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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난 세상 - 대한민국 인권의 현주소를 찾아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박영희 외 지음, 김윤섭 사진 / 우리교육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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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은 국가인권위원회 출범 5주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나라에서 인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부당함을 제기하고 또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독립된 기구가 움직인 것은 고작 5년 밖에 안된다. 얼마 전 한겨레21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의 소속기관이 아니고 독립된 기관이라는 점이 얼마나 다행이고, 그 성과물들 또한 아시아(세계에서 절대 아니다)에서 최고의 모범 사례들이라고 나온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국가인권기구는 그 사회 인권 현실의 반영인 동시에 그 극복의 표현이다. 국가인권기구는 '국가의 오른손'이 한일을 반성하는 '국가의 왼손'이고, 강권적 권력기구처럼 무장은 하지 않았으나 오히려 그렇기에 더 강해질 수 있는 '새로운 권력'이며, 더욱 낮은 곳으로 내려 갈수록 더욱 높아지는 '역설의 기관'이다. 국가인권기구는 그 사회 양심과 지성의 체화다.  --<인권> 2006년 11월호에서
그동안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법과 제도적인 장치들을 바꾸고 새로 만들어 우리 사회 약자, 소수자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공론화 시켜왔다. 그와 더불어 평범(?)하지 않음, 남(?)과 다름, 약하고 가난한 것에 그닥 관심을 갖지 않는 우리들에게 이런 것도 좀 생각해 보시오, 제발 이런 곳에 시선을 가져주시오 하고 책(만화책 포함)을 기획하고, 영화를 기획해 왔다. 그래서 우리의 성찰이 우리 사회 약자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 왜냐 세상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하고만 같이 사는 세상이 아니고, 더불어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길에서 만난 세상>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 어린 엄마들, 탈학교 청소년, 아시아에서 시집온 여성과 그들의 아이들, 도시의 노인들, 폐광지역에 사는 사람들, 보안관찰법에 의해 감시당하는 사람들, 무슬림, 좁은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른 아침부터 오밤중까지 학교에서 생활하는 청소년들, 새벽 바다로 나가는 선원들, 농촌 청소년들,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 일본인 처, 창신동 봉재 기술자들에 대해 절절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예전에는 먹고 살기 바쁘고 힘들어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그때의 추억이 강해서인지 '배부르니까 별것들이 설친다' 등등의 이상한 소리 나불거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범(?)하지 못함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특출한 차이에 대해서는 선망의 눈길을 보내지만, 그렇지 않은 차이에 대해서는 왜곡하고 폄훼한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이야기 하는 인권의 문제가 특별히 부족하고, 약한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주변을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얼마나 많은가? 김영삼 정부때 날치기로 통과된 노동법(그때는 보호 장치가 많으므로 항간의 우려와는 달리 비정규직이 양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후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임금 노동자의 50%에 육박한다. 이렇게 많은 수가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우리 사회는 자신이 안전한 선에 도달해 있으면 그걸로 안심 그들의 아픔에 별 고민이 없다. 그 안전한 선이라는 것이 그렇게 안전한 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얼마전 한겨레에 철암어린이도서관 활동가들이 나온 적이 있다. 죽어가는(엄연히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도 이런 말을 붙이는 나는 생각없이 내뱉는 일상 언어의 폭력성을 새삼 느낀다) 도시 태백 철암에서 어린이 도서관을 위해 고전분투 하는 그들을 보면서 그들이 방송에 한번 출연하면 쉽게 멋진 도서관을 가질 수 있음에도 그 유혹을 어떻게 뿌리쳤는가를 보았다. 쉬운 길을 마다하고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하는 그들이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힘겨운 길을 보며 그들을 무모하다, 어리석다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진정 우리시대 인권의 현주소는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가 좋은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앎을 넘어서 우리의 의식이 바뀌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제대로 실천을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건강한 우리에게는 단순히 시간 절약, 맛있는 것을 먹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장애인들에게는 그 곳에 갈 수 있느냐의 문제로, 한센병 환자에게는 배고픔을 해소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는 점이 있다. 장애인의 대다수는 후천적인 장애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대 안전한 선에 들어와 있다고 볼 수 없다. 단순히 불쌍하다는 마음만 갖고는 안되는 것이다. 우리의 몫을 나누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말도 안되는 대세에 돈이 안되지만 이익이 안되지만 우리가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것이 진정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말할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선진국은 단순히 우리의 생활수준, 소득수준의 향상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나라이다. 사회의 안전막이 우리사회 곳곳,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는지 그렇다면 다수의 우리가 그들과 나눌 수 있고, 그들을 위해 포기할 것들은 무엇인지 안다면 '세금 폭풍'이라는 이상한 말은 우리사회에 발붙일 곳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한국, 많이 살만해졌다. 그런데 중국서 시집온 친구가 그러더라. 언어도 별다르지 않고 외모도 다르지 않은데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진다고...제대로 끼니도 못먹는 가난한 나라에서 무슨 사연으로 시집을 왔나, 남편한테는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런(?)사람을 아내로 맞이하나 그런 궁금증으로 그런 시선으로 본다더라. 그래서 그 친구는 아이의 학교에서 만난 엄마들한테 중국에서 온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를 쓰는지 모른다. 자기한테 그러는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아이한테까지 이상한 시선이 미치는 것은 참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 우리나라에 처음 왔을때 진짜 이해 안되는 점 몇가지 있었다러라.
첫째, 제대로 교육 받은 대다수의 여자들이 집에서 놀고 있더라.
둘째, 남녀간에 임금 차이가 심하더라.
셋째, 아이들 보육기관이 너무나 부족하더라(특히 직장내 탁아시설).
봐라, 우리나라 사람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시집온 사람들, 일하러 온 사람들 무시할 것도 안된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도 엄청 후진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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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5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월의바람 2007-03-0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가 인권위원회에서 나온 십시일반이라는 만화책도 잘 보았었는데 새책이 나왔군요.꼭 읽어봐야겠어요

