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상처가 있다. 상처에서 흐르던 피가 굳고 딱지가 내려앉고, 딱지가 떨어진 자리에 솟은 새살이 바로 상처를 반추하게 하는 흉터였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흉터를 유심히 관찰하곤 했다. 어쩌다 그랬을까 상상하기도 하고, 아물기까지 얼마나 걸릴 지 혼자 추측해보기도 했다. 때로 커다란 흉터나, 흉하게 일그러진 흉터를 보면 나도 모르게 안도가 되기도 했다. 세상에 나만 흉터가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p.14

나는, 내가 만든 꽃이 예쁘다고 해서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예쁜 꽃다발은 원래 꽃이 예뻐서이거나, 예쁘게 보이기 위해 규칙을 잘 지켜 묶었기 때문이었다.

p.16

매달 월세와 생활비를 대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을 때는 졸았고, 젊은 교수의 농담에는 함께 따라 웃지 못했다.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들과 제대로 어울릴 시간이 없었다. 나는 늘 피로했다. 학자금대출을 받았지만 그것은 미래를 담보 잡힌 빚이었다. 몇 번의 휴학을 거쳐 대여섯 아래의 학번들과 함께 졸업했다.

p.26

엄마는 왜 꽃을 좋아해? 엄마가 아주 나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꽃은 아무 말을 안 하니까. 나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입을 꾹 다물었다.

p.40

"키우던 식물을 죽이기도 하나요?"
"그럼요."
"공들여 키우셨을 텐데, 그렇게 죽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겠어요."
"물 때를 놓치거나, 처음부터 건강하지 못했던 애거나. 둘 중 하나인 거죠.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쓰면 이 일 못해요."
영흠이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가, 이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
"하루 종일 꽃과 있으니, 좋은 직업이네요."
작업대를 치우는 나에게 영흠이 말했다.
"세상에 어떤 일이 좋기만 하겠어요. 게다가 아무리 좋아하던 것도 일이 되면 그냥 일처럼 하는 거죠."
영흠이 끄덕였다. 다육식물들의 잎을 조심스럽게 건드려보고,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결국 꽃냉장고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죽일 것 같아요."
"그럼 꽃으로 하시겠어요?"
"그러죠. 저 꽃은 장미인가요?"

p.57

저것들은 두툼한 잎에 수분을 저장해 스스로의 생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육식물이 좋았다. 선인장처럼 가시의 위협이 없으면서도 관심두지 않아도 자기가 알아서 제 생을 연명해가는 기특하고 똑똑한 것들이었다.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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