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보통씨의 사랑이야기는 정말 놀랍다. 그는 분명 남자인데, 나도 모르는 여자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안다.
'우리는 사랑일까'라는 문구는 왠지 지금의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것 같아서 싫었다. 선입견이라도 어쩔 수 없다. 의심과 사랑은 공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신뢰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수긍하므로. 가벼운 시대에 가벼운 사랑을 다루는 듯한 제목이 싫었다.
그러나, 이런 우려와는 상관없게 보통씨는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앉아서, 서서, 혹은 엎드려서, 밥을 먹을 때도 끼고 읽게 만들만큼 소설은 내 마음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속내를 잘도 풀어쓴다. 책에 빠졌으니,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내 연애사를 되짚어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
앨리스가 했던 수많은 고민들, 그는 나를 사랑하는 걸까? 변했을까? 그가 슬쩍 손을 잡았을 때 이걸 뿌리쳐야 하나 마나..등등 수많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앨리스는 파티에서 정말! 멋진 남자를 만난다. 외모부터 - 남자만 여자의 외모를 보는 것은 아니다 - 멋진 그는 유머도 있고 재치도 있으며, 능력도 끝내주는! 한마디로 킹카다. 와우~앨리스는 자신이 그렇게 멋진 남자 에릭과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에릭에게 자신을 맞추는 착한 여자의 모습으로 사랑을 한다. 보통씨의 견해에 따르면, 앨리스(20x) + 에릭(20y) = 40xy 의 관계에서 -일반적으로는 남자와 여자 20:20의 사랑이 합쳐져서 40의 사랑이 되지만 - 에릭은 10y의 노력만 들여도 엘리스가 나머지 30x를 채워주는 형태의 불균형한 상태로 그들의 사랑은 출발한다. 왜냐하면 앨리스는 '그녀 자신이 더 노력을 들여도 될 만큼 그는 충분히 멋있어' 라고 생각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으므로.
그러나, 에릭은 관계가 유기적으로 깊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앨리스가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려고 할 때마다 회피하고 만다. 점점 그들의 사랑은 - 전적으로 앨리스가 생각하기에 - 뭔가가 빠졌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 아니라 자꾸 단절된다는 것이다. 관계는 자꾸 서걱거린다. 그를 만나면 편하지 않다. - 그는 100m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완벽하고 멋진 존재이지만, 보통씨의 표현에 따르면 자세히 보면 알 수 없는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존재처럼 알면 알수록 그의 마음을 모르겠다. 앨리스는 결국 사랑의 종언을 선언한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과 우울했던 기억들..무엇이 되었든..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빠르게 털어놓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에릭과는 안되는 대화가, 감정의 표현이 필립과는 너무도 잘 된다. 편하다. 그래서 그 둘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아마도 순탄한 사랑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서 딴지를 걸고 싶은 것 하나.
나처럼 결혼한 사람이라면, 앨리스와 에릭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별로 없는 사이라면 - 감정에 개입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만 빼면 그럭저럭 괜찮은 경우라면- 그럼 어째야 하나.
그래서 실은 - 지극히 보수적이긴 하지만, 내심- 필립이 아니라 에릭이 발전적으로 변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앨리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거나 불만을 토로해서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저 회피하거나 문제를 수면 아래로 묻어두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결국 혼자 속으로 끓였지 부딪혀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물론 은유적으로 무수히 많은 신호를 보내긴 했지만)에서 에릭이 마지막으로 한 번의 기회를 말했을 때 한 번쯤은 에릭을 믿어보는 것(그렇게 믿기엔 에릭이 그닥 신뢰감을 주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경험담에서 보았을 때의 아쉬움이기도 하다.)
아니다.
가능성이 열려 있는 싱글이라면 고치기 힘들거나 가망이 없는 에릭보다는 편하고 잘 맞는 필립(이렇게 잘 통하고 편한 사람을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를 뿌리치는 건 어쩌면 일생의 큰 후회가 될 지도 모르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더더욱)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앨리스와 에릭의 사랑이 삐걱거린다고 그때마다 헤어진다면 필립과 앨리스의 관계가 순탄할 것이라고 누가 장담하는가. (다른 여자때문에 아내와 헤어지는 경우라면, 또 다른 여자때문에 또다시 헤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보통씨의 견해처럼)
아니다.
그래도 열린 마음으로 대화할 줄 아는 필립과 앨리스가 정답이겠지.
아~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