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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빈병 - 글쓰기 실력이 눈에 띄게 달라지는 100가지 노하우
배상문 지음 / 북포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처음엔 웃음이 나왔다. 지금껏 소설 하나 출판하지 못한 작가가 '글쓰기'를 가르치다니. 글쓰기라 하면 흔히 베스트 셀러를 밥 먹듯이 하거나 스테디 셀러로 유명한 소위 책 안 읽는 사람들도 알 법한 작가들이나 다루던 주제 아닌가. 『창작과 빈병』의 저자는 일 년간 천 권의 책을 십여 년 동안 읽었다고 한다. 오로지 쓰기를 기초로 수년간 다독을 해왔다는 것이다. 책을 펼쳐보니 과연 그럴듯했다. 각각의 단편은 저자가 읽었던 백 권의 작품을 서두에 인용하며 시작한다. 단순한 작품 소개가 아닌 작품 속 인상 깊은 단락을 따서 그에 맞는 본문에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책들을 추천받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 책은 오로지 '작가 지망생'을 위한 것이라 분명히 해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성공한 작가가 써낸 노하우 모음집보다는 어쩌면 나와 같이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의 눈높이에 맞춘 현실적인 조언집이 더 낫지 않을까. 이 책이 바로 그랬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책들의 달콤한 고명을 털어낸 그야말로 순수 '조언'집인 것이다. 무엇을 이렇게 해보는 게 좋겠다. 혹은 어떤 방법을 이렇게 써보면 좋을 것이라는 두리뭉실 뜬구름 잡는 책들과는 차이가 확연하다. 책 곳곳에서 저자는 글 쓰는 일을 평생 해먹을 생각이 아니라면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독설도 서슴지 않는다. 마냥 악담으로 들렸다면 몇 페이지 안 넘기고 바로 덮었겠지만 묘한 공감이 느껴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굳이 저자의 말처럼 '작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글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용은 모두 '쓰기'에 집중되어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며 곱씹어볼 만한 주제를 몇 가지씩 던져주기 때문에 심심하지 않다. 더불어 작가 지망생으로 살아온 시절에서 얻은 진심 어린 충고도 빼놓지 않는데 이것이 선생처럼 가르치려 들기보다는 친한 형이나 선배의 걱정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과 꼭 해야 할 것을 짚어주고 그에 대한 사례나 비유로 해당 내용을 와 닿게 하는데 도움을 준다. 저자의 말이 워낙 단호한 면이 있어 빈정이 상할 때도 있지만, 갖가지 좋은 말로 분칠한 책보다는 이렇게 현실을 일깨워 주는 편이 백번 낫다고 본다.
많은 작가 지망생이 스토리텔링에 대해서 착각이나 망상을 갖고 있다. 이야기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이야기 짜는 훈련만 열심히 하려 한다. 시놉시스만 계속 만들면서 몽상에 잠긴다. '이거 쓰기만 하면 대박인데!' 문제는 당신에게 소설로 쓸 문장력이 없다는 것이다. 285p
써야 발전한다. 작가 지망생의 가장 나쁜 공부 형태가 읽기만 하면서 실력이 늘길 기대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 분명히 지식은 는다. 그러나 '지식'이 느는 것과 '실력'이 느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 382p
작가 지망생의 존재 증명법은 단 하나다. 쓰는 것이다.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오늘 쓰고 있어야지 당신은 비로소 작가 지망생이다. 443p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건 하나의 주제로 귀결된다. 바로 '지금 쓰라'는 것이다. 꾸준히 읽고 꾸준히 필사하고 꾸준히 습작하는 것이 내용의 골자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쓰기'에 맞춰져 있다. 백 권을 읽든 천 권을 읽든 만 권을 읽든 허구한 날 읽는 것도 결국엔 한 번 써보는 것보다 못하다. 매일 시나리오 만드는 기술만 연마하고 스토리텔링에만 집착한들 본인에게 그것을 쓸 수 있는 문장력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 일에 애정이 있고 이 일을 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펜을 잡아라. 이것이 바로 저자가 에둘러 달려온 이유이다. 그래서 나는 며칠전부터 쓰기를 해오고 있다. 형편없는 글이지만, 이것도 많이 해봐야 는다는 저자의 말에 많은 공감을 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가능할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신감이 주저앉을 때쯤이면 '일단 쓰자'고 덤벼들 깡이 나에게도 생겨났다는 데에서 만족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