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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포트 - 여름 고비에서 겨울 시베리아까지
김경주 지음, 전소연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빛의 유목
모래바람이 지나가고 난 초원과 사막은 고요하다. 고비로 들어온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동안 적막과 바람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사막
은 바람처럼 흐르며 움직이고 있다. 아주 먼 시간부터 사막은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고 아주 먼 곳을 향해 가고 있다. 사막은 자신을 견디지
못해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울먹거리고 있었다. 자신의 시간을 모래와
바람을 파고 그곳에 묻고 있는 것이다. 사막의 손톱은 다 깨져 있을 것
이었다. 빛은 인간이 지나갈 수 없는 사막의 그 손톱들을 유목하고 있
는 듯했다. 수백 년간 인간이 걸어간 것은 고비의 표면이 아니라 고비
의 시간 위였다. 인간의 시간은 고비의 시간에선 바람의 일부일 뿐이
었다. 바람이 뜨거운 것이 아니라 바람의 일부에서 나도 잠시 뜨거웠
던 것이다. 고비는 관계를 만들지 않았고 관계의 바깥에서 고비는 고
요했다. 나는 내 관계를 데려와 그 고요를 잠시 편애했을 뿐이다.
고비의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새벽의 빛들은 사막의 기울기를 타
고 흘러내리고 있고, 고비의 한가운데에서 방향을 잡을 수 없는 시간
과 공간의 기울기들은 모두 사막의 빛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울렁임 때
문이다. 사막의 냄새는 어떤 냄새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적막의 냄새
다. 적막의 한가운데서 나는 자주 넘어졌다. 눈과 코와 모래로 들어오
는 모래를 벗겨내면서 나는 걷고 또 걸었다. 몸은 점점 무거워졌으나
내 눈은 점점 깊은 곳으로 깊은 수심水沈을 내려 보내곤 했다. 노트를
펴고 일기를 쓰려고 하면 금새 잠이 들어버렸고 몸이 다 잠들었다고 생
각하면 두 눈은 깨어 있을 때가 많았다. 몸과 눈은 서로를 향해 강렬한
모순을 주고받으며 사막을 건너가고 있었다. 제 모순을 향해 필사적일
수 있다면 그것이 사막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느낀 건 고비의 마지막 무
렵이 가까워서였다. 우리가 떠나지 않고 혼자서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
는 적막이 있다면 그건 여행일 것이다. 여행의 적막을 두려워하거나 받
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늘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적
막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는 곳에서 몸을 구
부리고 오열할 수도 있었고 자신의 노트를 펼쳐놓고 자기 안의 알 수 없
는 지명地名을 적어두거나 그려 넣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생에 그러한 적막이 꼭 근사한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다. 결국 여행
은,결코 치료될 수 없는 중독인 셈이다.
나는 하나의 여행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어디까지 필사적일 수 있을
지 늘 궁금했으나 그런 평화는 내게 자주 주어지지 않았다. 어떤 무명無
明을 정해놓고 그늘이 자신을 이동하지 않는 것처럼, 나와 내 언어는
그런 불가능한 것들 앞에서 인력을 놓치곤했다. 그때마다 나는 하나
의 음악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런 음악을 만나고 있을 때 나는 다른 시
간으로 내 시간을 이식시키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기
도 했고 여행이기도 했고 하나의 시이기도 했다. 본질적으로 사랑과
여행과 시는 그것의 특성상 영원히 불시착하고 싶다는 우리들의 내적
인 안감이기도 하다. 도달한다면 우리는 인생의 목적론에 유린당하는
것이다. 아파트 욕조에 앉아 면도날로 순백의 둥근 동맥을 끊을 수 있
는 용기보다 끝까지 도달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용기가 더 적막할 수
있고 더 열정에 가까운 것이다.
사랑이여 나는 당신의 지하를 사랑했다.......
