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단. 하. 다.
버지니아 울프는 1920년대에 이런 글을 쓰고, 신문에 기고하고, 논쟁하고, 강연을 했다니...
문학도 문학이지만 여성주의에 관한 확고한 철학과 일관된 논리라니...
결론적으로 2022년도인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환경은 <집 안의 천사 죽이기>는 진행되어야 한다.




여러분 협회의 간사가 이 자리에 나를 초대하면서 제안했습니다. 여러분이 여성의 고용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나 자신의 직업상 경험에 관해 뭔가 말해 달라고요. 내가 여자인 것도 사실이고 하는 일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과연 어떤 직업상의 경험을 해온 것일까요? 선뜻 말하기 어렵네요. 내 직업은 문학입니다. 이 분야에는 여성의 경험, 다시 말해, 여성만이 갖는 경험이라 할 만한 것이 별로 없는 편 - P11

입니다. 아마도 무대 예술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분야에서보다 더 그럴 것입니다. 길은 일찍부터 나 있었지요. 패니버니 애프라 벤, 해리엇 마티노, 제인오스틴, 조지 엘리
‘엇‘ 같은 많은 유명한 여성들과 이름 없이 잊혀 간 훨씬 더많은 여성들이 나보다 오래전에 그 길을 평탄하게 닦아내걸음을 순조롭게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내가 글을 쓰게 되었을 때 내 앞길에 실질적인 장애물은 별로 없었습니다. 글쓰기는 점잖고 무해한 일거리지요. 펜을 긁적인다고 해서 집안의 평화가 깨지지도 않고, 가계에 부담이 되지도 않으니까요. 10실링 6펜스어치 종이만 사던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전부 쓰기에 충분합니다. 그럴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지요. 작가에게는 피아노도, 모델도, 파리, 빈, 베를린으로의 유학도,
스승도 필요치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종잇값이 싸다는 것이여성이 다른 어떤 직업에서보다 먼저 작가로서 성공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 P12

그러다 문득 큰돈 들지 않는 손쉬운 일을 해보자는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즉, 그렇게 쓴 종이 몇 장을 봉투에 넣고 그 한구석에 1페니 우표를 붙여, 그 봉투를 길모퉁이에있는 빨간 우체통에 떨구어 보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나는 저널리스트가 되었고, 내 수고는 다음 달 초하루에 ㅡ내게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날이었지요 - 편집자로부터 온편지와 함께 들어 있던 1파운드 10실링 6펜스 수표로 보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내가 직업여성이라 불릴 자격이 얼마나 적은지, 그런 삶의 투쟁과 난관에 대해 얼마나아는 것이 없는지를 보여 드리기 위해, 한 가지 인정해야겠습니다. 나는 그 돈을 빵과 버터, 집세와 신발과 양말, 또는푸줏간 외상값 등에 쓰는 대신, 나가서 고양이를 한 마리 샀습니다. 멋진 페르시아고양이였는데, 얼마 안 가 이 고양이때문에 이웃들과 심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지요. - P13

 내가 서평을 쓰고 있었을 때 나는 그녀에게괴롭행복와 종이 사이에 끼어들곤 하던 것이 바로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나를 귀찮게 하고 내 시간을 허비하고 나를 하도 괴롭혔으므로, 마침내 나는 그녀를 죽여버렸습니다. 젊고 행복한 세대인 여러분은 아마 그녀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고, 〈집안의 천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를 것입니다. 가능한한 간략히 그녀를 묘사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아주 정이 많습니다. 아주 매력적이고 자기 욕심이라고는 없습니다. 가정생활의 어려운 일들을 척척 해냈지요. 날마다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닭고기를 먹을 때면 다리를 집었고, 외풍이 들면 바람막이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녀는 자기 몫의 생각이나소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항상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소원에 공감하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ㅡ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지만- 그녀는 정숙했습니다. 정숙함이야말로 그녀의 주된 아름다움으로 여겨졌지요. 부끄러워낯을 붉히는 모습이 더없이 우아하다고들 했습니다.  - P14

