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의 붉은 별 - 러시아 혁명은 제3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비자이 프라샤드 지음, 원영수 옮김 / 두번째테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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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이윤을 얻는 자본가들의 눈에서 빛나는 황금을 위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장관, 공장 소유주, 은행가들은 험한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기를 희망한다. 그들은 전시에 부자가 되고 있다. 전쟁이 끝난 다음 그들은 군비 세금을 내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와 농민들이 모든 희생을 당할 것이고 모든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친애하는 여성 동지들, 가끔씩 시시한 장사꾼들에게 들끓는 분노를 터트리면서, 아주 오랫동안 계속해서 이 상황을 조용히 받아들일 것인가? ... 범죄적 정부와 도둑, 살인자 도당을 타도하자!
평화 만세! -P25~26

1917년 3월 8일 국제 여성노동자의 날 여성들은 ˝빵을 달라! 내 남편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구호를 외쳤다. 노동자와 농민은 계속 가난했는데 부유한 자본가는 전쟁 특수를 노리니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 노동자들은 파업을 벌였고 들끓는 시위의 열기는 결국 러시아 군주정을 무너뜨렸다. 그 결과 임시정부와 소비에트의 이중 권력이 형성되었으나 여전히 노동자와 농민의 불만을 잠재우기는 어려웠다. 레닌은 차르가 물러났다 해도 독점자본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가를 망가뜨릴 뿐이라 말한다. 나아가 그는 권력이 피지배계급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러시아 2월 혁명에서 끝나지 않고 10월 혁명이 일어난 하나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10월 혁명으로 소비에트는 스스로 권력을 장악했다.

10월 혁명은 전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멕시코 혁명의 배경이 되었고 이집트와 이라크에서는 반란이 일어났으며 레닌의 민족자결권 선언 명령이 식민지 국민들에 영향을 주어 조선의 3.1운동, 중국의 5.4운동(나아가 중국공산당의 결성), 인도와 몽골 혁명을 초래했다.
1920년 동방노력자대회에 참여한 연설자 터키 공산주의자 나시예 하님의 요구사항 리스트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완전한 권리의 평등, 남성을 위해 세워진 교육, 직업 기관에 대한 여성의 무조건적 접근 보장, 결혼에서 양성의 평등한 권리, 일부다처제의 무조건적 폐지, 입법/행정 기관에서 여성 고용의 무조건적 허용, 대도시/중소도시/마을 등 모든 곳에서 여성의 권리와 보호를 위한 위원회의 설립 등이다. ‘진실로, 우리는 길 없는 암흑 속을 헤맬지도 모르고, 벌어진 틈 가장자리에 서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새벽을 보기 위해서는 어두운 밤을 지새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P117)
여성 볼셰비키 혁명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1921년 정치국 회의에서 동방 여성 특별 대회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스탈린의 반응은 아직 너무 이르다며 시큰둥했다 한다. 그럼에도 결국 동방여성회의는 열렸고 동방의 여성들이 노조와 클럽으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처럼 공산당은 여성 문제에 관한 여성의 투쟁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성 전선을 창출했다. 이 조직들과 투쟁이 이슈를 형성하며 공산당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여 공산주의 여성운동이 발전할 수 있었다. 이는 향후 1945년 국제민주여성연맹의 탄생되는 배경이 된다.

