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펭귄클래식 99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소연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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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이 책을 쓰고 10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밝혀진 원인은 우울증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 쓰인 그녀의 독백은 더없이 적요하다. 여성에게도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이 당연한 말을 강연으로, 또 책으로 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당시 그녀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문득 궁금하다. 2016년 오늘 그녀의 바람은 이루어졌는가? 일견 오늘날 여성의 지위는 울프가 바라던 그 모습에 가까워진 듯 보인다. 하지만 만일 그녀가 살아 있다면 지금의 사회에 만족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현대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이 생긴 건 맞다. 문제는 그 집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건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똑같이 겪는 문제가 아닌가? 그러나 함께 겪는 문제에도 위계가 있다면 그것은 똑같다고 볼 수 없다. 현대 (남성)사회는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을 제공하되, 유리 천장도 함께 선물했다. 이것이 울프가 살아 있었더라도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 이유다. 이 책의 제목만 놓고 오늘날 현대 여성은 자기만의 방을 가졌으니 세상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을 듯싶다. 착각이다. 어디까지나 골자는 ‘여성은 왜 가난한가?’이지 ‘물리적인 방의 필요’는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


울프가 말하는 것은 하나다. 여성에게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 방이 아니다 돈이다. 재화 말이다. 속물적인가? 그러나 울프는 그저 종이를 살 수 있는 16펜스의 필요성을 역설했을 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당시 사회에서 인간이 정상적인 사고를 하며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시장은 절반(남성)의 몫이었고 때문에 여성은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다운 삶을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울프는 여성이 여성이라는 가면이 아닌 진정 자신의 얼굴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남성과 평등한 삶의 조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 문제가 21세기 현대에도 여전하다는 사실이다.




지적 자유는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습니다. 시는 지적 자유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항상 가난했습니다.


p.174



그녀에게 나타난 최초의 정신이상 증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직후라고 한다. 7년 뒤 아버지마저 사망하자 그녀의 증세는 더 악화됐다. 나는 우울증이라는 병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안다. 하루하루를 그저 버텨내는, 살아 있어도 사는 게 아닌 지옥과 같은 나날.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가 온전한 언어로 세상을 비판하고 펜을 휘두를 수 있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진다. 더군다나 모두가 그녀의 성취에 박수를 보낼 때조차 우울증을 앓던 그녀는 무의미의 진창을 걸었을 테니 말이다.


성취 속에서 울프가 느낀 무의미는 어쩌면 앞으로도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적 직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직감에 화답이라도 하듯 오늘 사회는 여전히 그 문제를 포용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더 공고히 다져놓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당대에 정말로 필독서라는 게 있다면 나는 이 책을 1순위로 꼽겠다. 우리는 그녀가 느낀 ‘무의미’를 ‘의미’로 바꿀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진보’했다(고 주장하)는 현대인의 진정한 표상이 될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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