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둘러싼 모든 이슈에 정치가깊숙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 P13

2030 세대는 대체로 반중·혐중 시위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할 영역이라고본다. 그러나 30대 응답자 가운데에는 시위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공개 시위가한·중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보는 이가 20대보다 많다.
그러나 2030 전체적으로는 한·중 관계 훼손, 나아가 중국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간 경쟁 구도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중국이 아닌 미국을 낙관하는 쪽으로 쏠린다. - P18

그동안 검찰의 가장 막강한 권한은기소하지 않을 권리로 통해왔다. 수사권과 영장청구권·기소권 등 다른 권한은 행사해야 그 위력이 나타나지만, 기소하지않을 권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또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큰 위력을 발휘한다. 기소를 하면 재판이 열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지만 기소하지 않으면실체적 사실 규명을 위한 절차 자체가 원천 차단된다. 검찰은 그동안 이 권한을 어떻게 사용했느냐에 따라 각각 다른 평가를 받아왔다. - P23

"경쟁에 용이한 구조를 청소년에게 만들어줄 것인지, 과열된 경쟁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후자에 방점을 찍는다면, 이번 조례 개정안은 ‘입시 경쟁을 줄이고 아동청소년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에서 퇴행한 결정이다." - P29

각종 수도권 택지지구 사업의 기초 방향은 ‘베드타운을 더욱 베드타운답게 빠르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등가교환이 발생한다. 서울의밀도를 낮추기 위해 당초 ‘자족형 도시‘를표방했던 서울 인근 신도시의 성격을 ‘베드타운‘에 가깝게 조정하기 때문이다. 서울에 더욱 의존하는 구조가 된다. 이 경우각 지자체의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 - P31

임대주택 재건축 문제에서 보듯, 포화상태인 서울에서 주택을 신규 공급하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난도가 높아지고 있다. 완충작용을 할 ‘약간의 빈 땅‘마저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목표로 세운 만큼 서울 내 주택공급 일어나기 위해서는 정비사업(재건축의 활성화가 불가피하다. - P32

이미 인공지능에 의한 혁명이 진행중이라면, 가장 시급한 일은 인공지능에게 어떤 윤리를 학습시킬 것인가를 정하는 데 있다. 그러지 못하면 인공지능이바꿀 우리 모든 삶의 영역이 전대미문의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가뜩이나 사회곳곳이 제각각의 윤리를 지탱하거나 재구성하지 못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윤리 없는 인공지능, 아니 아예 비윤리적인인공지능에 의존한 사회가 온다면 어쩔것인가?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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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정당들이 계급이나 신앙 고백의 한계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파시스트들은 국가 - P145

를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시키겠다는 약속을 내세우며 지지를 호소했다. 또한 기존 정당들이 자신의 출세만 생각하는의회주의자들에게 좌우된 반면, 파시스트당들은 출세밖에 모르는정치인이 아니라 헌신적인 투사들이 주류를 이루는 ‘책임지는 참여 정당‘ 임을 앞세워 이상주의자들에게 다가갔다. 한 정치 당파가오랫동안 권력을 독점해온 상황에서 파시즘은 분위기를 일신하고새로운 리더십으로 향하는 유일한 비사회주의적 통로로 자리잡을수 있었다. -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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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킬레우스의 노래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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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책을 읽어봐야겠다 생각할 무렵 인문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서양 고전 중 대표작이라고 하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그렇게 두 권의 고전과 관련 입문 책을 한동안 계속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스 신화는 재미가 없었지만 일리아스, 오디세이아는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데다 관련 인물들이 흥미로워서 읽는 과정이 지루하지 않았다.

이 책은 고전 일리아스를 기본으로 하여 쓰여진 소설이다. 원전 일리아스는 잘 해석된 번역본이 존재하지만 너무 웅장(거창)해서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면이 있다. 이 책은 소설인데다 문체도 부드러워 술술 읽혀서 좋았다.