소설책 한권을 평하려 해도 자기만의 생각을 가져야 하며, 인간관계와 도덕과 성에 대해 자신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표현할 수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집안의 천사>에 따르면, 여성은 이 모든 문제를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다룰 수가없다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성공하려면 매력적이라야 하고환심을 사야 한다. 요컨대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는 내 종이 위에 그녀의 날개 그림자나 후광의 광채가 느껴질 때마다 잉크병을 집어 그녀에게 던졌습니다. 그녀는 좀처럼 죽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허구적인 존재라는 것이 그녀를 도왔지요. 유령을 죽이기란 실재하는 존재를 죽이기보다 훨씬 어려우니까요. 그녀는 내가 쫓아 버렸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기어 나왔습니다. 결국은 그녀를 죽여 버렸다고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지만, 그것은 아주 질긴 싸움이었고,
차라리 그리스어 문법을 배우든지 모험을 찾아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데 썼더라면 좋았을 만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진짜 경험, 그 시절의 모든 여성 작가에게 닥칠수밖에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집 안의 천사>를 죽이는 것은여성 작가가 해내야 할 일의 일부였습니다. - P16

<집 안의 천사> 죽이기는 해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 육체로서의 나 자신의 경험에 대해 솔직히 말하기는 해결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어떤 여성도 해결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녀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여전히 막강하고, 그러면서도 분명히파악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겉보기에는, 책을 쓰는 것만큼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겉보기에는, 글을 쓰는 데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장애가 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하지만안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많이 다릅니다. 그녀는 여전히 많은유령과 싸워야 하고, 많은 편견을 극복해야 합니다. 여성이죽여 버려야 할 유령이나 깨뜨려 버려야 할 암초를 만나지않고 그저 앉아서 글을 쓰기까지는, 정말이지 앞으로도 오랜시간이 걸리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여성에게 가장 개방된 직업인 문학에서 이러하다면, 여러분이 처음으로 진입하려 하는 새로운 직업들에서는 어떻겠습니까? - P20

만일 여성들이 하나의 성(性)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라면,
그 나라는 세계의 주요한 발견들을 이룩하는 데 별로 기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여성들에게 울적한 결론일까? 왜꼭그래야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우리 대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나 렘브란트가 되지는 못하리라는 생각에 익숙해져 있으며, 여성들이 경주에서 2등이나 3등은커녕 6등이나 7등만해도 충분히 만족한다.
면105쪽에는 눈길을 끄는 대목이 있다. 베넷 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계속해서 주장하는 바이다. 이 대단히 진보한 시대에도 여성이라는 성은 지배당하기를 좋아하며, 영원까지는 아니라 해도 적어도 향후 몇천 년 동안은 여전히 지배당하기를 좋아하리라고 말이다. 이처럼 지배당하려는 욕망 그자체가 지적인 열등함의 증거이다. 몇몇 분야에서는 최근의진보적 사건들이 신비로운 방식으로 여성의 지적인 열등함에 종지부를 찍은 듯한 인상을 주기는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여성의 명백한 특징으로 남아 있다.>  - P27

교육과 자유의효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요. 간단히 말해, 다른 성을 폄하하는 것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겠지만, 자신들의논거에 그토록 확신을 가지고 빠져들다니 베넷 씨와 <상냥한 매>는 다소 다혈질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니, 여성들로서는 남성의 지성이 갈수록 저하되어 가고 있다고 믿을 만한모든 이유가 있지만, 대규모 전쟁과 평화가 제공하는 이상의증거가 나오기까지는 그것을 사실로 공표하지 않는 편이 현명하겠지요. 만일 <상냥한 매>가 진심으로 위대한 여성 시인을 발견하고자 한다면, 그는 왜 『오디세이아』의 저자가 여성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슬쩍 넘어가고 마는지요? 당연히 나는 베넷 씨나 <상냥한 매>가 아는 만큼 그리스어를 안다고주장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포는 여성이었는데 플라톤 - P31