그러나 코민테른이 활동을 시작한 이후 러시아의 모스크바 지도부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혁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지도자들은 모스크바 지도부를 맹종함으로써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러시아 민중들과 다른 욕구를 가진 자기 대중들과의 접촉이 부족했다. 코민테른이 비판을 받고 나아가 비난을 받은 이유는 이런 영향도 있었을 것 같다. 조선도 비슷한 상황이었고 인도의 경우 ‘카스트에 기반한 봉건 질서 위에 자본주의적 질서를 겹쳐놓았을 뿐이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비밀 협약을 맺었고 1945년 종전 이후에도 유럽은 파시즘을 단지 유럽적 현상, 독일과 이탈리아의 탈선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 파시즘이 단지 식민주의와 연계 없는 나치즘이라고 암시함으로써 유럽인들은 부활이 가능했다. 미국은 탈식민화가 진행되면 식민지 국가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했기에 식민주의의 지속을 지원했다.
1956년 소련이 헝가리를 침공하고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폭로하자 제3세계에서는 소련의 명성에 금이 가는 계기가 되었다. 공산주의는 분열화되며 다층적 양상을 띠게 된다. 1966년 민족해방운동 진영에서는 트리콘티넨탈(삼대륙회의)을 개최하며 민족해방을 강화시키기자 단결하였으나 소련은 서구와의 데탕트로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지지를 낮춰갔다.
소련을 전적으로 숙청이나 다양한 상품 생산에서 실패한 것 등으로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실패한 점도 기억해야 한다. - P163

러시아 혁명 이후 제3세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정리해놓은 책이다. 핵심만 요약해놓아 가볍게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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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옛 지침으로는 모든 사람을 다 설득할 수 없는, 심지어 우리마저도 설득할 수 없는 시대에 살면서 ‘올바른 일‘을 하려 애쓰고 있다. 도대체 ‘올바른 일‘이란 무엇인가? - P43

우리에게는 사실이 필요하다. 그러나 속임수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그런 사실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 P67

그리스도교 이야기의 중심에는 예술적이고 대중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낸 사랑스러운 ‘백인 여인’이 그의 아들 앞에 찬양의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있을 수 없다. 거기에는 식민지에 살면서 온갖 희생을 강요당하면서도 이에 대항하며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는 임신한 여인이 서 있어야 한다. - P107

아담과 하와는 선사 시대의 선조들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만난 적이 있고, 또 그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신화적 시간으로 투영된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우리는 단순히 인간이라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위대해지려고, 뭐든지 지배하려고 애쓰고, 그리하여 모두를 망가뜨리고 만다. …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방법을 고치려고 하고, 또 어느 정도 고치는 데 성공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호수를 오염시키고 산림을 황폐케 한 우리 이전 세대들의 욕심이 남겨준 찌꺼기를 가지고, 그리고 과거에 치른 전쟁으로 촉발된 역겨운 원한 관계를 가지고 살지 않을 수 없다. - P114

예수의 생애 이후 2,000년 동안 유대교는 그 보편주의적 성격과 예수주의적 특성 사이에 일정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살아오고 있다. 최근의 학계에서는 기원후 처음 3세기 동안은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더 보편주의적 성격이 강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 이래 오만하고 제국주의적이 되자 유대인들도 할 수 없이 자기들의 특수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교에 있는 보편주의적 흐름이 결코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유명한 코즈니츠의 레베는 "오 주님,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시옵기 간구하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했다. 예수의 가르침이 이런 개방적인 경향성을 그의 전통 속에서 특별히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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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곡미풍 -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위화 지음, 백도라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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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알라딘을 보던 중 레이더망에 걸려든 책이다. 위화 산문집이라니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다. 소설로는 몇 권을 읽었지만 산문집은 또 다른 느낌일테니... 무엇보다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산곡미풍‘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 습기가 가득한 주변의 공기가 순간 산뜻한 봄바람을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산문집의 내용은 작가의 삶의 기억 어느 순간으로 데려간다.

작가는 현재 베이징에 생활하지만 태어난 곳은 항저우, 어린 시절은 그 부근의 하이옌이란 곳에서 십수년을 살았다. ‘바닷물이 왜 푸르지 않고 누렇지?‘라는 질문을 품고 그는 강에서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바다는 늘 푸르다고 이야기하는데 정작 작가가 마주한 현실의 바다는 누렇기 때문이었다. 의문을 품은 그는 직접 뛰어들었고 그것이 수영을 진화하며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그는 바다가 보고싶어져 부모님과 함께 갔다. 과거에는 바다를 자신이 더 좋아했지만 이제는 부모님이 바다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이는 자식이 크고 부모와 떨어져 살면서 함께 만나 경험하는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들과 함께 간 바다란 특별하다. 장소가 특별하다기보다는 역시 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하겠지. 좀 울컥했다.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드는데 날로 부모님의 건강은 좋아지기보다는 나빠지기 때문이다.