일리아스의 역사적 배경이 된 트로이 전쟁은 과거만 해도 실제 있었던 전쟁이냐를 놓고 진위 여부가 논란이 있었던 적이 있었다. 현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트로이 전쟁은 실제 하는 사건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트로이 전쟁을 다룬 영화 <트로이(2004)>가 있다. 전쟁의 줄거리를 비교적 충실히 다루어서 나도 원전을 읽으면서 그 영화를 보았고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지만 나는 그의 서사보다 오히려 헥토르와 헥토르의 가족 이야기에 공감이 더 갔었다. 특히 헥토르가 사망한 뒤 프리아모스가 아킬레우스를 찾아간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일리아스를 하나의 단어나 문장으로 요약하라면 결국 ‘아킬레우스의 분노‘ 아닐까.
아킬레우스를 분노하게 한 것은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때문이었다. 그리스 연합군의 전투에 참여했던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의 도를 넘은 행위에 화가 나서 더는 전쟁을 가담하지 않겠다 선언했다. 오디세이아 등이 가서 설득해보았지만 역부족이었고... 꿈쩍 않는 아킬레우스 대신 파트로클로스가 대리 참전을 했고 그것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고 말았다.
아킬레우스에게는 파트로클로스가 그만큼 소중한 존재였음을 방증한다. 이 책에서는 연인 설정으로 나오는데 굳이 연인이 아니었다고 해도 아주 깊은 관계였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킬레우스는 보통 영웅시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에서는 영웅적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인간적으로 그려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누구나 여러 선택에서 고민을 하는데 아킬레우스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책에서 헥토르와 아킬레우스 간의 전투 장면은 문장 하나가 전부다(그만큼 아킬레우스의 전투력보다는 그 외에 것에 비중을 훨씬 두었다).
물론 그는 신분상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나서 특별히 존귀한 취급을 받는것으로 보인다(어머니인 테티스도 신의 아들임을 강조한다). 아킬레우스 삶의 전환점마다 테티스의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소설화하니 모자 관계가 왠지 더욱 두드러지는 느낌이어서 흥미로웠다.
결국 아킬레우스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데이다메이아란 여인도 있었다. 둘 사이에서 태어난 네오프톨레모스(피로스)가 전쟁을 마무리짓게 되는 것도 왠지 운명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케이론의 역할이 가장 좋았다. 그는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에게 의술 및 여러 인생의 가르침을 훈육한 스승이다. 나는 그가 지식 뿐만 아니라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주는 그런 모습이 있어서 좋았다. 이런 것이 현명함과 지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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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1-25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영학을 전공하던 대학시절, 유학파 여교수가 서양문학을 맛깔스럽게 강의한다고 소문이 나서 이 강의를 도강하러 갔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논리적 명제로 분명하게 제시된 적도 별로 없이 그냥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 ‘결집된열정‘은 다음과 같은 파시즘의 정서적 기초를 놓았다.

•어떤 전통적인 해결책도 소용없는 불가항력적 위기감.
•개인의 어떤 권리보다 집단에 대한 의무를 우선시해야 하며, 개인은 집단에 복종해야 한다는 집단 우월주의.
•자신의 집단이 희생자라는 믿음. 내부의 적이건 외부의 적 - P108

이건 모든 적에 대해 법률적·도덕적으로 한계가 없이 어떤행동도 정당화하는 정서.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계급 갈등, 외부의 영향으로 공동체가 몰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가능하다면 동의를 구하겠지만 필요할 경우 배제적 폭력이라도 동원해, 공동체를 더 깨끗하게 더 긴밀히 통합해야 한다는 요구.
•・(예외 없이 남성인) 타고난 지도자의 권위의 요청. 공동체의운명을 단독으로 구현할 국가 지도자에 대한 갈망.
•지도자의 본능이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이성보다 우월하다는 믿음.
•집단의 성공에 바쳐지는 폭력의 아름다움과 의지의 위력을찬미하는 태도.
•선택된 민족이 인간의 법이건 신의 법이건 어떠한 형태의법적 제약도 받지 않고 다른 민족을 지배할 권리. 사회진화론적 투쟁 속에서 공동체의 용맹성이라는 유일한 기준으로결정되는 권리.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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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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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라도 자신이 어떤 입장에 놓이느냐에 따라 주변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이 책은 식민지 조선을 공간적 배경으로 중일전쟁 이후 무렵 시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일본인 어린이들과 조선인 어린이들의 시선을 살펴봄으로써 자연스레 그들이 처한 상황과 주변 인식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양국 어린이들이 남긴 작품을 따로 구분해 놓지 않고 실었는데 그렇게 해야 양국 간 차이점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한다고 여겨서였다고 한다.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 1938년 제1회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를 시작으로 1944년까지 대회를 연다. 그것은 조선의 아동 문학이 더욱 탈정치화하고 개인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군국주의적 행보를 시작한 일제가 문학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어린이다움을 강조하려했다는 것은 시사할 점이 있다. 물론 그들은 표방한 것일 뿐 어린이들의 삶이 당시의 환경과 결코 무관할 수 없었음은 아이들의 글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앞선 식민지 시기에도 3.1운동이 일어난 뒤 일제가 문화 정치를 표방하며 식민지 조선에 통로를 열어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기만 정치였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 해도 양국 어린이들은 그들 간 경계로 인해 입장 차와 온도가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 읽었던 <제국의 소녀들>이란 책이 떠올랐다. 그 책은 식민지로 건너가 식민자로서 그곳에서 생활한 여성이나 식민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식민자 2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식민자들의 관점에서 식민지가 어떠했는지 개인의 경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등장하는 이들은 식민지 시기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에 재학했던 사람들로 대부분 조부모나 부모를 따라 경성에 들어왔다. 그 책을 통해서도 느꼈었지만 식민자 2세의 어린이들 대부분은 부모가 식민지 관리이거나 자영업으로 성공한 경우라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래서 재조일본인 가정에는 조선인 고용인이 있었고 고용인이 그곳에서 어떻게 불리는지 그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그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책은 식민자의 입장에서만 확인이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이 책은 양국 간 교차 상황을 확인할 수 있어 훨씬 도움이 된다. 


