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조건 Philos 시리즈 14
도리스 컨스 굿윈 지음, 이수연 옮김 / arte(아르테)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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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득, 2007년도에 감명깊게 읽었던 책이 떠올랐습니다.

링컨 대통령에 대한 책입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 전 이 책을 탐독했었다고 합니다.
민주당 경선에서의 라이벌이었던 힐러리를 국무장관으로 끌어들인 것도 이 책의 영향이었다고도 하지요.

하워드 진 같은 미국의 진보 역사학자는 링컨에게도 날선 비판을 던지지만, 그럼에도 링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이런 대통령을 19세기에 이미 뽑았던 미국 민주주의 체제의 오랜 역사가 새삼 부럽다는 생각이 오늘 불현듯 들었습니다.


아래는 2008년도 10월에 써 놓았던 후기 입니다. 
(2007년도에 구매, 2008년 1월에 완독, 후기는 10월에 썼네요. 당시 싸이 블로그에 올렸던 글입니다. 개인적인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미리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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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조건 (Team of Rivals)
도리스 컨스 굿윈 (Doris Kearns Goodwin) 저
이수연 역
21세기 북스 간 (829p)

링컨.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우리나라에도 별로 없다. 140여년 전의 미국의 대통령의 이름을 아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게 생각해보면 도리어 이상하다. 그렇게 이름은 잘 알지만, 우리는 그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정말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그가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수행했는지 나는 잘 모르고 있었다.

신문의 신간안내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책. ‘권력의 조건’ 이라는 우리말 제목은 영어원제와는 사뭇 다르지만, 책의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 책의 부제는 ‘라이벌까지 끌어 안은 링컨의 포용 리더쉽’이다. 영어 원제는 ‘Team of Rivals’.

이 책의 저자인 도리스 컨스 굿윈에 대해서 소개된 바는 하바드 대 박사 출신으로, 린든 존슨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냈으며, 10년간 하바드 대학교에서 강의를 했으며, 역사 관련 베스트셀러 서적을 몇 권을 집필했고, NBC 방송에서 정치분석가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독특한 경력이 아닐 수 없다. 학교에서 강의도 하면서 실제 정치에서도 활동하면서, 동시에 역사 관련 서적도 집필하는 등 활동의 폭이 크다. 이런 경력의 사람이 쓰는 책이라면, 학문적으로 엄밀한 역사서적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의도와 주제에 맞게 역사적 사실을 취사 선택해서 강한 방향성을 가지는 책이 될 가능성이 클 것 같이 보인다. 의도가 앞서기 때문에 대체로 일차사료보다는 2차, 3차 사료를 애용하게 되는 경향도 클 것 같다. 그런데 이 저자는 그렇게 쉬운 길로 가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말 번역으로도 800여페이지에 이르는 이 방대한 내용의 책을 쓰기 위해 저자는 다른 링컨의 전기에서 흔히 인용하지 않은 자료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슈어드 가족의 편지만 5000통, 슈어드의 딸 패니가 쓴 일기 800 쪽, 체이스가 남긴 수천통의 편지와 일기. 스탠턴의 편지와 그의 누이의 회고록 등등, 일차사료의 범위와 양이 매우 넓어 보인다. 그러한 넓이는 본문 여기저기서 확인이 가능하다. 그러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10년을 집필한 책이 이 책이라 한다.

저자는 링컨을 기존의 시각과는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관찰해 나간다. 링컨이라는 인물의 생애를 기술하면서 186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공천 당시 그의 라이벌이었던 명사들의 이야기를 한데 엮어 나간다.

“뉴욕 주 상원의원이었던 슈어드, 오하이오 주 지사였던 체이스, 미주리 주의 저명한 노 정치가 베이츠가 그의 라이벌이었다. 링컨이 공천을 받았을 때, 그의 라이벌들은 모두 사람을 잘못 뽑았다고 생각했다.”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유능한 라이벌들을 내각에 끌어들이기로 결정했다. 이 유례없는 결정은 링컨이 엄청난 자신감과 관대함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였다. 슈어드는 국무장관, 체이스는 재무장관, 베이츠는 법무장관에 임명되었다. 링컨은 민주당 출신의 세 사람에게도 나머지 장관직을 제안했는데, 기디언 웰스는 해군장관, 몽고메리 블레어는 우정장관, 에드윈 스탠턴은 전쟁장관이 되었다.”

“ 링컨이 임명한 내각의 장관들은 모두 링컨보다 더 유명하고 더 많은 교육을 받았으며 공직생활 경험도 풍부했다. … 막강한 경쟁자들은 처음에는 링컨이 경험도 없고 무식하다고 멸시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와 함께 위태로운 조국을 이끌어 암울한 시대를 헤쳐나가는 충실한 친구가 되었다.”

