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츠킬 산맥의 낡은 호텔 지역이 보르시 벨트 농담‘의 배경이라고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1950년대 후반, 대학생시절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던 내게 캐츠킬 산맥은 위험하고 짜릿하며 거친 공간, 포식동물만 득시글하고 온순한 동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곳의 호텔들에서 몇 년을 보내며 나는 직무의 야수성을, 환상의 살인적인 면을, 쾌락을 제공하기 위해 꾸려진 세계에 사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고립을 처음 - P83
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최근 들어 그 고립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곳에 처음 닿는 순간부터 그 고립이 얼마나 두드러졌으며 적나라하고 선명하게 드러났는지에 대해. - P84
가먼트 지구의 세일즈맨과 미드타운에서 일하는 비서들로 꽉 찬 크고 화려한 호텔에서, 열기와 악다구니로 가득한음식들이 날아다니고, 쟁반들이 부딪히고, 종업원들은 욕설을 퍼부어대는) 엄청나게 큰 주방을 어색하게 들락날락하며 보낸 그첫 주말, 쟁반을 너무 꽉 움켜쥔 나머지 그 뒤로 며칠이나 내열 손가락 관절은 전부 하얘져 있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내 바로 옆에서 그릇 치우는 일을 하던 소년이 메인 요리 세가지를 맛본 손님에게 주먹을 내밀며 "관절 샌드위치 좀 드릴까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던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일요일 밤, 입을 쩍 벌린 엄마 앞에서 식탁 위에 1달러짜리지폐 50장을 내던졌을 때는 달콤한 기쁨을 느꼈고 내가 다시일하러 가리라는 걸 알았다. 그토록 자신만만한 도덕주의자처럼 굴던 나라는 노동자 계급 소녀의 내면에는 처음으로 욕망할 기회가 생긴 데서 오는 예기치 않은 흥분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 P85
다섯 번째 호텔에서 나는 목에서부터 무릎까지 온통 가슴밖에 안 보이고, 조그만 발에 앙증맞은 신발을 신고, 부드럽고포동포동한 손에 보기 좋게 매니큐어를 칠하고, 화장한 얼굴에앳된 두 눈이 돋보이는 한 여자 손님에게 서빙을 하게 되었다. 정확하게 3분 동안 익힌 달걀들을 테이블에 가져다주자 여자는 내게 말했다. "아가씨, 달걀 좀 까줘. 껍데기가 뜨거워서 손이 아파." 나는 몸을 돌려 벽에 놓인 준비 테이블로 가서 달걀껍데기를 갔다. 그 일은 나라는 존재는 그저 직무의 연장일 뿐이라고 처음 말해준 일이었고, 분명 그 사실을 말해줄 마지막일도 아닐 것이었다. 나를 마르크스주의자로 만든 건 어린 시절 아버지 무릎 위에서 들었던 사회주의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캐츠킬 산맥에서의 경험들이었다. - P89
아니, 고집 센 얼굴이 대답했다. 충분하지 않구나. 충분한것 근처에도 못 갔는걸. "넌 해고야." 급사장이 내게 말했다. "아침식사 서빙하고정리해서 나가" 내 몸의 모든 피가 단번에 빠져나가는 듯했다. 잠깐 동안기절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일 아침이면이 자리에는 내가 늘 받던 손님들이 돌아와 있을 테고, 그들 대부분은 아침식사 후에 떠날 테고, 나는 당연히 이 모든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정확히 꽉 채워서 팁을 받을 것이다. 급사장은 사실 나를 벌주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걸 그도 알았고, 이제는 나도 안다. 금발 여자만 모르고 있었다. 그 여자의 엉망진창인 삶을, 그러니까 주름이 쪼글쪼글한 얼굴과 짜증나는 남편, 실망스러운 섣달그믐 밤을 위로하기 위해 나는 해고되어야 했다. 급사장은 그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고. 나는 처음으로 권력에 관해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모욕을 당한 급사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갇혀 있다는 걸, 늘 누군가는 굴욕을 당해야만 하는노동하는 삶에 붙들려 꼼짝 못 하는 신세라는 걸 알게 되었다. - P95
