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에프 모던 클래식
커트 보니것 지음, 황윤영 옮김 / F(에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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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커트 보니것, 황윤영, 푸른책들

이 책은 총 25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니것의 단편집입니다. 지난 6월에 커트 보니것의 <세상이 잠든 동안>을 읽었던 지라, 이 작가의 작품이, 특히 단편집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세상이 잠든 동안> 에서 보다 전반적으로 50년대에서 60년대 초반까지의 미국의 분위기를 더 잘 느끼게 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다루는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50~60년대의 상황을 대입해서 생각해보면 조금 더 잘 이해가 되는 단편들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소련을 중심으로한 공산국가들과의 냉전 체제가 굳어지던 시기인 50년~60년대인지라, 인류를 종말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과학기술의 오남용에 대한 두려움, 공산주의의 과도한 평등주의에 대한 거부감, 과도한 국가주의에 대한 경계감 등이 배어 있는 단편들이 있었습니다.

짧은 단편이지만,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생생합니다. 전혀 다른 시간대와 장소의 사람들인데도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들. 그만큼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리며, 인간 본성의 측면들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됩니다. 


커트 보니것은 2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드레스덴에 있었다고 합니다. 드레스덴. 

독일의 약 8개월에 걸친 런던 대공습때 약 4만여명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에서는 단 3일만에 2만5천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거대한 화염폭풍이 몰아쳐서 일단 산소부족으로 기절했다고들 하니, 얼마나 끔찍했을지. 그의 반전 의식은 그때 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합니다. 문명의 산물과 그 미래에 대한 시니컬한 관점도 그렇구요.

25개의 단편에 대한 느낌을 간략하게 적어 보았습니다. 이걸 적으면서 어떤 것이 가장 좋았을까 순위를 매겨보려 했으나 포기했습니다. 25개중 대부분의 작품들이 묵직하게 뭔가를 느끼게 하고, 그러면서 씁쓸한 유머를 느끼게 하는 수작들입니다.


1. 내가 사는 곳: 읽으면서 케이프 코드란 곳이 어딘지 구글맵으로 들여다 보았습니다. 참 희안한 지형이더군요. 초승달 모양으로 바다로 돌출된 반도였습니다. 그 동네가 어떤 곳인지 가벼운 유머코드를 섞어서 묘사하고 있네요.

2. 해리슨 버저론: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사회를 그리는 (굳이 분류하자면) SF소설입니다. 과도한 평등주의가 가져올 페해에 대한 시니컬한 풍자였습니다. 결말은 쇼킹하네요...

3. 이번에는 나는 누구죠?: 주요 등장인물이 좀 과도하게 정형화된 느낌은 있지만, 이 또한 의도적인 설정인 것 같습니다. 남녀 주인공이 서로의 아픔과 단점을 보완하게 되는 과정이 참신하게 그려져 있네요. 희곡 작품들을 그렇게 활용하다니...이 단편의 제목으로 사용된 대사가 초반부와 종결부에서 그 의미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것도 졀묘했습니다.

4. 몽키 하우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역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린 소설입니다. 의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하고, 인구가 과도하게 증가한 미래의 한 모습을 그렸습니다.

5. 영원으로의 긴 산책: 두 남녀가 오랫만에 만나는 짧은 순간을 그린 단편입니다. 조금씩 변화해 가는 감정의 묘사가 압권입니다. 로맨틱 단편의 끝판왕이랄까요~

6. 포스터의 포트폴리오: 이 역시 인간성의 한 단면일까요? 어떤 부귀영화보다도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더 중요하다는...

7. 유혹하는 아가씨: 1956년에 여성에게 이 정도의 발언권을 준 것은 시대를 앞서간 것이었을까요? 시대를 감안하고 보지 않으면 조금 구닥다리 같이 보이는 구석도 없지 않아 있네요.

8. 모두 왕의 말들: 소름끼치는 체크 게임이었습니다. 그 안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 있었기에 더욱 그랬었는지도 모르지요. 게임에 묘사된 아시아 본토는 베트남인 듯 합니다. 베트남은 야만적으로 그리고 소비에트 러시아는 신사적으로 그리는 것은 무언가 불편한 점은 있네요.

9. 톰 에디슨의 털복숭이 개: 발상이 신선하면서도 유머감각이 넘치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SF로 분류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커트 보니것에게도 이런 입담 강한 재담가로서의 면모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10. 새 사전: 이 단편은 소설이 아니라, 평론인 것 같습니다. 당시의 세상에 대해 여러가지 재미있는 얘기들을 들려주지만, 영어에 관심이 없다면 지루할 것 같습니다.