모르고 있던 사실이었다. 링컨은 공화당 후보로서 대통령이 되었는데, 경선에서 자신의 경쟁자였던 사람들 뿐만 아니라 반대쪽 정당인 민주당 인물들까지도 자신의 내각에 포함시켰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자리들에 말이다. 아주 유능하고 유력한 인물들이었지만, 라이벌들인 그들 모두를 하나로 묶어 나가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헤쳐나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어려울 때일 수록 가장 가까운 친구들 사이도 흔들리기 쉬운 법, 그런데 라이벌들하고 한 팀이라면, 더더욱 어렵지 않았을까

흥미로운 접근을 보여주는 책이지만, 취미 삼아 읽는 독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단점도 많은 책이다. 먼저 상당히 길다는 점은 (800여페이지) 이 책을 선택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름이 한 번 이상 나오는 등장인물도 수십 명에 달하기 때문에 읽다가 보면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책 뒤의 영문인명록 페이지 수만 15페이지에 달한다. 미국의 지리와 역사에 생소하면 지도가 책 내에 여러장 있음에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야말로 시간 순서대로 써내려간 역사책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사건의 앞뒤가 잘 연결이 안될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처음부터 의도했던 바는 책 내용을 통해서 진솔하게 볼 수 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는 동안, 전문 역사가의 책에서만 볼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들, 증언들로 인해, 링컨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고, 마치 소설을 읽는 듯이 등장인물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더러 보게 되었다. 가슴이 턱 막히는 감동적인 순간도 꽤 있었고, 눈물이 솟아나오는 대목도 여럿 있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시기는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이슈들로 얽혀 있던 시기였다. 다양한 이해관계의 스펙트럼이 존재했으며, 남북 뿐 아니라 동서에 걸쳐서도 서로 의견들이 달랐었다. 경제적 이해관계 뿐 아니라, 인종적 문제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이 복잡하게만 얽혀 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노예해방과 남북재통합이라는 일은 빠른 시일 내에 같이 이룰 수 있는 일이 도저히 아닌 것처럼 보였었다. 하지만 링컨이라는 걸출한 지도자로 인해 그 두가지는 모든 사람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성취되었다는 것을 이 책은 보여준다. 그러한 링컨의 위대한 리더십의 본질은 라이벌들을 자신의 팀으로 만들 수 있는 그의 자질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동안 링컨을 알고는 있었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링컨과 같은 리더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내겐 놀라운 발견이 되었다. 링컨의 그 놀라운 리더십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바탕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면서, 그것이 정말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과 다르지 않다는 것, 내게도 절실하게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덮고 나니 링컨은 기록이 존재하는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리더로 내겐 다가온다.
그 혼란스럽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그가 이루어낸 일들을 생각할 때 그러하다.

무엇보다 그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끌어모은 그의 리더십.

똑같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전이 되고, 지침이 되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이유들로 인해 이 책은 2007년도에 읽은 가장 감명깊은 책이다.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던 책이다.

책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부분들을 요약해 본다.

– 링컨은 기하학, 천문학, 정치경제학, 철학을 혼자서 공부했다.

– “링컨은 노예소유주들을 비난하는 대신, 감정이입을 통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했다. “협박은 협박을, 비난은 비난을, 저주는 저주를” 낳는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여러분의 대의에 사람들을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방의 이성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인 그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이 승리, 즉 “이 당에 노예나 음주가가 존재하지 않는” 영광의 날을 향한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그는 ‘통합’의 지도자였다.)

– 1855년, 그는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으로 출마했다. 1차 투표에서, 세명의 후보 중, 링컨은 가장 많은 표인 47표를 얻었지만, 과반수에는 못 미쳤다. 다른 후보는 노예제를 찬성하는 측이었고, 링컨과 같이 노예제 반대측인 또 다른 한 후보는 5표 밖에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 5표가 있으면 링컨의 당선이 확정될 수 있었는데, 그 후보 측은 끝까지 양보하지 않고 있었다. 부동표가 마지막 순간에 노예제 찬성측 후보로 몰릴 것을 우려한 링컨은 5표 밖에 얻었던 그 후보에게 자신의 지지표를 몰아주는 결단을 내린다. 그의 지지자들은 반대하였지만, 링컨은 고집을 부렸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승리가 아니라, 대의의 승리라고 하면서. “링컨은 패배에서 친구를 얻었다. 트럼벌도 (그 후보), 저드(지지자)도 링컨의 관대한 행동을 잊지 못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모두 1858년에 링컨이 상원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그를 도와주었고, 저드는 1860년에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대의 정치인들에게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모습이다.)

