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 -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쉬어도, 그 무엇을 사도,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정희재 지음 / 갤리온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지난 대선 직후 ‘힐링’ 이라는 키워드에 잠시나마 나라 전체가 미쳐 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말에 뭔가에 홀린 듯 내남없이 지갑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힐링’ 열풍이 지나간 오늘, 사람들은 이제 안다. 그것이 장사꾼들의 얄팍한 돈놀이에 불과했음을. 이제 그 표현은 오염됐다. 그것을 사용하던 이들이 그와는 반대되는 행동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언어란 이처럼 나약하다. 무분별하게 사용하던 이들은 흔적 없이 떠나버리고 애먼 ‘힐링’ 만 오물을 뒤집어쓴 채 악취를 내뿜고 있으니 말이다.


정희재의 글은 따뜻하다. 활자에서 따뜻함을 느낀다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글에는 온기가 스며 있다. 그것은 아마도 사소함과 느림에 대한 작가 정희재 특유의 태도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은데 이 책은 그 태도, 사소함과 느림에 대한 그녀의 옹호가 일군 한 편의 수필집이다. 이전에 출간되었던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와 비교해 주제가 반복적인 느낌이 드는 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녀의 글을 더 읽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만약 이 책을 어떤 범주에 포함시킨다면 그 키워드가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힐링’ 말이다. 하지만 바로 오늘 이 책을 그 표현과 묶어 말하기에는 어떤 미안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이 책은 진짜 ‘힐링’ 이다. 문득 쓴 웃음이 나온다. 이제는 ‘진짜’ 라는 표현을 앞에 두어야만 이 표현이 온전하게 전해질까말까 해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 책은 진짜 ‘힐링’ 인데.




멈춤은 기득권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불쾌한 도전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들은 세상이 그럭저럭 이 상태 그대로 돌아가길 바란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세력에겐 사람들이 멈춰 서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다.

p.41



뭐라도 해야겠다는 불안을 안고 살던 시기가 있었다. 남들은 벌써 저만치 갔는데 나는 걸어도 걸어도 도무지 진전이 없는 것이다. 그때 우연히 그녀의 책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를 읽게 됐다. 그리고 알았다. 빠른 게 능사가 아님을, 대단한 일의 기준은 저마다의 마음가짐에 달렸음을 말이다. 그러자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졌다. 치유를 받은 기분이었다. 문득 손바닥을 쳐다봤는데 쓸데없는 것에 매달려 있던 나의 어리석음이 남긴 자국이 허망하게 남아 있었다. 그 후로 정희재라는 작가의 이름을 마음에 새겨두기로 했다.


이 책은 2012년 여름에 출간됐다. 위에 언급한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는 그보다 앞선 2010년 봄에 출간됐고. 쉽게 말해 ‘힐링’ 이 오염되기 이전에 나온 책들이며 그녀의 글은 언제나 힐링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표현이 오염된 지금도 정희재 표 힐링은 ‘진짜’ 이기에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특히 요즘 같이 쌀쌀한 날이면 그녀의 책을 펼친다. 그냥 펼쳐서 그 부분부터 읽어 나간다. 읽고 나면 주변 공기가 조금 따뜻해졌음을 느낀다. 평소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던 작고 사소한 모든 것들이 그렇게 커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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