쿠스트리차 영화 감독의 신발끈은 늘 풀려있었다. 주변인들은 그가 왜 신발끈을 풀고 다니는지 궁금해했다. 마침내 얻은 그의 대답은 경직된 태도를 갖지 않고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작가는 유년 시절 말더듬증이 있었다고 한다. 극복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나도 좀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발표 시간만 되면 온몸이 떨려오면서 심하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혼미해지곤 했다. 말더듬은 물론이고 그건 거의 공포에 가까운 경험이었다. 발표시간만 되면 주눅이 들어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누군가 내게 질문이라도 할까봐 그 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었다. 그때 나는 몸의 긴장을 푸는 법을 몰랐던 것 같다. 지독한 긴장이 낳은 증상이 아니었을지.

천당풍의 여름 풍경은 눈을 감고 떠올리면 더 오롯이 즐길 수 있는 간접 경험이었다. 산들바람은 거센 바람도 얕은 바람도 아니다. 그 미묘한 세기의 느낌을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란 쉽지 않을텐데 작가는 그 느낌을 내게 전해주었다.
유년 시절의 먹거리 중 프티드 마들렌을 이야기하자 작가도 그렇지만 자동스레 나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떠올랐다. 내 어린 시절의 먹거리는 뭐였지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처럼 빵집이 많았던 시절도 아니었기에 마들렌은 귀한 것이 아니라 아예 명칭 자체가 낯선 것이었다. 내겐 분식 메뉴가 그나마 가까웠다고 할 것 같다. 특히 중학교 시절 학교 앞 맞은편의 분식점에서 먹었던 떡볶이와 고구마 맛탕 맛은 잊을 수가 없다. 이처럼 맛은 추억을 재현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작가의 부모님은 모두 의사 출신이다. 아버지는 외과의사였고 어머니는 내과의사로 일하셨다고. 그런 환경 덕분인지 5년 정도의 치과 의사 경력이 있는데 좋아서 한 일은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그만두었다고. 어쨌든 이런 환경이었기에 그는 병원이라는 환경과 친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10년 간 살던 집의 방은 창문 맞은 편으로 영안실이 있었기에 망자들이 오가는 곳이었다. 그래서 죽음은 상상으로 그치지 않았고 현실과 가까이에 있었다.
지금의 아이들은 어떻게 유년 시절을 보낼까 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물질이 유혹하는 소비주의 시대를 사는 아이들은 예전보다는 풍족하게 생활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부익부빈익빈이 더욱 심해지지 않았는가. 오히려 비교할 거리가 더 넘쳐나는 요즘은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기 더 어려워진 환경에 놓인 게 아닌가 싶다.

작가는 베이징을 좋아한다 말했다. 모르는 사람 사이를 걷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라고. 나 또한 그렇다.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때가 오더라도 과연 내가 도시를 떠나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평생을 이동하며 살아오긴 했지만 나도 도시를 떠나 산 적이 없다. 완벽한 타인의 도시에 정착한 사람들은 어떤 질문을 품으며 일상을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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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르타가 온다 - 냉전과 반공, 대량학살이 만들어 낸 세계
빈센트 베빈스 지음, 박소현 옮김 / 두번째테제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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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상 야카르타, 야카르타 비에네. 플란 야카르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된 이 표현들에서 ‘자카르타‘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또한 이것은 트루먼 행정부가 ‘자카르타 공식‘을 따랐던 1948년에 자카르타가 의미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다. 그때의 ‘자카르타‘는 워싱턴이 위협으로 여기지 않아도 되는 독립된 제3세계의 발전을 뜻했다. 이제 ‘자카르타‘는 아주 다른 것이 되어 반공 대량학살의 동의어가 되었다. 자카르타는 미국에 충성하는 자본주의 권위주의 정권의 건설에 반대하는 민간인을 국가가 조직적으로 절멸시키는것을 뜻하게 되었다. - P334


