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옛 지침으로는 모든 사람을 다 설득할 수 없는, 심지어 우리마저도 설득할 수 없는 시대에 살면서 ‘올바른 일‘을 하려 애쓰고 있다. 도대체 ‘올바른 일‘이란 무엇인가? - P43
우리에게는 사실이 필요하다. 그러나 속임수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그런 사실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 P67
그리스도교 이야기의 중심에는 예술적이고 대중적인 상상력이 만들어낸 사랑스러운 ‘백인 여인’이 그의 아들 앞에 찬양의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있을 수 없다. 거기에는 식민지에 살면서 온갖 희생을 강요당하면서도 이에 대항하며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는 임신한 여인이 서 있어야 한다. - P107
아담과 하와는 선사 시대의 선조들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을 만난 적이 있고, 또 그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신화적 시간으로 투영된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우리는 단순히 인간이라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위대해지려고, 뭐든지 지배하려고 애쓰고, 그리하여 모두를 망가뜨리고 만다. …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방법을 고치려고 하고, 또 어느 정도 고치는 데 성공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호수를 오염시키고 산림을 황폐케 한 우리 이전 세대들의 욕심이 남겨준 찌꺼기를 가지고, 그리고 과거에 치른 전쟁으로 촉발된 역겨운 원한 관계를 가지고 살지 않을 수 없다. - P114
예수의 생애 이후 2,000년 동안 유대교는 그 보편주의적 성격과 예수주의적 특성 사이에 일정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살아오고 있다. 최근의 학계에서는 기원후 처음 3세기 동안은 이전에 알려진 것보다 더 보편주의적 성격이 강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개종 이래 오만하고 제국주의적이 되자 유대인들도 할 수 없이 자기들의 특수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대교에 있는 보편주의적 흐름이 결코 사라진 것은 아니다. 유명한 코즈니츠의 레베는 "오 주님,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시옵기 간구하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지 않으시려면 이방인들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했다. 예수의 가르침이 이런 개방적인 경향성을 그의 전통 속에서 특별히 강조한 것은 사실이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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