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하버드에 오다 - 1세기 랍비의 지혜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비 콕스 지음, 오강남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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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사실이 필요하다. 그러나 속임수에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그런 사실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해주는 이야기들이다. - P67

년초 시사인의 책 추천사를 읽다가 담아둔 책이다. ‘이 책에서 예수는 신도들에게 복을 내리거나 쿠데타를 옹호하는 신이 아니라 오늘날의 사회와 삶을 향해 윤리적 결단을 요구하는 질문자로 부활한다. 최근 한국 기독교계를 바라보며 이 위대한 종교에 염증을 느낀 신앙인은 물론 비기독교인 독자에게도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이런 추천사를 보면서 담아놓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구매한지는 되었는데 지나갈 때마다 책 표지가 노려보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또 덥썩 손이 가지는 않았다. 유물론자이고 무신론자인 내가 이 책의 내용을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오롯이 이해 안가는 부분도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읽었다는 것에 의의를 두려 한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신으로 생각되는 예수는 랍비였고 랍비는 이야기꾼이라는 것과 혼란한 현실에서 (올바른) 사실을 찾고 거기에서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 이야기꾼이란 그저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서 하는 만담가 같은 것은 아니고 현자나 철학자처럼 언제든 내 삶에 적용하여 실천할 수 있는 교훈을 전달해줘 깨달음을 주는 이에 가깝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 삶과 분리되지 않은 메시지라는 것에 있기에 의미가 있는 듯하다.

갈수록 다양화되고 파편화되는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살아나가기란 쉽지 않은 듯 싶다. 내가 옳다고 여겼던 진실이 다른 쪽에서는 옳지 않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다원화된 세상에서 상대주의란 그래서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흐름이지만 한편으론 쉽게 선택한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럼 어쩌란 말이냐?‘하면서 현실을 놓아버린다면 냉소주의로 흘러가게 되는 것 같다. ‘이게 되겠어?‘처럼 낙관적인 반응보다는 회의적 반응이 되니 더는 긍정적인 방향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다. 작가도 그런 ‘윤리적 사유‘ 논의의 가능성조차 생각하지 않는 지금의 현실을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본래 절대주의적 믿음이란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지나친 믿음이 가져오는 파국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과연 절대주의적 선이란 것이 있을까. 그래서 공감이 가면서도 동시에 든 질문은 신자유주의 사회 이후 각자도생이 되버린 지금의 현실에서 공정과 상식을 비롯한 윤리가 통할 수 있는가와 통용될 수 있는 올바름에 대한 기준이 있는가였다.

그런 고민에서 시작한 것이 어쩌면 작가가 대학에서 수업을 진행한 이유이기도 할 것 같다. 학생들이 던진 질문들이 날카로운 것들이 많았다.

지적이고 건강하고 매우 메력적인 19세 이상 30세 이하의 영국계 미국인 여인 구함.
키는 5피트 4인치 내지 7인치, 체구는 작거나 중간 정도로 눈은 갈색이나 푸른색이어야 함.
나에게 이것을 보여준 여학생은 체외 수정을 위해 쓸 난자를 구하는 광고라고 했다. - P97
난자를 구하는 광고가 통용되는 세상에서 선이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부 축적이나 부패 문제에 대한 언급이나 종교 갈등(나아가 믿음을 빙자한 전쟁)에 대한 작가의 견해는 두루뭉술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웠다. 그리고 과학적 의학이 모든 형태의 질병을 물리치고 궁극적으로 승리하리라는 현대인의 확신이 너무 순진하다는 작가의 말도 좀 공감하기 어려웠다(그럼 미신을 믿으란 말인가).

예상할 수 있는 미래에 그리스도인들은 소수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소수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다른 종교들과 이데올로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의 소수일 것이 틀림없다. 이 말은 미국의 공공 정책은 다양한 종교 집단과 무종교 동료 시민들이 공유한 가치를 반영해서 수립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등잔과 소금의 귀중함이 다시 한번 새롭게 인식되고, 그 형태가 어떠하든 그리스도교 제국주의에 대한 엄중한 질책으로 남게 되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 P206
예루살렘에 관한 과목을 택한 학생들에게서 내가 얻은 귀중한 통찰 중 하나는 그 악명 높은 ‘예루살렘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결국 예루살렘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도시를 거룩하다고 믿는 모든 종교 전통 출신으로 종교에 헌신적인 학생들이 그 도시를 공유하는 길을 생각해낼 수 있다면, 그 참혹한 과거를 가진 도시의 장래도 어느 정도 밝아 보인다 하겠다. 필요한 것은 정치적, 윤리적 의지와 이와 함께 성스러운 장소가 공유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P320

