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양동이
모리야마 미야코 글, 쓰치다 요시하루 그림, 양선하 옮김 / 현암사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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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여우가 길을 가다가 노란 양동이를 발견했습니다.

아주 마음에 쏘옥 드는 노란 양동이를요.

누구의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리저리 살펴보지만 이름표도 붙어있지 않네요.

아, 파란색도 아니고, 빨간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 바로 노란색 양동이입니다.

너무 갖고 싶었지만, 꾹 참고 집으로 달려옵니다. 그러나, 온통 노란 양동이 생각뿐입니다.

 

동물 친구들에게 물어보아도 주인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친구들은 아기여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노란 양동이가 원래부터 아기여우의 것이었던 것처럼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한 일주일쯤, 아기여우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에 아기여우는 화요일에도 수요일에도 목요일에도 아주 노란 양동이를 보러 옵니다.

아기여우는 기뻤습니다. 이제 며칠만 더 기다리면 아기여우만의 것이 될테니까요.

일요일은 정말 더디 갑니다. 걱정도 많아요. 혹시 바람에 날아가면 어쩌지...너무 걱정을 한 나머지 꿈에서도 노란 양동이가 바람에 날아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월요일 아침에 달려가 보니 노란 양동이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기여우는 슬펐지만, 생각합니다. 아니야, 노란 양동이와 함께한 일주일은 정말 행복했다고...괜찮다고....하늘 한 번 보고 씨익 웃어보이는 사랑스런 아기여우.

 

노란양동이는 참 따뜻한 동화다. 

자기 것은 아니지만, 어느날 발견한 노란 양동이를 정말 갖고 싶어하는 아기여우의 솔직한 마음과 사라져 버린 노란 양동이에 대한 아쉬움이 잘 드러나 있다.  

'괜찮아, 원래 내 것이 아니었잖아. 그리고, 노란 양동이를 가지고 놀았던 시간만으로도 행복했잖아'라고 털어버릴 수 있는 씩씩한 마음이 예쁘다.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작고 사소한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과 정말 갖고 싶은 것을 단념할 줄 아는 아기여우는 그래서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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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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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 베케트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고도를 기다리며.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고도를 높이를 의미하는 고도(高度)인 줄 알았다. 막연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래서, 2차대전 중에 벌어지는 전쟁소설이려니,  전투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가 주인공이려니 하면서 전투장면을 떠올렸으니, 얼토당토 않은 상상이었다. 이렇게 무지할 수가... 고도(GODOT)는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소설이 아니었다. 희곡이었다. 이 당혹스러움이란...

 

희곡이란 무엇인가? 텍스트로 읽혀지는 스토리가 아니라 눈으로 보여지는 스토리이다. 배우의 대사와 동작을 보며 느껴야 하는 장르를, 글로 읽어야 하는 것은 역시나 익숙치 않다. 허허벌판(?)과 나무 한 그루(?) 바위 몇 개가 전부인 무대배경과 이상한 남자들이 나와서 대화만 주고 받거나 괄호안의 동작설명만으로 작품을 따라가는 것은 눈 속에 들어간 잡티처럼 이물거렸다. 등장인물의 내면묘사가 자연스러운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대사와 몇 개 안 되는 지문만으로 등장인물의 내면을 파악해야 하는 희곡으로 옮겨오는 것은 그래서 어려웠다.

 

제목만 알고 있었던 고도를 기다리며는 명성에 걸맞게(?) 적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책장이 휙휙 넘어가지 않는다. 차라리 연극으로 보았다면 덜 어려웠으려나?

작품해설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려고 한 것은 무엇인지 대충 파악하고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다.  사실, 작품은 2막까지만 있는 200페이지에도 훨씬 못미치는 분량이지만 나에게는 한없이 지루했다. 왜, 이 작품이 고전의 반열에 올랐는지...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포조와 럭키의 대사 혹은 동작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예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때로는 바보들이 대화하는 것 같다가도, 스님들의 선문답처럼 의미를 새겨야 하는 부분도 있었다.  아, 역시 희곡은 어려워.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린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그 '고도'가 어떤 존재인지, 왜 기다리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기다린다는 행위만 있다.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어떤 존재일까? 작가는 어떤 암시도 주지 않을 뿐더러, 작품해설에 보니, 고도가 도대체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작가 자신도 알 수가 없다고 하였던가?

어떤 이에게는 구원자의 모습일 수도 있겠고, 에스트라공과 블라드미르에게는 일용할 양식과 거처할 장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물주'일까? 아니면, 고독한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 줄 마음 따뜻한 사람일까?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

 

작가는 고도가 누구인지 알려주진 않았지만, 적어도 '고도'는 희망의 메세지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고도가 온다는 보장도 없고, 오더라도 언제가 될지 기약도 없어서 기다림이 하염없기는 하지만, - 작품은 2막에서 끝나지만, 3막 혹은 4막까지 작품이 이어지더라도 결국 고도는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고도'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 자체에 관심이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 고도를 기다리는 동안은 적어도 절망하지 않으니까...

