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각본 살인 사건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첫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1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작은 이야기(小設)이기 때문일세.

.

여기까지 들어오는 동안 자네가 본 서책들은 모두 성현 말씀을 담은 큰 이야기(大說)들이지. 거기엔 살아가는 데 중요한 가르침들이 있어. 그 말씀들을 가슴 깊이 아로새기면 큰 실수는 하지않고 삶을 이어 갈 수 있을 것이야. 하지만 가끔은 그 옳고 옳고 또 옳은 대설보다 인간이라서 생기는 나약함이나 어리석은 실수, 검은 욕망이나 처절한 눈물을 담은 작은 이야기들이 그립다네. 이때 크고 작다는 구별은 무엇인가? 큰 것은 옳고 바르고 가치 있다는 뜻이고 작은 것은 그르고 바르지 못하고 가치 없다는 뜻이 아닌가. 가치 없는 것에서부터 가치를 발견하는 작업, 이것은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하다네. 그래서 자네도 소설을 좋아는 것으로 아네만내 생각이 틀렸는가?

 

그 소설 때문에 살인사건이 끝없이 발생한다.

이전의 방각소설과는 차원이 다른 수려하면서도 탄탄한 이야기를 그려내는 청운몽의 소설은 세상에 나오기가 무섭게 팔리는 이른바 베스트소설이다.

정조 즉위 초의 불안정한 정국을 틈타 청운몽의 소설은 연쇄살인 사건의 단서가 되고, 그 과정에서 매설가(소설가) 청운몽은 살인범으로 능지처참을 당한다.

그러나, 범인이라 생각한 자를 잡았으나, 범인은 따로 있었다. 범인은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살인을 저지른다.

단순 살인사건일 것 같은 살인 사건은 파헤칠수록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나간다.

살인자를 잡으면, 모든 것이 끝일 거라 생각했는데, 소설에 얽힌, 살인에 얽힌 것들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그 복잡한 실타래의 중심엔 연암 박지원을 비롯한 백탑파가 있었고, 여러 정치 세력들과 정조가 있었다. 정치라는 것이 늘 그렇듯이 보이지 않는 양날의 검처럼, 아니 듣도보도 못한 세 날의 칼처럼 파헤칠수록 모두를 겨냥하기에 결국은 몸통을 밝히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중심에 약관의 의금부 도사 이명방과 19세의 김진이 있다. 무인이지만, 문을 사랑하는 젊은 청년 이명방, 그는 순수하면서도, 우직하고, 순진하다. 왕실의 종친인 엘리트 청년과, 청운으로 나서지 못하는 나이 어린 천재 김진. 사건만을 보고도 전말을 추리할 수 있는 비상한 김진은 꽃에 미쳐있고, 하늘을 사랑하며, 문을 사랑하는 그야말로 순수문학청년이다. 미래가 좌절된 서얼의 김진과 좋은 가문의 엘리트 청년 이명방이 벗이 될 수 있는 신사고의 중심은 단연 북학파이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배우자는 자유로운 사고를 갖춘 백탑파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건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지엄하고 지엄한 양반과 중인이, 서얼이, 천민이 어찌 친구가 될 수 있단 말인가…그러니, 그들에게 사회가 물들지 않도록 막아보자는 것 또한 그 당시의 시대상황으론 어찌보면 또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지금으로치자면 진보쯤으로 분류되었을, 백탑파의 정치입문을 앞두었던 시절은 그랬다. 그렇게 꽉 막힌 사회였다.

 

작가는 그 시절을 추리소설형식으로 풀어가면서, 당부아닌 당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백탑파를 보라고, 정조를 보라고, 그래서, 초심을 잃지 않고 역사적 소임을 다하라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다른 신하들을 다루었던 정조의 신중함과 노련함을 배우라고

 

방각된 소설을 모두 불태운다고, 소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작은 이야기 속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보면서 위로받았던 소설이 불타없어지더라도 소설은 필사를 통해서, 언젠가 방각을 통해서, 세상에 다시 나올거라는 화광 김진의 대사는 사실이다. 사람은 밥 없이는 살아도 이야기없이는 못살테니까... 그래서 난 그 소설을 읽느라 때로는 잠도 설치고, 때로는 끼니도 거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