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이 도시 그 자체처럼 넓은 범위에 걸쳐 있지만, 하나로 어우러져 있지는 않다. 내 친구인 사람들이 서로 친구는 아니다. 가끔씩 내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이들고 뉴욕 사람들이 모두 동류로 느껴질 때면, 이런 우정들은느슨하게 연결된 목걸이의 구슬처럼 느껴진다. 각각이 서로 닿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모두 내 목 아래쪽에 가볍지만 단단하게자리 잡고 있어서 내게 마법 같은 따스한 연결감을 불어넣어주는 구슬. 그럴 때 삶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도시의 정수를, 다시말해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삶의 빡빡하고도 독특한 면을, 그모든 것을 매일 새롭게 짜 맞춰야 하는 데서 오는 위태로움과 짜릿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 - P15
아무도 곁에 없고 아무도 만날 수 없을 때 나는 창문 밖을노려보며, 도시 생활을 낭만적이라고 여기다니 그런 바보가 또어디 있을까 생각한다. 외로움이 덥고 건조한 공기처럼 나를에워싼다. 그것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는 뉴욕의 외로움, 당신은 바보이고 실패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외로움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마음껏 즐기고 있는데, 당신 혼자만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거다. 나는 거리를 내려다본다. 내 삶이 짐 끄는 말의 삶과 같다는 걸 깨닫는다. 마구를 걸치고 있기만 하면 나는 걸음을 놓치는 일 없이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디딜 수 있다. 하지만 무언가가 균형을 깨뜨리면 나는 또다시 목에 걸린 형편의 무게를, 그밑에서 스스로 똑바로 걷는 법을 익혀야 했던 짐의 무게를 느낀다. - P16
엄마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걔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네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거 하나야." 어깨가 똑바로 펴지고 보폭이 넓어진다. 가슴속의 절망이녹아 사라지기 시작한다. 도시가 내게 자신을 열어 보이고 있다. 나는 마치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의 품에 안긴 것 같다. 남들눈을 신경 쓰지 않는 풍부한 표정이라는 초대장만 있으면 거절당할 염려는 없을 것이다. - P18
마지막 순간까지 애쓰는 모습, 그 다양하고도 독창적인 생존기술을 지켜보다 보면 나를 짓누르던 것이 덜어지고 넘치던 감정이 비워지는 걸 느낀다. 나는 그들의 불안과 함께한다. 그들의 문제를 나눠 갖는다. 쓰러지지 않겠다는 공동의 의지가 내신경 끄트머리에서 느껴진다.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혼자일 때가 가장 외롭지 않다. 혼자일 때 나는 나 자신을 상상한다. 혼자일 때 나는 시간을 번다. 나와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내 뉴욕 친구들 모두가 그렇다. - P20
그날 조금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전화벨이 울린다. 이번에는 로라다. "내 말 못 믿을 거야." 로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한테 전화한 용건을 꺼내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에 반응하는 순간부터 로라는 온전히 믿을 수있는 상대다. 로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리는 함께 웃음을터뜨리고, 심리학 지식을 담은 문장들이 우리 사이에 오간다. "언제 저녁이나 같이 먹자." 내가 말한다. "너무 좋지." 로라가말한다. "어디 보자." 로라 역시 자신의 수첩을 들여다본다. "아이고,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다음 주 초까지는 시간이 안 돼. 잠깐만 기다려봐, 잠깐만." 대화를 나누면서 엄청 즐거워졌는지 로라는 그 기쁨이 사라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여기 이 일정을 바꾸면 되겠다. 목요일 어때?" - P21
뉴욕에서의 친구 관계는 우울에 몰두하는 일과 표현하는능력에 매혹되는 일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내게 가르쳐준다. 어떻게든 좀 더 높은 수준의 균형 상태에 도달하는 일. 나는 친구 사이에서는 그 일이 일반적인 부부 사이에서와 다르게일어날 줄 알았다.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우리는 모두 예전에 결혼이란 걸 해본 사람들 아닌가. 많은 사람들은 결코 이길 수 없는 내면의 싸움을, 오직 죽음에 의해서만 결론이 나는 전쟁을 하며 삶을 보낸다. 하지만 우리 각자의 인생에는 우위를 차지하는 한두 가지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도시는 이런 역학의 영향 아래에서 돌아간다. 각각의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 P22