– (시카고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전에서 승리한 후) “그는 자신의 입장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언어를 신중하고 정확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 모든 극단적 견해를 회피하고 지켜낸 그의 중도적 입장은 … “평정을 잃지 않는 침착한 성격과 공정한 정신”이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였다. … 링컨의 깊고 고결한 야망, 페렌파처의 말을 빌리면 “편협함과 적개심, 탐심이 없는 야망”…. 링컨은 다른 라이벌만큼이나 강렬하게 출세를 바랐지만, 공직에 대한 야망 때문에 친절함과 관대함을 잃은 적이 없었따. 그는 지지자와 경쟁자를 똑같이 공정하게 대했으며, 노예제 반대 운동에 한결같이 적극적이었다. 시카고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을 지목한 이들은 이 모든 자질을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나라를 뒤흔드는 크나큰 난제를 해결하는 데 더 없이 적합한 인물을 선택했다.” (그의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노선은 남북 전쟁 당시의 미국에게 가장 필요한 바였다.)

– (대통령 당선 후) “링컨은 종이에 (내각 구성원으로) 원하는 일곱 사람의 이름을 적었다. 목록에는 대통령 후보 공천 당시 그의 경쟁상대였던 슈어드, 체이스, 그리고 베이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밖에, 옛 민주당원인 몽고메리 블레어, 기디언 웰스, 노먼 저드와 옛 휘그당원인 뉴저지 주의 윌리엄 데이턴이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링컨은 .. 과거의 경쟁자들을 “자신의 공적인 집안”으로 끌어들여 “탄탄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분명히 밝혔다. … 훗날 <시카고 트리뷴>의 조지프 메딜은 링컨에게 왜 정적과 적수로 구성된 내각을 택했느냐고 질문했다. 특히 공화당 공천 과정에서 가장 큰 라이벌이었고, 여전히 이전 패배에 분노하고 있던 세 사람을 선발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링컨의 대답은 간단하고 솔직하며 날카로웠다. “내각에는 당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은 단결해야 합니다. 당을 잘 살펴본 나는 이들이 바로 그 유능한 사람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나라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빼앗을 권리는 없습니다.” ”

– (해임 후 부정부패가 드러나 비난을 받게 된 캐머런이라는 사람을 위해) “ (의회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과 내각 전체가 모든 잘못이나 실수, 오류에 대해” 캐머런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책임이 있따고 사과했다. 캐머런은 이 관대한 행동을 잊지 못했다. 모두가 자신에게 등을 돌린 상황에서 비난을 함께 짊어지는게 링컨에게는 큰 용기였을 거라며 고마워 했다. 링컨과 같은 상황이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임을 지기보다는 무고한 사람이 고통받든 말든 나 몰라라 했을 것”이라고 캐머런은 기록했다. 링컨은 그런 많은 사람들과 달랐고, 신임 전쟁장관을 포함해 모든 각료가 그 사실을 깨달았다.

– (게티즈버그에서의 그 유명한 연설) “하나님의 은총 아래 이 나라는 새로운 자유를 낳을 것입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전쟁은 세계최초의 대통령제 민주주의 정부에 닥친 첫번째 시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 마지막 문장이 얼마나 그들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남북 전쟁의 가장 큰 대의는 ‘노예 해방’이기도 했지만, 남북이 다시 통합되어 다시 제대로 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시험대이기도 했다.)

– (재무장관으로 임명되었던 체이스는 스스로 대통령이 되고 싶은 야망으로 인해 링컨과의 관계가 그리 좋지 못했다. 체이스는 사직서를 무기로 링컨을 흔들었었는데, 네번째의 사직서 제출을 링컨이 결국 수리해버리고 만다. 상황을 놀란 주변 사람에게 설명하고 나서 링컨은 말을 이었다. ) “ “하지만 체이스만큼 대법원장의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할 사람은 연방에 없습니다. 기회가 있다면 난 그를 미합중국의 대법원장으로 만들 겁니다.”라고 말했다.” 링컨이 이처럼 자신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사람에게 조금도 복수심을 품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자잘한 복수심보다는 더 숭고한 동기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고 치텐든(그 주변 사람)은 말했다.” (실제로 체이스는 나중에 대법원장이 되었다.)