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녀를 호메로스나 아르킬로코스와함께 자신들의 가장 위대한 시인들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말을 종종 들었습니다. 베넷 씨가 사포보다 나은 남성 시인의 이름을 50명이나 들 수 있다는 것은 환영할 만한 놀라운일입니다. 만일 그가 그 이름들을 지면에 발표한다면, 나는여성에게 그토록 소중하다는 순종의 실천으로서 그들의 저작을 구매할 뿐 아니라,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 그 이름들을외울 것을 약속하겠습니다. - P32

그와 별도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한 사람의 위대한 뉴턴이 나오기 위해서는 상당수의 그보다 못한 뉴턴들이 있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라플라스, 패러데이, 허셜 등의경력을 조사하고, 아퀴나스와 테레사 성녀의 생애 및 업적을비교하고, 존 스튜어트 밀과 그의 친구들 중 어느 쪽이 밀 부인에 대해 잘못 생각했는지 밝히느라 귀지의 지면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해서, <상냥한 매>로부터 비겁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동의하리라 생각되는 사실은, 아주 이른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 인구 전체를 낳은 것은 여성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은 많은 시간과 수고를 요구합니다. 또한 이 일이야말로 여성을 남성에게 - P39

종속시켜 왔고, 그러면서 그녀들 안에 인류의 가장 사랑스럽고 훌륭한 자질을 함양해 왔습니다. 나와 <상냥한 매>가 다른 것은 그가 현재 남녀의 지적 평등성을 부정한다는 점이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베넷 씨와 더불어 여성의 정신은 교육이나 자유를 누려도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고, 여성의 정신은 최고의 성취를 이룩할 수 없다고, 여성의 정신은 지금과같은 처지에 영원히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여성이 발전해 왔다는 사실은 <상냥한 매>도 이제는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녀들이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는 사실을 나는 거듭 말해야겠습니다. 119년도 아닌 19세기에 왜 여성들의 발전에 한계를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것은 교육만이 아닙니다.
여성들은 경험의 자유를 누려야 합니다.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들과 다를 때(나는 여성과 남성이 사실상 같다는 <상냥한매>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두려움 없이 자신의 차이를 공개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 P40

 만일 장래에도 그런 견해가 횡행한다면, 우리는 반쯤 문명화된 야만 가운데 남게 되리라고고나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한편의 영원한 지배와 다른 한편의 영원한 예속을, 적어도 나는 그렇게 정의합니다. 왜냐하면 노예 상태로의 타락과 맞먹는 것은 주인 노릇으로의 타락밖에 없으니까요.


이에 대해 <상냥한 매>는 짧게 답했다. 
<만일 내 견해를 표명함으로써 여성의 자유와 교육이 저해된다면, 나는 더 이상 논의하지않겠다.> - P41

소설은 희곡이나 시보다 훨씬 쉽게 들었다 놓을 수 있다. 조지 엘리엇은 작품을 쓰다 말고 아버지를 간호했다. 샬럿 브론테는 글 쓰던 펜을 내려놓고 감자싹을 도려냈다. 여성은 공용의 거실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던 만큼, 인물을 관찰하고 성격을 분석하는 데 눈이 뜨였다. 그녀가 받은 훈련은 시인이 아니라 소설가가 되기에 적합한 것이었다.
19세기에도 여성은 거의 전적으로 집에서, 자신의 감정속에서만 살았다. 19세기 소설들은 그 탁월함에도 불구하고그것을 쓴 여성들이 자신의 성별 때문에 어떤 종류의 경험들에서는 배제되었다는 사실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작가의 경험이 소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가령 콘래드"의 소설에서 가장 훌륭한 부분은 만일 그가선원이 될 수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또는 톨스토이에게서 그가 군인으로서 전쟁에 대해 아는 것, 부유한 청년으로서 교육을 받고 온갖 경험을 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인생과 사회에 대해 아는 것을 제거한다면, 『전쟁과 평화』는믿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해질 것이다.
- P54

