 사람은 폭발하거나 무뎌지고만다. 무뎌진다는 것은 슬픔 속으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 - P216

하루 일이 끝나고 그들이 헤어질 때에도 어머니와 대화하고 싶었던 레빈슨 씨의 욕구는 종종 다 해소되지 않았고, 그는밤늦게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습관이 생겼다. 이 편지들은분위기와 내용에 있어 놀랄 만큼 다채로웠다.
편지는 그날 그들의 대화가 끝난 시점을 반영하면서 시작되기도 했고, 그가 극장에서 알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갈망에 흠뻑 젖었노라고 갑작스레 알리기도 했으며, 아이가 아파서집이 혼란스럽고 인생이 지옥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편지에 - P219

적힌 언어는 시적일 때도 냉소적이거나 자포자기한 어조일 때도 있었는데, 그가 오직 글에서만 드러낼 뿐, 베이커리에서 얼굴을 마주하고는 드러내지 않는 다양한 반응들이었다. 주제가무엇이든, 분위기가 어떻든, 자정에 자리에 앉아 레빈슨 씨는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길게 그리고 느긋하게 편지를 썼다.
그는 만약 극장에 갔다면 그 공연과 배우들의 연기와 14번가에 모인 사람들을 묘사했고, 아이가 아프면 방 안의 분위기와 아픈 아이의 안색, 의사가 어떻게 해주었는지를 털어놓았으며, 전에 나누던 대화를 이어갈 때면 뉘앙스와 여담을 넉넉하고 자유롭게 섞어 넣었다. 필연적으로, 그는 자신이 얼마나 생각이 많은지, 그리고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갈망에 차 있는지를 드러내곤 했다. 그는 바로 그 순간의 날씨를, 그가 앉아 편지를 쓰고 있는 테이블 너머 창문으로 보이는 거리의 모습이 어떤지를 글로 옮겨놓기도 했다.  - P220

로라와 나의 우정은 20년 넘게 친밀하게 이어져 왔는데,
우리 삶의 일상성에 대한 논평 거의 대부분이 전화선을 통해이루어져 온 것이 특징이다. 이야기를 할 때면 우리는 각자 거치대에 수화기를 놓고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척 자기 방의 텅빈 곳을 노려보면서 대화에 집중한다. 이 대화들에는 문학, 정치, 분석처럼 우리가 공통으로 몰두하는 주제들이 필연적으로엮여 있지만 산만해지지는 않는다. 몇 분이 지나면 대화가 진정한 행복의 본질이라는 우리의 지속적인 관심사를 다시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마치 둘이서 장거리 전화로어떤 세미나에 영원히 참여하고 있는 것만 같다. - P221

정말, 나는 왜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는 것일까? 편지를쓰는 일이 내게는 솔직히 귀찮게 느껴지고, 가능하면 피하고싶은 의무가 되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편지를 쓰려고 애써자리에 앉아 있다 보면 분명 기쁨의 무아지경에 빠져들고 그러다 보면 기운이 회복되는데도, 내가 편지 쓰기를 에너지를 소모하고 머릿속을 굳어버리게 하는 행위로 여기는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왜 편지 쓰기와 싸우는 걸까? 왜 내 의지는 이렇게분열되는 걸까? - P224

이층으로 달려 올라가 구두를 벗어 던지고, 편안한 의자에 털썩 앉아 봉투를 뜯어 열고는, 좋은 읽을거리에 집중하곤 했다. 그 점이 설레는 부분이었다. 좋은 읽을거리가 약속된다는 점 말이다. 그런 읽을거리를 얻지 못할 수도 있었지만(내 친구들이 편지를 잘 못 쓸 수도있었으니까) 그 약속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므로 상관없었다.
나는 편지를 손에 들고 거듭 읽고, 편지와 의견을 주고받고, 편지를 참조하곤 했다. 이 마지막 부분이 중요했던 건 내가 편지읽기를 끝내자마자 거의 곧바로 머릿속으로 문장을 만들기 시작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하루나 이틀 뒤에 자리에 앉아 답장을 쓰면서 종이에 적어넣을 문장들이었다. - P226

