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시어머니가 고관절이 부러져 입원하셨다. 연락을받고 황급히 달려가서 병실 문을 여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의 생리적 반응에 나조차 당황스러웠다. 늘 세로로 서 계시던 분이 가로로 누워 있으니 낯이 설고 며칠 사이 확 쪼그라든 모습에 안쓰러움이 치밀기도 하였지만, 실은 울 엄마 때문이다. 엄마는 심장계 질환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긴병에 효자 없다지만, 엄마가 다만 일주일이라도 앓다가 돌아가셨으면이별을 예비했을 텐데 싶어 두고두고 한스러웠다. 입원실에 누워 계신 시어머니를 보는 순간 느닷없이 엄마의 얼굴이 개입한거다. 효심 아니라 통한, 이 눈물의 사회학은, 엄마 장례식장에서 배운 것이기도 하다. 엄마 친구분이 하도 넓게 울어 이제 고만 우시라고 했더니 그러셨다. "니 엄마 가엾어 우는 게 아니다. 내 설움에 우는 거지." - P134

그 후로 종종 목도했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셨을 때, 시청분향소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들려왔다. 밤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자기 설움 토해 내는 갖가지 궁상과 청승의 사연들소방 호스보다 긴 눈물의 행렬들. 고역의 시절을 살아 내느라지친 민초들은 광장에 마련된 공식 초상집에 와서 꺼이꺼이 울다가 가곤 했던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친절한 복희씨》에서눈물에 담긴 미묘한 복합 감정을 멋진 문장으로 정리했다. 첫사랑이었던 그에게 청첩장을 건네니 그 남자가 울더라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건 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나도 따라 울었다.
이별은 슬픈 것이니까. 나의 눈물에 거짓은 없었다. 그러나 졸업식 날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학교에 그냥 남아 있고 싶어우는 건 아니다."
- P135

투명한 눈물의 속사정은 이리도 복잡하다. 2011년 9월 31일 향년 여든한 살로 영면에 드신 이소선 여사의 생애 마지막두 해를 그림자처럼 붙어서 기록한 태준식 감독의 제작 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더 놀다 가지‘라는 말을 하는 그녀에게
‘자주 찾아뵐게요‘를 수없이 반복하며 나오던 창신동 골목에서전체의 그림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조직과 효율이라는 몸에밴 그동안의 작업 관성을 버리고 작업했다." 따뜻하고 사려 깊은 감독의 눈길이 고맙고도 궁금했다. 그의 가슴에는 어떤 큰 - P135

트 비애의 강물이 있어 한 삶을 이리도 고요히 받아 낸 걸까. 덕분에 나는 이소선 여사의 삶에 나의 삶을 비춰 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는 게 힘든데 그 힘듦에서 어떻게 재밌고 값지게 살아야할까, 삶의 기본값으로 주어진 설움과 청승을 어떻게 품고 갈까, 어머니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아주 구체적으로는 어디에 돈과 시간을 써야할까를 생각했다.
이소선 여사는 생전에 집회 현장에서 연행이나 구류로 끌려간 횟수만도 250회가 넘는다는데, 어째서 영화에는 억척스러운 투사가 아닌 다정한 선녀가 노니는가. 마음이 너르고 곧고성정이 귀엽기까지 한 어머니의 영혼을 빌리고 싶다. 남의 입에 밥 들어갈 끼니를 걱정하느라 입술이 부르트고 주름이 늘고검버섯 피어난 어머니의 생은 얼마나 시적인가. - P136

낮을 가져다 내 허리를 찍어라
찍힌 허리로 이만큼 왔다 낫을
가져다 내 허리를 또 찍어라
또 찍힌 허리로 밥상을 챙긴다
비린 생피처럼 노을이 오는데
밥을 먹고
하늘을 보고
또 물도 먹고
드러눕고

_허수경의 시 <시>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양푼의 식은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에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는 더운 목숨이여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 황지우의 시 거룩한 식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