1954년 과테말라, 1964년 브라질,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는 비슷한 형태의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다. 사건(?) 이후 해당 국가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 질서에 편입되었다. '냉전반공'이란 단어가 익숙하면서도 어느 순간 이 단어와 제발 좀 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이 질서와 무관하지 못하다. 여전히 분단된 한반도는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동맹국인 미국을 비롯하여 주변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며 줄타기를 해야 하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제3세계의 많은 국가들도 그렇다. 오랫동안 진실을 은폐해온 미국과 소련의 문서들이 하나 둘씩 해제되면서 과거에 벌어졌던 충격적인 진실이 수면 위에 올라오고 있다. 가족이 흩어지거나 다치거나 죽고 국적을 상실해 떠돌아야 했고 수용소나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갇혀 악질적 고문을 받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공산주의를 척결한다는 구실로 수없이 자행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등에 공산당이 부상하자 이를 경계한 미국은 트루먼 독트린 하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물론 미국 내에서도 반공주의적 입장만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등장인물인 프랭크 위즈너와 하워드 팔프리 존스의 입장만 봐도 서로 달랐으니까). 식민지 국가는 종전 후에도 독립을 위해 제국주의 국가와 싸워야 했다. 게다가 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그들은 자유주의든 공산주의든 한 쪽에 서야했다. 미국은 CIA의 주도로 공산주의 확산을 저지하고 석유 확보를 위해 이란 정권을 무너뜨리려 했고 필리핀의 좌익 지도자인 훅을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또 과테말라 정부의 집권자인 아르벤스도 몰아내려는 시도를 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버마, 실론, 파키스탄, 인도는 반둥회의를 열어 절충주의를 표방했지만 이후 상황은 그들이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는 서구 자유민주주의 대신 내각인 정당과 시민집단인 국가위원회를 둔 교도민주주의로 인도네시아만의 정치체를 실현하고자 했다. 앞서 수카르노를 암살하려고 시도했던 미국 정부는 인도네시아 군부와 손잡고 반공전선을 결성한다. 당시 미국은 근대화론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소위 근대화를 위해서는 군사 독재는 거쳐 가는 단계의 하나다라는 인식이다. 미국에 체류하던 인도네시아 지식인들은 이 영향을 상당 부분 받았을 것이다. 은연중에 스며드는 것이 무서운 법 아니겠는가. 미국에 의해 콩고 총리인 파트리스가 처형되고 콩고에는 군부에 의한 친미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진보를 위한 동맹'이라는 경제 협력 프로그램으로 미국식 경제 체제가 시작되었다. CIA는 만델라를 체포하고 이라크 공산당에 대항하고자 사담 후세인의 반공바트당 정권을 세우기도 했다. 


1959년 인도네시아 군부가 외국 국적자의 경제 제한법을 실시하면서 이민자들의 탈러시가 시작된다. 도착지는 브라질이었다는데 정작 브라질은 불평등에 의한 위계도, 인종차별도 심한 곳이었다. 1960년 브라질에 주앙 굴라르라는 사람이 등장해 개혁을 꿈꾸었다. 그러나 미국은 CIA에 자금을 투입하며 그를 끌어내리려 했다. 브라질 내 파시즘과 반공주의에 반대하던 민족해방동맹의 군인들이 해고된 동료들에 분개해 반란을 일으키자 정부는 학살로 대응했다. 대응차원에서 던진 수류탄이 폭발하자 정부는 이를 공산주의 봉기로 몰아가면서 좌파 인사를 모조리 잡아들이게 된다. 주앙 굴라르는 결국 미국이 참여한 쿠데타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나고 새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다. 