11. 옆집: 하나의 타운하우스에서 두 가정이 사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다가구 주택이 워낙 흔하고, 아파트 생활이 일상이지만, 미국 사람들에게 듀플렉스 등의 다가구 주택은 가난의 상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50년대에는 그게 가난도 아니었겠지요. 그냥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았을 겁니다. 그러다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린 듯합니다. 절묘하게 꼬여버린 소년의 처지가 막판에 웃음을 주네요.

12. 한결 위풍당당한 저택: 끝없는 허영, 그리고 환상. 거의 돈키호테를 연상시키는 정도 였습니다.

13. 하이애니포스트 이야기: 케네디 시절의 이야기네요. 민주당의 젊은 지도자 케네디에 대해서, 그에 반발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빙 둘러서 하고 있습니다

14. 난민: 전쟁 고아라고 불러야 할 어떤 소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전쟁으로 단련되었을 강심장의 군인들의 여린 마음도... 울고... 저도 읽다가 울컥했습니다.

15. 반하우스 효과에 관한 보고서: 초능력을 이렇게도 사용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작가의 반전의식이 얼마나 강렬한지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단편의 출간연도가 1950년이라는 것도 참... 의미심장하네요.

16. 유피오의 문제: 과학 기술이 마약이 될 때, 그리고 그것으로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자 하는 또다른 인간의 욕망을 그린 소설입니다.

17. 당신의 소중한 아내와 아들에게로 돌아가: 이 단편에서 최종 승자는 결국 몇 마디 대사도 나오지 않던 ‘그녀’ 인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인생들을 품어 안는 강력한 멘탈에서 나오는 유머의 소유자인 그녀.

18. 공장의 사슴: 거대한 공장은 미국의 산업화를 상징하지만, 또 그만큼 비인간적인 조직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주인공이나 사슴이나 그 공장에서는 얼른 도망치는게 살 길이었겠지요.

19. 거짓말: 미국이 학벌에 대해서는 우리보다는 유연하긴 하지만, 특정 학교 출신이냐 아니냐는 뭐..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말이 여기서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부모들이 초반에는 속물스럽고 어리석게 보여도 마지막에는 그래도 합리적이긴 하네요. 애를 잡지 않는 걸 봐서도...

20. 입을 준비가 되지 않은: 특이한 형태의 신인류의 얘기입니다. 이건 무슨 안드로이드도 아니고, 로봇도 아니고... 유체이탈한 양서인이라니... 

21. 아무도 다룰 수 없던 아이: 상처 입은 어린 소년을 다시 거둬들이는 얘기는 흔한 소재이긴 합니다. 다만 그 과정, 그 방식이 어떠하냐는 것일 텐데요. 이 단편에서 나타난 방식은 저로서는 생경합니다. 예상했던 바와 전혀 달랐습니다. 대략... “이제 헬름홀츠는 사람들과 그들의 보물들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문장과 그 이후 주인공의 액션에서 단서가 좀 있을 듯 합니다.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이 아니야. 너나 나나 우리는 허공을 딛고 있는 것이야. 그럴 수록 자신을 사랑하고...’ 이런 얘기가 아닌가 싶네요.

22. 유인 미사일: 미소의 냉전 체제가 강화되어 가던 무렵인 1958년에 나온 소설입니다. 우주인이 되어야 했던 소련의 어떤 젊은 과학자의 이야기, 미국의 어떤 젊은 비행사의 이야기를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같은 전체주의, 그리고 그와 지극히 닮은 국가우선주의는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을 무시합니다. 하지만, ‘개인’이 존중받지 않는 ‘집단’은 모두를 위한 집단이 아니라 지배층의 이익을 위한 명분에 불과합니다. 커트 보니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차원에서의 이야기들로 냉전의 한가운데에서 반전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23. 에피칵: 인공지능이 인간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따라할 거라는 상상은 이전부터 많이 했었습니다. 20세기초의 공상과학 영화에도 그런 주제들이 있었던 것 같구요.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의 HAL도 그 예중 하나지요. 여기 또 하나의 사례가 있었네요. 이 인공지능도 인간을 능가하는 시적 재능과 상대방을 배려하는 공감능력까지 갖추었네요. 

24. 아담: 네히트만 집안에 한 아기가 태어납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부부에게 찾아온 한 생명. 자기만의 일에 바쁜 세상은 그 감격을 알아주지 않지만, 작가는 그 아기가 ‘아담’이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시작, 풍요에의 약속을 담지한 이름이라 생각됩니다.

25.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 극도로 발달한 의학 기술과 그로 인한 인간의 수명 연장. 수명만 연장되는 것 뿐 아니라 늙는 것도 늦출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은 이런 세계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상상해 보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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