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내가 보기에 평양은 미국이 이승만 정권을 유지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늘 믿었다. 연설의 실제적 효과는 북한이 균형을 잃고 경계하며 다음에 어떤 일이 닥칠지 불안해하게 만든 것이었다 이것이 남한과 북한 모두에 대한 애치슨의 진정한 의도였다.
요컨대 애치슨이 스탈린이나 김일성에게 순진하게 청신호를 켜줬다거나,
그로 인해 미국의 억제책이 실패했다는 발상은 몽상이다. 연설에서 한국 관련 부분은 1950년 6월 이전에는 거의 주목받지 않았다. 내가 알기에 애치슨이 남한을 "제외했다"고 비판한 공화당원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한사람도 없었다. 그에 대한 공격은 6월 25일 이후 몰아쳤으며 미국 내의 정치투쟁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 P77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충분하지않은 수단으로 방어를 구축하고 어디로 침투해올지 예측하려고 노력하는것입니다. (・・・) 야당이나 적의 역할은 우리를 방해하는 것이며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상황 안에서 자신들의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노출된 장소를 공격하도록 적을 부추기는 방어였다-타이완은 그렇지 않았다. 타이완이 공격받는다면 행정부와 정계에 있는 애치슨의 적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다시 국민당에 의지하도록 만들 뿐이었다. 남한이 공격받는 것은 달랐다. 공격에 대한 반격은 중요한 지역(일본)을 방어하고정권에 반대하는 압력을 약화시키며, 국가안보회의 문서 68에 대한 지지를결집시킬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공격에 노출된 특정 장소가 필요했다. 공산주 - P87

의자에게 여러 선택지를 내밀고, 미국의 관점에서 보기에 더 좋은 선택을 권장할 수 있었다. - P88

당시 미국의 세계정책의 역학이 변화했다는 사실을 포착한 사람은 거의없었지만, 은둔 생활을 하던 인습타파주의자 스콧 니어링은 "춘계 공세"를시작한 것은 소련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올바르게 파악했다. "춘계 공세의 가장 주목되는 결과는 인도차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결정이었다." 니어링은 옳았다. "총력외교와 관련된 연설을 하면서 애치슨은 "민족주의의 겉모습을 띤 이런 침략자기 자신의 나라를 침범하고 있다고 생각된호찌민의 베트남 민주공화국과 베트민vietminh)을 봉쇄하는 것을 돕기 위해" 인도차이나의 프랑스에 즉시 군사원조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원조는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5월 초부터 시작됐다. 뉴욕타임스』는 이것이 발표되자 머리기사로 보도했으며, 미국 국민이 알았든 그렇지 않는 그것은 동남아시아에 봉쇄를 적용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북한도 미국의 전략에 일어난 이 - P92

런 새로운 변화를 주시하면서 그것을 "총력외교와 연결시켰다. 미국은 우선프랑스를 돕고, 그다음은 그 식민지를 탈취하며, 결국은 아시아의 민족해방운동을 억압하려고 한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5월 애치슨은 미국과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의 전략적 중요성과 도미노이론에 동의했다고 언급했다. "[인도차이나가 넘어가면 동남아시아가 넘어간다." 이런 새로운 미국의 원조에 압도된 영국 주재 프랑스 대사는 프랑스영국 그리고 미국이라는 세 식민지 종주국이 인도차이나 관련 공동성명을발표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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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6-23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지어 음도 안달려있어요 @@ ^^

거리의화가 2023-06-23 10:39   좋아요 1 | URL
ㅎㅎㅎ 한자 공부 겸 역사 공부로 진행중이에요^^;
 

12장

1949년 여름 옹진과 개성에서 일어난 전투는 대부분 한국군이 일으킨 것이었다. 그러나1949년 여름 시점에 북한은 전쟁을 벌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르면 1947년 여름 무렵 이승만 정권이 미군을 잔류시키기 위해 소요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했으며 1949년에는 미군 철수를 실현시키기 위해공격과 반격을 자제했다고 생각된다. 그 결과 미군은 철수했고 지난 40년중에서 오직 1년 동안 한국은 겉으로 보기에 미군 전투부대의 보호를 받지못하거나 미국이 작전통제권을 갖지 못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 P19

8월 13일 신성모 장관은 8월 4일 아침 옹진에서 사령부로 보낸 보고들은 대부분 경계경보에 관련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 보고의 내용은 [옹진]반도의 한국군이완패해 북한의 맹공에 아무 대항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참모들과 상황을 검토했지만(..) 옹진의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북진하는것이라고 군부는 주장했다. 군부는 철원을 목표로 즉시 북진해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장관은 로버츠 장군의 조언에 따라 공격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한정된 규모의 증원군을 옹진에 투입하는 절차에 즉시 착수했다고 말했다.
진해에서 열리고 있던 이승만과 장제스의 회담에 참석했던 총리 [이범석]는 돌아오자마자 신 장관을 불러 좀더 용기를 내서 북한을 공격해야 했다고 질책했다. 이범석 장군이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그리 놀랍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신 장관의 말을 듣고 나는 놀랐다. 이튿날 진해에서 돌아온 이 대통령도 그에게 철원 공격을 반대하는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8월 16일 무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승만은 채병덕 참모총장 김석원으로 교체하려는 생각을 내비쳤다. 김석원은 이 대통령이 오래 총애해온 인물이었다.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나기 전인지난 가을, 이 대통령은 콜터 장군과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일본군에서 복무한경험이 있는 김석원은 애국심에 불타는 남한군에게 소총 2만 정을 공급해주면 "북한을 처리할 수 있다"고 자신에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국방장관과 참모총장, 미국의 군사고문은 모두 김석원 장군에게 반대했다. 그들은 김석원을 훌륭한 군인이 아니라 허풍쟁이로 생각했다. 그들은 그가 예전 일본군이 사용하던 반자이 자살 돌격 작전으로 전선의 관할 지구에서 북한군 - P31

