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어린이들
이영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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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라도 자신이 어떤 입장에 놓이느냐에 따라 주변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이 책은 식민지 조선을 공간적 배경으로 중일전쟁 이후 무렵 시기를 시간적 배경으로 일본인 어린이들과 조선인 어린이들의 시선을 살펴봄으로써 자연스레 그들이 처한 상황과 주변 인식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양국 어린이들이 남긴 작품을 따로 구분해 놓지 않고 실었는데 그렇게 해야 양국 간 차이점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한다고 여겨서였다고 한다.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서 1938년 제1회 조선총독상 글짓기 경연대회를 시작으로 1944년까지 대회를 연다. 그것은 조선의 아동 문학이 더욱 탈정치화하고 개인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군국주의적 행보를 시작한 일제가 문학을 통해서 역설적으로 어린이다움을 강조하려했다는 것은 시사할 점이 있다. 물론 그들은 표방한 것일 뿐 어린이들의 삶이 당시의 환경과 결코 무관할 수 없었음은 아이들의 글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앞선 식민지 시기에도 3.1운동이 일어난 뒤 일제가 문화 정치를 표방하며 식민지 조선에 통로를 열어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기만 정치였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 해도 양국 어린이들은 그들 간 경계로 인해 입장 차와 온도가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 읽었던 <제국의 소녀들>이란 책이 떠올랐다. 그 책은 식민지로 건너가 식민자로서 그곳에서 생활한 여성이나 식민지에서 태어나고 자란 식민자 2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식민자들의 관점에서 식민지가 어떠했는지 개인의 경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등장하는 이들은 식민지 시기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에 재학했던 사람들로 대부분 조부모나 부모를 따라 경성에 들어왔다. 그 책을 통해서도 느꼈었지만 식민자 2세의 어린이들 대부분은 부모가 식민지 관리이거나 자영업으로 성공한 경우라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래서 재조일본인 가정에는 조선인 고용인이 있었고 고용인이 그곳에서 어떻게 불리는지 그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그 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책은 식민자의 입장에서만 확인이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는데 이 책은 양국 간 교차 상황을 확인할 수 있어 훨씬 도움이 된다. 


양국 어린이들 간 경계가 드러나는 지점은 여럿 있다. 


가장 먼저 일본인 어린이와 조선인 어린이 간 교육 차이가 크다. 일본은 1905년 통감부 설치 후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들을 위한 교육 지원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일본 문부성은 '거류민단법 재외지정학교제도'라는 법령을 통해 교원을 뽑고 재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1909년이 되면 학교조합령이 발포되어 문부성이 하던 일을 조선총독부가 그대로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조선인들에게도 교육 기회가 주어지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일본인과 차등을 두어 진행되었다. 이는 소학교 뿐 아니라 중등학교, 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조선인과 일본인이 교원이 되기 위해 수업을 받는 경성사범학교가 있고, 그 뒤의 붉은색 건물에는 일본인 초등교육기관인 경성사범학교 부속 제1소학교가 있었다. 흰 건물은 조선인 어린이가 다니는 경성사범학교 부속 제2소학교였다. 그리고 수영장 근처에는 일본 가옥 같은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은 일본인 상류층 고위 자제들이 학년에 상관없이 다같이 모여  수업을 받는 '단큐'라는 곳이었다. 일장기를 상징하는 붉은색과 흰색 건물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같은 길로 통학하며 언제나 마주쳤지만, 시비가 붙지도 않고 교류를 하는 일도 없었다. - P191


일본인, 조선인 어린이의 수신(윤리) 교과서 내용도 서로 달랐다. 일본인 어린이 교과서에서는 주체성을 강조한 반면 조선인 어린이 교과서에서는 청결을 강조하고 조선의 발전에 감사하라는 내용과 외부적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자는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고. 


그리고 경제적 이유도 크다. 1920년대를 기점으로 조선의 쌀이 싼값에 일본으로 반출되면서 농업의 비중이 컸던 조선 농가의 피해가 컸다. 땅은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이름으로 국가의 소유가 되거나 아니면 일본인 거부나 친일파 지주의 땅이 되었다. 땅을 잃은 이들은 새 땅을 찾아 만주로 가거나 일자리를 찾으러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과 만주로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조선 내 대도시로 향했다. 그러나 아직 산업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조선 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일용직이나 잡부 정도에 불과했고 결국 그들 중 많은 수는 도시의 궁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집안에 최소한의 살림이 유지되지 않으니 조선인 어린이들은 스스로를 돌볼 여력이 없어 집안 일을 도와야 하는 일이 잦았다(그래서 일찍 철이 든 느낌). 반면 일본인 어린이들은 여유가 있어서인지 게으름이나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 보인다. 조선인 어린이들의 생활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어서인지 생활의 터전이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벼를 키워야 해서 가문 하늘에 비를 내리기를 바라는 마음 같은 것이다. 일본인 어린이들의 글에는 감정과 상황 자체에 대한 묘사가 많았다. 예를 들면 아버지 직업을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1940년 정도가 되면 일본 본국만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에도 상황적으로 전쟁과 뗄 수 없는 근대 교육이 이루어진다. '너희들은 미래를 짊어질 일꾼'이라는 내용을 주입시키고 군대식 훈련을 통해 충성을 강요하며 은연중에 전쟁적 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 등이다. 1937년 이후 예비 일본인들을 양성시키기 위한 기획으로 황국신민맹세가 제정되었고 전쟁으로 나가는 군인을 위해 여성들이 흰 천에 빨간 실을 수놓아 전달하는 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졌다. 


아이들의 글을 보면 천황의 사진을 (마치 진짜 천황처럼 여기고) 소중히 여기거나 강한 일본 정신을 기르면 훌륭한 황국 신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 어린이 모습이 보인다. 또 신사 설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을 묘사하기도 하고 군가를 부르는 일을 눈물나게 기쁘다고 여기는 글도 있다. 조선인 지원병에 대한 글을 통해 당시의 암울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다. 전쟁놀이를 신나해하거나 중일전쟁의 경과에 따라 일본의 승리의 발자국이 늘어났으면 하고 바라는 글을 볼 때는 진짜 좀 섬뜩했다.


전쟁 때문이 아니더라도 근대 일본의 교육은 국가의 요구에 충성하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 교육 체계는 식민지 조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45년 전쟁이 마무리되자 재조일본인은 본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귀환한 일본인들과 원래부터 본국에 있었던 일본인들은 마치 이전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의 차이처럼 경계가 있었다(원래 본국에 있었던 이들이 귀환한 일본인들을 차별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런지 자못 궁금하다. 


스쳐 지나갔지만 막상 읽어볼 생각은 하지 못했는데 좋은 이웃분 덕분에 이 책을 접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희망도서로 받았으니 여러 사람들이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책은 널리 읽혀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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