오늘이 아니면, 내일은 오겠지 하는 것 자체가 희망의 메세지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한다면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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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개미 박성득의 주식투자 교과서
박성득 지음 / 살림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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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처음 한 일은, 몇 년동안 방치해 두었던 증권계좌를 원상복구 시켜놓고, HTS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놓은 일이다. 근 2년을 넘게 미루었던 일을 한달음에 제자리로 돌려놓을만큼 꽤 설득력이 있다.

그럼 나도, 그가 예로 들었던 종목들을 한 번? 하는 강한 유혹을 받았으며, 조금 자제한 후로는 관심종목에라도 넣어서 지켜봐야겠다 생각했으니, 일단은 그의 책은 실천을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는 후한 점수를 줘야겠다. 

 

그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열 다섯 어린 나이에 배고픔을 잊고자, 무턱대고 집을 나서야 할만큼 가난했으며, 그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 쉽지 않았을 삶들을 헤쳐나갔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본받을만하다.  당장 오늘의 끼니와 잠자리를 걱정해야 했던 어린 소년이 현대약품의 1대주주가 되었다. 그 긴 세월이 쉽지 않았을 것은 너무도 당연한 사실.

못배우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소년이 호텔의 요리사가 되는 과정도, 고급 일식집의 사장이 된 과정도  참 지독했다. 성공을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이다.

 

보통,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주식은 '위험하다. 잘못하면 재산도 말아먹을 수 있는 도박같은 것이다' 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저자의 말처럼, 이젠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이 애국자라는 말은 비약은 있지만 틀리다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일등기업인 삼성전자를 우리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소유한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을 잘 지켜내고, 회사와 우리가 모두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은 주식투자라는 저자의 글은 설득력이 있다.

이런, 애국하는 의미는 아니지만, 언제고, 꼭 주식에 투자해야겠다는 결심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식은 그냥 만만하게 덤빌 대상이 절대 아니다. 지금도 이런저런 서적들을 읽지만, 내가 생각하는 코스피와, 지금의 코스피는 너무도 괴리가 있다. 그게 문제다.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

공부하고 또 하면 언제간 보인다는 저자의 글은 그래서 희망이고, 그 길이 요원하기에 절망이다.

 

너무 확신에 찬 말투가 좀 거슬리기도 했지만, 열다섯 무일푼의 소년이 노력과 공부를 통해서 이룬 것이기에 귀담아 들을만 하다. 

다음엔 차트의 기술을 사볼까 했더니, 남편이 말린다. 데이트레이더가 될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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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1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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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란 필명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아주 유명한 증권계의 고수라는 데서 부터다. 그래서, 책도 아름다운 동행보다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을 먼저 읽었다. 그동안  시골의사의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웃기도 했고, 가슴아픈 사연에 눈물짓기도 했으며, 그의 독서록을 꼼꼼히 읽기도 했다. 시골의사를 좋아하는 한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듯 싶다.  좋은 글들을 눈으로만 읽기가 아까웠다. 내 책장에 꽂아두고 가끔 열어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동행을 사지 못하고 1년넘게 주저했던 부분은 역시나 치매에 걸린 어느 할머니의 가슴아픈 사연때문이다. -이 내용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도저히 읽을 자신이 없었다. 알고 있었던 내용이더라도, 그 기막히고 어이없고 가슴아픈 사연 앞에서 또 가슴이 답답했다.

 

그의 글 실력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밤을 세워가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울면서 읽을 줄은 몰랐다. 신파가 곁들여 진것도, 시골의사의 글은 격하지도 않은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가난한 우리 이웃의 가슴아픈 사연에서 눈물이 났고, 환자를 살리느라 애쓰는 의사의 글에 눈물이 났다.

사경을 헤매는 아들을 두고 아픈 사람을 고치러 가야하는 의사 아버지의 아픔에 울컥했고, 이미 숨이 멎은 아들을 들쳐메고 온 소방관인 아버지의 모습이 아팠으며, 염산을 먹을 수 밖에 없었던 꽃다운 소녀의 이야기가 아팠으며, 먼저 간 아이를 어쩌지 못해 그 아이를 따라갈 수 밖에 없는 모성이 아팠다. 다리를 절단할 수 밖에 없었던 27 처녀의 아픔과 다리 하나만 드러나는 미니스커트를 입고도 환하게 웃던 모습에서 가슴 울컥한 감격이 있었다.

 

사실, 나도, 우리 딸아이의 수술을 경험한 터라, 그 이야기들이 다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우리 아이가 입원했던 소아병동의 6층은  소아암병동이다.  가끔 같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6층의 어린 환자와 부모를 만난다. 그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이의 1주일 입원도 감당하기 힘든 아픔임을 알기에, 그 아이 부모의 마음은 어떨지...

