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려도 괜찮아 토토의 그림책
마키타 신지 지음, 하세가와 토모코 그림, 유문조 옮김 / 토토북 / 200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틀려도 괜찮다니....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나에게도 있었다면, 더 잘하지 않았을까?

수업시간에 '이거 대답해 볼 사람?'...하면,  고개부터 숙이기 바빴고, 선생님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늘 불안했던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틀려도 괜찮다고 말하는 책 제목때문에 무턱대고 주문한 책이다.

책 중간에 나오는 사색이 된 아이의 모습은 나의 어린시절의 모습 그대로이다.

불안하고, 떨리고, 가슴에선 방망이질치고...

사실 지금도 떨리긴 마찬가지이다.

가끔 있는 유아부의 대표기도라도 할 때면,  영어학원에서 돌아가며 시킬때에도 떨리니..

이 병은 고질병인가보다.

그런데, 가만 보니 우리 아이는 아직까진 이런 증세가 없다.

먼저 손들고 하려고 하고, 사탕이라도 상으로 걸리면, 더더욱 먼저 하려고 안달이다.

아마, 틀릴까봐 두려워하고 주눅드는건 원래의 성향이 아니고, 아이가 틀린 답을 말했을 때 겪은 경험을 통해서 그렇게 바뀌는 건가보다.

아이가  실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틀려도 괜찮다고 툭툭 털어벌일 수 있는 용기를 갖는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렇게 편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답만 말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틀려도 괜찮다고 너그럽게 말해주는 선생님을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건 아이 혼자 되는 건 아닌데, 이 책은 선생님도, 부모도 같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박영숙 지음 / 알마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4살인 딸과 가끔 기탄한글이란 학습지를 한다. 

아이가 재미있어해서 가끔씩 같이 공부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왼쪽은 글씨쓰기라 조금 지루하고, 오른쪽은 색칠하기, 숨은그림찾기등 재미있는 부분이라는데 있다.

엄마 욕심엔 왼쪽을 끝내고 오른쪽으로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늘 오른쪽만 하려고 한다.

요즘은 '난 못하니까 엄마가 하란'다.

그러면, 난, '싫다. 니걸 왜 엄마가 하니? 하기 싫으면 나중에 해.'

이런 걸로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을 본 후엔 생각이 좀 바뀌었다.

왼쪽이 싫으면, 나중에 하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사실 내가 봐도 좀 지루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야 재밌는거만 하고 싶어하다가 정말 재밌는거만 하려고 하면 어쩌나...

이런 갈등 끝에, 에이 뭐 가끔 건너뛸 때도 있지..이렇게 대범해지기 한다.

억지로 시킬 필요가 있을까..언젠간 하겠지...

아이들은 부모가 키우는게 아니라 가만히 두어도 스스로 알아서 잘 큰다는데...하면서

 

아마, 이 책은 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그저 그랬을지도 모른다.

엄마이니까, 아이를 키우니까, 저자가 쓴 글들이 수려하진 않지만, 다 감동이다.

어떨 땐 괜히 코 끝이 찡해지기도 하고, 혼자 감동해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래, 아이는 저렇게 지켜봐 주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고, 언제나 기다려 주는건데, 너무 몰아세웠어.

강요한다고 되는게 아닌데, 나도 예전에 그랬는데, 이것만 하고 공부해야지 했다가도 공부하라는 잔소리 때문에 하려던 공부도 하지 않으려고 했던게 얼마나 많았어.

그런걸 다 잊고 살았나봐...하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아이가 어떻게 자라도록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참 많이 생각했던 책이다.

이제 나도 곧 학부형이 된다.

나도 다른 부모들처럼 조바심내고, 기다리지 못하고, 아이를 다그치게 되지는 않을지....

걱정도, 두려움도 많다.

그런 나에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것으로도 괜찮다고 박원숙 '간장님'이 말하는 것 같았다.