사로잡힌 유격대와 좌익 의심자 가운데 처형되지 않은 사람은 정치적 신념과 소속 정당을 "변경하는 강한 압박을 받았다. 경찰은 고문을 널리 자행했고, 전향을 거부하는 사람은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미국 사회과학자들의 면밀한 조사에 따르면, 지방에서 좌익이나 공산주의자로 고발된 사람은 모두 이른바 보도연맹(6장 참조)에 가입해야 했는데, 그 조직은 "의심스러운 사람을 모두 감시하고 ・・・) 이전의 사상에서 전향시키기 위해 (・・・) 경찰이 지역에서 조직하고 관리한 것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그들은 전향했지만 대부분 이승만 정권의 경찰에게 살해됐다. 위 학자들의 연구 결과,
한 작은 마을에서는 그런 사망자가 6명 발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이런 방식은 원래 식민지 시대 헌병대가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를 전향시키려고 사용한 것이었다. 그것은 일제의 분할통치 방법 가운데 가장 증오스러운 것으로, 본질 자체는 사악하지만 저항 세력 내부에 쓰라리고지속적인 균열을 내는 데는 효과적이었다. - P43

1950년 봄 남한 유격대의 패배는 뚜렷해졌고 그것은 지도층의 균열로 이어졌다. 남한 공산주의자들은 운동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으며, 김일성 세력은 조선인민군이 남한을 해방시킬 시점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게 됐다-그때 남한 유격대는 무력해 한반도의 통일에 공헌하다고 주장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나 일부에서 주장하듯 유격대 활동의 침체가 박헌영이 전통적 방식의 공격을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북한에서 권력을 소유하지 못했고 군사적 경험도 없었다. 이것은 나중에김일성 세력이 전쟁 결과의 책임을 그에게 떠넘겨 처형하는 원인이 됐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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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이곳이 전쟁터가 될지도 모르고 하늘에서 폭탄이 쏟아지게 될지도 모르고………… 세계는 지금미쳐버렸어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걸 아셔야 합니다. 괴로웠던 일, 생각하고 싶지 않는 일 모두 다 털어버리고, 네, 홀가분하게 사십시오, 임선생." - P111

"아드님 불편한 몸도 사람이 불공평해서 그런가요?"
"공평하다는 병신이라도 다 살아가는 길이 어찌 없을 것이여? 손발 없는 배암도 묵고 살고 물속의 개기도 묵고 사는디,
일찍이 가고 더디게 가는 거사 천지조화, 사람이 하는 일은 아닌께로"
‘할머니 말씀이 옳아요. 가두는 자가 없으면 갇히는 자도 없을 것이며 들판의 곡식이며 열매며, 많이 갖는 자가 없으면 굶어 죽는 자도 없을 것이며, 죽이는 자 없으면 죽는 자도 없을 - P117

것이며 주인이 있으니 하인도 있는 것, 부리 하나, 작은 밥통하나 몸속에 달고서 수만 리 창공을 날아 먹이를 찾고 번식하는 새, 겨울 한 철 나무뿌리 갉아먹으며 연명하는 작은 짐승들,
그들은 자유롭다! 해방된 존재들이다! 오직 인간들만이 사로잡혀 있다.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말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말, 말, 그것은 무엇이냐? 그것은 구원의 연장[道]이기도했지만 피로 물든 흉기는 아니었던가?‘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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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살롱 사이에는 현실이끝나는 분리선이 놓여 있었다. 게르망트댁에서의 저녁 식사는 마치 오랫동안 욕망해 오던 여행을, 머릿속의 욕망을 내 눈앞에 지나가게 하여 꿈과 친해지는 여행을 시도하는 것과도같았다. 집주인들이 누군가를 초대하여 "오세요, ‘완전히‘ 우리밖에 없어요."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친구들이 자기들 사이에 섞인 그를 보며 느낄 두려움을 그 배척받은 자의 탓으로 돌리는 척하면서, 지금까지 그들의 내밀한 친구들에게만 부여해 오던 특권을 본의 아니게 비사교적이고 조금은 호감을 사 - P109

고 있는 그 따돌림 받는 자에게도 부여하여, 그를 남들이 부러워하는 특권적인 사람으로 변모시키려고 애쓰는 그런 저녁식사 중의 하나라고 나는 믿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대로게르망트 부인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때, 나는 마치 파브리스가 자신의 고모 집에 도착하면서 느꼈던 그 보랏빛 아름다움과, 모스카 백작에게 소개되었을 때의 그 기적 같은 일을 떠올리면서, 그녀가 가진 최상의 것을 내게 음미하게 하고 싶어한다고 느꼈다.
"금요일에 혹시 시간 되세요? 아주 작은 모임이에요. 마음에 드실 거예요. 파름 대공 부인께서 오실 텐데 아주 매력적인분이랍니다. 기분 좋은 분들과의 만남이 아니라면 당신을 초대하지도 않을 테지만요."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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