예를 들면 작가는 이렇게 굉장히 밝은 희망을 그리고 있으나 과연 이것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이는 윤리적인 문제로만 치부되기는 어려워 보여서다. 버튼 하나면 무기를 날려버릴 수 있는 세상이기에 돈과 이익이 얽혀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과거에도 수없는 종교 갈등과 전쟁이 있었기도 하고.

그래도 ‘설화가 없으면 우리에게 끊임없이 밀려오는 단편적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남의 이야기를 듣고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이야기가 많아져야 한다는 이야기엔 공감이 갔다.

굳이 성경의 내용이나 교리적 메시지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읽을 수 있음을 나누고 싶었다. 간단히 100자평을 써야 하나 했는데 그러기엔 또 내용이 더 긴 것 같아 리뷰를 썼다.

역사의 궁극 완성을 이야기할 때 나 개인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서 안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인간 역사에 초점을 맞추기만 해서도 안 된다.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기 이전 억겁의 세월을 지탱해온 실재를 위한 희망이어야 하고, 그 희망은 목성의 가장 먼 달이나 지극히 작은 우리 이웃을 위한 희망이기도 하다. - P437
부활, 승천, 재림 같은 그리스도교 언어는 이제 위기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 이제 우리에게는 새로운 언어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마구 급조할 수는 없다. 때가 되면 언제나 그러했듯이, 상상과 세속이 뒤섞이고 신화와 역사가 교차하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 어디에서 저절로 솟아날 것이다. - P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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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생성되지 않는다 - 포스트 AI 시대, 문화물리학자의 창의성 특강
박주용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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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시공간 연속체라는 하나의 무대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릴 적 과학 탐구 과목 중 물리와 화학을 좋아했다. 그중 더 좋은 것을 꼽으라면 단연 물리였다. 사람들은 두 과목을 좋아한다고 하면 대부분 "공식 많고 외워야 하는 규칙이 많은 과목 아니냐, 그 어려운 게 뭐가 좋다고." 그런 반응들이었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그저 순수한 호감일 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좋아한다고 점수가 잘 나오는 과목도 아니었기에. 그래도 처음의 호감은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듯하다. 


작가는 자칭 문화물리학자라고 말한다. 물리학과 문화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싶지만 책을 접하고 나의 편협한 생각이 깨지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작가는 물리학과 문화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았는데 이는 물리가 문화의 탐구 대상 안에 포함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작가가 그 연결고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추적한 내용이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이라 느꼈다. 나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당신은 어떤가. 세계는 가까워졌지만 사람들 간의 거리는 멀어졌고 환경은 점차 안 좋아지고 있지 않나 해서다. 작가는 다윈의 진화론을 들며 인류의 미래를 너무 염려스럽게 생각하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른 생존경쟁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동정심과 공동체의 윤리 같은 인간 특유의 현상을 통해 약자를 배려하고 생존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기 때문이다. 과도한 걱정을 내려놓고 우리가 그려나갈 미래를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야기한다. 희망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과연 인간의 동정심과 공동체의 윤리가 현재도 남아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하물며 미래는? 내가 너무 비관적인건지. 


한편 한국의 과학 기술이 세계에서 통하려면 우리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작가의 성토는 공감이 많이 되었다. 대표적으로 최근에 개봉한 승리호 이야기를 든다. 이전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결과물은 좋지 않았다. '세계에서 통하는 과학 서사를 만드는 능력은 특수효과 기술력만이 아니라 인류의 기원과 미래를 탐구하는 깊은 주제 의식, 고난과 선입견을 극복하는 인물들, 편견과 편협한 도덕률을 벗어나려는 과감함,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서사라는 캔버스에 담아내는 자유로운 사고력이다'. 

