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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985년 8월 28일 대전에서====여름 징역살이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우기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미워하는 대상이 이성적으로 옳게 파악되지 못하고 말초 감각에 의하여 그릇되게 파악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면서도 증오의 감정과 대상을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 혐오에 있습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향하여 키우는 '부당한 증오'는 비단 여름 잠자리에만 고유한 것이 아니라 없이 사는 사람들의 생활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이를 두고 성급한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의 도덕성의 문제로 받아들여 그 인성(人性)을 탓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 온다 온다 하던 비 한 줄금 내리고 나면 노염(炎)도 더는 버티지 못할 줄 알고 있으며, 머지 않아 조석(朝夕)의 추량(秋凉)은 우리들끼리 서로 키워 왔던 불행한 증오를 서서히 거두어 가고, 그 상처의 자리에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깨닫게 해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추수(秋水)처럼 정갈하고 냉철한 인식을 일깨워 줄 것임을 또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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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도 쯤인가,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을 읽고 가슴 아퍼하며, 때로는 깊은 감동에 눈물 적시던 때가....
20년의 긴 영어의 시간을 그 분은 어찌도 저리 순수하게 견디셨는지...
내 젊은 한 때를 선생님의 삶으로 눈물짓게 했던, 청년이었던 나보다도 더 순수한 그 분의 삶에 그저 존경 또 존경할 수 밖에...
요즘, 선생님의 고전강독을 읽으면서, 또 다시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다.
이전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감동으로 , 또 우리의 어처구니 없었던 시대 상황에 가슴아파하며- 읽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십수년 전의 나와 가끔은 조우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