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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 - 신앙과 과학의 통합을 추구한 우리 시대 기독 지성 25인의 여정
리처드 J. 마우 외 지음, 캐서린 애플게이트 외 엮음, 안시열 옮김 / IVP / 2019년 3월
평점 :
이 책은 아직 번역이 되기 전에 우연히 알게 되어 아마존 eBook으로 읽었습니다. 총 25명의 필자 중 과학자가 대략 반, 신학자/목회자가 대략 반 정도 되는 것 같더군요. 그 중의 한 분은 헐리우드에서 영화제작을 하시는 분이시구요.
25명의 필자들의 면면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1번 필자는 제임스 K. A. 스미스입니다. 최근에 <하나님 나라를 욕망하라>라는 책이 출간되었고, 읽으신 분들이 다들 좋은 평을 남기시고 있더군요.
2번 필자는 스캇 맥나이트입니다. 최근에 한국에 여러 권이 번역되어 소개 되었는데, 그 중에 전 <예수 신경>을 읽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여러가지로 좋았던 책이었습니다.
4번 필자는 <오리진>의 저자이고 바이오로고스의 이사인 데보라 하스마 입니다.
5번 필자는 <창세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저자인 트렘퍼 롱맨 3세 입니다. 복음주의 정통 구약학자라고 할 수 있는 분인데, <창조 기사 논쟁>에도 글을 쓰셨지요.
8번 필자는 프랜시스 콜린스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주도한 세계적인 과학자이시면서, <신의 언어>라는 책으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도 했던 분입니다.
11번 필자는 존 오트버그란 분으로 오래 전에 이 분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드물게도 지성적인 신앙을 강조했던 분으로 기억했는데, 역시였습니다.
17번 필자는 톰 라이트 입니다. 워낙 유명한 신약 성서학자이시죠.. 근본주의와 분리가 어려운 미국 복음주의와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영국 복음주의 전통에서 보는 미국의 창조과학에 대해서 얘기 합니다.
25번 필자는 풀러신학대학교의 총장인 리처드 마우입니다. <무례한 기독교>를 오래 전에 읽으면서 상당히 합리적인 신앙의 모습을 가지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역시 여기에 글을 쓰셨네요.
데보라 하스마와 프랜시스 콜린스를 제외하고는 과학자는 대부분 모르는 분들이었습니다. 각자 자기 전공 분야를 벗어나면 서로 잘 모르지요. 그래도 이 분들의 프로필을 보면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제 몫을 하는 분으로 보입니다.
창세기가 쓰여진 문화적, 지리적, 역사적 배경을 알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창세기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저로서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명제로 다가옵니다. 여기에 리스트된 모든 신학자/목회자 역시 그렇게 얘기하고 있지요.
<창조 기사 논쟁>의 토드 비일 같은 문자주의 해석은 구약학계에서는 소수가 될 수 밖에 없을 것도 같습니다. ‘학문’이라는 특성을 인정하고, 그 ‘학문’ 활동의 기반이 되는 이성을 하나님의 도구로 인정한다면요.
반면에 과학자들이 성장과정에서 느끼는 바는 신학자들과는 또 다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주변의 교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교회 안에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껴야 했다고 토로합니다. 교회에서는 제대로 말을 못 꺼내고 한숨만 쉬고 있거나, 학계에서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학문적 성실성에 대해 의심받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 분들은 ‘진화적 창조론’을 접하면서 ‘젊은 지구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하며, 바이오로고스와 프랜시스 콜린스의 역할이 컸음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읽으면서 다소 신기했던 것은 ‘오랜 지구론’은 자취가 없고, 항상 질문은 ‘젊은 지구론’ 이냐 ‘진화적 창조론’ 이냐로 나타났다는 점이었습니다.
미국에서도 근본주의 영향 아래에서 가장 근본적인 극단의 형태인 ‘젊은 지구론’이 대세인가 봅니다. 복음주의권 내부에서 창조과학을 비판한 마크 놀의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이 나온지 20년도 더 되었는데, 미국에서의 ‘젊은 지구론’은 여전히 그 위세를 잃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의 과학자분들의 수십년 전의 과거에서 뿐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도 그런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25개의 글 모두 책의 제목을 반영해서 자신의 삶의 궤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삶의 각 단계에서 어떻게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를 얘기할 때 이론적인 부분들이 나오긴 합니다만, 전체적인 흐름은 짧은 자서전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이들 필자들 모두 매우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이제 번역이 되어서 반가운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