2015-01-01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2 - 21세기, 희망의 미래 만들기, 개정판 살아있는 휴머니스트 교과서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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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사회 시간에 대강 배운 세계사는 너무나 흥미로운 과목이었다. 고등학교에 가면 세계사라는 과목이 따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기대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반은 세계사 대신 지리를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세계사라는 과목은 늘 목마른 그런 과목이었다.
중학교 때 처음 맛본 세계사는 그 당시 푹 빠져 있던 팝송과 영화와 마찬가지로 유럽 중심의 세계사였다. 그때 나는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일족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또 안타까웠다. 유럽적이지 않은 것은 모두 미개하고 야만하다는 것을 보여준 우리의 옛 사회 교과서, 침략자의 관점을 미화시킨 세계사 교과서로 세계를 배우고 역사를 배운 아이들은 거의 그러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는 유럽 주연, 중국 조연의 세계사를 넘어 인류의 역사를 담은 세계사를 새로 썼다고 말한다. 우리의 시각으로 세계사를 봤다고 하지만 우리를 미화시키거나 과대포장 하는 면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기존의 교과서가 가진 일방적(승리한 자) 관점이 아니라 그동안 소홀하게 다뤄왔던 세계에까지 고른 시선을 주었고 또 소개하려고 하였다. 열의가 지나쳐 때로는 방만하기도 하지만 이 분들의 의도와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예전에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를 봤을 때 풍부한 사진과 그림 자료들에 감탄은 하면서도 교과서라는 형식에서 오는 한계로 인해 혼자서 쭉 읽어 보기에는 좀 그렇겠구나 생각했는데 그것은 읽어보지 않고 대충 훑어본 사람의 기우였다. 교과서라는 형식에 걸맞게 그리고 그 분량에 맞게 세계사의 큰 흐름과 줄기를 살펴 볼 수 있고 기존 교과서의 조잡한 삽화가 따라올 수 없는 선명한 그림과 사진들은 눈을 즐겁게 한다. 대안교과서를 준비하기까지 엄청난 자료가 필요했겠지만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에 소개된 사진과 그림을 보면 이 분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았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도판의 상태 또한 무척 좋다.
 한정된 공간에 담아내기에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있어 부족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세계사의큰 흐름을 파악하기에는 가장 좋은 책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그러나 옆에 붙은 해설과 도판 설명은 산만한 감도 있다. 이것 저것 보느라 눈이 바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선생님과 아이들의 수업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학생 정도의 학령이면 충분히 읽고 이해하겠지만 이 책은 교과서이기 때문에 구체적 내용은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이책으로 수업을 하고(고루한 시각을 가진 선생님들은 반드시 노력하셔야 할듯)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일방적이지 않은 역사의식을 가질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우리가 기존의 교과서로 배우면서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말에 아무 의심을 할 수 없었다면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로 공부하게 될 아이들은 그런 시각은 갖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고 유명인(?)의 생활을 만날 수 있는 청소년의 삶과 꿈, 여성의 역사 코너는 아주 재미있는 코너였다. 고전 경제학자들의 주요 이론과 그 반론을 쉽게 소개하고 당시의 주류가 아닌 것들에도 눈길을 준 시대와 만나다 코너의 알찬 내용도 돋보였다.
간단명료하게 세계사의 큰 흐름을 알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그 알맹이를 채워내고 그 시대를 알아가고 배우기 위해서는 관심을 갖고 다른 책을 곁들여 본다면 더 좋을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서평단에 뽑혀서 받게 된 책이다. 강유원은 돈주고 사서 본 책만 서평을 쓴다고 하더라.
두 권이나 되는 좋은 책에 대한 욕심으로 서평단 신청을 했다. 하지만 이건 너무 큰 욕심이었다. 보고 싶은 책은 왜 그렇게나 많고, 서평에 대한 부담으로 무겁고 빚진 마음으로 불편한 나날(?)을 보냈다. 시간이 더 지난다해도 다른 분들이 쓰신 것 같은 주옥같은 리뷰는 못쓸거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허접한 리뷰라도 쓰게 되었다. 정말 부끄럽고 다시는 서평단 신청을 하지 않아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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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2005-12-13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도 없는 일에 왜 손을 들었나..아무도 안봤으면 좋겠다. 정말 부끄럽다.

