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혼자가 되지 않으면 영영 혼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슬로건은 2020년 서울시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장려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표현이 다소 섬찟하다. 인간이 외톨이로 지내기는 어려운 일이고, 자칫하면 삶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다행히 앞의 메시지는 경고이면서 희망 또한 암시하고 있다. 잠시멈춰서 코로나 19를 잘 극복하면 더 이상 혼자가 되지 않을 거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잠시‘가 아니었다. 3년째팬데믹이 이어지면서 ‘비상‘이 ‘일상‘이 되었다. 이른바 ‘뉴노멀‘ 이 정착되었고, 이제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 P5
의들혼자 있다는 것은 어떤 공간에 자기 외에는 아무도 없는 상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누군가가 내 옆에 있다 해도 그가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면, 혼자 있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이많다. 주변이 북적거리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있지만, 마음 - P7
은 각자의 골방에 갇혀 있기 일쑤다. 주된 원인으로 미디어 환경을 지목할 수 있다. 거의 항상 접속해 있는 디지털 네트워크에 마음이 쏠려서 타인에게 무심해지기 쉬운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로 비대면의 생활이 길어지면서 오프라인 관계는 더욱소원해졌다. - P8
외면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소홀히 여기는 것만이 아니라, 무언가를 회피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뜻하기도 한다. 우리는 불편한 진실이나 고통스러운 현실을 애써 외면할 때가많고, 권력자들은 민생 관련 정책이나 약자들의 요구를 흔히 외면한다. 사회가 거대하고 복잡해질수록 삶이 여러 공간으로 분절되며, 그 결과 시야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비가시화는 사실상 성원권의 박탈로 이어진다. 다른 한편 미디어가 첨단화되면서 정보와 이미지가 폭주하게 되는데,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 그를 통해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직접 대면하지 못하는 타자일수록 엉뚱한 모습으로 왜곡되기 쉬운 것이다. - P9
이제 우리의 일상과 마음을 다각적으로 살피면서 관계의기틀을 점검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위드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든 또 다른 팬데믹을 맞이하든, 의료적인 접근만으로는 한계가분명하기 때문이다. 심리적 방역의 버전을 업그레이드하면서사회적 면역력을 높이는 전략이 나와야 한다. 핵심은, 사람들사이의 유대다. 마음이 담긴 눈길로 서로가 연결될 때 삶은 단단해진다. 우리는 어떤 생각과 정서를 공유하면서 무슨 경험을함께 창조하는가. 몸으로 함께 있든 따로 있든, 서로를 온전히맞아들이는 환대의 시공간을 빚어가야 한다. - P12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각해보았다. 만일 혼자 걷다가 비를 맞았다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과 함께 있기에 어린아이처럼 빗방울과 놀이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온몸이 젖어서 짜증 날 수 있는 경험을 일종의 축제처럼 승화시키는 힘은 서로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관계에서 생겨나는것이리라. 삶의 토대가 점점 위태로워지는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 가운데 하나는 ‘안전 기지‘다. 사랑과 자유가 공존하고 너와 내가 상생하는 우정의 마당이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관계에 대한 기억 또는 소망을 불러내면서 세상을 조금씩 ‘새로 고침해나갈 수 있다면, 우리의 일상에 생기가 스며들 것이다. 이책이 그 작업에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 - P13
