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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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풋’ 에 대한 고민이 크다. 나는 그동안 굳이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여러 경험을 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지식과 세계관만으로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그런 근자감은 이 책,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읽은 후 무참히 깨져버렸다. 이 책은 기존에 쌓아둔 지식과 체험이 사유를 하고 글을 쓰는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내게 가르쳐줬다. 그동안 깜빡이는 커서를 앞에 두고 내가 아무것도 적지 못했던 이유는 글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는 게 없어서, 머리에 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이 책에서 그가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스피노자의 『에티카』와 정확한 맥락으로 이어 붙이는 대목에서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은 그러니까, 왜 철학을 공부해야 하고,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마냥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도 간단히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는 아는 게 없으면 감상도, 경험도 조야할 수밖에 없다고 내게 알려준 셈이다. 아는 게 있어야 글을 읽고 영화를 볼 때도 넓고 깊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사유의 윤활유는 얄팍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부단히 읽고 쓰며 머릿속에 각인된 통찰이었다.




“어떤 조건하에서 80명이 오른쪽을 선택할 때, 문학은 왼쪽을 선택한 20명의 내면으로 들어가려 할 것이다. 그 20명에게서 어떤 경향성을 찾아내려고? 아니다. 20명이 모두 제 각각의 이유로 왼쪽을 선택했음을 20개의 이야기로 보여주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도 정확히 동일한 상황에 처할 수는 없을 그런 상황을 창조하고, 오로지 그 상황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고 이해될 수 있는 선택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시도, 이것이 문학이다.”

p.65



신형철을 이야기할 때 항상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다. 바로 ‘주례사 비평’ 이다. 뭇사람은 그것이 문학의 위기를 부른다고 경고한다. 평가는 있으나 비판은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신형철의 스타일은 분명 주례사 비평의 그것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내가 그의 비평을 단순히 비난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나는 좋은 비평의 조건에 ‘옳고 그름을 얼마나 잘 분석하고 논했느냐’ 도 있겠지만 어떤 ‘작품이 좋다면 그것이 왜 좋은 작품인지 얼마나 ‘정확하게’ 논증하느냐’ 도 포함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평가랍시고 응당 보여주어야 할 결과물을 전혀 내놓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누군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어떤 평론가는 적은 점수를 얄짤 없이 준다는 이유만으로 네티즌들에게 큰 인정을 받는다. 신형철은? 그는 비록 싫은 소리를 못하는 반쪽 비평가일지 몰라도 자신이 발견한 좋은 작품이 어째서 좋은 작품인지, 대체 어떤 부분이 그 작품을 좋게 만드는지는 ‘정확하게’ 짚어내지 않던가? 때문에 내가 그의 비평을 ‘주례사’ 와 묶어 비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최소한 ‘발칙한 상상력’ 이니 ‘전무후무한 시도’ 라느니 이런 하나마나한 이런 뜬구름 잡는 소리를 비평이랍시고 싸질러놓진 않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는 쉽다. 실로 많은 비평가가 자신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 그것을 해내고 있다. 그런데 어떤 작품의 좋은 점을 말하고서는 그것이 왜 좋은지 설명해주는 비평가는 드문 것 같다. 어떤 비평가는 자신의 감상이 곧 사실이라 믿고 독자를 농간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신형철은 적어도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줄 아는 비평가이다. 많은 이가 그 비평을 반쪽이라 비난해도 그가 책임지는 비평을 계속하는 한 나는 여전히 그의 글을 읽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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