하늘바람 2005-12-13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쓰셨는데 왜그러셔요. 힘내시라고 추천해드립니다.

로드무비 2005-12-13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겸손은!
잘 읽고 갑니다.
전 결국 <나이트 워치> 리뷰 떼먹었습니다.
앞으론 번쩍번쩍 손 안 들려고요.^^

2005-12-14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5-12-15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종의 기원 -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 주니어 클래식 1
윤소영 풀어씀 / 사계절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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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의 공통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읽은 사람은 거의 없는 책이라고 한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도 그런 책 중의 한 권이 아닌가 싶다. 교과서에서 무수하게 제목만 들어 본 책 하지만 정작 어떤 이야기가 실려 있는지는 실은 잘 모르는 책으로.

중학교 과학교사 윤소영이 풀어쓴 이 책은 종의 기원 각장의 주요부분을 인용해 해설하고 거기에 다윈 이후 새롭게 증명된 부분을 추가한다거나 현재 논의 되는 부분을 곁들어서 <종의 기원>이라는 제복만이 존재했던 책을 우리에게 쉽게 접근시켜 준다. 주니어 클래식이라는 이름만 보고 청소년용의 책이라는 단정은 짓지 말아야겠다. 쉽게 풀어쓰려 애를 썼지만 청소년보다 곱절은 나이를 더 먹은 나에게도 만만한 내용은 아니었으니 그렇다고 우리 청소년의 수준이 결코 나정도 라고는 하고 싶지 않다.

적절한 자료사진과 각주의 성실함 더불어 다윈 주위의 여러 학자들과 요즘의 학자들과 이론에 대한 소개는 이 한권이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여 더 폭넓은 독서로 안내하게 될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한다.