영국이 영국령 말라야를 말레이시아로 세우려 하자 수카르노는 이에 반대했다. 그러나 케네디 후 들어선 린든 존슨 정부는 베트남에서 영국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영국의 말레이시아 연방안을 지지하기로 결정한다(거기에 인도네시아 원조를 완전 중단했다). 이에 복수하듯 인도네시아는 통킹만 사건이 벌어진 뒤 북베트남과 수교했고 말레이시아가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 이사국이 되자 유엔에서 탈퇴한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이런 복잡한 사정이 엮인 줄은 미처 자세히 알지 못했던 내용이다. 미국과 영국은 이에 정규 군인들로 구성된 조직원들을 인도네시아 군 장교 집에 투입시켜 체포한다. 다음 날 미국이 내세운 지도자인 수하르토에 의한 반공 반격 계획이 실행되면서 인도네시아 공산당과 수카르노는 악마화되었다 .


그후 아체, 발리 등에서는 소리 소문 없는 체포 이후 집단 학살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무슬림 조직이 가담했다. 1945년 이후 한국 전쟁 시기 이후까지 한반도의 상황이 떠올랐다. 서로 간 이웃이었으나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다. 발리에서는 전 인구의 5%인 8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결국 수카르노는 수하르토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하고 권좌에서 내려왔다. 베트남, 과테말라, 중국, 캄보디아, 가나 등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책의 제목 중 '자카르타'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이 시기 반공 대량학살을 의미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정부에 반하는 민간인과 지식인들이 절멸의 대상이 되었다. 칠레에서는 미국의 등을 업은 군부가 독재 정권을 세우고 반공 작전 하에 3천명 가까이 되는 인명이 죽었다. '자카르타 방식'의 대량 학살과 반공 작전은 중앙 아메리카 지역으로도 확산되었다. "그들은 공산주의이므로 무신론자이며, 악마이므로 죽여도 된다." 정말이지 그 시절엔 붉은색 콤플렉스 또는 노이로제 망령이 단체로 걸려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이것이 광기가 아니고 무엇인지...


이렇듯 미국이 주도한 경제 협력 프로그램과 반공 군사 동맹은 각국 군대와 결합하여 미국식 체제에 길들여진 권위주의 정권을 공고히 했다. 결과적으로 냉전기 동안 공산주의는 '악마'로 규정되었으며, 이를 척결한다는 명목하에 전 세계적으로 폭력과 광기가 정당화되었다. 안타까운 것은 분명 이렇듯 많은 국가적 피해를 입은 이들이 있음에도 그들이 자본주의 경제 체제 하의 미국을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이다.  


책은 여러 역사 문헌을 참고하고 관련 피해자의 직접 인터뷰를 함께 실었다.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사건 속에 인물들의 경험담을 실어 그 역사가 실제적으로 느끼게 했다. 인물들의 이야기가 역사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게 책의 내용을 편집한 기법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다. 미소 냉전기 아시아에서 펼쳐진 열전에 대한 내용은 앞서 출간된 여러 책들을 통해서 접할 수 있는데 이 책은 그 범위가 아시아만으로 국한되지는 않고 미국을 제외한 아메리카까지 포함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건 냉전의 영향을 받아 온 나머지 세계에서 어떤 것은 변했지만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았다. -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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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브라질에서 이룬 빛나는 성과는 군대와 동맹을 맺은 케 - P190

네디가 추진한 새로운 전술 덕분만은 아니었다. 미국도 운이 좋았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브라질에 지난 500년 동안 흑인, 빈민, 폭력적이고 주변화된 이들에 대한 공포로 쌓아올린 아주 뿌리 깊은 자체적인 반공주의 전통,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럴듯한 반공 신화와 연례 의례가 있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장구는 국민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반격에 나서지 않았다. 어쩌면 그는 이번도 브라질 역사에서 벌어진 다른 쿠데타들처럼 체제의 재설정 같은 것이어서, 금방 지지자들을 재조직해서 다음 선거에 출마할 수 있으리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브라질에서는 그후 25년 동안 민주적 선거가이 사열리지 않았다. 워싱턴의 군 주도 근대화에 대한 약속과 지지는 존슨행정부 아래서 확고했으며, 브라질은 이제 냉전 시기 가장 중요한 친미 동맹 중 하나가 되었다. - P191