순록의 심해
얼어붙은 바이칼의 표면 위로 순록이 나를 끌고 간다. 순록은 가슴
에 붉은 살이 올라 있다.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는 겨울의 바이칼까지 온 것이다. 사슴
은 죽은 영혼을 나른다고 한다. 러시안계 몽골인 부랴트족의 믿음이
다. 그들은 바이칼의 섬 속에 통나무로 움막을 짓고 살고 있다. 숙소는
섬 속에 머물고 있는 순록의 방처럼 여기선 보이지 않는다. 순록이 무
거운 내 몸과 배낭을 싣고 그곳으로 달리고 있었다. 몇 미터 앞에서 얼
음이 지직거리면 순록은 특유의 예민하고 다정한 귀를 세우고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 그러곤 여린 새순 같은 혀를 내밀어 얼음을 햝기 시작
했다. 얼음의 두께를 헤아리는 것이라고 했다. 혀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수심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 혀가 만나고 오는 것이 무엇인지 나
는 알 수 없었다. 원주민의 습성처럼 순록들도 수심을 향해 주술을 내
려 보내는 것이다.
몇만 킬로미터에 걸쳐 얼어붙은 바다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고요하
게 순록과 수심 사이의 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원주민들은 순록을 다
그치지 않고 잠시만 있자고 했다. 그것은 경험해보지 못한 하나의 경
이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나는 그것을 여행 중 언제나 한두 번 겪게 되
는 순간이라 생각하고 있다. 이 세상의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순간에 몸
이 참여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순록들이 빠져나와 무수한
꿈으로 나를 데려갔듯이 나는 아이처럼 순록의 목을 잡고 등에 잠시 머
리를 기대고 있었다. 그것은 혼미한 얼음 위에서 겪는 하나의 사건이
었다.
순록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호수 주변으로 절벽과 산맥들이 솟아
있었다. 나는 멍하게 그것들을 바라보며 조는 듯이 달렸다. 내 아래로
뻗어 있는 수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수심은 하나의 허구처럼 느껴진
다. 수면은 얼었지만 수심은 얼지 못한 채 내 아래 몇천 미터를 거쳐 떠
있을 것이었다. 수심 아래에는 인간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종류의 색들
이 울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색의 물고
기들은 바위의 구멍안에서 눈의 색을 바꾸고 있을 것이다. 수심의 따
뜻한 공중들이 물 위로 올라오는 순간에 이 호수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
로 바뀔 것이다. 어쩌면 내가 지금 건너가고 있는 이 수면을 나는 다시
기억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층을 상상하거나 수
심을 상상하는 일은 대개 그러하다. 그곳을 인식으로 드나들었다 해도
인간의 상상과 지질학은 옅어서 그곳에 닿지 못한다. 닿았다 하더라도
원하는 순간에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드나들었어도 한 번도 깊이를 재어오지 못하는 심해들이 우리
의 인생에는 여러 곳 있었다. "맞아 그런 곳이 너무 많았지......" 늙어
가면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사랑이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김경주 여행 산문집 패스포트(랜덤하우스)중에서
김경주; 시인.2003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와
야설 작가와 대필 작가, 학원 강사, 카피라이터 등을 전전하다가 지난해
겨우 시집 한 권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세상에 내놓았다.
서강대 철학과 재학 시절 친구들과 독립영화사 '청춘'을 설립하여 무모하고
단종된 단편영화 작업들을 해오고 있으며,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에 작품
[늑대는 눈알부터 자란다]를 워크샵 공연으로 올려 극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006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았다.
한강이 얼어버린 차운 날, 뒹굴대면서 책을 덮는다.
적막의 고비사막이 발을 끌면서 가슴 위를 지나가고
상상해보지 못한 바이칼의 심해가 자신을 송두리째
염해버린 호수로 다가온다.
올만의 포스팅, 타자 연습 삼아 독수리 자판을 열씨미
두들겨 보았다.
겨울 와우산을 남겨두고 떠나는 이웃의 빨래 위로 쏟아지는
볕이 오래보아도 한없이 따뜻하다.
그 따뜻함,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 그에게선 바다 냄새가 날 것이라고 속삭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