어린시절부터 자연과 곤충, 산책에 열심이던-이는 이후 다윈 스스로도 학문의 성공요인이라 말하는 것의 기본이 된다. 유년 시절부터 유심히 관찰하는 능력을 가지고 관찰과 수집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자연과학에 대한 사랑이 꾸준하였고 열정적이었다는 것, 유년 시절부터 목격한 것이 무엇이든 이해하거나 설명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가졌다는 것과 모든 사실을 일정한 일반 법칙 아래 묶는 것을 말한다- 다윈은 아버지의 질타와 염려 속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비글호 항해에 참여하게 된다. 비글호 함해는 당시 제국주의 영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해도 작성이 목적이었으나 다윈은 남아메리카를 탐사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끊임없이 관찰하고 사색한다. 항해를 계속하면서 다윈은 종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고 그러면서 사람도 같은 법칙에 따라 생겨났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된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주장하는 내용들은 단순히 과학 분야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만이 아니라 철학, 종교를 아우르는 사회의 가치관을 흔들 수 있는 이론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어린 시절 또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머리는 다윈의 머리, 몸은 유인원인 그런 그림을 보았다. 다윈의 진화론은 당시의 사고체계를 부정하는 지동설에 견줄만한 혁명적인 이론이었던 것이다.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증거자료와 사례들을 제시했음에도 <종의 기원>은 오만한 인간에 대한 모독과 전지전능한 창조자 신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되고 선한 눈과 순한 얼굴을 가진 다윈의 마음고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음이 분명하다.

158쪽의 프로이드 말을 보면 인간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인류는 두 차례에 걸쳐 과학의 손이 그들의 천진한 자기애에 가한 거대한 모욕을 참아내야 했다. 첫 번째는 우리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거의 상상하기 조차 힘든 규모의 대우주 안에 있는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 두 번째는 생물학 연구로 인해 신의 특별한 피조물이라는 특권을 강탈당한 채 동물계의 일원으로 추방당한 때였다”

고대로부터 과학기술이 첨단화 되었다는 오늘까지도 이런 인간의 오만함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윈이 이야기한 진화라는 것도 우열을 가르자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를 말한 것인데 컴퓨터 광고에서도 아이들 만화에서도 진화는 발전, 진보의 의미만을 담고 있다. 그러나 다윈이 말하고자 하는 진화론의 진화는 다양성 증가이다. 모든 생물체가 우수한 형질 즉 우생학에서 말하는 잘난 종족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풍부한 생물계에서 인간의 위치를 돌아보는 겸손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머리 속에서 어느 날 문득 생각한 이론이 아니라 지질학과 생물학의 끝없는 관심과 자료들을 수집하고 관찰하면서 지구가 만들어낸 증거들을 마주한 다윈의 자각이 아니었을까?

가설을 증명해 가는 과정에서 또는 그 이전부터 변이와 자연선택에 확신을 가진 다윈이지만 화석의 한계와 증명되지 않은 가설들로 인해 자신이 조사한 자료와 과학적 진실이 왜곡되고 의심 되었을 때 참 외로웠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교리 선생님은 대학의 물리학과 교수님이었다. 교리 시간이 끝날 무렵 하느님을 부정하는 이론을 믿어서는 안 되고 그런 책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구절을 보고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생각이었다. 교리 선생님과 그것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생각이 난다. 종교는 종교일 뿐! 비과학적인 것을 맹신하라는 것은 아니니 걱정 말라는 선생님의 말에 얼마나 안심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먹이 피라미드의 맨 윗자리 생태지도의 맨 윗자리를 차지한 인간의 몰염치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우수한 것과 열등한 것으로 나누고(나는 우성형질이 우수한 형질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고등학교 생물시간 우성인자, 열성인자를 배우고 유전인자를 작성하면서 쌍꺼풀은 그렇다 치고 곱슬머리가 왜 우수한 형질인지 늘 의문이었다) 지구라는 별에 가장 늦게 나타나서 가장 제멋대로인 인간의 위치를 생명의 나무를 보면서 제대로 보려 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 멸종되는 많은 종은 수수방관하고 이미 멸종된 테즈메니아 호랑이, 매머드 이런 것의 부활로 생태계의 다양함을 꿈꾸는 어리석인 인간의 제 위치를 똑바로 보았으면 좋겠다.