얼굴을 안다는 것이란! 당신도 보면 알겠지만, 그것은 한때 ‘기대에 부풀었던‘ 여자의 얼굴이었다. 엉망이 된 입술, 도도한턱, 대담한 색깔의 립스틱, 총명하지만 세상에 알려질 수는 없다는 걸 받아들인 두 눈. 아침 열시에 여기 8번에서, 자신이경험한 모든 것이 선명히 새겨진 얼굴로 그 거리를 등지고 선여자는 내게 화려한 매력을 지닌 사람으로, 호화로운 방식으로초췌한 자연 그대로의 환경 속 보석 같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것은 오직 도시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얼굴이었다. - P23
‘어디서든‘ 꽃을 피우려면 사람은 주변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낼 만큼 뛰어나거나, 속한 환경에 맞춰 살 만큼 겸손하게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라면 뜻이 맞는최소한의 사람들이 곁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평범한 식물들이 교외의 잔디밭에 심어지는 것과(여기 따분해 보이는 관목이나 저기 쓸쓸한 화단처럼) 풍요롭게 가꾼 정원에 심어지는 것의차이다. 정원에서는 똑같이 수수한 나무과 꽃인데도 한데 모인그 풍성함 덕분에 ‘있어야 할 자리‘에서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8번로에서는 여자가 경험한 것들이 그를 흥미진진한 사람으로만들었다. 하지만 남부의 어느 도시 대학에 데려다놓는다면, 그는 이내 쓸쓸한 사람으로 변해버릴 것이다. 그 머리칼. 그 뉴욕 스타일 곱슬머리. 그 머리에는 우리상상 이상으로 ‘한데 모인 풍성함‘이 필요했던 것이다. - P24
나는 모여든 사람들 가장자리에 혼자 서 있다. 여자의 목소리와 몸짓이 나를 전율하게 한다. 여자의 유창한 언변에 나는놀란다. 자신의 서사를 전하기 위해 언어와 몸짓을 얼마나 능숙하게 사용하는가. 여자와 내가 하나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여자는 혼자고, 나 역시 혼자다. 하지만 그는 저기 있고, 나는여기에 있다. 여자 역시 뉴욕 스타일 곱슬머리를 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그것만으로도 동지가 되기에 충분하다. 내가 자라날 때 뉴욕은 안전했고, 모든 것은 값이 싸거나공짜거나 둘 중 하나였으며, 미드타운에서는 게이들도 흑인들도 여자들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제 이 도시는 난폭해졌고, 뭐든지 엄청나게 비싸며, 우리 모두는 보이는 존재가 되었다. - P26
거리는 계속 움직이고, 당신은 그 움직임을 사랑해야 한다. 그 리듬으로 된 작품을 찾아내고, 그 동작에서 이야기를 건져내고, 모든 것이 우리가 갑작스레 누군가의 시야에 들어갔다가다시 안 보이게 되는 그 빠른 속도에 달려 있음을 받아들이고서운해하지 말아야 한다. 연결이 만들어졌다 풀리는 바로 그속도에 기쁨과 안도감이 존재한다. 매달릴 필요는 없다. 연결은어디에나 있지 특정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하나의 연결바로 뒤에는 또 다른 연결 하나가 따라온다. - P28
거리는 서사적인 충동의 힘을 증명해 보인다. 인간으로서살아가는 일이 역사상 가장 힘든 시대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그 무한한 힘을. 문명이 붕괴되고 있는가? 도시가 혼란스러운가? 이 세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가? 더 빨리 움직여라. 더 빨리 스토리라인을 찾아내라. - P30
뉴욕에서 가난하고 저속한 사람들, 결함 있는 사람들이 없는 동네는 없다. 도시에서 사회적 유동성이란 ‘누구도 다른 누구에게서도 도망칠수없음‘을 의미한다. 어디든 대로들은 거리의 삶으로 지나칠 만큼 번쩍거린다. 그럼에도 동네에는 저마다의 개성이 쌓인다. 파크애비뉴는 여전히 부유층을, 웨스트엔드애비뉴는 중산층을 상징한다. 업타운을 생각할 때면 나는 계급을 떠올리게 된다. - P33
"그 사람들은 어른인 척한 거야." 레너드가 말했다. "그뿐인 얘기지. 40년 전에 사람들은 결혼이라고 불리는 벽장에 들어갔어. 벽장 안에는 옷이 두 벌 있는데 너무 뻣뻣해서 저절로서 있을 정도야. 여자는 ‘아내‘라고 불리는 드레스 속으로, 남자는 ‘남편‘이라고 불리는 정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지. 그게 다야. 그 사람들은 옷 속으로 사라졌어." 레너드는 성냥을 켜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지금 우리는 척을 하지 않아. 벌거벗은 채로여기 서 있지. 그런 거야." 그가 담배를 빨아들인다. 나는 몇 달만에 처음으로 그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켜본다. "나는 이 삶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야." 내가 말한다. "누군들 적합하겠어?" 레너드가 내 쪽으로 연기를 내뿜으며 말한다. - P41
