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혀 - 주이란 소설
주이란 지음 / 글의꿈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주이란의 단편집 <혀>는 수년 동안 작가가 고심해서 쓴 단편들을 하나로 묶어 낸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표절논란 때문인데,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것의 사실 여부보단 주이란의 작품 그 자체였다. 문단과 언론이 침묵하는데도 꿋꿋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신인작가, 그 정도의 소신과 열의라면 종래의 작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역시-그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녀의 소설은 화려한 토밍이 없어도 아주 맛있었다!
그 특별함이 뛰어남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녀의 소설이 담고 있는 특별하고 독특한 맛은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이라 판단된다. 그것은 내용 자체에 쉽게 드러나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채로 오감을 더 강하게 자극한다. 또,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문체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형식의 스토리 전개는 책장을 넘기는 독자의 호흡을 빠르게 만든다. 한 편의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남는 여운과 강렬하면서도 짜릿한 충격을 동시에 전할 수 있는 것은 그녀만의 재능이리라.
그러나 맛이라는 것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독자의 감각에 의한 자발적인 반응인지 그녀가 준 자극에 대한 반사적인 반응인지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그녀가 애매모호한 자극으로 독자의 의식이 투사될 여지를 충분히 남겨놓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화려한 토핑이 지닌 아주 세밀하고 섬세한 자극과 촘촘한 문체로 독자에게 ‘이 맛은 그 맛이야.’ 라고 강요하는 소설은 자발적인 반응을 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화려한 토핑이 없는 대신 독자의 의식을 재료로 사용한다.
더군다나 그녀의 소설은 여러 가지 사회문제와 맞닿아 있다. 각각의 단편들은 모두 다른 내용과 다른 구성으로 전개되지만 그 이면의 공통점은 바로 사회문제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엽기적이고 몰상식한 일들이 판을 치는 사회 속에서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그것에 순응하는 자들과 그것에 반항하는 자들의 모습을 통해 다양한 상황을 연출시켜 독자의 의식과 감정을 이입시키고, 그녀 자신조차도 반항하는 ‘촛불 소녀’로 출현한다.
결국 그것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조차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마력으로 이어진다. 사회문제를 분석하거나 어떤 원론적인 이유나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아니 문제라도 느끼는 것은 개인의 영역이다. 수많은 사건들과 문제에 직면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그것에 의문을 품거나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여유나 이유를 잃은지 오래다. 그런 독자에게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애매모호한 자극으로 가득한 그녀의 소설은 의식의 발상이나 전환을 선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응원한다. 그녀의 상상력과 영혼이 현실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수 있도록, 그것이 또 다른 소설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녀가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도록, 가슴으로 응원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