그림 그리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함을 후회했다던 다윈, 그의 <종의 기원>에 등장하는 단 하나의 그림 <생명의 큰 나무>와 글쓴이의 친절한 해설을 보면 이전에 막연히 생각했던 원시 생물에서 고등생물로 발전하는 잘못 알고 있는 진화라는 개념이 아닌 하나의 울창한 나무처럼 오래전부터 연속해서 살고 있는 생명체와 지금은 사라져 버린 생명체들을 아우르는 진화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고 숙연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글쓴이는 진화론을 생각하고 이야기 할 때 지켜야 할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는 자신의 신념은 신념대로 과학적인 사실은 사실대로 어느 정도 분리해서 다뤄야 한다는 거다. 믿음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 결단이지만 과학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과학을 대할 때 어떤 믿음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둘째, 어떤 부분의 불완전함을 꼬집어 전체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비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겸손하고 성실한 과학자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이렇게나마 맛볼 수 있게 해준 글쓴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문자를 해독한다는 즐거움을 많이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쉬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글자를 매개로 180여 년 전의 겸손하고 성실한 과학자 다윈의 이론을 만나고 학문에 대한 그의 태도도 엿볼 수 있었으니 이는 독서의 큰 기쁨이라 하겠다.

머리말에서 글쓴이가 바란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다른 책들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가 커졌으니-하나의 책이 다른 책들을 연결해주는 사다리가 되었으니- 이것도 독서의 큰 기쁨 아니겠는가?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와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를 올해가 가기전 읽어 봐야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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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1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통본격리뷰는 이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로자님 반가워요.^^
 
역사 앞에서 - 한 사학자의 6.25 일기
김성칠 지음 / 창비 / 199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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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역사를 거대한 물줄기로 보는 거시사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이나 독일의 사회구조사, 프랑스의 아날학파 등은 ‘역사의 연속적 진보’라는 믿음 위에 익명의 거대집단을 역사의 집합적 주체로 삼아 큰 흐름과 줄기를 세워보려 했다. 미시사는 거시사에 대한 일종의 반항으로 성립된 역사학 분과다.

개인의 일기나 편지들도 역사적 사료로서 중요한 것들인데 이런 개인의 기록들을 통해 역사를 보는 것도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는 역사라 할 수 있다.

한 사학자의 6.25 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역사 앞에서’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학문과 가정생활, 교우에 관계되는 것을 주로 실은 45년-46년 그리고 50년 1월의 일기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50년 6월 25일부터 51년 4월 8일까지의 일기, 그리고 맨 마지막에 실린 동료학자, 조카, 제자, 아내의 추모의 글 이렇게 세부분으로 말이다.

지은이의 아내도 말했듯이 지은이는 학자로서의 소명을 갖고 하루하루를 기록했다. 단순한 신변잡기나 일상의 기록들이 아니라 극심한 혼란기 함께 살아갔던 사람들과 그들의 생각, 처지가지도 그리고 당시의 사회분위기까지 목적의식적으로 꼼꼼히 기록했던 것이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온갖 모순이 복합적으로 합해져 모순의 결정판으로 볼 수 있다. 이는 후에 다양한 문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그 당시는 가슴 아픔과 울분이다.

지은이 김성칠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스스로가 “역사의 필연성을 믿었으나 성격이 다우지지 못해서 온건한 학우로 지냈음” 이라고 정의했듯이 그는 민족을 우선시하는 우파에 가까운 보수적인 사학자였던 것 같다.