하늘이 어두워지고 주위의 모든 건물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북적거리는 도시의 지평선과 나 사이에 내가 낮에 본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빨대로 소녀를 찌르던 소년이, 로드 앤테일러 쇼핑백을 들고 있던 여자가 떠오른다. 그들이 했던 말이 다시 귓가에 울리고, 그 얼굴과 몸짓이 눈앞에 떠올라 나는혼자 웃는다. 나는 여기에 대화를 저기에 해석을, 또 그다음에딘가에는 논평을 덧붙이며 그 장면들을 수정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나는 내가 시간을 뒤로 돌리며 나와 마주치기 전의 그들을 상상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나는 흠칫 놀라, 내가 하루의 이야기를 쓰고 있음을 막 나를 지나간 시간에 형태와 질감을 부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오늘 하루 나를 스쳐간 사람들이 이제 나와 함께 방 안에 있다. 그들은 친구가, 거대한 친구들의 집단이 되었다. 오늘 밤 나는 내가 아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다. 그들은 내게 서사적인 충동을되돌려준다. 내가 세상을 이해하게 해준다. 내 삶이 할 수 없는이야기를 하도록 나를 일깨워준다. ד - P46
첫 사흘 동안 나는 페미니스트들, 티그레이스 앳킨슨Ti- Grace Atkinson, 케이트 밀렛 Kate Millett, 슐라미스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을 만났다. 그다음 사흘 동안에는 필리스 체슬러Phyllis Chesler, 엘런 윌리스ellen willis, 앨릭스 케이츠 슐먼 AlixKates Shulman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동시에 말을 했고, 나는 그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모두 들었다. 아니, 그보다 내 귀에는 그들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고 해야겠다. 하나의 생각에 강렬한 인상을 받으며 그 일주일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이란 이런 것이었다. 남성은 자신의 지적 능력을 선천적으로 중요시하고 여성은 중요시하지 않는다 - P51
는 생각은 근거 없는 믿음일 뿐 사실이 아니다. 그 믿음은 문화에 기여하는데, 우리의 삶 전체는 그 문화를 따라간다. 정말이지 단순한 이야기다. 그리고 분명 이미 나온 적이 있는 이야기였다. 어째서 나는 이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것처럼느꼈을까? 왜 내 귀에 이제야 이 이야기가 들려온 것일까? 사랑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준비된 순간‘이란 여전히 삶의가장 커다란 수수께끼 중 하나다. 내면에 변화가 일어나도록여러 요소가 충분히 결합하는 그 순간 말이다. 그 순간에 응답하는 사람은 결코 그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 P52
나는 언제나 삶과 욕망하고 얻어내는 일은 동의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진지하고 분노에 찬 착한 여자의 방식으로 ‘의미‘를 추구했다. 의미 있는 일(다시 말해, 지성이나 정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적절한 파트너가 될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중요했다. 이 두 가지가 내게 필요한 쌍둥이 같은 조건임을 알았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얽혀 있어서 하나 없이 다른 하나를 상상할수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강박적으로 수다를 떨어댈 뿐, 공부를 할 만큼 고독을 오래 견뎌내지는 못하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생각이 꾸준하게 나아가도록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것이다. 나는 소설을 읽었고,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공상에 잠겼고, 남자를 생각하며 넋을 잃었다. 진지함에 대해 끝없이 도덕 - P52
적으로 고찰했지만, 나는 남자를 뒤쫓을 수는 있어도 일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부분이 결정적인데, 나는그 사실을 몰랐다. 내가 사랑은 할 수 있지만 일은 할 수 없는상태라는 것을. 나는 사정이 괜찮아지면 일을 할 거라고 쭉 생각해왔다. 사정이 안 좋은데도 내가 이 남자, 아니면 저 남자에게 계속 사로잡혀 있을 수 있는 이유가 궁금했던 적은 없었다. 나는 20대 중반에 어느 예술가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나에게는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다. 앉을 책상이 있었고, 나를격려해줄 파트너가 있었으며, 충분한 시간과 돈이 있었다. 이제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P53