 전쟁이나 항해나 정치나 사업에 대한 어떤 직접적 경험도 그녀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들의 정서적인 삶조차도 법과 관습으로 엄격히 규제되었다. 조지 엘리엇이 루이스 씨"와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은 채 동거하기 시작하자 여론이 들끓었다. 그 압박때문에 그녀는 교외로 칩거했고, 이 일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작품에 가장 나쁜 영향을 미쳤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청해서 만나러 오겠다고 하지 않는 한 자기 쪽에서는 결코 그들을 초대하지 않는다고 썼다. 같은 시기에 유럽의 반대편에서는 톨스토이가 군인으로서 모든 계층의 남녀와 더불어 자유로운 삶을 살았지만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고, 그 경험으로부터 그의 소설들은 놀라운 폭과 힘을 끌어냈다. - P55

 여성 작가는 외적 요인으로 인한 분심 없이 자신의 비전에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때 천재성과독창성이 있어야만 도달할 수 있었던 초연함을 이제야 평범한 여성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평균적인 여성 작가의 소설도 1백 년 전, 아니 50년 전에 비하더라도 훨씬 더 참신하고 흥미로워졌다.
하지만 여성은 여전히 자신이 쓰고자 하는 바를 그대로쓸 수 있기까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야 한다. 우선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다. 이것은 겉보기에는 극히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곤혹스러운 문제이다. 즉, 문장 형태 자체가 여성에게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남성들이 만든 문장이라, 여성이 쓰기에는 너무 헐겁고 너무 무겁고 너무 위세를 부린다. 소설에서는 워낙 넓은 범위가 다루어지는 만큼 독자를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손쉽고 자연스럽게 실어 나를 평범하고 통상적인 유형의 문장을 채택해야 하는데, 이런 문장을여성은 스스로 만들어내야만 한다. 현재 쓰이는 문장을 바꾸고 맞춰 가면서, 자기 생각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부서뜨리거나 찌그러뜨리지 않고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을 찾아내야만 - P57

 하지만 또한 그것들은 또 다른 질서,
즉 인습이 부과하는 질서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인습의 심판관은 남성들이고, 그들이 인생의 가치 체계를 수립해왔으니, 소설 또한 크게는 인생에 기초해 있는 만큼 소설에서도 이런 가치들이 만연하게 된다.
그러나 인생에서나 예술에서나 여성들이 지향하는 가치는 남성들의 가치와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이 소설을쓰게 되면 기존의 가치관을 바꾸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남성에게는 하찮게 보이는 것을 진지하게 만들고, 그에게 중요한 것을 시시하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물론 그 때문에 비판을 받을 터이니, 남성 비평가는 현재의 가치 체계를 바꾸려는 시도에 진심으로 놀라고 의아해하며, 그것이 단순히 다른 시각이 아니라 약하고 사소하고 감상적인시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시각과 다르니까. - P58

여기서도 극복해야 할 어려움들이 보인다. 왜냐하면일반화해도 좋다면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손쉽게 관찰되지 않으며, 그녀들의 삶은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훨씬 덜 검토되고 검증되기 때문이다. 여성의 하루에서는 이렇다 하게남는 것이 없을 때가 많다. 요리한 음식은 먹어 없어졌고, 키워 놓은 자식들은 세상으로 나가 버렸다. 어디에 강조점을둘 것인가? 소설가가 포착할 만한 두드러진 점은 무엇인가?
말하기 어렵다. 그녀의 삶은 극도로 곤혹스럽고 수수께끼 같은 익명성을 지닌다. 처음으로 이 미답의 영역이 소설에서탐사되기 시작하고 있으며, 동시에 여성도 직업의 문호 개방 - P59

