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ve the Cat! : 흥행하는 영화 시나리오의 8가지 법칙 Save the Cat! 시리즈
블레이크 스나이더 지음, 이태선 옮김 / 비즈앤비즈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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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셉 캠벨은 카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을 활용해 ‘갔다가 돌아오는’ 신화 속 인물들의 여정을 17단계로 구분(『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하여 도식화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를 매우 사랑한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조셉 캠벨의 이론을 ‘시나리오’ 라는 틀에 맞게 다시 12단계로 구분(『신화, 영웅 그리고 시나리오 쓰기』)했다. 오늘날 현대 영화 스토리 구조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시드 필드는 어떤가?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속 3막 구조에 사건과 위기라는 개념을 도입해 ‘패러다임’ 이론을 정립(『시나리오란 무엇인가』)한 인물이다. 이외에 6단계 플롯구조를 제시한 마이클 허그, 스토리 A, B구조를 만든 린다 시거,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로버트 맥기, 필립스 & 헌틀리까지. 


서구 문화의 발단이 된 그리스 로마 신화나 중앙아시아의 라마야나 그리고 요즘 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는 동아시아 서사 콘텐츠의 원천 서유기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 세상에는 진정 수많은 이야기가 넘쳐 흐른다. 그리고 평생을 소설책 속에서 파묻혀 살았다는 사람은 많다. 차고 넘친다. 그런데 그 많은 이야기 가운데서 어떤 원형(原型)을 발견하고 그것을 도식화까지 해내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나는 그들을 보면 왠지 모를 경외감이랄지 시기심까지 들곤 한다. 창작욕은 있으나 매번 행동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나에게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블레이크 스나이더. 그의 말에 따르면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단 열 가지 장르로 구분이 가능하며 개별 이야기들은 다시 열다섯 가지 시퀀스로 나눌 수 있다. 더불어 그가 만들어낸 만든 비트 시트에 적용할 수 없는 이야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른바 Save the Cat! 구조론이라 불리는 그의 이론은 어렵게만 느껴지던 시나리오 창작 활동에 일종의 쉬운 가이드를 제시함으로써 많은 작가 지망생에게 작게나마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그의 이론을 증명하는 하나의 결과물이자 짧지만 유익한 시나리오 작법서이기도 하다.


책의 두께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내용은 비교적 짧다. 사람들은 좋은 책이란 대개 무겁거나 혹은 두꺼우며 어딘지 모르게 학술적 냄새를 풍길 것(예컨대 로버트 맥키라든가....)이라고 생각하는데 블레이크 스나이더는 그런 기대를 한방에 박살내며 좋은 이론은 반드시 무겁고 어려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보여준다. 나는 이 책이 어렵고 딱딱한 전문적 용어들을 들먹이지 않고 심지어 재밌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비록 그의 방법론이 소위 ‘팔리는’ 시나리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는 하나 나는 그 팔린다는 것자체가 이미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야기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큰 의미였다.


누군가는 이런 구조론적인 접근에 불쾌감을 드러낸다. 이야기란 그렇게 몇 가지 틀로 찍어낼 수 있는 공산품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디 건방지게 서사를 더럽히는가? 신성 모독이다!” 이거다. 하지만 진정 그런가? 그렇다면 기원전부터 오늘까지 살아남은 이야기들에서 끊임없이 발견되고 시대마다 변주되는 어떠한 공통점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가 아는 고전들은 단순히 그 시절 세간을 뒤흔들거나 실험적이거나 문제적이기만 해서 시간의 검증을 받게 된 건가? 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 또한 나와 생각이 비슷한가보다.




효과를 거두는 이유는 한 가지다. 이 스토리텔링을 지배하는 법칙이 모든 상황에서 매번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할 일은 왜 그것이 효과를 거두며 어떻게 이 이야기 톱니들이 맞물리는지 배우는 것이다. (…) 법칙은 다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p.66



제아무리 복잡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어떤 플롯이 존재할 거라고 본다. 좋은 이야기란 그 플롯을 교묘하게 감추는 능력, 뒤집어 말하자면 이야기에만 온전히 집중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단지 ‘깊이’가 다를 뿐이다. 누군가는 이 책을 가지고 팔릴 만한 이야기 한 편을 즉석에서 구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얄팍한 이야기는 척봐도 딱이다. 모든 것은 결과물이 말해줄 것이다. 다만 이 책은 ‘누구나’ 이야기라는 것을 쓸 수 있도록 하나의 메뉴얼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혹여나 즉석에서 이야기를 써내는 누군가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미래의 스티븐 킹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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