또다시 틀렸다. 10년 뒤, 나는 몇 편의 기사를 써낸 공격적인 스타일의 이혼한 서른다섯 살 ‘여자‘가 되어 뉴욕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허세 아래 혼란은 깊었고, 막막함 역시엄청났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날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리고 여기서 어떻게 나가지? 나는 ‘여성 해방 운동가들‘ 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야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았다. 그러자 내가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나는충분히 나이가 많았고, 충분히 지루했고, 충분히 지치고 고통받아왔다. 나는 살아오면서 내가 노동자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바로 이것이 한 여자의 존재 중심에 있는 딜레마였다. - P53
똑바로 들여다보기엔 힘겨운, 너무도 힘겨운 진실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우리는 사랑과 공동체를 갈망한다. 그 두 가지모두 삶에 있기를 바라기에는 썩 괜찮은 것들이지만 갈망할 만한 것들은 아니다. 갈망은 살인자와 같다. 갈망은 우리를 감상적으로 만든다. 감상적이 되면 우리는 낭만만을 추구하게 된다. 내게 있어 페미니즘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로맨스가 아니라 힘겨운 진실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여전히힘겨운 진실을 추구한다. - P60
내가 방금 적어놓은 모든 것을 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몇 번이고 잊어왔다. 불안과 권태와 우울이 나를 압도하면, 그것들은 나를 지워버리고 나는 ‘잊는다.‘ 영혼의 노예 상태란 일종의 기억 상실이어서, 우리가 아는 것을 붙잡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것을 붙잡지 못하면 우리는 경험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경험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 변화가없으면 우리 자신 안에 있던 연결은 끊어져버린다. 그건 견딜 - P60
수 없는 일이기에, 삶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끝없이 ‘기억하는‘ 일의 연속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있을까? 끊임없는 투쟁 속에 있다. 나는 세 차례나 구원 같았던 로맨스의 상실을 견뎌냈다. 사랑이라는 환상, 공동체라는 환상, 일이라는 환상의 상실이 그것이었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잃을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1970년 11월의 그 계시적이었던 첫 순간으로 돌아갔다. 초기의 페미니즘은 나에게 투명해지는 통찰의 생생한 번쩍임으로남아 있다. 그것은 나를 자기연민에서 구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라는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선물을내게 선사했다. - P61
나는 여전히 사랑 때문에 고심한다. 내 단단한 마음을, 그리고 또 다른 인간 존재를 동시에 사랑해보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한다. 매일의 노력은 여전히 몹시도 고통스럽다. 그러나 노력하는 한, 나는 로맨스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로맨스에 저항할 때,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힘겨운 진실을 꾸준히 바라볼 때 나는 조금 더 나 자신에 가까워진다. 페미니즘은 내 안에 살아 있다. - P61
언제든 같이 있었다. 같이 있는 일이 즐거웠던 건 절대 아니었고, 그저 떨어져 있는 일을 견디지 못했을 뿐이다. 같이 있으면 우리 사이에는 긴장이 피어올랐지만, 혼자 있을 때면 극심한 외로움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그 외로움은 긴장보다 고통스러웠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하고 싶었다. 결국 내가 우유 한 통을 사러 간다고 하면 남편이 같이 가겠다고 하는 지경이 되었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그들은 모두 우리처럼 젊었다)은 이렇게 말했다. "저 사람들, 정말 서로에게 헌신적이네." 불안이 헌신처럼 보인다는 것. 그리고 외로움은 인간에게 있어서정의 내리기 가장 힘든 상태라는 것. 결혼은 내게 그런 것을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집요하게 우리자신을 외면했고, 그 외면은 모멸적인 것이 되어갔다. 우리의 감정은 이제 우리의 적이 되었다. 모든 감정을 둘러싸고 보호막이 자라났다. 이 보호막이 두꺼워질때면 가운데에 있던 살은 쭈그러들었다. 젊고 건강했던 나는산 채로 파묻히는 기분이었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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