말레이어 그리고 이제는 인도네시아어 개념인 아목은 영어화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일반을 뜻하게 되었지만, 본래는 의례적 자살의 전통적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1965~1966년의 대규모 폭력이 인도네시아 전통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이유는 전혀 없다.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이런 종류의 대규모 폭력이 벌어졌다는 증거는 전혀 없으며, 있다 해도 외국인이 연관됐을 때뿐이었다. - P258

이 불가해하고 막연히 부족적인 (미국인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버전의) 폭력 이야기는 완전히 틀렸다. 그것은 분명한 목적을 위해 조직된 국가폭력이었다. 군의 완전한 권력 장악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은의도적인 절멸 프로그램, 곧 무고한 민간인 대량 살인을 통해 제거되었다. 장군들은 이 국가폭력을 통해, 대중의 지지 말고는 아무 무기도없는 정치적 반대파를 충분히 약화시킨 후 권력을 차지할 수 있었다.
희생자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기에 자신들을 쓸어 버릴 절멸에 저항하지도 않았다. - P259

1960년대 말이면 제3세계 운동은 몰락까지는 아니어도 혼란에빠졌다고 할 수 있다. "반둥 정신"은 유령이 되었다. 탈식민운동의 진보적 지도자들은 모두 사라졌다. 네루는 1964년 세상을 떠났고, 수카르노는 자신의 동맹이 학살되는 것을 보며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으며, 가나의 은크루마와 버마의 우 누는 쿠데타로 실각했다. 이라크좌파 상당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살아남은 소수마저미국을 등에 업은 사담 후세인에게 곧 쏠려 나갈 예정이었다. 이집트의 나세르는 다마스쿠스에서 일어난 쿠데타로 시리아가 탈퇴하게되면서 아랍연합공화국이 해체되자 크게 흔들렸으며, 시리아의 쿠데타 지도부는 시리아공산당을 숙청했다. - P286

오페라상 야카르타, 야카르타 비에네. 플란 야카르타,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된 이 표현들에서 ‘자카르타‘가 의미하는 바는 명백하다. 또한 이것은 트루먼 행정부가 ‘자카르타 공식‘을 따랐던 1948년에 자카르타가 의미했던 바와는 전혀 다르다. 그때의 ‘자카르타‘
는 워싱턴이 위협으로 여기지 않아도 되는 독립된 제3세계의 발전을 뜻했다. 이제 ‘자카르타‘는 아주 다른 것이 되어 반공 대량학살의동의어가 되었다. 자카르타는 미국에 충성하는 자본주의 권위주의정권의 건설에 반대하는 민간인을 국가가 조직적으로 절멸시키는것을 뜻하게 되었다. - P334

어떤 식으로건 냉전의 영향을받아 온 나머지 세계에서 어떤 것은 변했지만 어떤 것들은 변하지 않은 채로 남았다. - P380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정말이지 많은 이들이 미국에 갔어요."
안토니오 카바 카바가 내게 일롬 마을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는 그가 아는 거의 모든 남자들이 공산주의자라 의심받으며 처형당하는 것을 지켜봤던 광장을 지나고 있었다. "좀 웃기지요. ‘웃긴다‘라는 말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 마을을 파괴한 폭력이 누구 때문인지를 알거든요. 그 뒤에 미국이 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우리 자식들을 거기로 보내고 있어요. 왜냐하면 거기말고는 갈 데가 없기 때문이에요." - P386

제3세계가 진정 자유롭게 여러 체제를 실험해 보고 다른 무언가를건설할 수 있었다면 세계가 어떻게 재편되었을지 우리는 모른다. 어쩌면 발전도상국들이 힘을 합쳐 세계 자본주의의 규칙들을 바꾸자고주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제3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아예 자본주의 국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이 폭력이 없었다면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이 20세기에 승리했을 수도 있다고 (누가 피해자인지 그리고 미국의 국력을 생각하면 그 가능성은 낮지만) 생각한다.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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