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 / 창비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의 편지에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를 읽고서.

 늘 당신의 편지는 표지에서부터 마음 이끌리게 합니다.
 색상에 둔한 제 눈에도 그 빛깔은 선연한 봄입니다. 물결처럼 부서지던 강진 들판에서 만난 연녹빛 아스라한 세상이고 그 안에는 다산초당 동암 툇마루에 앉아서 오래 들었던 대나무숲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있습니다. 쏴아아~ 솨아아~ 댓잎들이 어우러지는 바람소리는 선명하게 행간과 행간사이를 떠돌아다닙니다. 그래서 저를 언제나 추사의 글씨가 걸려있던 동암으로 데려다주곤 합니다.

 시대의 사상가요, 과학자요, 대학자면서 동시에 실천가인 당신이 아닌 아버지 당신이 보내는 편지.
 제가 받아 든 그 편지에는 그리움도 눈물도 없이 그저 옆에 앉아있는 아들들에게 가르침을 주는 듯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슨 공부를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지조 높은 선비정신을 가진 자식들로 자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자상한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이 편지를 선물한 아름다운 분의 마음으로도 제게는 다가와서 당신의 마른 어깨가, 깊어진 눈이, 단정한 손이 더욱 막막하게 그리워집니다. 담담함 속에 담긴 한마디 한마디의 가슴앓이가 아찔하게 제게 읽히는 당신의 편지를 읽으면서.

 새해입니다.
 이제 우리가 익숙해 하는 양력으로도, 덜 익숙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음력으로도 더 이상은 피할 수 없는 새해.
 갑신년이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새해를 맞으면 꼭 일년의 독서를 계획하라던 당신이 말씀이 떠올라 저는 지금 당신께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당신은 편지에서 그러셨지요.
 모든 학문의 근본은 효(孝)와 제(弟)이고 사람다운 양심,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가짐, 사람답게 살려는 의지같은 원리의 근본없이, 연구된 학문은 그저 뿌리 없는 나무, 모래 위에 세운 집이 되어 위험천만하다고.
자식들이 독서하는 것이 곧 당신을 살려주는 것이라고 독서를 거듭 강조하셨지요.
 책을 가까이 못하고 있는 제게 부끄러운 질책입니다. 어디 부끄러운 것이 그것뿐이랴 싶지만은 독서는 당신이 꼭 아들들에게만 그 가르침을 남긴 것은 아니기에 이백년이 지난 지금.
 저는 여기서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어쩌면 아버지를 일찍 여윈 저는 당신에게서 자상하고도 엄격한 제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군자는 의관을 바르게 하고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단정히 앉아 진흙으로 만들어 낸 사람처럼 감정이 없는 양 엄숙하게 지내는 생활 습관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그가 저술하는 글이나 이론이 돈후하고 엄정하게 되며, 그러한 뒤에야 위엄으로 뭇사람을 승복시킬 수 있고 명성이 퍼져나가게 된다.”
 "세상에 비스듬히 드러눕고 옆으로 삐딱하게 서고,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 말을 하는 것, 얼굴빛을 바르게 하는 것. 이 세 가지가 학문을 하는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마음을 기울여야 하는 것"
 당신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어서 올 한해 제가 읽어야하는 독서목록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유배’라는 건 어떤 걸까요. 그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인 절망은.
 정조의 총애로 탄탄대로를 달려가던 당신에게 몇 번의 유배는 천인절벽 앞에 내 몰린 참담함이었을 텐데, 편지속에 당신은 세상에서 버려진 유폐된 마음을 한 구절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막내아들을 잃은 뼈아픈 심경도, 형님을 잃은 애끓는 마음도, 그저 물 흐르듯 담담하게 풀어낼 뿐입니다. 모든 것을 버렸기에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인지요.
 저는 과거의 영화에 매달려 자신을 망치고 가족들의 삶까지도 피폐하게 만드는 많은 어른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과거를 버리고 불투명하고 막막한 미래를 응시하는 일은 참혹한 자기성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기에 당신에게서 진정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많이 그렇습니다. 책임과 의무는 나 몰라라 하고 모든 권리만을 주장하는 없는 게 낫다 싶을 아버지 같은 많은 아버지들에 둘러싸여 자식들 백성은 이 엄동설한에 모두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양육권이 필요할 때만 달콤한 사탕을 사들고 찾아와 아버지라 불러줄 것을 비굴한 웃음으로 요구합니다.
 "너희들은 집에 책이 없느냐? 몸에 재주가 없느냐? 눈이나 귀에 총명이 없느냐? 어째서 스스로 포기하려 하느냐. 영원히 폐족(廢族)으로 지낼 작정이냐? 너희 처지가 비록 벼슬길은 막혔어도 성인(聖人)이 되는 일이야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문장가가 되는 일이나 통식달리(通識達理)의 선비가 되는 일은 꺼릴 것이 없지 않느냐."
 세상을 향해 이렇게 준열한 꾸짖음을 던질 아버지 당신이 그립습니다.
 모든 이 땅의 아이들의 아버지로, 다 자랐지만 철 안 든 자식의 아버지로 많이 그립습니다.
 이백년 전의 당신.
 우리는 여전히 당신의 부재가 너무 큰 암담한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모두 학유와 학연이니 거기, 그곳 머나먼 유배지에서 당신, 다시 그 가르침을 줄 수는 없는지요.