 

송사리같고 송아지같은 올망졸망한 아이들이 잘 자라는 걸 바라보는 행복함을 누리려면, 부모의 욕심을 버려야 할텐데...그렇게 하고 있는 저자의 편안함이 참 부럽다.

그 사람좋은 웃음으로 아이들을 맞이하니 그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늘 숨소리 죽이며 조용하게 앉아서 책 읽는 곳이 도서관이라고 생각했는데, 느티나무 도서관은 시끌벅적한 아이들 웃음소리, 아이들 말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 속에서 행복해 할 아이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얼마나 좋을까....

당장 이사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다.

가서 우리 아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다.

이사 가자고 졸라볼까^^

 

책 중간에 나오는 도종환님의 시를 여러번 읽었다.

힘들때마다 위로를 받던 시인데, 여기서 또 만나니 또 위로가 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흔들리며 피는 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고 싶었던 영화를 이제야 보았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세세한 감정을 수는 없었다.

영화를 보고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제각기 다른 사랑들...15 리디아의 철부지 같은 사랑, 사랑없이 선택한 친구의 결혼, 첫눈에 반한 언니의 사랑, 오만과 편견으로 사랑을 뒤늦게 알아차린 엘리자베스의 사랑. 많은 사랑을 담아내기에 시간은 짧은듯했다. 드라마를 구해서 다시 봐야할 듯하다.

그리고, 나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 생각해 보았다.

 

영화의 많은 부분 중에 기억나는 장면은 엘리자베스의 친구와 친척인 목사의 결혼이다.

친구가 엘리자베스에게 대사는  잊혀지지 않는다.

모두가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낭만적인 사랑을 있는건 아니야. 이미 27살이고 부모님에게 짐이 되고 있어. 그는 가정을 지키기에 충분한 울타리가 되어줄 거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비난하지 말라는 장면....(영어자막이라 정확한 대사는 기억 못함^^)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고, 1년에 20,000파운드(?) 버는 멋진 다아시같은 남자를 원하지만 누구나 그런 남자를 만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대부분이 만나지 못한다.

그건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거니까…

그리하여, 결혼한 둘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았더라는 동화는 어디에도 없다.

그저 행복하게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더라는 줄만 있을뿐이다. 사실, 결혼보다 중요한 결혼 후의 삶이란걸 이젠 안다.

 

지극히 평범한 내가 다아시 같은 사람을 만났다면, 행복할까

그런 사람이 만약 나에게 사랑한다고, 결혼하자고 한다면......, 아마도 도망가지 않았을까?

왜냐하면그와는 편하지 않을 같기 때문이다. 왠지 주눅드는 느낌, 불편한 느낌....그게 싫다.

단지 영화로만, 소설로만 그들의 사랑을 부러워하고, 즐길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방각본 살인 사건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첫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1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작은 이야기(小設)이기 때문일세.

.

여기까지 들어오는 동안 자네가 본 서책들은 모두 성현 말씀을 담은 큰 이야기(大說)들이지. 거기엔 살아가는 데 중요한 가르침들이 있어. 그 말씀들을 가슴 깊이 아로새기면 큰 실수는 하지않고 삶을 이어 갈 수 있을 것이야. 하지만 가끔은 그 옳고 옳고 또 옳은 대설보다 인간이라서 생기는 나약함이나 어리석은 실수, 검은 욕망이나 처절한 눈물을 담은 작은 이야기들이 그립다네. 이때 크고 작다는 구별은 무엇인가? 큰 것은 옳고 바르고 가치 있다는 뜻이고 작은 것은 그르고 바르지 못하고 가치 없다는 뜻이 아닌가. 가치 없는 것에서부터 가치를 발견하는 작업, 이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하다네. 그래서 자네도 소설을 좋아는 것으로 아네만내 생각이 틀렸는가?

 

그 소설 때문에 살인사건이 끝없이 발생한다.

