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여줘라, 아티스트처럼 - 당신의 능력이 빛을 보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10가지 방법
오스틴 클레온 지음, 노진희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무언가를 잘하고자 하면서 배우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글쓰기가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싶다. 모두 글을 잘 쓰고 싶어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 그런데 이상한 게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사람들이 쓰지는 않고 읽기만 한다. 잘 쓰려면 물론 어느 정도는 다독을 해서 좋은 문장을 골라내는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지만 백날천날 읽기만 하면서 잘 쓰고 싶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야말로 글을 글로 배우는 격. 당연한 말이지만 잘 쓰려면 쓰는 게 먼저다. 그것도 많이. 쓰지 않고서는 ‘잘’ 쓸 수가 없다. 왜 인풋을 하는가? 결국 아웃풋을 하기 위해서다. 안 그런가? 뭐 인풋 그 자체로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을 듯싶다. 다만 우리가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굳이 눈에 보이는 어떤 성취가 아니더라도 결국 활용, 아웃풋을 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열심히 배웠으니 이제 그것을 보여줄 차례인 것이다.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이 ‘인풋’을 위한 책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웃풋’이다. 지금까지 이것저것 많이 훔쳤던 이유는 바로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저자 오스틴 클레온은 먼저 ‘잘’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아웃풋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잘’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 때문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잘’ 보여주려다 ‘안’ 보여주고 마는 게 다반사라는 사실. 그러니까 그냥 그 부담감 내려놓고 일단 뭐라도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저자는 말한다. ‘진짜 중요한 차이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과 뭐라도 하는 것에 있다.’(p.24)고. 나는 보여줘야 할 대상이 반드시 남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남들에게 보여주기가 민망하다면 ‘나’에게 보여주면 그만 아닌가? 요지는 어쨌든 뭐라도 하라는 것이다. 잘하든 못 하든 뭔가를 하는 그 ‘과정’ 자체가 이미 작품 활동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웃풋은 곧 ‘결과물’이라는 건 통념일 뿐이다. ‘과정’ 역시 엄연한 아웃풋이다.




“쌓아두는 것의 문제는 그 축적물에만 의지해 살게 된다는 점이고, 그러면서 점점 당신이 고리타분해진다는 점이다. 쌓아둔 모든 걸 버리고 당신에게 아무것도 안 남으면 어쩔 수 없이 새롭게 보고, 자각하고, 다시 채워 나가게 된다. 더 많이 버릴수록 더 많이 얻게 된다.” - 폴 아덴


p.80



책을 읽다 보면 아웃풋에는 실로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작게는 하루하루 나만의 프로젝트 일지 작성하기부터 크게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그룹을 만들어 협업해보기까지. 여기서 핵심은 바로 ‘공유’. 저자는 역사 속 천재들이 대개 어느 집단의 일원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아는 그들의 결과물이 세상에 알려지기 이전, 그들은 서로의 작품을 피드백하며 용기를 얻고, 영향을 주고 받는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을.


아웃풋 과정에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 일테면 표절이나 비난 같은 걱정거리에 대해 저자가 던지는 몇 가지 충고가 좋다. ‘비법을 가르쳐준다고 해서 당장 경쟁자가 붙는 것은 아니다. 마스터의 기술을 안다고 해서 곧장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p.124)이라거나 ‘비난 하나하나가 전부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가능성이 된다. 어떤 비평을 받게 될지는 컨트롤할 수 없지만,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지는 컨트롤할 수 있다’(p.159) 같은 말들은 비단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공동체 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 만하다.


특히 ‘배고픈 아티스트’라는 낭만적 환상을 극복하라는 충고가 와 닿았다. 예술가는 가난하다는 아니, 가난해야만 훌륭한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다는 고정관념. 당신이 이 진부한 환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한평생 돈만 저주하다 그 가난이라는 진창 속에서 죽게 될 거라고 말이다. 저자는 돈이 창작을 타락시키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의미 있는 문화재나 예술 작품들은 실제로 돈 때문에 만들어진 경우도 많다고 한다. 공감. 나는 돈과 예술에 대한 이분법이 도리어 예술을 망치는 길이 아닐까 싶다. 목적이 오로지 돈이라면 문제겠지만 돈이 없으면 내가 좋아하는 일도 하지 못하는 시대에 여유로운 삶을 갈망하는 것은 욕심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지녀야 할 당연한 마음가짐이다. 물론 생과 사를 논하는 순간에서 걸작이 탄생한 사례도 있다. 근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들의 삶이 좀 더 여유로웠다면 더 나은 걸작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책을 읽고 완벽이라는 부담과 가난이 곧 예술이라는 환상을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뭐라도 해보자 하는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 아티스트는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서 탄생한다는 걸 알게 됐다면 망설이지 말고 아웃풋이다. 쌓아두지만 말고 이제는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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