 당신의 편지를 읽던 어느 날에 저는 제가 좋아하는 화성의 성곽을 따라 걸었습니다. 마침 눈이 내려 계속 저를 따라 다니던 댓잎 서걱이는 소리는 눈 속에 갇혔고 당신의 카랑한 시선 담긴 소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이 따라왔습니다. 그 바람은 당신이 설계했을 화양루 누마루를 지나, 서장대에 잠시 머물다 새로 우뚝 선 당신의 임금, 정조 앞에서 멈추었지요.
 그날 저는 비로소 보았습니다. 당신이 몰고 온 바람이 세상과 임금사이에 놓여있는 것을.
 바람을 거기 남겨두고 왔습니다.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으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여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그러한 뜻이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은 시라고 할 수 없다. 시에는 반드시 정신과 기백이 있어야 한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로만 골라 걸으면서 남겨 놓고 온 제 어지러운 발자국의 화인들이 당신의 말이 되어 제 가슴에 발자국으로 꾹꾹 남습니다.
 당신을 닮은 그 발자국들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면 앞서서 제가 걸어야 할 곳으로 저를 인도하려 할 것 같습니다.
두루마리 당신의 편지를 말아들며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의 이백년 후 자식이어서 참으로 행복하다고.

 슬쩍 웃음으로 때우며 지나가려는 제게 기어이 선물을 남겨주시는 당신. 감사합니다.
 가난한 당신이 제게 준 것은 ‘근(勤)’과 ‘검(儉)’이라 쓰인 두 글자입니다.
 당신이 말씀하시는 부지런함이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고, 아침에 할 일을 저녁으로 미루지 말라.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 오는 날까지 끌지 말고, 비 오는 날 해야 할 일을 맑은 날까지 끌지 말아야 한다.” 바로 그런 것이라 합니다.
 오늘은 맑은 날이니 저는 오늘 마쳐야 할일이 있어서 저는 이제 당신께 쓰는 편지를 마치렵니다.

 "내 저서가 쓸모없다면 나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마음의 문을 닫고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될 뿐 아니라 열흘이 못 가서 병이 날 거고 이 병을 고칠 수 있는 약도 없을 것인즉 너희들이 독서하는 것은 내 목숨을 살려주는 것이다. 너희들은 이런 이치를 생각해 보거라."
 이제 이 말씀을 명심해 당신의 저서를 비롯해 독서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당신,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아주십시오. 당신은 우리곁에 살아있습니다. 

                                                             이천사년 일월 이십오일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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