– “몽고메리 블레어는 3년 전 프레몽에게 보냈던 자신의 편지가 공개되었을 때, 거기에 링컨을 비난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도, 그를 편들어준 링컨을 잊지 못했다. 또 링컨은 블레어 부자가 사적인 면담을 요청했을 때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으며, 누이 엘리자베스도 늘 백악관에서 환영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국회에서 급진파들과 싸우는 동안, 링컨이 프랭크에게 보내주었던 지지에도 언제나 감사했다. 이처럼 링컨의 자비롭고 친절한 행동은 블레어 가족과의 친분을 더욱 두텁게 만들었고, 몽고메리가 어쩔 수 없이 사임했을 때도 그 관계는 깨지지 않았다. 결국 링컨은 보수적이고 유력한 블레어 가문의 애정과 지지를 잃지 않고도 프레몽의 출마포기와 급진파의 지지를 얻었다.” (블레어 가문은 민주당으로서 링컨과 정치적 노선이 많이 달랐지만, 링컨이 그의 능력을 아껴서 내각에 참여시켰었다.)

– (재임을 위한 선거에서) “군인들이 보여준 압도적인 지지는 감동적이었다. 그는 서부 군대에서는 80퍼센트의 표를 얻었고… 군인들은 링컨을 지지하면 전쟁이 연장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사랑하는 대통령이 구현하고자 하는 대의에 진심으로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그들이 사랑했는지 어떤지 알 수는 없지만, 80퍼센트의 표는 많은 것을 얘기해 준다.)

– (1865년 3월 4일의 취임식에서) “남이나 북이나 모두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하나님에게 기도 했으며, 상대측에 불리하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우리가 심판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을 심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양쪽 모두의 기도가 응답받을 수는 없습니다. …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름의 목적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는 모두 전쟁이라는 이 큰 벌이 빨리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50년간 노예들의 보답없는 노동으로 쌓아온 모든 부가 소멸될 때까지, 그리고 칼을 든 가해자가 채찍을 맞아 흘린 모든 핏방울을 보상할 때까지 이 전쟁을 지속시키는 게 하나님의 의지라면, 3000년 전에 말해졌듯이 ‘주님의 심판은 전적으로 진실하고 마땅하다.’라고 여겨야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원한을 품지 말고,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풉시다. 또한 하나님께 보여주신 정의에 대한 굳은 확신으로 지금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끝내고, 이 나라의 상처를 꿰매며, 전쟁에서 싸운 이들과 그 미망인과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노력합시다. 그리하여 우리들 가운데, 그리고 온 나라에 정의롭고 영원한 평화를 두기 위해 매진합시다.” (너무나 잔혹했던 남북 전쟁을 보면서, 기독교인이라면 고민했을 법한 부분들이 보인다. 왜 이런 전쟁이 우리에게 닥쳐와야만 하는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야만 하는가 등등의 질문이 꼬리를 물고 나올 수 밖에 없는 상황,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신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링컨 자신만의 답을 얘기하는 것 같다. 링컨이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닌 것 같이 책의 저자는 군데군데 언급해 놓았지만, 이 연설에서 나는 그가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듯한 느낌을 받는다.)

– (취임식 연설 이후) “극단적 분리주의 (링컨의 절대적 반대편이라는 얘기) 신문인 <찰스턴 머큐리>의 평가, “… 그는 모든 주위 사람들에게서 힘과 에너지, 두뇌, 열정을 모았다. 그는 분명 통치자로서 우리의 존경을 받을 것이다.”

– (남부의 수도 리치먼드로 가는 길에) “잠시 후 해안에 상륙하자마자, 링컨은 “하나님을 찬미하라! 위대한 메시아가 오셨다!, 영광! 할렐루야!”라고 외치는 흑인 노동자들에게 둘러싸였다. 몇몇 흑인들이 무릎을 꿇었다. 링컨은 감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 무릎을 꿇지 마십시오. 그건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만 무릎을 꿇고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누릴 자유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흑인들은 몸을 일으켜 손을 맞잡고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 (1865년 4월, 링컨이 저격을 당하고 사망한 직후) “스탠턴은 며칠동안 지칠 줄 모르고 수도를 방어하고 음모자들을 체포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슬퍼했고, 누군가 링컨의 이름을 꺼내기만 해도 주저앉아 통곡했다고 한다. 그간 스탠턴에게서 무뚝뚝한 모습만 봐왔던 사람들은 이토록 슬퍼하는 그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존 헤이는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 “사망했습니까?” 체이스가 묻자, 필드가 대답했다. “예” 체이스의 눈이 충혈되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마 후 체이스는 … 예전의 정적이었던 몽고메리 블레어, 그리고 그 아버지와 마주쳤다. 체이스는 아버지 블레어의 손을 잡고 슬픈 눈으로 “블레어 씨, 오늘부터 우리 사이의 모든 분노와 고통이 사라지길 바랍니다.” 라고 말했다.” (체이스는 링컨과 계속 불화했었던 사람이었다. 일은 잘했는지 모르지만.)