그가 쓴 조선역사도 그렇고 열하일기 번역본도 그렇고 그는 항상 우리 민족을 우선시하는 그런 학문을 하였다. 전쟁이 치열해지고 서울신문에서는 미군이 원폭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에 반발해 쓴 일기를 보면 더욱더 그렇다. 현재 스스로 보수주의자라 하는 사람들이 민족도 내팽개치고 미국을 위한 집회, 기도회를 갖는 것을 보면 이 땅의 보수주의의 전통이 언제부터 왜곡되었는지 가슴을 칠 일이다. 그래서 언젠가 김용옥은 어떻게 김정일을 처단하고 같은 민족을 몰살하자는 사람들이 스스로 보수주의자라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다는 말을 했나 보다.

그는 보수적인 우파의 사상경향을 갖고 있었지만 좌익친구들에 대한 표현들에서 그가 그들에게 갖고 있었던 애정을 읽을 수 있다.

엉터리 선거에 대한 부분과 의용군 지원에 대한 그의 시각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후 이뤄진 이산가족들의 만남(의용군에 입대해서 자진 월북한 분들, 또는 월북한 학자, 예술인들이 많았음)을 생각나게 했고 그의 일기가 역사적인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지만 이 기록들만이 사실이고 진실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쨌든 해방 이후 북은 토지개혁으로 수많은 소작농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 벅차오름의 역사는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도 통탄했듯이 문화인들과 기술자들의 월북은 당시 남한이 이들에 대한 인권과 생활보장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월북한 이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많은 부분이 달랐는지 모르겠고 이후 벌어진 정치적인 숙청으로 많은 인재들이 안타깝게 사라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이 토대가 되어서 전쟁이후 완전 파괴된 그들의 조국을 일으켜 세우고 남한보다 부강한 나라를 60년대까지 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전쟁의 혼란한 가운데서도 독서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방송이나 신문이 열악했던 그 상황에서도 그 당시 정세를 정확하게 읽어내기도 했다.

그의 일기 곳곳에서는 부모, 가족, 형제에 대한 애틋함을 볼 수 있다. 가족에 대한 다정다감함뿐만이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동물, 식물에 대한 각별한 마음은 그가 얼마나 온순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나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 당시 남한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 노동자들과 그가 느끼는 전쟁은 틀림없이 다른 부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서로가 위협받는 생명에 대한 느낌도 달랐을 것이고 비슷했다고 할지 모르나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방법 또한 달랐을 것이다.

북의 한글전용에 대한 그의 호의와 다른 인텔리들의 반발을 보면 요즘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식인, 학자가 학문을 하고 글을 쓰는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무지한 백성들이 최대한 알지 못하게...

난폭운전을 하는 흑인을 보고 그들의 피는 이러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기에는 아직 이른 것이 아닌가라는 표현에서는 흑인에 대한 편견도 느낄 수  있다. 그의 이런 편견과 그 당시

전쟁에 참전했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느꼈을 수많은 편견들이 겹쳐지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학자답게 파괴되고 훼손되는 문화유산과 귀중한 사료들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가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했던 것은 그것보다는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이 전쟁을 어떻게 보십니까?”  “첫째는 동족상잔함이 슬프고 둘째는 미군과 조선 사람이 겨루어 방금 피를 흘리고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미군에 마음을 붙이고 있는 사람이 많게끔 되었으니 이 사실이 더욱 슬프다”

일제 식민기간, 해방 이후, 또 전쟁을 거치며 우리는 많은 인재들을 잃었다. 김성칠 또한 잠깐 다니러간 고향에서 왜 좌익에게 살해되었는지 그 이유를 충분하게 추측 할 수는 없지만 그의 죽음은 아쉽기 그지없다. 그는 틀림없이 전쟁 중의 양민학살에 대해서도 꼼꼼히 기록했을 것이고 우리민족의 주인의식을 고취시키는 역사연구를 했을 것이다.


항상 새해에는 수많은 다짐을 한다. 그 중 하나는 일기쓰기(사실은 메모라도)인데 그의 일기를 보면서 단순한 나의 일상뿐만이 아니라 진지한 내면의 성찰(?)을 글로 남길 수 있다면 하는 지키지 못할 바램을 가져본다.