양국 어린이들 간 경계가 드러나는 지점은 여럿 있다. 


가장 먼저 일본인 어린이와 조선인 어린이 간 교육 차이가 크다. 일본은 1905년 통감부 설치 후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들을 위한 교육 지원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일본 문부성은 '거류민단법 재외지정학교제도'라는 법령을 통해 교원을 뽑고 재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1909년이 되면 학교조합령이 발포되어 문부성이 하던 일을 조선총독부가 그대로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조선인들에게도 교육 기회가 주어지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일본인과 차등을 두어 진행되었다. 이는 소학교 뿐 아니라 중등학교,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조선인과 일본인이 교원이 되기 위해 수업을 받는 경성사범학교가 있고, 그 뒤의 붉은색 건물에는 일본인 초등교육기관인 경성사범학교 부속 제1소학교가 있었다. 흰 건물은 조선인 어린이가 다니는 경성사범학교 부속 제2소학교였다. 그리고 수영장 근처에는 일본 가옥 같은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은 일본인 상류층 고위 자제들이 학년에 상관없이 다같이 모여  수업을 받는 '단큐'라는 곳이었다. 일장기를 상징하는 붉은색과 흰색 건물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같은 길로 통학하며 언제나 마주쳤지만, 시비가 붙지도 않고 교류를 하는 일도 없었다. - P191


일본인, 조선인 어린이의 수신(윤리) 교과서 내용도 서로 달랐다. 일본인 어린이 교과서에서는 주체성을 강조한 반면 조선인 어린이 교과서에서는 청결을 강조하고 조선의 발전에 감사하라는 내용과 외부적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자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고. 


그리고 경제적 이유도 크다. 1920년대를 기점으로 조선의 쌀이 싼값에 일본으로 반출되면서 농업의 비중이 컸던 조선 농가의 피해가 컸다. 땅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이름으로 국가의 소유가 되거나 아니면 일본인 거부나 친일파 지주의 땅이 되었다. 땅을 잃은 이들은 새 땅을 찾아 만주로 가거나 일자리를 찾으러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과 만주로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조선 내 대도시로 향했다. 그러나 아직 산업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조선 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일용직이나 잡부 정도에 불과했고 결국 그들 중 많은 수는 도시의 궁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집안에 최소한의 살림이 유지되지 않으니 조선인 어린이들은 스스로를 돌볼 여력이 없어 집안 일을 도와야 하는 일이 잦았다(그래서 일찍 철이 든 느낌). 반면 일본인 어린이들은 여유가 있어서인지 게으름이나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 보인다. 조선인 어린이들의 생활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어서인지 생활의 터전이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벼를 키워야 해서 가문 하늘에 비를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 같은 것이다. 일본인 어린이들의 글에는 감정과 상황 자체에 대한 묘사가 많았다. 예를 들면 아버지 직업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1940년 정도가 되면 일본 본국만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도 상황적으로 전쟁과 뗄 수 없는 근대 교육이 이루어진다. '너희들은 미래를 짊어질 일꾼'이라는 내용을 주입시키고 군대식 훈련을 통해 충성을 강요하며 은연중에 전쟁적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 등이다. 1937년 이후 예비 일본인들을 양성시키기 위한 기획으로 황국신민맹세가 제정되었고 전쟁으로 나가는 군인을 위해 여성들이 흰 천에 빨간 실을 수놓아 전달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아이들의 글을 보면 천황의 사진을 (마치 진짜 천황처럼 여기고) 소중히 여기거나 강한 일본 정신을 기르면 훌륭한 황국 신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 어린이 모습이 보인다. 또 신사 설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을 묘사하기도 하고 군가를 부르는 일을 눈물나게 기쁘다고 여기는 글도 있다. 조선인 지원병에 대한 글을 통해 당시의 암울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전쟁놀이를 신나해하거나 중일전쟁의 경과에 따라 일본의 승리의 발자국이 늘어났으면 하고 바라는 글을 볼 때는 진짜 좀 섬뜩했다.


전쟁 때문이 아니더라도 근대 일본의 교육은 국가의 요구에 충성하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 교육 체계는 식민지 조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45년 전쟁이 마무리되자 재조일본인은 본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귀환한 일본인들과 원래부터 본국에 있었던 일본인들은 마치 이전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의 차이처럼 경계가 있었다(원래 본국에 있었던 이들이 귀환한 일본인들을 차별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런지 자못 궁금하다. 


스쳐 지나갔지만 막상 읽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좋은 이웃분 덕분에 이 책을 접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희망도서로 받았으니 여러 사람들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책은 널리 읽혀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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