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 주니어 클래식 1
윤소영 풀어씀 / 사계절 / 200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의 공통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읽은 사람은 거의 없는 책이라고 한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도 그런 책 중의 한 권이 아닌가 싶다. 교과서에서 무수하게 제목만 들어 본 책 하지만 정작 어떤 이야기가 실려 있는지는 실은 잘 모르는 책으로.

중학교 과학교사 윤소영이 풀어쓴 이 책은 종의 기원 각장의 주요부분을 인용해 해설하고 거기에 다윈 이후 새롭게 증명된 부분을 추가한다거나 현재 논의 되는 부분을 곁들어서 <종의 기원>이라는 제복만이 존재했던 책을 우리에게 쉽게 접근시켜 준다. 주니어 클래식이라는 이름만 보고 청소년용의 책이라는 단정은 짓지 말아야겠다. 쉽게 풀어쓰려 애를 썼지만 청소년보다 곱절은 나이를 더 먹은 나에게도 만만한 내용은 아니었으니 그렇다고 우리 청소년의 수준이 결코 나정도 라고는 하고 싶지 않다.

적절한 자료사진과 각주의 성실함 더불어 다윈 주위의 여러 학자들과 요즘의 학자들과 이론에 대한 소개는 이 한권이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여 더 폭넓은 독서로 안내하게 될 것이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한다.


어린시절부터 자연과 곤충, 산책에 열심이던-이는 이후 다윈 스스로도 학문의 성공요인이라 말하는 것의 기본이 된다. 유년 시절부터 유심히 관찰하는 능력을 가지고 관찰과 수집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자연과학에 대한 사랑이 꾸준하였고 열정적이었다는 것, 유년 시절부터 목격한 것이 무엇이든 이해하거나 설명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가졌다는 것과 모든 사실을 일정한 일반 법칙 아래 묶는 것을 말한다- 다윈은 아버지의 질타와 염려 속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할 비글호 항해에 참여하게 된다. 비글호 함해는 당시 제국주의 영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해도 작성이 목적이었으나 다윈은 남아메리카를 탐사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끊임없이 관찰하고 사색한다. 항해를 계속하면서 다윈은 종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고 그러면서 사람도 같은 법칙에 따라 생겨났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된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주장하는 내용들은 단순히 과학 분야에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만이 아니라 철학, 종교를 아우르는 사회의 가치관을 흔들 수 있는 이론이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어린 시절 또는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머리는 다윈의 머리, 몸은 유인원인 그런 그림을 보았다. 다윈의 진화론은 당시의 사고체계를 부정하는 지동설에 견줄만한 혁명적인 이론이었던 것이다.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증거자료와 사례들을 제시했음에도 <종의 기원>은 오만한 인간에 대한 모독과 전지전능한 창조자 신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되고 선한 눈과 순한 얼굴을 가진 다윈의 마음고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음이 분명하다.

158쪽의 프로이드 말을 보면 인간의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인류는 두 차례에 걸쳐 과학의 손이 그들의 천진한 자기애에 가한 거대한 모욕을 참아내야 했다. 첫 번째는 우리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거의 상상하기 조차 힘든 규모의 대우주 안에 있는 작은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 두 번째는 생물학 연구로 인해 신의 특별한 피조물이라는 특권을 강탈당한 채 동물계의 일원으로 추방당한 때였다”

고대로부터 과학기술이 첨단화 되었다는 오늘까지도 이런 인간의 오만함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윈이 이야기한 진화라는 것도 우열을 가르자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를 말한 것인데 컴퓨터 광고에서도 아이들 만화에서도 진화는 발전, 진보의 의미만을 담고 있다. 그러나 다윈이 말하고자 하는 진화론의 진화는 다양성 증가이다. 모든 생물체가 우수한 형질 즉 우생학에서 말하는 잘난 종족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풍부한 생물계에서 인간의 위치를 돌아보는 겸손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머리 속에서 어느 날 문득 생각한 이론이 아니라 지질학과 생물학의 끝없는 관심과 자료들을 수집하고 관찰하면서 지구가 만들어낸 증거들을 마주한 다윈의 자각이 아니었을까?

가설을 증명해 가는 과정에서 또는 그 이전부터 변이와 자연선택에 확신을 가진 다윈이지만 화석의 한계와 증명되지 않은 가설들로 인해 자신이 조사한 자료와 과학적 진실이 왜곡되고 의심 되었을 때 참 외로웠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교리 선생님은 대학의 물리학과 교수님이었다. 교리 시간이 끝날 무렵 하느님을 부정하는 이론을 믿어서는 안 되고 그런 책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구절을 보고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진화론과 창조론에 대한 생각이었다. 교리 선생님과 그것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생각이 난다. 종교는 종교일 뿐! 비과학적인 것을 맹신하라는 것은 아니니 걱정 말라는 선생님의 말에 얼마나 안심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문제는 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먹이 피라미드의 맨 윗자리 생태지도의 맨 윗자리를 차지한 인간의 몰염치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을 우수한 것과 열등한 것으로 나누고(나는 우성형질이 우수한 형질이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고등학교 생물시간 우성인자, 열성인자를 배우고 유전인자를 작성하면서 쌍꺼풀은 그렇다 치고 곱슬머리가 왜 우수한 형질인지 늘 의문이었다) 지구라는 별에 가장 늦게 나타나서 가장 제멋대로인 인간의 위치를 생명의 나무를 보면서 제대로 보려 했으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 멸종되는 많은 종은 수수방관하고 이미 멸종된 테즈메니아 호랑이, 매머드 이런 것의 부활로 생태계의 다양함을 꿈꾸는 어리석인 인간의 제 위치를 똑바로 보았으면 좋겠다.

그림 그리기를 제대로 배우지 못함을 후회했다던 다윈, 그의 <종의 기원>에 등장하는 단 하나의 그림 <생명의 큰 나무>와 글쓴이의 친절한 해설을 보면 이전에 막연히 생각했던 원시 생물에서 고등생물로 발전하는 잘못 알고 있는 진화라는 개념이 아닌 하나의 울창한 나무처럼 오래전부터 연속해서 살고 있는 생명체와 지금은 사라져 버린 생명체들을 아우르는 진화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고 숙연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글쓴이는 진화론을 생각하고 이야기 할 때 지켜야 할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는 자신의 신념은 신념대로 과학적인 사실은 사실대로 어느 정도 분리해서 다뤄야 한다는 거다. 믿음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 결단이지만 과학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과학을 대할 때 어떤 믿음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둘째, 어떤 부분의 불완전함을 꼬집어 전체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비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겸손하고 성실한 과학자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이렇게나마 맛볼 수 있게 해준 글쓴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문자를 해독한다는 즐거움을 많이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쉬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글자를 매개로 180여 년 전의 겸손하고 성실한 과학자 다윈의 이론을 만나고 학문에 대한 그의 태도도 엿볼 수 있었으니 이는 독서의 큰 기쁨이라 하겠다.

머리말에서 글쓴이가 바란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다른 책들에 대한 호기심과 욕구가 커졌으니-하나의 책이 다른 책들을 연결해주는 사다리가 되었으니- 이것도 독서의 큰 기쁨 아니겠는가? 스티븐 제이 굴드의 <풀하우스>와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를 올해가 가기전 읽어 봐야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5-10-1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통본격리뷰는 이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로자님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