한 사람의 기억과 회상에는 한계가 있다. 어떤 사건에 대해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기록을 남긴다면, 그 기록들이 서로를 비판하고 교정해 진실의 성채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도록 이끌 것이다.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마르쿠제의 말처럼 “지나간 고난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그 고난을 야기했던 힘들을 무찌르지 않고 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5년 우리 모두 기억하고, 기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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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6-2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리뷰를 너무 늦게 읽었네요.
저도 오래 전 참 재밌게 읽었던 책인데......
로자님 말씀처럼 흑인에 대한 약간의 편견 등은 엿보였지만
균형감각이 참 미더운 글들이었어요.^^
 
선비 뱃속으로 들어간 구렁이 한겨레 옛이야기 14
최성수 지음, 윤정주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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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향에서 구미호 이야기를 보거나 이야기 책에서 이무기 이야기를 보면 진심으로 정성을 다한 이의 조급함으로 인해 사람이 못되고 용이 못된 여우와 구렁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고작 하루를 참지 못한 인간에 대한 원망은 여우가 그 인간과 어머니에게 온 정성을 다하고 그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것을 위해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알기에 더 커진다.

기존의 이야기들 때문일까 나는 가난한 선비가 당연히 밥을 뿌릴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눈을 질끈 감고 밥을 씹어 삼키는 선비의 모습은 나를 놀라게 했다. 구렁이라는 것을 알았고(그것도 신령님 비슷하게 보이는 할아버지를 통해) 용이 되기 위해 선비와 그 가족들을 잡아먹을 거란 이야기를 들은 상태에서 나와 가족에게 고맙게 해 준 구렁이 여인이 나를 잡아먹고 용이 되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 말하는 선비는 구미호네 신랑과 비교되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사람이다.

권선징악이라는 통쾌한 결말이 보장된다는 옛이야기에서도 노력하고 정성을 다하는 동물들이 제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인간계와 동물계의 넘을 수 없는 구분 때문인지 그야말로 전설의 동물은 전설, 신화 속에만 존재해야 하는 때문인지 나는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선비 뱃속으로 들어간 구렁이>에는 다섯 편의 옛이야기가 나온다. 나무도령과 호랑이 아가씨 이야기는 많이 본 이야기인데 구렁이가 등장하는 세 편의 이야기는 낯선 이야기들이다. 특히 선비 뱃속으로 들어간 구렁이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이야기다(생각만 해도 속이 안좋다).

옛이야기의 상상력을 떨어뜨리고 각자가 가질 수 있는 개별의 의미를 빼앗는다는 삽화지만 차본한 톤의 색깔과 민화를 떠올리는 그림이 그리 싫지만은 않다. 다만 너무 친절하게 그려줘서 상상을 빼앗는 그림들이 몇 있었다.

'고마워요! 나무도령'에서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간절한 소원을 상징하는 것은 아이를 갖게 해 달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힘든 농사일을 누군가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을 볼 수 있다. 또 인물의 특징이 극단적으로 정형화되어 있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고마움을 모르고 또 동물에게 함부로 하는 소년이지만 농사일만큼은 꾀부리지 않고(팥쥐처럼 편법을 쓰지도 않고) 얼마나 열심히 몸으로 하는가. 비록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랬겠지만.  하지만 주의를 배려하지 않는 성실함을 경계하는 우리 조상들과 지은이의 마음을 엿보는 것 같아서 좋았다.

'가난한 선비와 구렁이 여인'에서는 나이 서른이 넘도록 일하지 않고 책만 읽는 선비의 모습이 답답했다. 그리고 선비의 착한 성품을 묘사하면서 "아무리 마음이 바른들 무얼하겠어요?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한 살림이었으니"라는 표현을 보면서 요즘의 여러 사건들이 떠올라 다시 한번 가슴이 답답해졌다.

옛이야기가 아이들의 무의식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욕구불만을 해소하고 정신적 성장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면 우리가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보여줘서 옛이야기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이유는 분명해진다. 자신이 느끼는 부당함, 불평등함을 다른 사람이 가해하는 것으로 풀어내지 않도록. 가난한 아이들도 세상을 희망적으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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