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물리적 거리는 인간관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듯, 누구나 가까이에 있는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그런가 하면, 관계의 성격이 물리적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권위주의적 조직의 경우, 회의나식사를 할 때 위계 서열에 따라 엄격하게 자리 배치를 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런 조직에서는 권력자의 측근이 막강한힘을 행사한다. 보스를 아무 때나 ‘접견‘할 수 있고, 제삼자의 바석 없이 ‘독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일에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사회적 위치를 파악하려면그가 누구를 자주 만나는가를 확인하면 된다. - P20
"교도소에서 최고 잘못한 죄수들을 독방에 보내잖아요. 독방도 보면 화장실이 있어요. 근데 우리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왜 쪽방에 갇혀 있어야 하냐고요."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2평짜리 쪽방에 사는 주민의 말이다. 2022년 3월 오미크론 전염이폭증했을 때, 확진 판정을 받아도 생활치료센터에 들어갈 수 없는 이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노숙인, 쪽방 및 고시원 거주민 같은 주거 취약 계층은 어려움이 더욱 컸다. 확진자가 폭증하면서업무가 과중해진 보건당국이 제대로 안내를 하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다른 보완 조치 없이 자가 격리만 하도록 했기 때문인데, 비좁은 공간에서 종일 지내고 화장실도 이웃의 눈치를 보면서 최소한으로 이용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더욱 쇠약해질 수밖에 없다. - P27
가정에서의 돌봄 노동도 가혹했다. 온라인 수업을 듣는 자녀와 온종일 집에서 지내야 하는 부모들의 스트레스는 점점 높아졌다. 치매 등을 앓는 환자나 장애아를 보살피는 이들의 고통도 한계 수준을 넘어서면서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났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종일 실내에 고립되어 있다 보니 퇴행 증상을 보이거나 생활 리듬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어느 가정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18세 아들이 한밤중에 일어나 집 안을 돌아다니는 일이 잦아 식구들을 지치게 했다고한다. 가족이 책임지고 감당할 수 있는 돌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 P29
이렇듯 거리두기는 사회적 안전망을 해체하여 삶을 피폐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 가정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통로와 완충지대가 줄어들고, 경로당의 폐쇄 등으로 인해 이웃 간에교류를 하지 못하면서 외로움이 깊어졌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도 병문안을 받지 못했다. (내 지인도 2022년 초 암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1년 넘게 투병하는 동안 한 번도 찾아갈 수 없었다.)고립무원의 상태에서는 건강도 위태로워지고, 경제력도 떨어지기 일쑤다. 사회적 연결망이 끊겨서 생계에 위협을 받고 그로인한 불안과 스트레스가 몸에 악영향을 주는 경우도 많다. 결국 ‘고립‘과 ‘빈곤‘과 ‘질환‘ 사이에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 P30
과제는 거리두기의 후유증을 다스리는 일인데, 핵심은 인간적유대를 복원하고 확장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은 무엇으로 이어지는가. 마음이 오가는 길은 어떻게 열리는가. 삶이 연결되는접점과 계기들을 다양하게 마련하고 사회의 토대를 새롭게 다지는 작업이 절실하다. 코로나19가 지나간다 해도 머지않아 또 다른 팬데믹이 창궐할 수 있다. 예전에 비정상으로 여겨지던 것이 정상으로 바뀌는 뉴노멀 시대, 이제 기존의 상식을 점검하면서 일상을 재구성해야 한다. 각종 재난으로 인한 비상사태를 슬기롭게 통과하려면 무엇이 삶의 기본 값(디폴트)이 되어야 하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촘촘하면서도 광범위한 사회 안전망을 유지하면서, 재해에 대비하는 시스템을 가동시킬 때 불확실성과 리스크를최소화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문명으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지혜와 동력은 사회 그 자체를 건실하게 꾸려가는 과정에서 우러나온다. - P31
얼굴은 서로를 알아보는 ‘표지판‘으로서, 인간관계의 기본토대를 이룬다. 선천적 시각장애인도 손으로 얼굴을 만지면서지인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목구비의 특정한 조합을 간파하는 능력은 타고난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다른 동물들도 얼굴로 상대를 식별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간은 그 데이터베이스가엄청나다. 생김새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순간적으로 알아맞힌다. 심지어 시간이 한참 지나서 얼굴모양이 변했는데도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엄마가 어릴 때 찍은 단체 사진에서 엄마를 찾아낼 수 있고, 기억력이 특별히 뛰어나지 않은 사람이라도 몇십 년 만에 만나는동창을 알아본다. - P38