이를 확장해보면 결국 창조력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 같다. 창조력이란 있는 것을 연결지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혀 생뚱맞은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창조력은 새로운 것이기도 하지만 영향력이 있어야 한다. 둘은 어쩌면 양 극단에 있는 개념 같은데 새롭다고 해도 사람들에게 너무 낯선 것은 아닌, 인상을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렵기는 하지만 오히려 창조력이 신선함과 새로움만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충분히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최근 들어 우리 생활에 어느덧 익숙해진 AI에 대한 질문들이 가장 많았다. 당장 몇 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진화하는 AI가 인간을 앞서게 될 거라고 우려섞인 표현들이 많지 않나. 하긴 내 직업 분야도 처음에는 AI를 보조적인 도구로 쓰다가 이제는 필수로 사용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느낀다. 이제 더는 단순히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을 넘어서 더 나은 응용 결과물을 얻기 위해 고민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AI에 질문을 던져보면 늘 같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오류가 있거나 엉뚱한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잦기 때문에 AI가 던진 답을 그대로 썼다가는 곤란해진다. 반드시 여러 검증을 통해 그 답변이 정말 옳은 것인지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 AI는 제대로 된 검증을 해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편 이런 질문도 던진다. 만약 전세계인이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면? 과연 그런 경우 소통의 문제가 없을까? 그렇다 해도 나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생각의 패턴은 다 각기 다르고 삶의 경험들이 달라 소통이 완벽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문학, 역사, 철학이 그래서 여전히 가치를 발휘하는 것 같다. 과거의 사람들을 만나며 고민을 듣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설렜던 내용은 엔트로피에 대한 내용이었다. 과학 이론서를 읽은 것이 몇 안되지만 그중 가장 재밌게 읽었던 책이 <엔트로피>였기 때문이다. 외부의 자극으로 질서에서 무질서로 변화한 정도를 나타내는 이 이론은 우주는 계속해서 더 무질서한 상태로 변화한다는 ‘열역학 제2법칙’과 함께 현재도 많이 언급된다. 질서가 있던 것도 무질서하게 나아간다면 미래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고 자유롭게 상상하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모든 예측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하다' 


사실 이번 달 독서 모임 함께 읽기 책으로 선정되어 읽게 되었다. 솔직히 내가 스스로 이 책을 읽었을 것 같지는 않았는데 제목만 보면 너무 자기계발서 같이 느껴져서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내용이 많았다. 정답이 없는 질문들이 많지만 스스로 고민해보고 타인을 통해서도 관찰해보고 하는 과정을 거치다보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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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기록을 가로채다 : 고려 절부 조씨 부인*조선 기생 가련 역사 속 여자, ㅇㅇ하다 1
장지연.윤민경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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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에서 이 책을 접했다. 마침 '역사 속 여자' 시리즈 4권을 읽고 난 뒤라 더 반가웠다. 역사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잘 보기 힘들기에 이 책이 소중하다고,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남성인 자신은 헤아리고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며 직접 읽어보시고 각자가 평가하길 원한다고 말씀하셨다. 


책의 주인공은 타인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가 전달된 고려의 조씨 부인과 조선의 기생 가련이다. 조씨 부인이 경험에 기반한 생생한 기억이 있음에도 직접 기록을 남길 수 없었던 경우라면 기생 가련은 기록을 쟁취하기 위해 남성 지식인을 이용한 경우다.


1270년 개경 환도를 반대하며 삼별초 항쟁이 시작됐다. 이때 조씨의 아버지는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가기 위해 머물러 있다 삼별초 군에 붙잡혀 남쪽으로 내려가는 상황이 되었다. 다행히 꾀를 쓴 그는 배를 돌려 무사히 개경으로 귀환했다고. 그러나 이후 그는 삼별초 진압을 위해 진도에서 제주도로 내려갔다가 결국 사망하고 만다. 이 상황에서 궁금했던 것은 조씨의 어머니의 이야기였는데 기록에 남아 있지 않아 알 수가 없다. 아무튼 그녀는 13살의 나이로 자신의 집안과 비슷한 계급인 하급 무관 한보에게 출가한다. 자세한 정황은 알 수 없지만 당시 몽골에 공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그녀가 조혼을 했을 확률이 높지 않았겠냐고 작가는 말한다. 1281년 2차 일본 원정 때에는 그녀의 시아버지가 사망한다. 당시는 여름이었기에 전염병이 있었던데다 1차 원정 때 경험으로 일본은 대비를 더 잘할 수 있었다. 조씨 부인이 27살 되던 해에는 남편마저 전투에 나갔다 사망한다. 당시 전투는 정식 싸움은 아니었으나 쿠빌라이 반란을 일으킨 카다안이 고려까지 밀려 들어오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그 싸움 피해가 무척 커서 조정은 다시 강화로 피란을 가야할 정도였다 한다. 여기서 그녀의 악재는 끊이지 않는다. 딸이 1남1녀를 출산하고 나서 그녀보다 먼저 사망한 것이다. 이후 조씨 부인은 길쌈 등 스스로의 힘으로 돈을 벌면서 생계를 이었다. 