– “남부 출신인 블레어 가족은 … 이번 암살이 남부에 큰 불행임을 알고 있었다.  “남부의 지지자들은 이제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던 친구들을 잃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다시는 그런 사람을 찾지 못하겠지요. 그들도 우리만큼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습니다.” 라고 엘리자베스 블레어는 그날 늦게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했다.” (남북전쟁 종료 후, 링컨은 남북의 참된 통합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풉시다.’라는 취임연설의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었다.)

– “5월 마지막 주까지 미합중국의 수도에는 계속 반기가 펄럭였다. 곧 해산에서 집으로 돌아갈 약 20만 연방군인들의 고별행군을 보기 위해 전국의 시민들이 워싱턴으로 몰려들었다. “워싱턴 역사상 그때만큼 많은 방문객은 없었다. … 그 따뜻한 봄날 펜실베이니아 가를 행진했던 군인들은 자신들이 역사를 영원히 바꿀만한 일을 완수했음을 알고 있었다. … 기디언 웰스는 이 행사에 워싱턴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참석했다고 서글픈 듯 말했다. “모두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에이브러햄 링컨은 없었다. 모두가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보다 각료들이 링컨의 부재를 가장 뼈저리게 느꼈다.”

– “링컨은 평생 친절하고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고, 사람들의 기억에 자신을 각인시키고 싶다는 야망을 가졌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예전에는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에게서 우정과 협조를 이끌어 내었고,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으며, 더 중요한 문제를 위해 작은 것을 양보할 수 있었다.”

– “헤이는 1905년 66세를 일기로 사망하기 직전, 이렇게 기록했다. “백악관으로 돌아가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꿈을 꾸었다. 그 대통령은 바로 링컨이었다. 그는 친절하고 사려 깊게 내 병을 걱정해 주었다. 그가 중요한 편지 두 통을 주며 답장을 보내라 했다. 나는 그 작은 지시를 받으며 기쁨을 느꼈다.” 이 때는 사랑하는 대통령이 암살된지 40년이 흐른 뒤였다. 헤이는 그 꿈을 꾸고 “겉잡을 수 없는 슬픔”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40년 전에 같이 일했던 직장 상사를 이렇게 기억할 수 있다니. 책의 마지막 부분인 이 대목에서 읽는 나도 알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이 솟아 올랐다.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도 이만큼 내 맘에 울림을 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 (저자의 마지막 문단) “1860년 5월 18일 슈어드와 체이스, 베이츠, 그리고 링컨은 각자의 집에서 시카고에서 열린 전국 공화당 전당대회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라이벌들은 링컨이 승자로 떠오르자 당황하고 분노했다. 이들은 격동의 1850년대 노예제에 대한 갈등이 탈퇴와 내전으로 치닫는 동안, 저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링컨은 다른 라이벌들보다 더 재능이 있거나,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라이벌보다 더 치열한 인생을 살아왔고 동시에 천성적으로 고귀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 덕에 라이벌 중 가장 보잘것 없었던 링컨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느낌을 공감하며, 그들의 동기와 욕망을 이해할 줄 아는 남다른 재능을 가졌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그가 적수들을 한데 모으고, 역사상 가장 기이한 내각을 구성하고, 연방의 보전과 전쟁의 승리를 위해 그들의 재능을 결집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능력들 덕분이었다. 링컨은 무능한 장군들과 적대적인 의원들, 소란스러운 내각에 대처해 길고 무시무시한 싸움을 벌였다. 그는 결국 장애를 극복하고 경쟁자들의 존경을 받았고, 슈어드처럼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충성스러운 친구를 만났다. 이 책은 링컨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했던 여러 사람의 인생을 다루면서, 링컨이 어떻게 사람을 다스렸고, 어떻게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길이 남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고자 집필되었다.”

– (옮긴이의 말) “근 1년 가까운 세월 동안 늘 이 책 <권력의 조건>… 마지막에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날 적에 그 동안 그들에게 쌓인 미운 정과 고운 정 때문에 눈물 흘리던…” (어떤 감동적인 영화의 끝장면도 이 책의 끝부분만큼은 아닐 것 같다. 절절한 실화였고, 한 두명의 주인공 만에 대한 얘기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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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국도 이런 대통령을 많이 누리지는 못했지요. 그럼에도... 오늘의 우리를 보니, 그 오래전의 미국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현실이 마음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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