인간이 손으로 어떤 일을 하든, 그의 얼굴은 진실을 말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얼굴은 몸의 일부이면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다른 신체 부위들은 상황에 따라 옷으로 감추어도 되고, 어떤 부위는반드시 가려야 한다. 그에 비해 얼굴만큼은 평생 ‘나체‘로 드러내야 한다. (다행히 웬만큼 추워도 얼굴은 얼지 않는다.) 서로의얼굴을 온전히 보여주는 것은 대인 관계의 전제요 의무라고 할수 있다. 그러다가 사람이 숨을 거두면 흰 천으로 얼굴을 덮어 - P39
준다. 그리고 입관식이나 일부 장례식장에서는 곱게 단장한 얼굴을 드러내 유족이나 조문객들이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게끔한다. 얼굴은 무엇인가? 그 어원을 살펴보면 ‘얼의 꼴‘이라는 설이 있고, 얼이 들어오고 나가는 굴 즉 영혼의 통로라는 풀이도있다. 어느 경우든 혼魂이 담긴 곳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얼빠진‘ 사람이나 ‘얼간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제정신인지 아닌지는 얼굴의 상태로 즉각 확인되는 것이다. - P40
인간에게 대면은 삶의 기본 값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본다. 서로의 안색을 살피고 표정을 지으면서 감정의 통로를 만든다. 아기에게 타인의 얼굴은 세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원초적 기억 때문일까.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 처음에는 아무렇게나 선을 긋다가 어느 정도 인지가 발달하면 특정한 대상을 의식적으로 묘사하는데, 이때 거의 모두 얼굴을 그린다.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점을 찍는 식으로, 매우 엉성하고 거칠지만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곧 정교하게 묘사하기 시작한다. 얼굴을 그리는데 왜 그렇게 몰입하는가. 자신의 마음에 뿌리 깊게 각인된 형상을 직접 그려내면서 즐거워하는 것이리라. - P40
얼굴은 그 사람의 인생 여정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을 입증하는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자원자들에게 남편들과 아내들의 독사진을 한 무더기 주었는데, 결혼식 날 사진과 결혼25주년 기념사진이었다. 그 사진들을 보고 누가 누구와 부부인지를 알아맞히는 것이 과제였다. 자원자들은 결혼식 날 사진으로는 부부를 찾아내기 어려워한 반면, 25주년 사진으로는 많이적중시켰다. 부부가 오래 함께하면서 닮아가기 때문인데, 서로의 미소나 찌푸린 표정을 무의식적으로 모방한 결과 자주 사용하는 얼굴 근육과 사용하지 않는 근육이 인상을 비슷하게 만든다고 한다. - P41
얼굴 이미지에 그토록 반짝이는 반응을 보이는 까닭은 인간의 어떤 속성이 투영된다고 느끼기 때문이리라. 얼굴은 그 사람 자신과 동일한 실체로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도 본적 없는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때, 또는 라디오나 전화를 타고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올 때, 자연스럽게 그사람의 얼굴을 상상하게 된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오래전에 만났던 사람을 무심코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다. 몸매나 걸음걸이 같은 것을 연상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렇듯 인간의 얼굴은 해부학적 기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거기에는 정신성과 사회성 내지 윤리성이 깃들어 있다. 얼굴은 인격의 그릇이고 사회적 자아의 표식이다. - P43
얼굴은 인격을 가늠하는 표식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누군가가 발언을 하면, 우리는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의얼굴을 본다. 운전할 때도 앞차가 꾸물거리거나 차선을 갑자기 확 바꾸면, 그 차를 추월하면서 고개를 돌려 운전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얼굴은 사람됨의 깊은 본질을 드러내는 바탕 화면이다. 인간의 존귀함이 상당 부분 사회적 차원에서구현된다고 할 때, 타인이 나의 얼굴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비참한 치욕의 바닥으로 추락하기도 하고 더없이 고결한 경지에 오르기도 한다. 타인 앞에 나를 드러내는 것, 누군가와 대면하는 것이 다소의 긴장을 수반하게 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있다. - P44