스물한 살이 되던 여름, 나는 시티 대학과 캐츠킬산맥을모두 졸업했다. 그해 여름, 그 호텔에서의 시간은 절정이라 할만했다. 누구도 그리고 어떤 것도 사소하거나 단순하다고, 혹은현실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소유주들은 호텔 자금을 횡령하고 있었고, 급사장은 뇌물을 받고 있었으며, 요리사는 우리에게식중독을 선사했다. 그릇 치우는 소년들과 남자 종업원들 사이에 흐르는 악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거리낌이 없었다. 여자 종업원들은 사람들과 어울리라는 요구를 받았는데, 그건 다시 말하면 급사장이 음흉하게 말한 것처럼 밤에 카지노에 나와서 남자 손님들과 함께 ‘춤을 추라‘는 얘기였다. - P96
나는 잔디밭 위에선 채 나 자신의 멍청한 갈망을 노려보았다. 적막함이 밀려들어왔다. 나는 외로웠다. 그 후에 내가 외로움에서 나 자신을 비틀어 떼어냈던 게 기억난다. 외로움은 나를 겁에 질리게 했다. 몸이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알기로 균형이야말로 모든 것이었다. 나는 내 주위 잔디밭을, 건물들을, 주차장을, 직무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 조그맣고 빈틈없는 세계를둘러보았다. 이 세계에서 내가 훌륭하게 작동하는 방법을(다시말해 무례한 모욕을 피하고 어디까지 굴복할지 한도를 조절하는방법을) 익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오직한 가지. 똑바로 앞을 보고, 입을 다물고, 온전하게 균형을 잡는 것이었다. 삶의 크기가 얼마나 되든 그것이 무엇으로 구성 - P102
되든, 삶은 순간이라는 좁고 똑바른 길을 걸어 나가는 데 달려있다고 나는 단호하게 생각했다. 나는 몽상으로부터 몸을 돌려걸어갔고, 주방 문을 통과했다. 그럼에도 그해 여름에는 모든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들게 느껴졌다. 팁은 시원찮았고, 요리사는 가학성애자였으며, 우리는 평소보다 많은 고기와 과일과 우유를 훔쳐내야 했다. 산맥에서 지내는 기간은 늘 장기적으로 비타민이 부족해지는 괴로운 기간이었다. 아무도 어떤 도움도 주려 하지 않았다. 그릇치우는 소년이 오렌지주스를 마시거나 램 참을 먹고 있는 걸발견했을 때 호텔 소유주의 얼굴에 떠오를 괴로운 표정이 손에잡힐 듯했다. 어느 날 밤에는 한 남자 종업원이 해고되었다. 식당을 나서던 그를 급사장이 붙잡아 불룩 튀어나온 셔츠 앞섶을잡아 뜯듯 열어 보니 스테이크 두 조각이 맨가슴에 납작하게붙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까지 여섯, 아니면 여덟 명쯤이 각자의 위치에서 그 광경을 보았다. 입을 열거나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경우에는 상황이 더 나빴는데, 돈 상납을거부한다는 이유로 급사장이 그 종업원을 해고하려 한다는 걸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103
비니의 집착이 그의 내면에 있는 은밀한 무언가를 건드렸고, 우리 둘 모두의 내면에서 일종의 방탕한 기질이 불타오른 것이었다. 아름다운 사람들, 영리한 사람들, 나혼자 힘으로는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을 상상 속에 그렸을 때, 그환상은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비니와 마리가 나오는 망상을 시작하자 내 안에서 너무도 솔직하고 격렬한 갈망이 솟아오른 나머지 나는 무아지경에 빠져버렸다. 무모하고 달콤하며 저항할 수 없는 그 갈망은 환상이 되어 사타구니에 들어앉았다. 비니의 욕망은 우리 둘의 욕망이 되었고, 그의 절박함은 우리 둘의 절박함이 되었으며, 그에게 필요한 무언가는그도 나도 충분히 가질 수 없는 극적인 상상의 대상이 되었다. - P113
공모 관계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무엇에 대한 공모인지는몰랐지만, 차 안의 분위기가 비밀로 풍성해졌다는 것만 알 수있었다. 비니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에게 질문을 던져주었다. 내 질문들은 집착을 더 길어지게, 극적인 상상을 더 깊어지게 했다. 우리가 주고받는 은밀한 대화 속으로 어떤 생생하고유동적인 움직임이 기다란 자국을 남기며 이어졌다. 속도를 높이며 다가오는 어둠 속에서 숨겨진 약속의 파도가 솟아올랐다부서져 내렸고, 다시 솟아올랐다. 나는 영원히 그 파도를 타고싶었다. - P113
일요일에는 막사 전체가 병을 앓고 난뒤 같은 일종의 무기력한 분위기에 하루 종일 뒤덮여 있는 것 같았다.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요란한 수다가 계속되던 복도의 분위기와 강렬하게 대조되는 분위기였다. 그 여름은 우리를 수다 떨게 한 갈등들에 대한 해결책을 하나도 마련하지 못한 채 갑자기 멈춰 서버렸다. 우리의 동요는 갑작스럽게 종료되었다. 이제 우리는 오직 풀려나기만을 기다리며 버티고 있었다. 저녁식사 서빙은 그어느 때보다도 딱딱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는데, 다들 마음이 이미 호텔을 떠나 있어서였다. 사람들의 얼굴은 차분하고 조심스럽고 냉정했다. 특히 비니는 누구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는 표정이었다. - P121