나는 편지를 받고 나서 답장을 쓰기 전까지의 이런 시간을소중하게 여겼다. 생각을 정리하고, 주제들을 음미하는 일을 사랑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떤 순서로말할 것인가? 친구에게 내 근황을 알리기 위해 사실과 느낌을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기분을 묘사할 수도, 정보를 전달할 수도, 책이나 행사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말할 수도, 분위기를 사실보다 부풀려 페이지 위에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편지를 받는 일도 설렘을 공유하는 일이었지만, 편지를 쓰는 일은 그보다 더 큰 기쁨이었다. 문장들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동시에흠없이 유창하게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수동 타자기로 타이핑한 내 편지들이 레빈슨 씨의 편지들처럼 보였다는 걸 고쳐 쓰거나 지워진 문장 하나 없이 깔끔했다는 걸 이제 나는 깨닫는 - P226

다. 마치 우리 두 사람 모두 숙련되고 실수 없는 솜씨로 편지를써내는 공통의 생산 방식을 이용하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오늘날 편지 쓰기는 하기 싫은 일이 되었다. 나는 문장을쓰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편지를 쓸 때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자세히 말을 하지 않고, 폭넓게 여러 가지를 끌어오지 않으며, 길게 혹은 느긋하게 묘사를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럼에도, 편지 한 통을 제대로 쓰려면 몇 시간이 걸린다. 나는 결국 한 편의 제대로 된 글을 작성해야 한다. 일련의메모를 그저 휘갈겨 쓸 수는 없다. 온전한 문장들을 온전한 단락을 갖춰 써야만 한다. 단락들이 서로 호응하고 서로에게 말을 걸게 해야 하고, 한 편의 글로서 일관성이 있게 해야 한다.
표현하는 능력은 글쓰기에 달려 있고, 결국 그것이 편지 쓰기의 과업이다. 의미가 잘 드러나게 소통하는 것. - P227

레빈슨 씨는 방심한 채 이루어지는 대화의 즐거움을, 힐링을 추구하는 문화가 주는 그 비범한 선물을 알지 못했다. 한밤중에 혼자서 펜과 잉크 그리고 종이를 지닌 채, 그는 그저 형태를 갖춘 문장이 주는 즐거움만을 얻었다. 그 즐거움은 말로 하는 대화가 데려갈 수 없는 곳으로 그를 데려갔다. 그로 하여금자신 안에 있는, 편지가 아니었으면 갈 일이 없었을 장소들에비집고 들어가게 했다. 그 편지들은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혼돈을 꿰뚫어 보며, 쓰는 것으로부터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알아내고자 한 갈망의 기록이다. 다른 종류의 내적인 추구다.
다시 말해, 지도에 없는 공간으로의 여행이다. - P235

정보의 전달이란 표면을 건드려보기 위해 일련의 연결 신호들을 발신하는 일이다. 반면 이야기하기란 황무지 한가운데한 줄기의 길을 내는 일이다. 삶에는 둘 다 필요하다.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경험이 부족해진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대체하는 데는 반드시 커다란 대가가 따른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두 가지를 모두 갖는 것은 비경제적이며 둘 중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 P236

1937년, 작가 에드먼드 윌슨Edmund Wilson은 시인 루이스보건Louise Bogan에게 작업으로 돌아옴으로써 신경쇠약에서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충고하는 편지를 썼다. "우리는 삶을, 사회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우리 눈에 들어오는 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윌슨은 이렇게 썼다. "우리가 진실로 만들어낼수 있는 단 한 가지는 우리가 쓴 작품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지성과 상상력과 손으로, 니체가 말한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숙고를 거쳐 해낸 작업들이 결국에는 세상을 다시 만들어냅니다." 그와는 반대로, 작업을 하지 않는 일, 심사숙고를회피하는 일 역시 세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편지를 쓰고자하는 욕구가 내 안에서 유산될 때마다 나는 내가 비난하는 세상을 만들어낸다. 이야기를 하고픈 충동을 표류시킨다. 소음이세상에 만연하게 내버려둔다.
편지 쓰기가 고귀한 일인 게 아니다. 자신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이야말로 고귀한 일이다. - P237