마음은 얼굴빛으로 드러나고, 강렬한 의지는 눈빛으로 확인된다. 그래서 의기투합하거나 결의를 다질 때 서로의 눈길을맞추는 것은 자연스럽다. 반면, 거짓말하는 사람이 시선을 자꾸만 피하는 것은 자신의 내심이 들킬까 봐 두려워서 그렇다. 똑바로 쳐다보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 눈을 자꾸만 깜빡인다고 하는데, 그 또한 마음을 감추려는 동작이다. 전문 사기꾼들은 그런 무의식적인 신체 반응을 제어하면서 감쪽같이 상대방을 속일 수 있다. - P52
호의를 가지고 바라보는 눈길은 마음을 부드럽게 확장시킨다. 인간에게 그 첫 경험은 갓난아기 때 젖을 빨며 자연스럽게엄마를 바라보는 가운데 이뤄지는데, 그러한 교감은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도 가능하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인간에게 희생당하는 야생동물들을 돌보아온 동물 양육 전문가 데임 대프니 셀드릭은 어미를 잃은 아기 코끼리에게 인공 수유를 처음으로 성공시켰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육법과 우유 조제법이 뒷받침된 덕분이지만, 야생동물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도 빼놓을 수없다. 그가 수유하기 전에 반드시 거치는 순서가 있는데, 아기코끼리를 오랫동안 바라보는 일이다. 그 조용한 응시를 통해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 P56
안과의사가 검진을 목적으로, 또는 친구가 눈에 들어간 이물질을 빼주기 위해 자세히 들여다볼 때의 눈은 신체의 일부에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 소통할 때 바라보는 상대방의 눈은단순한 지각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보고 있는 그 눈은 동시에나의 눈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마주 볼 때, 그시선의 역학은 복잡하다. 내가 상대방을 보는 것을 그 사람이본다. 내 눈을 보는 그의 눈을 내가 보고, 그렇게 보고 있는 눈을상대방이 또 보고…… 마치 두 개의 거울을 맞대면 거울 속에거울이 끝없이 나타나듯, 마주 보는 시선은 무한의 연쇄 고리로이어진다. 그리고 거기에 깃드는 여러 감정이 실시간으로 피드백되면서 대화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떤 감정은 증폭되기도하고, 다른 감정은 상쇄되면서 사그라들기도 한다. 또는 전혀새로운 감정이 우러나와 가슴을 맴돌기도 한다. - P57
대화는 맥락을 함께 창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글쓰기를어려워하는 사람도 말로 하라고 하면 청산유수처럼 쏟아낼 수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눌때는 의미의 장이 쉽게 생성되고 공감대도 잘 구축된다. 그래서 표정이나 억양만으로 중요한 메시지가 전달되기도 한다. 표현이 부실해도 다른 사람이 질문이나 첨언으로 보완해주고, 단어가 정확하지 않아도 눈치껏 해석한다. 속된 표현으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것이다. 반면에 글의 경우, 개떡같이 썼는데 찰떡같이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입체적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서는 오직 글자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따라서 문장을 정확하게 구성해야하는데, 그것은 고도의 훈련을 요구한다. - P60
대화는 ‘라이브 커뮤니케이션‘이다. 눈 맞춤으로 마음을 접속하면서 공동의 세계를 창조하는 언어의 예술이다. 구불구불이어지는 말, 더듬더듬 꿰어지는 생각으로 삶의 지평을 넓혀가는 작업이다. 그러한 시간을 함께 꾸려갈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일상의 이런저런 괴로움과 어려움을 견디고 넘어서는 데 커다란 힘이 될 것이다. 대면으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우리는 ‘살아 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 P61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효율적인데, 몇 가지를 나열해보면 이렇다.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언제든 연락할 수 있다. 아무 데서나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신·발신할 수 있다. 메시지를 무료로 얼마든지 전송할 수 있다. 사진이나 첨부 파일을 대량으로 올릴 수 있고, 동영상 등 관련사이트를 간편하게 하이퍼링크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정보를공유하면서 다자간 통신이 가능하다.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입력된 시간까지 표시되어 고스란히 보관된다. 자판을 눌러서 문장을 작성하기에 완성도 높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감사함, 미안함, 축하, 격려, 기원 등을 전해야 할 때 말로 하면 자칫 쑥스럽고 어색해질 수 있는 이야기를 편안하게 전달할 수 있다.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은 이모티콘이라는 상형문자로 보완할 수 있다. - P95