이전의 방각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수려하면서도 탄탄한 이야기를 그려내는 청운몽의 소설은 세상에 나오기가 무섭게 팔리는 이른바 베스트소설이다.

정조 즉위 초의 불안정한 정국을 틈타 청운몽의 소설은 연쇄살인 사건의 단서가 되고, 그 과정에서 매설가(소설가) 청운몽은 살인범으로 능지처참을 당한다.

그러나, 범인이라 생각한 자를 잡았으나, 범인은 따로 있었다. 범인은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른다.

단순 살인사건일 것 같은 살인 사건은 파헤칠수록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나간다.

살인자를 잡으면, 모든 것이 끝일 거라 생각했는데, 소설에 얽힌, 살인에 얽힌 것들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그 복잡한 실타래의 중심엔 연암 박지원을 비롯한 백탑파가 있었고, 여러 정치 세력들과 정조가 있었다. 정치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보이지 않는 양날의 검처럼, 아니 듣도보도 못한 세 날의 칼처럼 파헤칠수록 모두를 겨냥하기에 결국은 몸통을 밝히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에 약관의 의금부 도사 이명방과 19세의 김진이 있다. 무인이지만, 문을 사랑하는 젊은 청년 이명방, 그는 순수하면서도, 우직하고, 순진하다. 왕실의 종친인 엘리트 청년과, 청운으로 나서지 못하는 나이 어린 천재 김진. 사건만을 보고도 전말을 추리할 수 있는 비상한 김진은 꽃에 미쳐있고, 하늘을 사랑하며, 문을 사랑하는 그야말로 순수문학청년이다. 미래가 좌절된 서얼의 김진과 좋은 가문의 엘리트 청년 이명방이 벗이 될 수 있는 신사고의 중심은 단연 북학파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배우자는 자유로운 사고를 갖춘 백탑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지엄하고 지엄한 양반과 중인이, 서얼이, 천민이 어찌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인가…그러니, 그들에게 사회가 물들지 않도록 막아보자는 것 또한 그 당시의 시대상황으론 어찌보면 또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지금으로치자면 진보쯤으로 분류되었을, 백탑파의 정치입문을 앞두었던 시절은 그랬다. 그렇게 꽉 막힌 사회였다.

 

작가는 그 시절을 추리소설형식으로 풀어가면서, 당부아닌 당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백탑파를 보라고, 정조를 보라고,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고 역사적 소임을 다하라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신하들을 다루었던 정조의 신중함과 노련함을 배우라고

 

방각된 소설을 모두 불태운다고, 소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작은 이야기 속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보면서 위로받았던 소설이 불타없어지더라도 소설은 필사를 통해서, 언젠가 방각을 통해서, 세상에 다시 나올거라는 화광 김진의 대사는 사실이다. 사람은 밥 없이는 살아도 이야기없이는 못살테니까... 그래서 난 그 소설을 읽느라 때로는 잠도 설치고, 때로는 끼니도 거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985년 8월 28일 대전에서====여름 징역살이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우기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 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혐오에 있습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인성(人性)을 탓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 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炎)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 않아 조석(朝夕)의 추량(秋凉)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 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 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秋水)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인식을 일깨워 줄 것임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

1990년도 쯤인가,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을 읽고 가슴 아퍼하며, 때로는 깊은 감동에 눈물 적시던 때가....

20년의 긴 영어의 시간을 그 분은 어찌도 저리 순수하게 견디셨는지...

내 젊은 한 때를 선생님의 삶으로 눈물짓게 했던, 청년이었던 나보다도 더 순수한 그 분의 삶에 그저 존경 또 존경할 수 밖에...

요즘, 선생님의 고전강독을 읽으면서, 또 다시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이전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감동으로 , 또 우리의 어처구니 없었던 시대 상황에 가슴아파하며- 읽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십수년 전의 나와 가끔은 조우할 수 있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