이 책에 실린 캐츠킬산맥 호텔들에서의 경험(‘똑바로 앞을보고, 입을 다물고, 온전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나, 로더 멍크라는 가명으로 등장하는 자신과 친밀했던 한 여성에 대한 고닉의기억(나는 경험이 너무도 부족한 수영 선수였다)을 읽다 보면누구라도 그의 시선이 얼마나 예민하고 집요한지, 그가 얼마나가차 없을 정도로 솔직하고 냉정한 동시에 뜨거운 작가인지 실감할 수 있다.
고닉은 피상적인 시선으로는 결코 가닿을 수 없는 곳을 꿰뚫어 본다. 정신없고 고된 노동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욕망과권력의 소리 없는 악다구니를, 한 사람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취하는 방어기제들을, 누군가가 우리를 악의 없이소외시킬 때 우리 마음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함을, 도시를채우는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우울속으로 가라앉는 순간과,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기적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무섭도록 정확하게 포착해낸다. - P239

이 글이 "함께가 아니라면 우리가 존재할 다른 곳은 없었다고 느껴질 만큼 열렬하고 충만했던 최초의 자매애와 행복감뿐만 아니라,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삶에 있어
‘일‘과 ‘사랑‘을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재정립할 수밖에 없게되는 과정에서의 갈등과 혼란, 운동의 가장 뜨거운 시기가 지나가면서 여성들의 연대가 서서히 해체되는 시기에 찾아온 상실감과 고통, 그리고 마침내는 그 상실로부터 더욱 견고하게자신을 재정립하는 ‘두 번째 각성‘의 시간들까지 다루고 있기에 특히 그렇다. 고닉은 페미니스트로서 역사적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었고, 그 변화의 물결을 온몸으로 맞아냈다. 그 시간과경험들은 이후 여성과 남성의 관계에 대해, 여러모로 불가능하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꼭 이뤄내야 할 이상인 평등에 대해,
결혼제도에 대해, 대도시에서 여성으로서 글을 쓰며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해 고닉이 써낸 많은 에세이와 문화비평에 영향을미쳤다.
- P240

에세이스트로서 고닉의 전문 분야는 외로움이고, 그 전문성에 있어 그는 타의추종을 불허한다. 사람의 마음에 타인들과 세계를 감각하고 받아들이는 촉수가 있다면, 고닉은 남들보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그리고 민감한 촉수를 지닌 사람일 것이다. 외로움이라는 인간 본연의 상태를수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람 사이의 단절과 침묵과 소통 불능상태 같은 "영혼을 죽이는 사소한 일들"의 관행을 어느 정도묵묵히 체념하고 사는 것이 보통의 삶이라면, 고닉은 그렇듯절망 속에 갇힌 상태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어 이렇게 묻고 또묻는 사람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이 사람은 왜 나를 알고 싶어 하지 않지? 저 여자는 왜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이토록 가까워졌는데도 여전히 의견이 분열될까?‘ 우리는 왜 조금 더 자기 자신에 가까운 모습으로 타인에게 다가갈 수 없을까? 왜 조금 더 서로의 말에 귀를기울일 수 없는 것일까? - P241

그런 질문들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정이 필요한지를.
하지만 마음을 드러내다 상처받는 게 두려워 불 꺼진 방 전화기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대신, 고닉은 끊임없이 다가가고 말을 걸고 질문한다. 우리의 지성이 서로 만나 한없이 확장되고뻗어 나가는 순간의 기쁨을, 우리의 목소리가 방해받지 않고경청될 때 찾아오는 충만한 감정을, 거리의 이름 모를 사람들이 말없이 전해주는 든든한 안도감을, 믿고 소망하고 찾아 헤맨다. 외로움 앞에 꼿꼿하고 싶은 마음과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어떻게도 할 수 없을 때 ‘거리로 나가 걷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고닉의 에세이를 읽으며 배운다.
자신이 산책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 있어 이만큼멋들어진 방식이 또 있을까. - P242

또 하나, 고닉의 문장들은 정말이지 독특하다. 전반적으로밀도가 높고, 종종 시적으로 압축되어 있으며, 독자에게 의미를일방적으로 전하기보다는 함께 생각하기를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메트로놈이 내는 소리처럼, 혹은 도시 한복판에서 버스킹을하는 누군가가 울려내는 비트처럼 특유의 음악적 리듬과 박동들로 가득한 문장들이기도 하다. 혈관에 직접 주사되는 약물처럼 짙고 강렬하게 스며드는 그 통찰 하나하나가 독자들에게도고스란히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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