그곳은 무분별한 갈망에 따라 앞날이 가늠되는 세계였다. 그곳의 모든 것이 그 무분별함에 달려 있었다. 무지한 채 남아있기 위해서는 힘겨운 노력이 필요했다. 모르는 채 남아 있는일에 실패한 사람들은 고립되었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누군가의 굴욕을 필요로 했다. - P123
우리가 만났을 때 나는 서른다섯 살이었고, 로더는 쉰 살이었다. 나는 인생 대부분을 여기저기 헤매며, 문이 잠긴 나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느끼면서 보냈다. 사랑, 명성,세속의 모험 같은 것들은 매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아 생각이라는 걸 해보려는 내 안의 갈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혼란스러운 정신은 내가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작정한 것같았다. 나는 소파에 앉아 글을 쓰고자 하는 내 욕망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것에 대해 격하게 화를 내고 울고 강박적으로 생각을 거듭하면서 수년을 보냈다. 절뚝거리며 나아가는 동안 스스로를 분석하며 "난 못해, 안 할 거야, 해야 돼, 못해"라고 불평을 반복해서 늘어놓았다. - P131
로더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은 처음부터 나를 놀라게 했고, 그를 싫어하게 했다가 다시 이끌리게 했으며, 그렇게 그에게 돌아갈 때면 나는 새롭게 삶의 힘을 느꼈다. 그날 만나고 나서 열흘이 지난 뒤 우리는 다시 만나 어퍼웨스트사이드의 어느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몇 시간 뒤 나는 걸어서 그를 집에 바래다주었다. 이른 봄이었다. 자기가 사는 건물 현관에서 로더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두 눈을 감고는 막 찾아온 밤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의 눈꺼풀이 떨렸고, 꽤 오래라고느껴지는 시간 동안 그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있었다. 그 몸짓이 너무 길어져서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P133
로더는 큼직한 방을 가로질러 바다를 향한 포치로 걸어갔다. 낮은 나무 칸막이 위에 놓인 긴 막대 하나를 발견한 그는그걸로 덧문 하나를 열어 받쳐놓았다. 선명한 바다 빛깔을 한작은 정사각형 하나가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로더는 나머지 덧문들을 하나씩 차례로 열어 일렬로 된 나무 차양처럼만들었고, 그러자 방은 그늘을 품은 빛으로 둘러싸였다. 포치에는 테이블 하나와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중 하나에 앉자 세상은 내 눈높이에서 녹색 절벽과 은빛 바다, 푸르디푸른하늘로 구성된 하나의 작은 작품으로 변했다. 기쁨이 내 심장을 가득 채웠다. 그늘지지 않은, 알록달록한 원색으로 칠해진기쁨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 테이블에라면 영원히 앉아 있을 수도 있겠어. 영원히 앉아 있고 싶어. 그리고 이 자리를 떠난다면, 오직 로더와 함께 저 아래 돌투성이 해변을 걸으며 여자와 남자, 그리고 우리가 발견하는 세상을 이야기할 때였으면좋겠어. - P143
첫 일주일은 상상 속에서 그려보던 것이 그대로 눈앞에 실현되는 삶에서 믿기 힘든 순간 중 하나였다. 다 허물어져 가는별장에 함께 틀어박힌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작업을 하는 데 행복하게 익숙해져 가는 로더와 나. 나는 2년인가 3년째 조금씩조금씩 읽던 책을 붙잡고 있었고, 로더는 《여성과 권위》를 1부로 계획해둔 3부작의 2부를 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 책은심지어 <여성과 권위》보다도 중요한 책이 될 것이었다. 로더의관심사의 폭과 상상력의 범위를 명료히 드러내줄 책이었다. 로더는 몇 년 동안 그 책을 구상해오고 있었다. 개념은 아직 정립되지 않았지만 막 시작한 단계도 아니었다. 로더는 작업에 착수하기 직전이었다. 그가 당장이라도 시작하리라는 걸 우리는알았다. 로더가 나를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되는 존재로 생각한다는 게 영광스러웠다.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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