손녀 사위인 이양직은 이곡(고려 문관 이색의 아버지)의 친구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타인의 입을 빌어 이렇게 후대에까지 전해졌다. 그러나 작가는 실제 그녀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의문을 던진다. 우선 어머니와 외가 이야기가 없다. 시어머니 이야기도 없다. 손자에 대한 설명도 없다. 그녀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여성들의 이야기는 단체로 소거되었다. 아무리 스스로 돈을 벌어 생계를 꾸려 갔다고 해도 당시 환경에서 그녀가 홀로 살아나갈 수 있었을까. 외가나 자매 등의 보호가 있지 않았다면 어려웠을테니 말이다. "만약 조씨의 일이 중국 조정에 알려지게만 된다면, 대서특필하여 기록으로 성대히 전해짐은 물론이요, 주려州閭에 정표하여 광채를 발하게 할 것이니, 어찌 끝내 이름이 파묻혀 없어지게 하겠는가." 조씨 부인 이야기는 아버지, 남편, 시아버지를 모두 잃은 여인이 개가하지 않음을 강조함으로써 이런 절부 이야기도 있더라를 보이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인데 타당한 말이다. 


1671년에 태어나 89세를 살았던 함흥 기생 가련은 긴 생애동안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녀는 한글을 잘 알고 쓰고 한문도 조금 알았지만 자신의 기록을 스스로 남기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를 만난 사람들,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조선의 양반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이건창이 쓴 <가련전>에는 그녀의 생애가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가련은 한양의 명문가 출신인 목생이 함흥에 있을 때 인연을 맺어 사랑을 한다. 덕분에 그녀는 숙종 당시 조정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데 목생이 남인이었기에 그와 관련한 정치색을 가지게 되었다. 목생은 한양으로 돌아갔으나 입소문을 탄 그녀의 행보를 안 남인 관료들이 너도 나도 찾아왔다고 한다. 노론을 비판하며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갑술환국 이후 남인이 정권을 잃으면서 힘을 잃었다고. 소설이지만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라면 충분히 있을 법한 상황이다. 

가련은 함흥에 유람을 온 권섭이 머무는 동안 가까이 지내며 찐한 연애를 했다. 그렇지만 육체적인 관계만 그친 것은 아니고 권섭이 지은 글이나 시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원고 청탁을 하기도 했다고. 당시로서는 천한 신분이었지만 그는 학구열이 남달랐던 것 같다. 특히 권섭이 노론 출신이었음에도 자신의 남인 정치색을 굽히지 않은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녀는 권섭 뿐만 아니라 함흥으로 찾아오는 문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한시 등의 글을 수집, 청탁한 글들을 모아 <가련첩>을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평생을 이처럼 뜨겁게 사랑하고 공부하면서 살다 죽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뒤 함흥 대표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련은 한편으로는 '명예 남인'을 자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양반 남성이 주도한 정치 논리의 '성실한 학습자/체현자'에 그치지 않았다. 가련은 사랑할 만한 남자를 알아 보고 열성적으로 사랑하면서도, 그 남자를 통해 기생에서 벗어나 신분 상승하는 길을 도모하지 않았다. ... 존재 증명과 인정 욕구야말로 그녀의 생애를 관통했던 화두였다. 이 시공을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의 욕망은 천민 신분인 조선시대 기생의 처지에서는 지극히 달성하기 어려운 것이었으나, 가련은 이러한 자신의 욕망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결국에는 성취해 냈다. 