디지털 공간에서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침묵의 언어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는 말이 오가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 편안할 수 있다. 서로를 향해 온전히 현존하는 가운데, 말 없음 자체가 또 다른 언어로 작동하기도 한다. 그러한침묵은 더 깊은 생각이 꿈틀거리는 여백이 될 수 있다. 반면, 온라인에서 침묵은 무의미한 공백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도우리작가는 그 차이를 이렇게 통찰한다. - P97
침묵은 단지 답장을 기다리는 상태와는 다르다. 서로의 말을곱씹는 시간을 주고받으며 대화하는 일이다. 침묵해도 어색하지 않은 사이란 그만큼 대화의 맥락이 많이 쌓인 관계다. 그런데 메시지 플랫폼들은 상대가 메시지를 읽었는지, 입력 중인지, 실시간으로 접속 중인지, 몇 분 전에 접속했는지까지 알려준다. 미세먼지처럼 온갖 푸시 알림, 뉴스, 이모티콘, ‘좋아요‘가 떠돌아다니는 와중에 침묵의 공간을 지킬 방법은 무엇일까. - P97
‘말을 곱씹는 시간‘과 ‘침묵의 공간‘이 허락되기 어려운 온라인 세계에서 우리의 마음은 촉박해지기 쉽다. 그렇지 않아도디지털 공간에서는 무한의 정보가 빛의 속도로 순환한다. 우리는 시시각각 답지하는 정보들의 진위 여부나 가치를 찬찬히 따질 여유가 없고, 그 의미를 여러 맥락 속에서 헤아리기도 어렵다.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를 즉흥적으로 판단한 다음, 옳음과 그름 또는 호감과 비호감의 이분법으로 재빨리 결론짓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생각으로 함께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다. 수많은 사람이 일방적으로 발언을 쏟아내는 공간에서 순식간에 감정이 충돌하고, 이편과 저편 사이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게다가 사용자가 선호하는 콘텐츠를 선별하여 제공하는 추천 알고리즘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뭉치도록 만들어 집단 사고와 확증 편향을 부추긴다. 이른바 필터 버블 filter bubble, 또는 메아리방 ccho chamber 효과다. - P98
코로나19의 후유증은 다방면에 걸쳐서 나타났는데, 경제적타격 및 빈부의 양극화와 함께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학교교육에서의 학습 손실과 그에 따른 학력의 격차다. 온라인 수업이시행되면서 디지털 매체에 익숙하지 않거나 가정환경이 열악한 학생들, 그리고 배움에 대한 열의가 없거나 공부 습관이 배어 있지 않은 아이들의 학습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교실에서와 달리, 교사들이 그런 격차를 인지하면서 개별적으로 지도할수 없기에 뒤처지는 아이들은 방치된다. 저학년일수록 지적 발달의 정체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고, 오랜 기간에 걸쳐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17 유기적인 연 - P99
비인지능력의 핵심 가운데 하나가 사회적 지능이다. 코로나19로 등교가 막히면서 학생들의 성장이 지체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친구들을 사귀지 못한 것이다. 어린 나이일수록 복합적이고 균형 있는 지성의 발달이 필요한데, 사회성을 익히지 못하면 지적 능력과 인격 발달에 지장이 생긴다. 그렇다면 사회성의 결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가. 광주광역시의 어느중학교에 근무하는 이 모 교사에 따르면, 2022년 전면 등교 수업이 이뤄지면서 드러나는 학교 폭력의 양상이 매우 기이하고 당황스럽다고 말한다. - P100
인간의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맥락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상대방이 말하는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아무리 정확하게파악한다고 해도, 맥락을 놓치면 엉뚱한 해석에 이르고 만다. 맥락이 무엇이길래? 국어사전에서는 ‘어떤 일이나 사물이 서로 연관되어 이루는 줄거리‘라고 풀이하고 있다. 똑같은 행위나 사건, 발언이라 해도 그 앞뒤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그 흐름의 얼개가 맥락인 것이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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