아이가 아프기 전엔, 다른 엄마들처럼 어떻게 공부를 시킬까, 무엇을 가르칠까, 어떤 유치원을 보낼까를 더 고민했었다. 아이가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면서 그런 생각들이 다 부질없게 느껴졌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것만큼 중요한게 없다는 사실과 그저 아무 탈없이 잘  자라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그게 일 년전인데, 사람은 또 얼마나 잘 잊어버리는지, 어느새 그때의 애잔함도 절박함도 다 잊어버렸다.  가슴아픈 사연들을 읽으면서, 삶의 의미와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시골의사의 가난한 환자들이, 사경을 헤매는 많은 이들이 모두다 건강을 회복할 수 있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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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소리로 아들을 위대하게 키우는 법
마츠나가 노부후미 지음, 이수경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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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아들을 보며, 남편이 하루는 물었다. 중고등학생인 아들의 방문을 열었다가,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면, 어떻게 할 거냐고. 

"글쎄, 일단 문을 닫는다. 모른척을 한다. 그리고, 퇴근한 당신에게 말한다. 오늘 이런 일이 있었으니, 남자인 당신이 나서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모르는 척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그런 순간을 맞딱뜨린다면 당황할 것 같고, 잘 모르겠네.."이런 비슷한 질문에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또, 한 번은 이런 적이 있다.  17~8개월 쯤 된 아들만 데리고, 한국을 다녀온 적이 있다.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만은 꼭 자리에 앉아주어야 하는데, 거침없는 행동만 있지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를 어찌하지 못해서, 아들을 붙잡고 비행기에서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그 상황에서의 절박감, 좌절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고백하건데, 두 아이의 엄마이지만 나는, 그리 썩 훌륭한 엄마도, 능숙하게 아이를 다룰 줄도 모르는 서투른 초보엄마이다. 오죽하면, 남편이 아이 둘 있는 엄마같지 않고, 이모가 잠시 돌봐주는 것 같다고 할까~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래도, 첫아이인 딸은 그나마 수월하다. 같이 그림도 그리고, 대화도 되고....

그러나, 이제 25개월이 된 아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같다. 예측불가능한 위험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니, 속삭이듯 말하던 내 목소리는 어느새 고함으로 갈 경우가 많아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큰소리에도 귀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렇다보니, 작은소리로 아들을 그것도 위대하게 키운다는 제목에 귀가 번쩍, 눈이 번쩍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제멋대로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고, 주위산만하고, 집중력 떨어지는 게 남자아이란다. 원래 남자는 그렇게 태어났으니, 그저 바라봐주고, 그 사실을 인정해주어라. 많이 놀아본 아이가 - 여기서 많이 놀아본이란 몸을 부딪혀서 땀 흘리면 노는 것을 의미하므로, 방에서 이루어지는 컴퓨터게임이라든가 tv시청 따위는 포함되지 않는다. - 결국은 잘 자라더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그렇게 제멋대로인게 바로 '고추의 힘'인데, 요즘은 그 '고추의 힘'을  없애는 환경과 교육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남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 밑에서-예전에는 대가족사회이니까  엄마이외에 삼촌, 형, 할아버지 등 남자들에게세 배우는 경우가 많았지만- 자라며, 여교사가 대부분인 학교엘 다니며,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 교실에서만 생활을 주로 하니 남자로 자라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그래서, 그저그런 시시한 남자들이 많아지는 지경에 이르렀다는게 저자의 글이다.  - 저자의 글은, 번역탓인지, 원문이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조금 거칠고, 직설적이다.

 

원래, 남자아이는 그렇다는 저자의 직설적인 글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닿는 이유는, 그게 이론이라기보다는 저자가 직접 보아온 경험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목차중에 마음에 와 닿는 글이 있다.

' 엄마가 "안 돼!"를 자주 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아들이 된다.' 이 글이 자꾸만, 나를 아프게 했다. 된다보다는 안된다는 말을 훨씬 많이 하고 있는 나를 되돌아 보게 된다. 

그래, 좀 넘어지면 어때, 집중을 좀 못하면 어때, 남자는 다 그렇다는데, 그냥  놔두고 지켜보는 거야. 원래 그렇다잖아. --그래도, 그냥  놔두기만 하면 될까? 그래도, 넘어지면 어째, 그래도, 좀 잡아줘야 하지 않을까? 를 고민하지만, 남자아이의 주체할 수 없는 엉뚱함,일단 부딪히는 무모함 등이 남자아이를 창의적이고 모험심 강하고, 어려움도 너끈히 헤쳐나갈 진짜 남자로 자라는데 중요하다니 귀담아 들을 일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이 잘 자라주는 것. 모든 부모들의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잘 주라는 것의 의미에선, 의견이 엇갈릴 수도 있다.  이 책을 덮으며, '잘 자라주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나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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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1 13: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꿈꾸는자 2007-06-14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키우는게 어찌나 힘든지...이 책을 읽고도 실천은 되지 않네요. 좋은 엄마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타파하님, 우리 힘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