이동과 통신이 제한적인 시대일수록 기록자를 경유한 구전 지식의 전달 가능성을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전근대 여성 대부분이 직접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고 하여, 그들의 목소리 찾기를 섣부르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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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레오나르도(브라질의 신학자)는 미국을 방문 중 우리 학생들을 만났을 때 맘몬(부, 재물)을 섬기지 말라는 복음서의 명령에 대한 학생들의 모호한 입장을 주의 깊이 경청하고, 그 명령을 그대로 따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혐오감을 감지했다. 학생들에 대한 그의 답변은 첫째 그는 ‘자발적 가난’과 ‘비자발적 가난’을 구분했다. 자발적 가난은 축복이지만 비자발적 가난은 사람이 만든 저주다. 자발적 가난의 목적은 비자발적 가난의 비참함을 없애려는 것이다. … "여러분이 받을 수 있는 최선의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비참과 불의를 영구화하는 사회 경제적 구조를 뜯어고치기 위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용하시는 힘과 돈 무엇이든 활용하십시오." - P228

자라난다는 것은 불만족스럽고 불완전한 결말들을 가지고 산다는 의미다. 생명이 중간에서 단절되거나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치닫거나, 화염에 휩싸이는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의미다. 우리들의 삶이 아무리 평범하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 마지막 신비의 문턱에 이를 때 우리의 삶은 모두 일종의 물음표로 끝나게 된다. - P259

말세 신학은 명백히 숙명론적이다. 해석의 근거란, 내막을 잘 아는 열성가들에게, 성격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낱낱이 다 누설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제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말살하는 것이다. - P300

예루살렘에 관한 과목을 택한 학생들에게서 내가 얻은 귀중한 통찰 중 하나는 그 악명 높은 ‘예루살렘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결국 예루살렘은 공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도시를 거룩하다고 믿는 모든 종교 전통 출신으로 종교에 헌신적인 학생들이 그 도시를 공유하는 길을 생각해낼 수 있다면, 그 참혹한 과거를 가진 도시의 장래도 어느 정도 밝아 보인다 하겠다. 필요한 것은 정치적, 윤리적 의지와 이와 함께 성스러운 장소가 공유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 P320

행동하지 않는 것도 행동하는 것만큼 큰 손실의 원천이 될 수 있다. - P343

분노, 혐오, 공포, 포학 등과 같은 감정이 윤리적 문제를 놓고 생각하는 우리의 사유 활동에서 도대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단 말인가? 플라톤 이후 칸트나 존 듀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도덕 철학자는 이런 감정이 자리할 곳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이런 감정은 명쾌한 사유 활동을 흐리게 만들고 건전한 판단력을 약화할 뿐이다. 이런 말이 대체로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장거리 전투, 대리 살인, 이메일을 통한 강탈, 지속적인 미디어 폭력의 마비 효과가 만드는 선동 등이 난무하는 오늘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그 반대 문제에도 봉착해 있다. 다른 이들의 고통을 감지하는 능력이 마비되고, 우리의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상상할 수 있는 힘도 죽어가고 있다. - P360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환경이 있을 수는 있지만 운명이나 개인의 심리적 과거사가 우리의 행위를 결정하는 유일한 이유라고 내세울 수는 없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었다"든가 "어쩔 수 없었다"라는 것이 결코 핑계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아무리 희생당하고 억압당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인간성을 앗아가는 그 무엇에든 저항하기만 한다면 계속적이고 참된 책임을 부여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 P387

역사의 궁극 완성을 이야기할 때 나 개인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어서 안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인간 역사에 초점을 맞추기만 해서도 안 된다.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나기 이전 억겁의 세월을 지탱해온 실재를 위한 희망이어야 하고, 그 희망은 목성의 가장 먼 달이나 지극히 작은 우리 이웃을 위한 희망이기도 하다. - 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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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세계의 붉은 별 - 러시아 혁명은 제3세계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비자이 프라샤드 지음, 원영수 옮김 / 두번째테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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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이윤을 얻는 자본가들의 눈에서 빛나는 황금을 위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장관, 공장 소유주, 은행가들은 험한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기를 희망한다. 그들은 전시에 부자가 되고 있다. 전쟁이 끝난 다음 그들은 군비 세금을 내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와 농민들이 모든 희생을 당할 것이고 모든 대가를 지불할 것이다.
친애하는 여성 동지들, 가끔씩 시시한 장사꾼들에게 들끓는 분노를 터트리면서, 아주 오랫동안 계속해서 이 상황을 조용히 받아들일 것인가? ... 범죄적 정부와 도둑, 살인자 도당을 타도하자!
평화 만세! -P25~26