과거에는 여성의 글쓰기가 갖는 미덕이 지빠귀 노래의 미덕처럼 그 신성한 자발성에 있었다. 그것은 배움 없이, 그저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것은수다와 재잘거림, 종이위에 쏟아놓아 여기저기 얼룩지며말라 갈 잡담에 지나지 않았다. 장차 여성이 시간과 책과 집안의 작은 공간을 누리게 된다면, 문학은 남성에게 그런 것처럼 여성에게도 갈고닦을 예술이 될 것이다. 여성의 재능은훈련되고 강화되어야 한다. 소설은 개인적 감정의 토로를 넘어, 지금보다 훨씬 더, 다른 어느 예술 못지않은 예술 작품이될 것이며, 그 자원과 한계가 탐사될 것이다.
그런 단계에서부터 좀 더 세련된 예술, 지금까지 여성들이 거의 실천하지 못했던 장르인 에세이나 비평, 역사, 전기를 쓰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 그 자체로 보더라도 그것은 이익이 될 터이니, 그런 글쓰기는 소설의 질을 개선할 뿐 아니라, 마음은 달리 놓여 있는데도 그저 접하기 쉽다는 이유로 소설에 모여들던 객들을 제 갈 길로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소설은 우리 시대에 그 - P62

것을 그토록 볼품없게 만들던 역사와 사실이라는 혹을 떼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예언하건대, 여성은 장차 소설은 덜 쓰되 더 훌륭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뿐 아니라 시와 비평과 역사를 쓸 것이다.
하지만 물론 이것도, 여성이 자신에게 그토록 오랫동안 거부되었던 것, 즉 여가와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되는 황금시대, 저 전설적인 시대를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 P63

이 모든 것은 그녀의 총기가 천부적인 것임을 입증한다. 그녀는 워낙 총명하여 외부의 도움을 괴로워했으며, 워낙 정직하여 타인의 도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녀가 다른 모든 사람을 따돌릴 만한 철학 체계를 세우기로 한 것은, 완전한 무지의 들판,
그녀 자신의 의식이라는 경작지 않은 땅으로부터였다는것이다. 그 결과가 전적으로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워낙광대한 체계를 세우려다 보니, 첫 책에서 매브 여왕과 요정나라에 대해 매혹적인 글을 쓰게 했던 그녀의 타고난 재능,
신선하고 섬세한 상상력은 얼마 못가 거덜이 나 버렸다. - P75

영문학 작품을 읽는 여느 독자라도 때때로 그런 느낌이들 것이다. 영문학에도 마치 우리 전원의 이른 봄과 같이 살풍경한 시절이 있구나 하고 말이다. 나무들은 벗은 가지들을드러내고 언덕은 아직 녹색으로 덮이지 않았으니, 그 무엇도땅이나 나뭇가지의 윤곽을 감싸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6월의 설렘과 웅성임을 떠올려 본다. 그때는 아주 작은 숲도 움직임으로 가득하고, 가만히 서 있노라면 덤불 속에서분주히 돌아다니는 날쌔고 호기심 많은 동물들의 속삭임과재잘거림이 들려오기 마련이다. 그렇듯 영문학에서도 헐벗은 풍경이 소란과 떨림으로 가득 차려면,  - P81

오빠의 역정과 템플의 질투에 더하여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 때문에, 그녀는 <어서 조용히 죽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템플이 그녀의 주저와 오빠의 반대를 이겨 냈다는 것은 그의 성품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로서는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템플과 결혼한 후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편지를 쓰지않았으니 말이다. 편지는 곧바로 그쳤다. 도러시가 존재하게했던 세계 전체가 꺼져 버렸다. 그제야 우리는 그 세계가 얼마나 풍성하고 사람들로 북적이며 활기찼던가를 깨닫게 된다. 템플에 대한 애정 덕분에 그녀의 펜에서는 딱딱함이 사라진 터였다. 아버지 곁에서 반쯤 졸면서, 묵은 편지 뒷면에서찾아낸 백지 위에 그녀는 레이디 다이애나에 대해, 아이념가사람들에 대해, 집안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왔다가 어떻게 갔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그들이 지루했는지 웃겼는지 매력적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평소대로였는지에 대해, 항상 그 시대 특유의 위엄을 가지고서도 편안한말투로 써나갔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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