1917년 3월 8일 국제 여성노동자의 날 여성들은 ˝빵을 달라! 내 남편을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구호를 외쳤다. 노동자와 농민은 계속 가난했는데 부유한 자본가는 전쟁 특수를 노리니 어찌 분노하지 않겠는가. 노동자들은 파업을 벌였고 들끓는 시위의 열기는 결국 러시아 군주정을 무너뜨렸다. 그 결과 임시정부와 소비에트의 이중 권력이 형성되었으나 여전히 노동자와 농민의 불만을 잠재우기는 어려웠다. 레닌은 차르가 물러났다 해도 독점자본주의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가를 망가뜨릴 뿐이라 말한다. 나아가 그는 권력이 피지배계급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러시아 2월 혁명에서 끝나지 않고 10월 혁명이 일어난 하나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10월 혁명으로 소비에트는 스스로 권력을 장악했다.

10월 혁명은 전세계에 영향을 끼쳤다. 멕시코 혁명의 배경이 되었고 이집트와 이라크에서는 반란이 일어났으며 레닌의 민족자결권 선언 명령이 식민지 국민들에 영향을 주어 조선의 3.1운동, 중국의 5.4운동(나아가 중국공산당의 결성), 인도와 몽골 혁명을 초래했다.
1920년 동방노력자대회에 참여한 연설자 터키 공산주의자 나시예 하님의 요구사항 리스트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완전한 권리의 평등, 남성을 위해 세워진 교육, 직업 기관에 대한 여성의 무조건적 접근 보장, 결혼에서 양성의 평등한 권리, 일부다처제의 무조건적 폐지, 입법/행정 기관에서 여성 고용의 무조건적 허용, 대도시/중소도시/마을 등 모든 곳에서 여성의 권리와 보호를 위한 위원회의 설립 등이다. ‘진실로, 우리는 길 없는 암흑 속을 헤맬지도 모르고, 벌어진 틈 가장자리에 서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새벽을 보기 위해서는 어두운 밤을 지새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P117)
여성 볼셰비키 혁명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1921년 정치국 회의에서 동방 여성 특별 대회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스탈린의 반응은 아직 너무 이르다며 시큰둥했다 한다. 그럼에도 결국 동방여성회의는 열렸고 동방의 여성들이 노조와 클럽으로 조직되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처럼 공산당은 여성 문제에 관한 여성의 투쟁을 발전시키기 위해 여성 전선을 창출했다. 이 조직들과 투쟁이 이슈를 형성하며 공산당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여 공산주의 여성운동이 발전할 수 있었다. 이는 향후 1945년 국제민주여성연맹의 탄생되는 배경이 된다.

그러나 코민테른이 활동을 시작한 이후 러시아의 모스크바 지도부를 제외한 다른 나라의 혁명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지도자들은 모스크바 지도부를 맹종함으로써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러시아 민중들과 다른 욕구를 가진 자기 대중들과의 접촉이 부족했다. 코민테른이 비판을 받고 나아가 비난을 받은 이유는 이런 영향도 있었을 것 같다. 조선도 비슷한 상황이었고 인도의 경우 ‘카스트에 기반한 봉건 질서 위에 자본주의적 질서를 겹쳐놓았을 뿐이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비밀 협약을 맺었고 1945년 종전 이후에도 유럽은 파시즘을 단지 유럽적 현상, 독일과 이탈리아의 탈선으로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 파시즘이 단지 식민주의와 연계 없는 나치즘이라고 암시함으로써 유럽인들은 부활이 가능했다. 미국은 탈식민화가 진행되면 식민지 국가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했기에 식민주의의 지속을 지원했다.
1956년 소련이 헝가리를 침공하고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폭로하자 제3세계에서는 소련의 명성에 금이 가는 계기가 되었다. 공산주의는 분열화되며 다층적 양상을 띠게 된다. 1966년 민족해방운동 진영에서는 트리콘티넨탈(삼대륙회의)을 개최하며 민족해방을 강화시키기자 단결하였으나 소련은 서구와의 데탕트로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지지를 낮춰갔다.
소련을 전적으로 숙청이나 다양한 상품 생산에서 실패한 것 등으로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적 문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실패한 점도 기억해야 한다. - P163

러시아 혁명 이후 제3세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정리해놓은 책이다. 핵심만 요약해놓아 가볍게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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